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활자의 생애사와 현대 정치사회의 단상

by 남재준

이 글은 그냥 설명문에 가깝다. 세대론적 생애사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정치적·사회적 감수성의 하나를 설명하고자 한다. 뉴스나 도서에서 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실은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이 놓쳐 버린 중요한 중핵 감수성의 하나이며, 동시에 내 어머니의 감수성과 성향은 표심이라는 결과론적으론 여전하지만 민주주의와 한국정치 전체로 보면 계속 침식되고 퇴보하고 있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본다.


나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머니는 ‘생활자’라는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다. 현대적 중하층의 감수성을 보존하고 있다. 갈 곳을 잃은 ‘침묵하는 다수’의 일원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머니는 서울 출신으로 결혼 후 일산에 자리 잡아 현재까지 거주 중이다(달리 말하면, 본래 수도권 도시 출신이고 고정된 정치성향이라는 게 없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청년기에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잠시, 그리고 중년기에 전업주부로, 현재에는 블루칼라 노동자가 되어 있다. 외할머니가 홀로 키우신 한부모 가정 출신이고, 삼남매 중 위아래로 오빠와 남동생이 있는데 가운데 낀 여성이다.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소위 학벌상 이름 있는 대학은 아니었다. X세대의 맨 앞에 태어났고 성년이 된 직후에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몇 년 후였다. 그래서 90년대나 지금이나 ‘그렇게 큰 차이도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율과 선택’이 중시되는 문화적 바이브의 첫 세대였다. 어머니의 양육 스타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기본적으로 자식을 엄하게 잡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방임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머니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면, 어머니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이후 등장한 노무현-문재인에게 동감했고, 2004년 비례대표제 도입 이래로 지역구 민주당계 + 비례대표 진보정당의 경향을 유지했다. 그때는 권위주의, 가부장제, 성장 중심주의 등에 매우 반감이 컸고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립이 시대적 본 그라운드였다. 최근 계절과 날씨의 불규칙함에 대해 어머니는 내게 ‘그러니까 내가 너네(나와 내 동생)한테 그랬잖아. 지구를 지켜야 한다니까.’라고 했다(그렇다고 딱히 어머니가 환경운동이나 어떤 사회운동에 참여한 건 아니다. 그냥 일상인으로서의 일반적인 대강의 사회의식 정도.). 생활자적 감수성이란 소비자의 감수성을 독립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의 어머니는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가끔 아파트 단지 같은 데 섰던 재래시장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현재는 아예 바빠서 근처 대형마트나 쿠팡을 애용한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천천히 물건을 두고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어머니는 개인적 사정도 있고 해서 주식에 대해서가 아니면 정치에 대한 관심도 열정도 없다. 이재명에 대해 반대하지 않지만 딱히 지지하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코스피 지수 5,000이나 전국민지원금 같이 ‘현실적으로 이익을 준’ 점들에만 호평하는 정도랄까. 2024년 총선 때는 녹색정의당이 아닌 조국혁신당을 택하기도 했다(다만 조국 사태 당시 어머니는 조국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이고 회의적이었다). 어머니의 평에 의하면 그 당시의 녹색정의당은 ‘공보를 봐도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고 심상정도 예전 같지 않다’. 2018년이었나, 한 번 정도는 보수 교육감 후보에게 투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경인 지방 공대 출신으로 기술자가 된 86세대의 ‘변두리’에 있었던 아버지와는 개인적 성향이 판이하다. 아버지는 내 또래의 다른 부모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자연스러운’ 격렬한 반(反) 보수 성향을 지녔다. 이재명 후보를 역대 어느 민주당 후보보다 강력하게 지지했고, 청년층이 이재명 대통령을 싫어하는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동년배 부모들은 정서적으로 놀랍게 비슷하다. 어떤 친구는 민주당 성향에 가까운데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대학 가더니 변했다’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베이비부머세대의 끄트머리에 있는 이들 특히 남성들은 굳이 표현하자면 ‘민주적 가부장’들이다. 실체는 가부장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민주적임을 어필한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치적 결론(투표 성향)은 같은데 개인적 성격이 매우 다르다.


