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년 11월 문학동아리 문집 동문 작품으로 창작.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노년 사진이 아니라 한 10년쯤 전에 찍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사진이건 찍을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아버지가 왜 10년 전에 증명사진을 찍기로 했는지, 10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후 30여 년을 여러 형태로 내 주위에 맴돌았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한 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에는 전혀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엄마는 아버지의 상태를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 나는 통화할 때마다 자주 같은 레퍼토리로 아버지의 험담을 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난 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버지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와 동생은 계속 아버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만 했다. 심리적으로 이미 파탄 난 상태의 가족은 그 상태로 수십여 년을 버텼다. 체면이라던가, 돈이라던가 뭐 그런 필요에 의해. 다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만 보면 최소한 돈에 국한해서는 더는 아버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이미 아버지는 엄마에게 네가 먹고살 돈은 네가 알아서 벌어 쓰라고 했고 엄마는 국비 지원 훈련을 통해 직장을 얻었다. 그러나 내 생활비의 일정 부분을 자기 돈으로 사용하는 것을 아버지가 묵인하고 있었기에, 또 무엇보다 재산분할 시 과정이 복잡해지고 나와 동생의 심리가 더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해 엄마는 끝내 이혼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혼을 하지 않은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응보를 선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아직도 그렇게 화가 나 있느냐고 물었다.
그냥 집에 일찍 들어와 있는 꼴을 보는 게 싫어. 내가 해 놓은 음식을 지 마음대로 먹는 것도 열 받고. 제 앞가림은 제가 하자 그랬으면 그러면 안 되지. 그랬더니 지난 20년 먹고 살게 해준 대가란다.
이제는 그냥 엄마 인생 살 때도 되지 않았나. 뭘 아직도 그렇게 감정을 쏟아?
엄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감정은 무슨. 미움이고 뭐고 인제는 그런 것도 없다. 그냥 말 그대로 내 주위에 얼쩡거리는 게 보기 싫다는 얘기야. 그리고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 인간은 옴짝달싹 못한 채로 그렇게 죽어야 해. 내 옆에서. 그걸 내가 볼 거고.
하긴. 엄마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를 여러 형태로 ‘견뎌’ 왔고, 그때도 그래야 했으니 감정이 없어질 수는 없었다. 공간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공간을 만들었다. 한 사람의 유무는 큰 차이를 가져왔다. 다만 아버지의 존재는 이제 어머니에게 동등한 사람에 대한 증오에서 열등한 존재에 대한 경멸로 의미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가사노동이라는 엄마의 뒷받침이 없어진 이후로 더욱 지저분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했다. 거실 TV 앞의 선탠 의자처럼 생긴, 비스듬히 눕듯이 앉을 수 있는, 검게 때가 탄 흰 쿠션에 목조 틀의 모양을 가진 의자가 아버지의 ‘전용석’이었다. 본가에서 오직 그 주위만 가장 산만하고 지저분했다.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먹고는 쓰레기를 그 주위 아무 데나 놓아둔다던가, 건축 관련 협회에서 온 무슨 잡지를 보고선 그냥 던져둔다던가. 그러면서도 무슨 와인이니 영양제는 잔뜩 쟁여두었다. 나의 본가에는 옷방이 따로 있었는데, 그것들은 어머니가 아직 취업하기 전 막바지에 그 방에서 발견한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얼마 안 하는 거라고 둘러댔다. 할아버지의 사인(死因)이었던 뇌졸중을 두려워한 아버지는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듯했지만, 건강한 생활과 그렇지 않은 생활 습관 간 수지를 따져보면 불건강한 생활 쪽이 더 컸다. 식사가 불규칙하고 빵을 좋아하며, 운동을 하지 않았고, 술도 잦았다. 그런 생활 습관이 고작 전자담배, 조기축구, 영양제 정도로 만회될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준비할 틈도 없이 급작스럽게 당신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심근경색이었다.
