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운동회가 아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운명?

by 남재준

Henry Zeffman: Six key questions about Keir Starmer's future


키어 스타머가 사임하는 게 맞다.


그의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리더십과 무엇보다 '노동당' 정권이라는 최소한의 체감을 거의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적절한 리더십을 찾을 수 있다는 조건 하에, 이 정도 시점에서 리더 교체는 위험하긴 하지만 해볼 만한 선택이다. 그렇게 성공한 경우가 없지도 않다. 선거에서 참패하고 나서 교체하면 늦다. 한 번 빼앗긴 정치적 조류는 회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욕을 먹는 것이 디폴트값인 여당이라면 더욱.


가끔 보면, 여의도나 웨스트민스터 등에 있는 '현실정치를 잘 아는' 자들은 정치를 무슨 운동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는 운동이 아니다. 협동은 사회적 활동인 정치의 본질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치는 '방향키'가 더 중요하다. 이 방향키는 리더십의 개인적 스타일, 사고방식, 언행, 정책 등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무조건 리더를 지키는 게 능사라고는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당내 정치에서 '위기일수록 힘을 합쳐야 한다', '자기 정치를 하면 안 된다'라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 하지만 방향 없이 뭉치는 것은 종국엔 정당의 파멸을 가져온다. 기본적으로 근대 이래로의 정치조직은 기율 강화와 관료제화 등을 거쳐 왔다. 즉 개인이 권력적 흐름에 이견을 제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더구나 정치조직은 급변하는 가변적인 권력과 여론의 생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약간의 가시적인 동요라도 무시할 수 없다. 영국 노동당은 이미 한참 전에 근본적인 위기 신호를 받았음에도 이제까지 그랬듯 무능하게도 리더만 옹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더 뚜렷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당권파의 생리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다는 듯이 리더와 당권파가 자리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당의 단합과 생존 나아가 성공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키어 스타머와 각료들이나 당료들은 스타머의 정치생명을 위해 동분서주한다지만, 그게 과연 노동당과 정부를 위한 길일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진보정당이 '공동체'나 '연대'를 강조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 무능할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런 경우엔 영국 보수당이 1990년에 대처에게 보였던 것과 같은 냉정함이 차라리 낫다. 실제로 보수당은 11년이나 집권하고도 대처에서 메이저로 당수를 교체한 후 1992년에 4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물론 이제 집권한 지 만으로 2년도 안 된 스타머와는 다르긴 하지만... 사실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닌가? 노동당은 여론조사에서 ReformUK에 밀려나 있고 경우에 따라 보수당에도 뒤처져 있다.


더구나 2024년 총선이 키어 스타머가 잘 해서 노동당이 압승한 게 아니라, 보수당이 14년 간 집권하며 피로를 넘어 근본적 수준의 국민적 환멸에 기초한 심판을 받았기에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스타머는 야당 대표 시절에 블레어나 캐머런처럼 자기만의 사회민주주의 정치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독일이나 스페인의 경우를 참고했다지만, 무미건조한 올라프 숄츠는 몇 년 가지 못했고 페드로 산체스는 장기집권 중이지만 계속 다수를 얻지 못한 채로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제레미 코빈의 제명은 노동당의 마지막 기회를 날렸다고 본다. 미우나 고우나, 수십 년 간 대처주의의 세계에서 살아 온 많은 서민들의 애환과 분노를 코빈의 리더십은 담고 있었다. 보리스 존슨이나 나이젤 패라지의 우익포퓰리즘과 브렉시트 운동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흡수하긴 했지만, 본래 같은 포퓰리즘이면 보통은 우파가 더 유리하다. 기본적으로는 왼쪽에 서 있는 노동당으로서는 코빈의 이념과 정책을 그대로 가져가진 못하더라도 코빈이 대의하고 있는 넓은 민심의 뿌리를 가져갔어야 했다.


에드 밀리밴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야당으로서의 노동당 대표를 지냈던 2010-2015의 다소 설익은 느낌과 달리, 현재의 에드 밀리밴드는 정부와 정당의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위기에는 익숙한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꼭 밀리밴드가 아니더라도 이번에 비주류 연성좌파로 노동당 부대표로 당선된 루시 파월 같은 사람도 괜찮다.


분명한 건, 노동당은 분명히 이전의 보수당이나 심지어 그전의 블레어-브라운의 신노동당 시절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레멘트 애틀리와 해럴드 윌슨의 리더십을 되살리면서, 동시에 21세기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 속에서 공동체와 포용 그리고 생활자를 '빅 푸시'하는 정책이 더 강하게 제안 및 추진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 대처주의 레짐을 근본적으로 깨 부수어야 한다. 그걸 좌파라고 하건 뭐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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