내 부모님은 꽤 다원적인 민주진보 진영의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준다고 본다. 나머지는 아예 민주당의 핵심이 되는 상위권 대학 출신 86세대와 97세대, 조금 더 아랫세대가 되는 80년대생 40대 중산층, 기성세대 호남 출신 농민 등, 노동계와 진보적 시민사회 그리고 남동 임해 공업 지역의 노동자들, 그리고 가변적이긴 하지만 수도권에 있는 소수의 청년층이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이념적으로나 사회집단의 정체성 차원에서나 매우 다원적인데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당은 다원적 정당이 되어야 하지만, 최근에는 40대와 50대 그리고 86세대 일부의 강경한 목소리가 전부가 된 느낌이다.)


어머니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뭐랄까, 내 어머니는 여성+X세대라는 중요한 문화적 배경을 가졌다. 이런 배경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사회학적(?)으로는 유의미하다고 본다. 반독재+민주화+평화통일(=민주진보 특유의 내셔널리즘적 역사해석)(+계급/민족해방(?))의 남성적인 민주진보 대의를 넘어서, 개별화된 생활자의 정서를 가지게 된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86세대나 호남 출신처럼 민주당 충성파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고학력자는 아니었어도 지적 욕구가 있었다. 내가 자연스럽게 독서를 선호하도록 했고, 어머니 스스로 좀 더 젊었을 때에는 국어국문학으로 최근에는 일본학으로 방송통신대를 수료하거나 졸업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어머니와 같은 사람들이 비로소 자신의 선택지를 찾은 것은 노무현의 등장 후였다고 본다. 노무현은 중상층 전문직이긴 했지만 호남 출신도, 고학력자도 아니었다. 노무현의 참여민주주의는 삼김시대의 보스정치와 지역주의를 넘어,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이고 진영 논리에 과몰입된 경향에 거리감을 느낀 청년층이나 도시 중하층에게 어필한 면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화이트칼라건 블루칼라건 생계와 직업을 생각해야 하고 부양과 소비 등에 연계되어 있다. 저소득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상층 이상만큼 여유 있지도 않다.


여성인 경우에는 좀 더 특수하다. 이 세대의 많은 여성들은 좀 더 개방화되고 여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수면 위로 올라온 첫 세대의 사람이었다. 가부장제에 복무했던 전통적 여성도, 그렇다고 온전히 평등하고 고학력이며 자신의 인생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현대적 여성도 아닌 이들이 상당히 많다. 기본적으로 가부장제의 틀을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보수적이지만도 않다. 인문성, 포용성, 생활자의 합리성, 문화적 개인주의 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어머니는 참여정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강금실 법무부장관 임명’을 들었다.


보수성도 있다. 정확히는 소시민적 시각이 매우 강하다.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실은 상당 부분 내가 강하게 영향을 받기도 했고. 해외원조에 대해 냉담한 편이고(반사적으로. 말하자면 ‘내 문제가 더 골치 아파.’), 소수자 문제에 대해 양육 차원에서의 현실론(만약 동성 커플이 아이를 양육하는 경우, 그 아이가 받게 될 세상의 시선이 자의 복리에 부합하는지)을 말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는 진심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고 했고, 개인적으로 지저분하고 태만하며 무절제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노후에 복지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한 각별한 거부감을 표한 적도 있다. 종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일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는 개신교를 가정 형성 후에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신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성당을 다니진 않는다(‘냉담자’).


(흔히 생각하는)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진보이고 그 반대면 보수라는 설명의 예외이기도 하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내 또래의 어떤 아이의 어머니도 민주당 지지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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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에 아주 오랜만에 광화문의 교보문고를 가려고 나섰다. 오는 길에 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우익-극우 쪽 집회가 있었다. 반이재명과 반중국 정서를 담은 집회였는데, 행렬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장년층이 그 뒤를 이었으며 선두나 중간중간에 청년들도 있었다. 뭐 그거 자체는 그럴 수 있는데, 흐린 날씨와 저녁 시간이라는 조건에 겹쳐 음산했다. 도로를 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양옆의 인도에서 오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평범한 시민들이 간혹은 지나가기 바쁘고 간혹은 그 행렬을 보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해지고 마침 비가 오니 그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안 사람들도 몇몇은 커다란 창문으로 그 행렬을 보고 있었다. 카페로 들어갈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아이를 봤다. 여자아이는 행렬을 보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행렬을 보고 있었다. 인도의 두 사람과 도로의 행렬이 매우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 정치사회의 현재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 그때 아마 광화문광장 쪽에서도 민주당인가 친민주당 원외 진보정당인가 하는 데서 집회를 한 직후인지 그랬던 것 같다.