어머니가 근무 중이고 나와 동생은 자립한 상황에서, 그 넓고 썰렁한 집의 화장실에서 아버지는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나는 밤에 잠을 자다 일어나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엄마의 어조는 매우 건조했다.
그 인간, 죽었다.
내 표정은 거의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 올 거라고 수십 년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으니까. 원래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고.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하며 애초에 심장이 유의미하게 기능하는 사람이었나? 라고 속으로만 한번 말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러고는 불이 꺼진 상태로 내버려 둔 채 거실 창밖을 보았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형형했다. 건물과 가로등이 내보내는 노란색과 주황색의 불빛들이 파도를 이루는 가운데 항공장애등의 빨간 불빛들이 여기저기서 둥실거렸다. 엄마가 동생에게도 네가 알려주라고 말했다.
알았어. 어디로 가면 돼?
아버지의 시신은 일단 본가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안치되었다. 기본적인 장례 수속 절차는 내 몫이었다. 빠르게 씻은 후 대충 검은 정장을 갖추어 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라탔다. 본가까지는 대강 40분 정도가 걸렸다. 차는 부드럽게 새벽의 빈 도로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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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웹툰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철야 작업이 흔했다. 본래도 야행성이었으므로 그것은 애로사항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도 깨어 있겠지. 하며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송신음이 울리다 받은 목소리는 잠들어 있다 깬 것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동생의 조용한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어, 난데. 지금 운전 중이라 본론만 말할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침묵.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동생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야. 말을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내가 할 일이 있나?
일단은 장례 수속은 내가 엄마하고 같이 밟을 거긴 한데.
나는 한데, 까지만 말했다. 너도 와야 할 것 같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지만 동생은 아버지에 대해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었다. 나나 엄마보다도 더 조용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의 동생에게 아버지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관심 비스무리한 것을 보인 때는 동생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신 최저 등급이니 수능 최저니 전공이니 하는 것들을 모아 표를 만들면서 수선을 떨었다. 하지만 그건 나나 동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버지는 동생의 6년간의 중고등학교 생활 내내 신경전과 말다툼을 벌였다. 동생은 학업을 비롯한 학교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심리적 기반이 이미 무너진 상황이었다. 급기야 고등학교 때에는 담임교사가 엄마를 불러 동생이 전문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냥 성적이 오르고 점심시간에 같은 남학생들과 축구를 하면서 어울리면 된다고 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지점이 엄마와 나의 발화점이었다.
동생의 발화점은 매우 높았다. 실은 겉과 속의 발화점이 서로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표면적으로 동생은 거의 무언가를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도 구체적인 상황에서 표현하려는,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이미 내가 고등학생 때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었으니까. 그 말이 내겐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미래를 알 수 없는 동생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넘겨짚기로 들렸다. 그것이 나를 매우 불쾌하게 했었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잠깐동안 말을 골랐다.
오고 싶으면 와라.
... 알았어.
동생과의 통화를 끝낸 후 미묘하게 속이 답답해진 나는 측면의 강변을 흘끗 보았다. 새벽의 어둠이 물을 물들인 가운데 교량의 등과 도시의 불빛이 그 위로 비추어 일렁였다. 아버지와 대화하다 보면 내면의 바닥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위에 이런저런 감정들이 폭발했다. 사실 아버지와의 대화는 항상 언쟁으로 끝났다. 아니, 근본적으로 대화라는 걸 제대로 한 적이 있던가? 아버지는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서는 뜬금없이 자기 말만 늘어놓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완전히 포기했고 몇 년 뒤에는 아예 모든 연락을, 그리고 다시 몇 년 뒤에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내 인생에서 말소했다.
그것은 감정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반대로, 감정이 모두 소멸한 자동적인 귀결이었다.
죽고 못 살 감정이라는 건 없는 거야. 죽을 만큼이라는 말은 있어도 실제로 죽진 않지. 사랑이건 미움이건 뭐건 간에.
