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독재, '개발'에서 '독재'로의 초점 이동

by 남재준

개발독재자에 대해 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하면서, '박정희'를 재소환했다. 정치적 전략일 것이다. 또 이전에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자신이 철이 들고 박정희를 재평가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진보적 도그마에 과하게 사로잡히는 것만큼이나 보수적 권위주의에 그냥 스며드는 것도 그다지 성숙한 것 같지는 않다.)


현재까지도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 일부는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불가피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해석'만'이 정설인 것처럼 너무 오랜 세월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예 그 시절을 겪어보거나 거리를 두고 검토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공허한 '자유민주주의' 같은 간판만 보고 박정희나 이승만 등을 옹호하겠다는 청년들도 있다.


심지어 전근대 역사 속 정변 주도자들에 대한 인식마저 부적절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조선 세조 이유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연개소문은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무신정권의 설립자들은 기능의 중요도와 처우의 정도가 극단적으로 반비례했다는 부조리함을, 조선 태종 이방원은 정치적 명분(장자 승계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조는 아무런 명분도 없었다. 사실 이 점에서 정변 사후적으로나마 국민들에게 인정 받은 박정희보다는 전두환과 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박정희의 존재가 '경제발전에 성공한 독재는 인정된다.'라는 고도로 위험한 가치관을 불러 왔다는 것이다. 이 국가 발전에 성공한 독재자의 이미지는 세조에게 덧씌워졌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지금보다 진보 성향이긴 했지만, 역사 속의 경우 태종이나 세조의 정변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삼문처럼 충의를 지켰으나 자기에게나 세상에나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보다는, 신숙주처럼 어찌 되었건 끝까지 남아서 무언가를 하는 인물을 유의미하게 생각했다. 관학파나 훈구파가 유학 일변도였던 사림파보다는 유연해 보였던 점(잡학, 불교 등에의 관심이라던가)도 한몫했다.


전근대 하에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지향 체제 원리는 아니었으니 그때의 정변과 현대의 정변을 동일선상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즉, 그때를 들면서 현대의 정변을 정당화하는 것도 그때를 들면서 현대의 정변을 비판하는 것도 모두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 세조를 다룬 많은 사극에서 세조는 '비도덕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 비도덕하다는 평가에 갇혀 업적이 조명을 받지 못하고 개인적 고뇌와 고통에 사로잡힌' 인물상으로 묘사된다. 특히 정하연 작가의 평가가 그렇다.

(이런 점에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호평한다. 세조에 대해 적대적 시각인 사극에서 조차 나약하게만 묘사되어 온 단종의 시점을 한 인격으로서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제대로 조명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조의 부도덕성이 세조에 대한 평가로서 주로 주목을 받게 된 건 최근의 일에 가깝다. 단종이나 사육신, 육종영 등에 대한 안타까움과 별도로 세조의 치적에 대한 논의는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조의 치적을 격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세조는 '비도덕한 평가에 갇히'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또 세조의 업적이 조명을 받지 못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세조가 '개인적 고뇌와 고통'에 사로잡힌 부류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세조는 죽기 직전에 세자 이황(예종)에게로의 선위에 대한 반대에 신경질을 냈는데, 이렇게 말했다. '운이 간 영웅은 자유롭지 못한 것인데, 너희들이 나의 뜻을 어기고자 하느냐?'(『세조실록』47권, 세조 14년(1468년) 9월 7일 1/1 기사)


세조는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영웅'이라 칭했다. 그러니까 확신범인 셈이다. 나는 세조에 관심이 많았고 나름 호의적으로 보기도 했었지만, 정작 여러 역대 사극에 나온 세조를 애써 '(*긍정적 의미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추려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작품들에서의 세조는 어수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영화 <관상>에서의 세조는 너무 지나치게 조직폭력배 두목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인상이었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세조의 묘사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의 김영철 배우의 버전이었던 것 같다.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잘 드러나지 않긴 해도, 세조의 냉혈한 모습을 잘 비춘다. 그리고 이것이 보다 솔직한 묘사라고 본다.


