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집행, 수단의 중요성

by 남재준

정책학사이면서도 정책학 과목은 몇 개 이수하지도 않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개중에서도 정책분석론과 정책평가론 정도를 핵심으로 두었다. (아무래도 실상 법학과 설치 금지 규제를 회피하면서 법학과를 실질적으로 부활시킨 전공이다보니..)


내 생각으로 정책학의 분야를 대별해보면 정책의 정의와 특성 및 정책과정 등 정책에 관한 총론적 이론을 다루는 영역이 있고, 사회정책이나 경제정책과 같이 개별적인 정책 각론이 있다. 그리고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기본적으로 정책과정의 이해를 핵심으로 하는데, 정책의 실천과 분석/평가로 다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정책의 실천에는 정책형성(정책설계, 정책결정), 정책집행 그리고 이를 위한 정책수단(보통은 정책집행론의 하위 영역으로 다루어진다)이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개설되지 못하여 이수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정책집행의 연구는 1973년 아론 윌다브스키와 제프리 프레스만이 미국 정부의 토목 공공사업과 정부 보조 주도 고용 확대 '오클랜드 사업'이 그토록 많은 예산을 퍼부었음에도 효과가 없었던 이유를 집행 과정의 문제로 밝혀낸 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결정을 본위로 보아 집행은 그냥 기계적 행위로서 당연히 이루어진다는 반사적 가정을 뒤집은 것이었다. 복잡사회(Complex Society)에 이른 지금은 결정과 집행의 연결과 집행의 현실적 조건 등의 문제가 훨씬 중요해졌다.


응용과학으로서 정책학은 결국 활용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아무래도 학자나 분석가의 관점에서는 견고한 양적 방법을 기반으로 정책분석과 정책평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실무자의 관점에서는 정책형성과 정책집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실 이 부분이 결국 정책학의 실천적 쓸모를 보여줄 수 있다고도 본다.


왜냐하면 정책 각론에 해당하는 사회정책, 경제정책, 안보정책, 환경정책 등은 교육학, 사회복지학, 의학/보건학, 경제학, 국제관계/외교학, 생물학, 지구환경과학 등의 다른 학문 분야들이 훨씬 전문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의 어떤 영역(예컨대 교육)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의 영역은 별개이기는 하지만, 결국 정책이라는 것이 해당 영역에 대한 공적 개입인 만큼 그 영역 자체에 대해 정통한 것이 우선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고권적이고 권위적인 독자 주체로서 다른 사회경제 영역들과 별도로 존재하는 점이 강했다. 또한 사회경제가 (어디까지나 상대적 관점에서) 현재보다는 덜 복잡화되어 있었던 과정에서는 행정/정책이 주도적으로 다른 영역을 포섭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국가 주도의 압축 성장을 했고,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 주도 행정이 아니라 행정이 독자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요인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회경제가 고도화/복잡화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점차 정치-행정의 연계성이 고도화되고 정치 주도 행정에 이른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산업의 경우에는 산업정책이라는 분야보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경영학, 산업공학, 반도체공학, 인공지능공학 등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해당 영역을 다루는 분야들이다. 실제 사회에서도 이제는 기업가, 기술자 등 민간의 주도가 확연해졌고 장관이나 국회의원 중에서도 그러한 민간의 실무자 출신들이 많아졌다.


또한 행정학의 고유 분야라고 여겨졌던 인사행정의 경우에도, 물론 기본적으로는 공공 영역이라는 특성과 법적 틀에 의해 운영된다는 등의 본질적 차이가 존속하므로 경영학의 인적자원관리와는 여전히 분리되기는 하지만, 실무상으로는 신공공관리론 주도의 행정개혁 등의 부상 이후로는 되려 민간 인사관리 기법 도입을 (공공)인사혁신의 주요한 의제 중 하나로 두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만일 학자나 분석가 즉 정책'학자'라는 점을 제외하고 응용과학으로서의 정책학의 독자성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은 정책설계, 정책집행, 정책수단 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정책수단론에 관심이 많은데, 이 분야는 학벌상 상위 대학에서도 개설되는 분야가 많이 없어보였다.


아마 통상적으로는 정책집행론의 하위 분야로 취급되기 때문일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직관적이고 실질적이며 경험적으로 정책을 실천하고 체감할 수 있는 매체는 결국 정책수단일 것이라고 본다. 정책목표와 전략은 결국 정책수단의 선택과 조합으로 귀결되는 것이며, 정책의 분석과 평가에 있어서도 정책수단의 유효적절성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 되리라고 본다. 다만 아직은 연구대상이 미시 정책(지방 수준 사업 등)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이는 면도 있다.


이러한 연유로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정책수단에 관한 공부를 더 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고)

B. Guy Peters. 2017.6. Policy Design : From Technocracy to Complexity, and Beyond. Annual Conference of the International Public Policy Association, Singpore.

Van Nispen, Frans. (2011). Policy Instruments.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 N ENGL J 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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