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대표가 합당 제안을 한 것의 비민주성(?)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민주당과 조국당이 서로 나뉘어 있는 것 자체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민심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독립된 정당이 있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그게 있다고만 해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볼 때, 두 당은 이념적·정책적으로 차이가 없고 구체적인 면에서 존재하는 차이들은 한 당을 같이 하지 못할 정도라고 볼 수 없다.
조국당은 결국 조국의 정치 참여를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조국이 민주당에 입당하기엔 민주당 입장에서 부담스러운데, 그렇다고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다툴 수는 없었으므로 비례용 정당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조국당은 한국정치 혁신과 진보정당 대체라는 조건을 절대 충족할 수 없다.
조국당은 노무현이 극복하고자 했던 1인 보스, 명망가 정당 그 자체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해 진보적 시민사회와의 연계도 전혀 없고, 이 당을 끌고 가는 구성원은 대개 중상층 이상 전문가들과 문재인 청와대 출신 등이다.
더구나 야당이면 절대로 될 수 없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우당(友黨)을 자처하며 대선/총선이라는 전국 선거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대의를 국민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민주당 밑으로 기기를 자처한다는 것 자체가 이 정당이 독립된 정당, 야당으로서 아무 의미가 없음을 방증한다.
정치적 책임이라는 차원에서도 민주당과 조국당의 분립은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실제로 한 당이었으면 그렇게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 없는 것을, 진보정당의 표를 잠식하거나 허수아비 위성정당으로 만들고 정치적 다원성을 소멸시키면서 까지 민주당계(민주+조국)가 원래 가져야 할 의석보다 더 가져갔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중국 공산당처럼 민주+조국이 정말 개헌선 이상까지 다 먹겠다고 설치는 판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해 권위주의를 밀어붙였던 보수정당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보수정당보다 더 하다.
두 당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의 본질이 이제야 드러나는 면이 있다.
결국 이재명이 장악한 민주당과 조국이 장악한 조국당 간의 족벌 다툼에 지나지 않다는 본질이다.
민주당 안에서 절차적 민주성이니 원칙을 운운하는 합당 반대론자들도, 결국 정청래가 앞서 나가는 게 보기 싫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는 없다.
명청 갈등이니 하는 것도 웃기는 소리다.
이재명과 정청래 사이에 어떤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현재 당내에서 정청래를 따르지 않는 것과 정청래를 따르는 것 사이에는?
정청래가 독자적 계파를 가질 대권주자급의 인물이나 되는가?
정청래가 최소한 최고위원들과는 제대로 논의하고 합당 제안을 대외적으로 밝혔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무를 총괄하는 당대표가 일일이 최고위원들과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설령 그 말이 맞다손 치더라도, 정청래가 합당을 제안한다고 해서 민주당의 합당 의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또 조국당이 선뜻 거기에 응해 오지도 않았다.
설령 양당이 1차적으로 합당이라는 목적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합당을 위한 구체적 협상이 결렬되면 합당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로 내부 논의를 해야만 합당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당원들과 정치인들이 논의한다고 해도, 민주성이라는 점을 놓고 따진다면 수권정당인 공당이 합당을 하는데 당원과 정치인 정도로 논의한다고 절차적 민주성이 보장되는가?
당원들의 논의가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 것인가?
기본적으로 그들은 지도부가 낸 제안에 대해 서로 유의미한 반대의견을 가지고 토론하거나 표심의 양분을 보이는 일이 거의 없다.
이 안을 실질적으로도 의견을 나누는 게 거의 의미가 없다.
조국당과 민주당을 병립시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병립을 시키는 게 얼마나 유의미한가가 중요하다.
병립을 위한 병립은 승리를 위한 야합 못지 않게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합당 반대론자들 중 ‘원칙’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민주당의 원칙은 이미 오래전에 짓밟히고 뭉개졌다.
이낙연에게 모욕을 주고 비명계에게 린치를 가하고 비명횡사 공천을 했고, 조국당이 등장해 정의당이 가져갈 수도 있었던 표를 잠식해 버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상 정치적 다원성도, 민주적 원칙도 사라졌다.
이제는 조국, 유시민 등마저도 린치 대상으로 삼는다.
이 둘도 그간 민주당의 비민주화와 집단 린치 등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이다.
유시민의 경우에는 아예 공범이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때 비명계가 자기들이 당권을 잡기 위해 동지를 팔았다는 식의 말 같지 않은 말을 내놓았던 작자이다. 핵심은 이재명이 금반언의 원칙을 깼다는 점이었다. 비명계는 구심점도 없고 수도 극도로 적은 상황이었다. 당권은 고사하고 공천부터 가능성이 없었다. 친명계가 이미 다수인 상황에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건 낙천은 물론이고 거대한 친명의 분노와 린치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동지' 앞에선 원칙도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마저도 매우 잘못된 것처럼 공격한다.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2024년 총선 때는 선거제도개혁에 대해서도 소선거구제인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일대일로 붙으면 민주당만 더 많이 승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으니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자는 견해를 수용하는 게 어떠냐는 말도 있었다.
이는 2004년 1인 2표제 도입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나 매한가지였는데, 결국 당시 이를 고민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던 주류 친명은 이재명 본인을 포함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렇다고 비명계, 진보정당, 민주진보 시민사회, 제3지대 등의 요청을 들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폐단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선거제도개혁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이언주나 박지원 같은 노골적인 해당행위자들을 그대로 받아주기도 했다.
이언주가 과연 민주당의 정체성에 대해 말할 자격이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결국 민주당 내 합당 논의는, 이미 오래전에 짓밟은 원칙을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민주당 내부의 일부가 대단한 양심인들이라도 납신 것처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과 조국당은 근본적으로 다른 정당이 아니라 하나의 정당이어야 한다.
두 정당은 일체로서 유권자의 수권과 책임을 부담해야 하고, 서로 다른 정당이라는 기만으로 책임은 회피하고 권력만 더 가지려는 식의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