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일본 총선 결과를 보고
이번 일본 총선 결과는 심각함을 넘어 비정상에 가까운 정도이다.
나는 일본 자민당에 호의적이지만(솔직히 내가 일본국민이라도 지역구 내지 비례 중 적어도 하나는 자민당을 택했을 것 같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빠르게 국정을 안정화했고 정치적 파급력도 뛰어나다.) 한 당이 홀로 2/3 이상을 차지한다는 건 현실정치보다 근본적으로 헌정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부 제동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 국회 의석수로 보면 여당이 204석을, 제1야당이 31석을 가져간 것과 같다.
심지어 만약 연합이 해제되면 그 31석 중에서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은 대략 반 정도씩 가지게 된다.
그러니까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된다고 가정할 경우 제1야당이 16~17석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거의 싱가포르보다 약간만 더 나은 수준으로 간 게 아닌가 싶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깨진 건데, 이런 일이 생겨도 사람들은 무감할 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자민당이 독주를 넘어 폭주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2020년에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을 지지했던 것을 후회하는 입장에서..)
한 당이 과반을 넘어 개헌선까지 차지한다는 건 여당이 아무리 잘해도 정상적이지 않다.
하물며 여당인 자민당이 잘 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제1야당인 중도개혁연합을 구성하는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그렇게 심각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인들의 합리성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시바 시게루는 정치자금 스캔들의 뇌관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저조했다.
하지만 다카이치 사나에는 본인은 무관해도 그녀가 속했던 세이와정책연구회는 정치자금 스캔들의 뇌관에 있었다.
제도적으로 자민당의 대응은 계속 뜨뜻미지근했고, 심지어 이번 총선엔 이시바 총리 때의 스캔들 유관자 배제를 깨고 그들을 공천했다고도 들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그냥 다카이치 사나에의 개인적 매력이라던가 하는 것 때문에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선택했다.
2024년 총선과 2025년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일본국민들이 자민당을 선택하지 않고 이제와 자민당에게 유례 없는 압승을 안겨준 이유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자민당이 대체 불가능했다는 점 + 중도개혁연합이 너무 심각하게 찍을 유인이 없었다는 점,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정치인의 개인적인 매력 때문에 성공한 거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시바 시게루가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는 불쾌감이 계속 든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이유 중 하나로 일본-중국 관계 악화를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반중 정서 때문만으로 자민당에 대한 계속되어 오던 경멸을 멈추게 되었다고 하면 약간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되었을 것이다.
이 이슈에서 문제의 질문을 했던 오카다 가쓰야 중의원 의원은 결국 의석을 상실했는데, 일본정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축에 들어갔으므로 매우 씁쓸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른 면도 있다.
리버럴-중도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혁신계 정당들은 이전부터 중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색깔론을 언급하려는 게 아니라 외교적 실리라는 명목으로 다카이치 총리가 중일관계를 악화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면 최근 치솟은 일본 내 반중 감정에 불을 붙이는 꼴이었다.
(내가 '색깔론이 아니라'라는 말을 굳이 붙이는 것도, 결국 리버럴-혁신계가 중일관계의 유지/개선 취지로 주장을 하면 일본 국민들 사이에 넓게 깔린 반중 정서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입헌민주당은 그 문제를 건드리면 안 되었다.
개인적으로 오카다 가쓰야, 겐바 고이치로, 에다노 유키오 등 입헌민주당 중진들이 모조리 낙선했다는 점에 경악했다.
또 입헌민주당 단독으로 보자면 20석으로 주저앉은 건데, 공명당을 중도우파 정당이라고 보면 공산당의 4석, 레이와 신센구미의 1석까지 합하면 리버럴-혁신계는 순식간에 25석이 되어 버렸다.
1996년 민주당의 창당 이래 리버럴 정당이 이렇게까지 심한 패배를 당한 적은 없었고, 패배를 넘어 2012년 민주당이 정권을 잃을 때의 480석 중 57석에 필적할 정도의 궤멸이다. (이때의 민주당 대표 & 총리도 노다 요시히코였다..)