이혼한 아내는 마지막 대면에서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내가 사는 오피스텔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우리’였던 순간이었다.
처음엔 당신이란 인간이 냉혈한에 회피형 인간으로 느껴졌고, 왜 나한테 이런 식이지, 왜 내가 이런 남자를 택하게 된 거지.. 그런 식으로 갔었어. 근데 어느 순간 그런 감정조차 사라지더라.
내면과 사건이 만나 감정이 이는 것은 연소와 비슷했다. 아니, 휘발이라고 해야 할까. 내면이 연료가 되어 산화제인 사건을 만나 발생하는. 그리고 연료가 다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일도 없이 적막했다. 그 적막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아내는 그렇게 나를 인생에서 말소했고 마찬가지로 나도 아버지를 내 인생에서 말소했다. 아버지의 은근하게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부모-자식 간 등가 교환의 논리는 종국엔 내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모든 돈이 아까우면 뭐 하러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거야?
아버지는 끝까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엄마와 나를 까칠하고 감정적이어서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인생을 돌파해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로 취급했다. 정작 아버지의 인생은 고상한 척하는 천박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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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건축사였다. 생전의 거래처나 친구 몇몇이 보내온 화환이 빈소 앞에 놓였다. 친가 쪽 친척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아버지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존재들이었다. 자기 아내와 아들들에게 인색했던 사람이 유독 친척들에게는 약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엄마의 주요 발화점 중 하나가 되었다. 엄마에게 상의도 없이 집을 팔고 융자까지 받아 작은삼촌과 함께 땅을 샀을 때라던가. 어쨌든 그들은 하나둘씩 제사나 성묘에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결국 아버지의 빈소에조차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다음 ‘타자’로 내가 걸릴까 치를 떨었지만 그들과 나는 이미 10대부터 교류가 사실상 없게 되었고 내가 완전히 변호사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도 별안간 연락이 오거나 하는 일조차 없었다.
외가 사람들은 당연히 오지 않았다. 엄마는 되도록 끝까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숨겼고 외할머니나 큰외삼촌은 엄마가 간헐적으로 아버지에 관한 스트레스를 토로할 때마다 아버지를 두둔해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결국 실질적으로 모든 게 파탄 나고 나서야 외가 사람들은 완전히 아버지에게 질려 아버지에 관해 나나 엄마에게 일절 묻지도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영전을 지킬 때 나는 무덤덤했다. 상주가 울지 않는 것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속으로 감정을 삭이나 보다 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버지가 죽었는데 저렇게 무덤덤할 수 있느냐 혀를 내둘렀다. 전자는 사실이 아니었고 후자는 일정 부분 진실이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평가하건 나는 개의치 않았다.
전자가 사실이 아니었던 이유는 이미 아버지가 내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졌기 때문이었다. 삭일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의 상주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아버지가 내게 끝까지 제공한 물질적 지원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해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서 모두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랑은 그것을 주는 사람의 세계를 벗어나 받는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면 폭력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사랑을 했다는 것 자체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수신인이 부재중인 송신처럼.
눈물조차 흘린 적 없던 아버지가 통곡까지 했던 것은 유일하게 한 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아버지는 철면피인 사람이었다. 비난이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 후 다음 날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는 모두 비슷한 생김새를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아무리 개차반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워버리고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았다’라는 연민과 과장된 기억을 품은 아버지와 달리 나는 곡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실체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설 노동자인 가장이었고 할머니는 그럼에도 캬바레를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방임했다. 외할머니는 딸을 결혼시킨 후에 사돈이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매를 선 사람에게 속았다고 내게 토로했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무덤덤할 수 있는 이유도 비슷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이미 수없이 많은 연소를 거쳤고 더는 발화할 연료도 산화제도 없었다. 나는 그런 것이 있을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리고 그게 나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다. 무언가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겪으면 어느 순간에는 아무런 감정도 기억도 없어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실은 그것들은 꼬리표가 달린 두루마리들이 쌓인 도서관처럼 하나의 실마리를 찾으면 다시 기억해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심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과부하에도 한계란 것이 있는 법이었다.