양측의 집회와 시위 어느 쪽도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 집회나 시위가 아무리 좋은 대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것과 무관하게 나는 ‘아이들에게 참도 좋은 걸 보여준다.’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엄마(?)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그 집회와 시위를 하는 어른들을 두고 한 말이다. 집회와 시위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최근의 어둡고 격앙된 분위기들은 우익 집회 행렬을 지켜보던 엄마와 아이 그리고 나를 비롯한 카페 안과 거리의 많은 시민, 나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애써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평온함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리사 머코스키 미국 상원의원이 브랫 캐버노 대법관 후보자 인준 관련한 연설에서 말했듯, ‘저는 우리가 서로를 무너뜨리는 새롭고 심지어는 더 창의적인 방식들을 찾아낸 것이 뉴 노멀이 될까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그저 “잊어버려. 기억할 가치도 없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와 제 좋은 친구, 메인 주에서 온 좋은 친구(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에 대해 비난하는 글들을 보았습니다. 증오하고, 공격적이며, 진정으로, 진정으로 많은 이들이 지금 행동하고 있는 방식이 귀결될 끔찍한 태도였습니다. 이건 우리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을 키워내 되게 할 것이 아닙니다.’


이 두서없는 글을 남기는 이유는, 뉴스나 책에서 나오는 정치적 양상이나 사회집단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극단적인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을 위해 사회건 국가건 뭔가 희망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학계에서 소환되어 논의되는 돌봄의 윤리, 돌봄국가의 패러다임이 이 분열되고 상처 입은 사회와 국가를 치유하기 위해 좀 더 부상할 필요가 있다. 생활자와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가 아니면 이 지독한 피로와 환멸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 삶을 감당하기도 벅찬 국민에게 정치가 피로를 주는 것은 극도로 예의가 아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정치인 중 마도카 요리코(円 より子, 1947-)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와 같이 ‘동아시아적 리버럴’의 단면을 보여주는 정치인이 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엉뚱하지만 일본 신진당이 1997년에 해체된 후 1998년에 보수리버럴계가 민정당으로 재편되기 전까지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포함한 5인의 중의원 의원이 구성한 프롬 파이브(フロム・ファイブ, 1997-1998)라는 정당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에서였다. 5인의 의원 중 마도카는 유일한 여성 의원이었다.


물론 그 시기 일본에 여성 의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여성인권의 실질적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갈 길이 상당한 일본사회의 현황을 보면 관심을 가지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마도카는 도쿄 소재 여대인 쓰다주쿠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의 영자신문인 재팬타임스의 편집자, 프리랜서 기자 겸 작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문제와 가족문제 그리고 환경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혼 여성 지원, 임신과 출산 과정의 의료 인력과 조직 확충, 나병 환자 인권보장,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최초 입법제안자 등으로 활약했다. 이후 민주당-국민민주당으로 이어졌으나 선거 운이 좋진 못했다. 2010년까지 참의원 의원을 지내다 2024년 총선 때 14년 만에 국민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고(도쿄 비례), 이번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마도카 전 의원과 같은 사람들이 정치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어떤 면에서 이전보다 더욱 돌봄과 포용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중장년 여성들의 경우 보수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지점조차도, 방임과 혼란에 가까운 현재 상황에서는 과거의 규범과 현재의 다양 간 가교와 접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긴요하다.


IMG_1535.jpeg 2026년(제51회 중의원) 일본 총선에서의 중도개혁연합 포스터. 문구는 '생활자 우선(퍼스트)', '생활을 중심으로'.
Yoriko_Madoka_20250314_SHU_houmu_4.png 마도카 요리코(円 より子, 1947-) 전 일본 국회의원. (2025년 국민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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