해당 극에서 기본적으로 세조를 절대 악역으로 묘사하지만, 그 작품에서의 세조의 모습을 단순히 이해의 여지조차 전혀 없는 연쇄살인마처럼 묘사한 정도까지는 아니다. 세조의 악행에는 무서울 정도로 뚜렷한 목적 의식이 보인다. 근본적으로는 권력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둘째라는 이유로 재능을 펼 수 없는 타고난 운명'에 대한 깊은 심중의 화가 엿보인다.


실제 세조도 그랬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이것이 세조의 진정한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본다. 세조의 자기확신과 행동력 같은 것은 이러한 데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를 억지로 '인간성 있게' 비추려고 애쓰는 것은 오히려 다소 불쾌하게 느껴진다.


모든 역사인들은 언제나 명과 암이 공존하는 법이고, 어느 한 쪽을 우선하는 경우 언제나 정치적 가치관이 배후에 있다. 하지만 그 암이 특히나 인문적 가치에 반하는 것인 경우 아무리 명이 있어도 그 명으로 암을 가릴 수는 없다.


명은 명이고, 암은 암이다. 박정희는 그렇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현실정치에서 박정희의 가치관이 재소환되는 건 극도로 부적절하다. 그의 개발독재 정신과 모델은 성공했지만 2026년에 재소환할 수 없는 역사의 유물이다.


그 시대에 최선의 선택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후대의 역사가 그의 명을 암보다 우선해서 평가할 의무는 전혀 없다. 오히려 역사는 그때의 '필요'와 '절박' 같은 것으로 인해 가려져 버렸던 수많은 피눈물과 희생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러니 역사는 한 인물을 볼 때 그의 선과 악을 균형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박정희의 경제발전과 빈곤 탈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 그리고 개인적 절제는 인정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직간접적으로 고문하거나 죽이거나 그렇게 하도록 교사하거나 모함을 씌워 탄압하거나 세뇌한 일들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제 그의 명이라는 부분을 재조명하는 것이 정치나 경제나 사회 어느 쪽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솔직하게 암을 조명하는 게 더 균형적이다.


정치적으로 그의 유신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궤변은 명백하게 반(反)자유주의적이었고(미국 본위에서 대내외에서 일관되게 진정한 자유주의자인(케네디, 존슨은 아니다.) 카터의 견해를 보라) 반법치주의적이었다. 사회적으로 그가 만든 근대적인 가부장제, 집단주의와 위계 사회는 더 폭력적인 사회문화를 만들었다. 오늘날 개발경제는커녕 90년대 이래의 신자유주의 경제도 이미 유효기간이 다하고 AI와 자동화 등 근본적인 체제 전환적 위기가 와 있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에서 정부의 역할은 정부 '주도 개발'이 아니라, '공적 지원과 적정규제'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보면, 박정희를 재소환한다는 것은 그다지 실익이 없고 오히려 위험하다. 만약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우익포퓰리즘의 형태로 재소환되는 경우, 어떤 의미에서 이전에 박정희를 추앙하는 보수 세력이 주류였을 때보다 더 제어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실은 박정희의 안테테제라는 전통을 가져 온 민주당에서조차 '박정희의 진보적 재해석'을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인다(국가 주도 서사라던가). 시대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정치적 필요도 없는(이전에 언급했듯, 민주당이 보수에 극렬히 반대하면서 '그' 보수(자기들 정체성의 창조적 재해석이 아닌)가 되려고 애쓰는 듯한 미성숙함) 비합리적인 '보수 흉내'일 뿐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대적 진보였던 정당이 상대적 보수로 이동할 수는 있다. 그런데 자신들은 본래 정체성의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정작 실질적으로는 그 맥락과 내용이 그전의 보수를 흉내낸다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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