- 가족이란 것도 예전에나 각별했지, 요즘은 뭐 별거 있니. 아니다. 예전엔 아예 그런 치부 같은 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렸으니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온전히 멀쩡한 가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가족도 실은 묻고, 잊고, 덮어 온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래. 생각해보면 가족이란 별것 없다.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시작이 되는 혼인이란 법적으로 신분관계를 창설하는 법률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 간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창설하고, 그것을 해소하면 이혼이 되는 거고. 개인의 의사라는 점이 사회제도라는 점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되어왔다. 사실상 파탄 난 혼인을 유지하는 것의 의미도 실익도 없으니 유책 여부를 불문하고 이혼에 관한 규제를 좀 더 풀어야 한다는 견해의 연유 중 하나도 그러한 맥락이었고. 아버지의 경우엔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버지나 나나 크게 다를 것 없는 결말을 맞았다. 차이라면 내 혼인엔 자식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후-
날로 차가워져 가는 초겨울의 공기 속으로 하얀 담배 연기가 피어올라 흩어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나 동생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만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의미에선 윤리적 선택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만 피우고 그냥 비벼 껐다. 급하게 나와 두꺼운 외투를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해 추웠다. 팔짱을 끼고 돌아서서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려는데 길 건너편의 여자와 또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몇 번씩 식장 앞으로 나왔었는데, 그때마다 어떤 여자가 길 건너편에 서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상관없겠지 싶다가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 그 여자의 차림새가 자못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생머리를 한 그는 염색을 했는데 금발에서 색이 점점 바래가고 있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쓰고 연갈색의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으며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진주 목걸이 같은 것을 차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여자는 계절에 맞지 않게 카트 휠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는 봄이나 여름에 나들이 갈 때나 어울릴 법한 것이었다. 자기 딴에는 스타일리시하고 젊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되레 촌스러움을 가중했다.
우아함과 촌스러움이 교차하는, 중년의 여자. 나는 그 촌스러움에서 엉뚱하게도(?)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봤을 때 그는 멋을 내겠답시고 딱 붙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패션이 아버지의 배가 나온 체형을 되레 돋보이게 만들어서 문자 그대로 꼴불견이었다. 그건 분명한 이유가 있는 코디였는데 그때 나와 엄마는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길 건너편이라고 해봐야 장례식장 앞의 도로는 주차장으로의 출입로였기에 별로 크지 않았으므로 채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여자가 있었다. 내가 들어가려고 발길을 돌려 몇 걸음을 뗐을 때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누군지 직감하면서 돌아섰다. 그 여자였다.
차재하 변호사님, 맞죠?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여자는 상당히 매섭게 올라가 있는 눈꼬리를 지녔는데 웃고 있는 입꼬리와 합쳐져 미묘하게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여우를 떠올리게 했다. 여자가 손을 놓고는 고갯짓을 한 번 했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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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나는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았다. 여자는 한동안 말없이 머그잔만 만지작거렸다. 웃음기가 사라졌는데 선뜻 입을 떼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 잠시 자리 좀 비워야 할 듯. 빈소 좀 지켜줘.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할게.
얼마간 더 말이 없던 여자가 작심한 듯 입을 뗐다.
그 쪽한테는 미안한 일이긴 한데요. 아무래도 나한테도 당신 아버지 상속재산을 좀 나눠줘야 하겠어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가 약간 민망해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머리를 뒤로 넘겼다.