실은 그보다 더하다.
중도개혁연합이 확보한 의석 49석 중 입헌민주당계가 가져간 것이 21석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중도개혁연합을 해산하면 입헌민주당은 제1야당조차 지킬 수 없는 처참한 수준으로 될 수 있다.
노다 요시히코의 '중도화' 전략은 궤멸적 실패로 끝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입헌민주당은 노다의 리더십 하에서 너무 무기력하고 매력 없는 정당으로 보였다.
차라리 에다노 유키오가 대표였을 때의 리버럴-진보 바이브가 훨씬 더 나았고, 입헌민주당 지지자들도 정확히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중도개혁연합에 투표하고 싶지 않은 입헌민주당 측 유권자들이 표를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개헌선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국회에선 자민당의 개헌을 막기 힘들게 되었다.
호헌파 입장에서는 국민투표(일본국헌법 제96조 제1항) 외에는 남은 방어막이 없다.
아베와 다카이치 치하 자민당은 '안보와 성장'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더는 경제를 떠받칠 수 없고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며, 또 다시 국민에게 과중한 노동 부담을 안기며 임금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재현/계속될 수 있다.
국방 예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국민에게 부담을 늘리는 것도 상관 없다는 것이 자민당 중의원 의원 다수의 의견인데, 서구에서도 긴축과 국방 예산 증가 그리고 복지 예산 삭감 등을 주장하는 기조가 커졌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국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의 생활과 직접 연계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부담을 더 지는 것이다.
'강하고(안보) 풍요로운(성장) 일본'이라는 수식은 말만 그럴듯해 보이고 내실이 없는 표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제 일본 중의원에서 이러한 비판을 유효하게 할 수 있는 세력이 전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일본 총선을 단순히 '다카이치의 대승리'로만 보고 경탄하며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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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민주당은 노다 요시히코를 선택한 대가를 치렀다.
아래는 내가 2024.10.2.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의 당선에 관해 쓴 글이다.
[<일본 입헌민주당의 아쉬운 선택>
일본의 장기집권여당이 자유민주당이라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도 새 대표를 선출했다.
민진당이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으로 분열된 이후에는 리버럴 세력이 주축이 된 입헌민주당 중심으로 재편된 만큼 당내 리버럴-진보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당내 우파인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새 대표가 되었다.
그것도 혁신계를 대표해 출마한 에다노 유키오 전 대표보다 2배 이상 많은 득표를 했다.
입헌민주당의 지지층은 재집권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해 노다 전 총리를 택한 모양이다.
이번 대표선거의 화두는 공산당과의 야권연대 지속 여부였는데, 노다 전 총리는 그간 계속 이를 반대해 온 만큼 앞으로 입헌민주당은 공산당과는 거리를 두고 유신회나 국민민주당과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민당은 기시다와 이시바를 선택하는 등 아베 이후 온건파인 보수본류를 택해왔다.
그런데 자민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제1야당이 당내 보수파의 영수를 대표로 세웠다.
입헌민주당이 보수와의 밀착을 강조한다면, 달리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중도화를 통한 수권 역량에 대한 강조만으로는 일본의 정치 지형에서 집권을 획책하기 어렵다.
입헌민주당이 아무리 수권 역량을 강조한들 자유민주당에 필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을 화두로 자유민주당과는 다르면서도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야 한다.
자민당과의 협력을 강조해 온 노다 대표가 과연 야당을 야당답게 지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시바 신임 총리가 총선을 다시 열면 입헌민주당은 자유민주당에 또 다시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 때에 가서야 차별화의 가치를 깨닫고 다시 에다노 전 대표 등 리버럴-혁신계를 주목하게 될까 싶다.
물론 공산당과의 협력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산당은 내부 민주주의가 전무하고, 입헌민주당이 아무리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공산당은 기본적으로는 그것을 뛰어넘는 좌익 성향의 정당이니 입헌민주당의 경향과는 맞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더욱 입헌민주당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자민당을 흉내내는 식으로는 자민당의 대안을 자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