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평전 8. 제갈량 諸葛亮 (1)

by 남재준

1. 제갈량, 현자(賢者)와 패자(敗者) 사이에서


화면 캡처 2026-02-15 151622.png 이충호 작가가 묘사한 제갈량.


제갈량(諸葛亮, 181-234(향년 53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역사학 못지않게 문학적 접근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문학적 접근이란 인물 개인의 서사와 입장 및 감정 등을 미루어 헤아리는, 즉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패자(敗者)라고 할 수 있으므로,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해하게 되는 역사학적 이해로 접근하면 불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의 이미지보다 정사 <삼국지>를 비롯한 실제 사료에서 묘사되는 그를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 하면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역사인으로서의 제갈량을 균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2. 낭야 제갈씨 가문과 제갈량의 가계


제갈량은 서주 낭야군 양도현(현재의 산둥성 이수현) 출신이다.


서주는 산둥반도인 청주와 남북으로 접해있는데, 다시 말하면 산둥반도의 남쪽 바로 아래이다.


낭야군은 서주의 최북단에서 청주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었다.


이곳은 제갈량의 가문인 낭야 제갈씨의 본관이기도 하다.


낭야 제갈씨 가문은 갈천씨(葛天氏)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갈천씨는 복희 이전 중국 상고시대의 전설상 제왕으로서, 무위이치(無爲以治)를 행했다고 한다.


갈천씨 이후로 그 후손들은 갈(葛)씨 성을 사용했다.


본래 이들은 낭야군 제(諸)현에 살았는데, 후에 양도현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양도에는 본래 살던 갈씨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현에서 온 갈씨들을 본래 양도현에서 살던 갈씨들과 구분하기 위해 ‘제갈(諸葛)’씨로 부르게 되었다.


제갈씨 가문이 복성(複姓)을 지니게 된 것은 이러한 연원을 지닌다.


제갈씨 가문은 일찍부터 관료들을 배출한 이름이 알려진 가문이었다.


제갈량은 위에 두 누나를 두고 아버지 제갈규의 첫째 자식이며 장남인 제갈근을 형으로 두고, 막내인 제갈균을 동생으로 두었다.


제갈근은 알려져 있다시피 오의 대신이자 군인이 되었고, 제갈균도 촉한에서 장수교위까지 지냈다.


제갈근의 장남이며 동오의 권신이었던 제갈각은 제갈량의 조카가 되었다.


제갈량은 황씨 부인과 사이에서 227년에 47세의 나이로 매우 늦게 유일한 자식을 보았는데, 그가 제갈첨(諸葛瞻, 227~263(향년 36세))이다.


제갈첨 역시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여 약관부터 출세해 군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촉한의 멸망 때 최후의 보루였던 면죽관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장남(즉 제갈량의 장손이 된다)인 제갈상(諸葛尚, ?-263)과 함께 전사한다.


등애가 제갈첨을 낭야왕으로 임명되도록 하겠다는 회유를 했음에도 제갈첨은 촉한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촉한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제갈량의 가계는 3대에 걸쳐 목숨을 걸고 촉한을 섬긴 셈이다.


수춘삼반의 주역 중 하나이자 위의 주요 무장이었던 제갈탄은 제갈근의 종제(사촌 아우)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제갈근-제갈량-제갈균 삼형제의 아버지인 제갈규의 동생 제갈현의 아들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아 보인다.


만약 제갈탄이 제갈근의 종제가 맞다면, 역시 제갈량의 종제 즉 사촌 아우도 되는 셈이다.


촉한 멸망전에서 종회, 등애와 함께 대장으로 활동한 제갈서 역시 제갈량과 동문(同門) 사람인데 그는 후일 서진에서 태상까지 지냈다.


3. 초년기와 청소년기 : 현재(賢才), 세상에 나다


제갈량은 181년에 태어났다.


187년 즉 그가 6세, 174년생인 형 제갈근이 13세, 189년생인 동생 제갈균이 2세일 때 아버지 제갈규가 죽었다.


