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여야 하는 이유

by 남재준

이공계가 국가를 끌고 가는 경우, 대강 두 가지의 모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중국식 기술관료제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에서 주로 빅 테크 CEO들의 리더십을 통해 보이는 기술중심주의적인 시장근본주의이다.


어느 쪽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택도 없는 주장이 서슴없이 나오지만, 여기에는 기술이 실제로 사회적 맥락 안으로 들어올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의식이나 감수성이 결여된 경우가 상당하다.


일론 머스크의 황당함을 넘어서 제정신이 아닌 수준의 소시오패스적인 공직 수행 과정을 보면, 왜 이런 유의 인간들이 공공 영역에서의 주도권을 가지면 안 되는지가 여실히 보인다.


이자들은 자기 영역 안에서만 활동하게 하고 규제를 받아야 한다.


문과가 나라를 운영해서 망쳤다는 주장 그리고 거기에 전제된 문과가 지배자를 맡는 일이 많았다는 인식은 그 자체로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많은 지배자들이 전통적 권위, 신분, 계급, 종교 등으로 인해 지배자가 됨 / 혁명 등 급진적 변화로 인해 집권했고 학력 자체가 높지 않음 등에 해당했다.)


엄밀히 말하면, 문과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이나 계급의 문제에 가깝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가 출세 지향적인 분위기와 불합리한 지능 중심 시험 제도 그리고 사회이동의 저하로 인한 계급 고착화를 사회적 디폴트값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런 사회에서 나오는 리더는 문과 출신인 게 중요하다기보다, 예컨대 중상층 출신인데 머리만 좋아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일 뿐이다.


고등학교 때 어느 수학 선생님이 '조선이 성리학에 갇혀서 혁신적인 수학, 자연과학, 공학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라는 전형적인 이공계들의 편견과 무지에 갇힌 말을 했다.


이 논리는 '파시즘/나치즘/군국주의 시대 때 핵무기 개발이나 인체 실험 등에 기여했으므로 이공계와 이공학은 악한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와 유사하다.


수학, 자연과학, 공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던 실학자들도 기본적으로는 유자(儒者)들이었다.


또 과거제는 기술적인 입시용 작문이나 경전 암기 등으로 전락해 갔기 때문에, 이미 중국에서도 일찍이 왕안석이 좀 더 행정 역량을 볼 수 있는 관리 임용 시험으로 개편하자는 개혁안을 내기도 했다.


성리학 자체는 학문일 뿐, 그것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지정되고 후기로 갈수록 아예 사회문화적으로 구조화되면서 변질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공계들은 실용적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실은 경우에 따라선 가치 판단이 거세되거나 무지에 빠진 채로 중국과 같은 체제를 옹호하거나 하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문화, 사람 등에 대한 선호와 중국의 체제에 대한 비판은 양립 가능하다)


권위주의와 이공계는 매우 쉽게 결합한다.


리커창이나 왕양 등, 문화대혁명 직후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당료나 각료로 올라선 이들이 공격적이고 '실용적'인 대개의 중국 정치인들보다 온건하고 합리적이었다.


이들은 절대적이고 구조화된 공산당 통치의 권위 하에서 자오쯔양과 같은 운명이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 했으나 동시에 시장 자유화와 소득 분배의 개선, 사회적 포용성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건국 초 저우언라이의 보다 온건하고 포용적인 공동체주의적인 중국식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이어받은 것으로도 보인다.


최근 이미 AI를 이용한 플랫폼 콘텐츠나 대학 과제물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를 규제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미 '가능하다고 해서 규범적으로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더 나아가서는, 경제문제와 경제정책이라도 단순히 산업과 기술 그리고 그 구체적 내용으로서의 공학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국민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입장에서는,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가지고 이는 가치와 사람으로 연결된다.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로 대표되는 가치나 이해의 첨예한 복잡한 연계들을 보면, 기계적 내지 과학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크다.


물론 그러한 학문이나 방법론이 배타적으로 배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리더십이나 정책결정 등에 있어 문과적 소양이 아예 없는 사람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과적 소양은 꼭 학력에 구애 받는 것은 아니므로 대학에서 문과를 전공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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