제갈량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 정사 <삼국지>에서는 그가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고 했고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어머니도 어려서 여의었을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계모는 있었고, 제갈근은 이 계모에게도 효성을 다했다.)


숙부 제갈현이 원술에 의해 예장태수로 임명될 때 제갈량과 제갈균을 데리고 부임했는데, 후한 조정에서 주호를 제갈현 대신 예장태수로 임명했다.


갈 곳이 없어진 제갈현은 친분이 있던 형주목 유표에게 가서 의탁했고, 제갈량은 형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제갈현은 197년에 형주의 북서쪽 끝이었던 서성에서 백성들의 반란으로 살해당했는데, 제갈량은 가운데의 남향을 건너 형주의 북동쪽 끝이자 예주와의 경계 지역이었던 남양의 등현에 살았다.


남양군은 후에 위나라로 귀속된다.


제갈량은 키가 매우 커서 8척 즉 184cm~192cm로서 현대 기준으로도 최장신이었다.


그는 자신을 관중이나 악의에 비견했지만 세인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196년에 형인 제갈근은 손씨 가문을 섬기게 되었는데, 이해에 조조가 협전자하며 집권했다.


이즈음 제갈량은 석도, 서서, 맹건 등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자기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세 사람에게 이르기를 ‘경 세 사람이 출사한다면 가히 자사나 군수에까지 오를 것이오.’라고 했는데, 세 사람이 그에게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하오?’라고 물으니 다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자부심은 제갈량이 아직 세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는 자만심이나 오만으로 비쳤을 수도 있겠다.


명석한 사람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평가 등을 내놓는데, 이는 그 스스로에게 아직 사회적 권위가 없는 경우 간혹 건방지다는 평판을 지니게 한다.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이미 일찍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실은 전한의 진평이라던가 우리나라 조선의 최명길 같은 인물 등도 자기의 재능이나 견해에 대한 확신을 대외적으로 표현한 사람들이다.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그들은 모두 부인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고 실제로 두각을 드러냈다.


최명길은 평생 비난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관은 그의 졸기에서 '가히 한 시대를 구제한 재상이라 이를 만하다(可謂救時之相).'라고 평했다.


제갈량과 최명길 같은 경우를 보면, 그들의 자기 확신은 단순히 본인의 영달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최명길은 위험한 모험이었던 인조반정에 가담해 성공시켰고 후에 소수파였던 주화파의 영수로서 조선의 안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뒤에 제갈량과 맹건의 일화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제갈량도 끝내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통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조조를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그가 출사표에서 말한 그대로(鞠躬盡瘁 死而後已) 유비(촉한 열조 소열제)의 유지이자 ‘대업’이었던 한실 부흥을 위해 온몸과 온 마음과 온 재능을 내던지게 된다.


꼼꼼히 세부적으로 공부했던 나머지 세 사람과 달리 제갈량은 큰 줄기를 중심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제갈량은 일찍이 대업에 대한 의지를 품고 있었고, 미시 관료보다는 거시 전략가·군략가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중국에 사대부가 많은데 어찌 필히 고향에서 노닐려 하시오!


맹건은 북쪽의 예주에 고향을 두고 있었는데, 향수가 짙어져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제갈량이 이를 말리며 '중원(천하)에는 사대부가 많으니, 세상을 떠돌며 뜻을 펴는 데 어찌 꼭 고향이어야 하겠는가! (中國饒士大夫,遨游何必故鄉邪!)'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는 <위략>에 나온 말인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는 것이 낫지 않으냐.’라는 이익과 출세 지향적 사고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함께 사마휘 밑에서 수학한 인재인 맹건이 북쪽으로 가서 등용되면 잠재적이긴 하지만 본인이 북쪽에서 출사하는 경우 경쟁자가 나타날 수도 있어서 미리 수를 쓰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진로 등에 대한 본인의 사고방식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조조가 틀어쥔 광대한 중앙정권을 섬기며 기라성 같은 인재 중 작은 한 명이 되느니 아직 미약하고 사분오열되어 있던 강남의 군벌 중 하나를 골라 따르며 그 적은 인재풀의 머리가 되는 편이 본인의 영달을 위해서 낫다는 식의 생각이다.


아무래도 <위략 魏略>은 위를 본위로 기록된 역사서이니 제갈량의 일화에 대한 평가나 해석도 좋은 쪽은 아니었을 수 있다.

(*참고로 <위략>은 대체로 위말진초에 편찬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유실되었다가 청나라 그리고 중화민국 시기에 다시 부분적으로나마 모이고 편집되었다. 배송지는 300년대 후반에서 400년대 초반 즉 동진 말에서 유송 초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배송지가 읽은 위략은 아직 유실되기 전의 것이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배송지는 주석에서 이러한 해석을 반박했다.


우선 제갈량이 그러한 말을 한 것은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맹건을 위함이었다고 보았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노자가 [남을 아는 것이 지(智)라면 나를 아는 것은 명(明)이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도덕경> 제33장)]라고 하였는데, 제갈량은 단순한 지자(智者)가 아닌 명자(明者) 즉 현자(賢者)라고 보았다.


지(智)는 일반적으로 ‘지혜’ 내지 ‘슬기’라고 하는데, 이 맥락에서는 지략(智略)에 가까워 보인다.


좀 더 현대적으로 말하면 지식(知識)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의도와 행동을 정확히 읽어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계략을 계산할 줄 아는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명(明)은 인명식원(仁明識遠, 어질고 밝으며 식견이 원대하다)이라는 말이 있듯 인명(仁明) 즉 ‘어질고 밝다’라는 맥락에서 어짊과 연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간명하게 말하면 ‘현명(賢明)’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이 많고 계산을 잘하지만 심성이 자존심(타인에게 보여지는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만 높고 자존감(자기 스스로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없음은 어짊의 필요조건을 결여한 것인데 어짊은 단순한 성품이 아니라 지식이나 지략보다 한 단계 위의 깊은 혜안(慧眼)으로 연계된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헤아림을 전제로 한다.


좀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라는, 외적 대상을 알기 전에 내적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직시하며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이 모르는지를 아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갖추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이해를 따라간다면, 배송지가 본 제갈량은 단순한 지자가 아닌 명자, ‘현자’라고 볼 수 있겠다.


배송지는 제갈량이 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고 또 이러한 자신을 잘 알았다고 보았다.


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기에 진군이나 사마의를 뛰어넘는 인재이고, 따라서 북쪽으로 가서 조조를 섬긴다고 해도 제갈량은 그냥 여러 인재 중 하나로 남지 않았을 것이며 무엇보다 이러한 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갈량이 북쪽에서 출사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범인들이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에게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자신의 ‘의지와 신념’ 같은 것이 향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해를 따르게 되면 제갈량이 구태여 북쪽으로 갈 맹건이 경쟁자가 될까 말리거나 또는 처음부터 자기 출세를 위해 북쪽으로 출사할 여지도 생각해두고 있었다는 주장이 논파된다.


제갈량의 ‘의지와 신념’ 정확히는 그가 생각한 자신의 ‘대업과 소명’은 ‘한실 부흥’이었다고 배송지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기에 북쪽으로 갈 생각이 없었고, 그러니 북쪽으로 갈 여지를 열어두거나 남쪽에 남아 홀로 독보적으로 출세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는 이해는 어불성설이 된다.


배송지는 이를 두고 사마상여가 ‘봉황과 대붕이 이미 멀리 날고 있는데, 사냥꾼은 여전히 늪과 못을 바라보고 있다.’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어쨌든 맹건은 끝내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고 귀향했고, 결국에는 위 왕조에 봉직하며 양주자사와 정동장군 등을 지냈다.


후에 제갈량이 촉한의 승상으로서 북벌을 위해 기산으로 나아갔을 때, 사마의의 서신을 전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두습에게 맹건을 잘 부탁한다고 전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제갈량이 맹건을 말린 것은 남쪽에 끝까지 남아 한실 부흥을 이루려 했던 본인의 의지에 비추어 맹건이 조조에게 가는 경우 결국 서로 적으로 만날 상황을 원치 않아서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계속)


*참고) 정사 <삼국지> 촉서 권5 제갈량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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