이유를 말하기도 좀 그럴 수 있긴 한데, 뭐 요즘 세상에 말 못 할 일까지도 아니니까요. 나, 당신 아버지 여자였어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다만 구체적으로 여자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아버지와 전화할 때 옆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낌새를 챘고 그 외에도 결혼생활 초부터 외도는 계속 이어졌다. 나와 동생이 각각 고등학생과 중학생일 때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로 새벽에 집에 들어와선 다 나와 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아버지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이유는 네 엄마가 관계를 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엄마와 나와 동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이 꺼진 내 방에서 엄마에게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엄마는 결국 이혼을 하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는 온라인 스캠 사기에 당해 수천만 원을 날리기도 하고,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되었다는 고지가 경찰로부터 오기도 했다. 아직 아버지가 나와 대화라는 것을 하던 시절에 아버지는 은근슬쩍 내게 룸살롱에 드나든 것을 자백하며 접대의 맥락에서 불가피하고 남자라면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나는 10대의 아들을 상대로 같은 남자라는 등의 말을 꺼내며 자기 행위의 반(反)인륜성을 슬며시 은폐하려는 아버지의 세뇌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아버지의 외도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비밀이 되었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당신 아버지가 나하고 사실혼 관계였어요. 거기다 곧 사모님하고 이혼할 거라고 말도 했었고. 그러니 나도 배우자로서 한 몫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당신이나 사모님은 10년 이상 그 사람과 최소한의 교류도 하지 않았잖아요? 난 그 시간 동안에도 함께였어요. 당신들보단 내가 분명히 더 상속인 자격이 있다고 보는데. 증거 자료도 있어요.
여자는 처음의 태도와 달리 한 번 입이 열리자 점점 의기양양해졌다. 여자가 아버지와 교환한 문자 캡처본이라던가 아버지와 계좌를 공유한 내역 등을 내놓았다. 나는 그것을 흘끗 봤지만 별 대답 없이 머그잔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상속이라. 상속. 발인도 되기 전인데 벌써 상속을 논한다. 정말 아버지가 여자에게 혼인 의사를 밝혔다면 아버지도 측은하게 되었다. 아들로서의 측은함이라기보다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측은함에 가까웠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결혼 적령기인 30대만 되어도 상대의 직업이나 재산 상태 등을 함께 따지는 판국인데 아버지 정도 되는 연령과 조건의 남자를 나이 차이도 꽤 나 보이는 여자가 순전히 신체적 매력만으로 사귀기로 했다는 건 되려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막상 자신이 아버지의 내연녀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려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것과는 별개로,
...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셔서, 법정상속이 아닌 유증 절차가 진행될 겁니다.
내가 입을 떼며 여자가 테이블 위에 흩뜨려 놓은 각종 서류들을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몇 개의 종이들이 여자 쪽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사전에 법적으로 검토해보셨겠지만, 이 정도로는 사실혼 관계를 입증하거나 인정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쉽지 않을 겁니다. 설령 그쪽이 사실혼 배우자라는 게 사실이고 법정상속이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쪽과 상속재산을 분할해야 하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애초에 그쪽이 상속재산에 관한 권리가 없으니 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뜻이고요.
내 말이 이어질수록 여자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고 동시에 일그러졌다.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아쉽게 됐군요. 애써 정리하신 걸 쓸 일이 없게 되어서.
여자는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고 내 초점 없는 눈이 분을 삭이는 여자의 내면과 마주쳤다. 나는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뜬 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말씀 다 하신 거면 그만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장례 중에 나온 거라. 기왕이면 조문이라도 하고 이런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요.
내가 돌아서는 순간, 여자의 말이 등에 꽂혔다.
... 아들이 있어요.
나는 멈칫 했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돈이 필요해요. 알죠? 돈 나갈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 애가 공부는 잘하는데, 뒷받침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온 거예요.
... 그쪽 가족한테 협박 같은 걸 하러 온 게 아니라. 여자는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을 씹어 삼키는 듯했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운이 좋게도 흡연구역은 카페 가까이에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구역 안으로 들어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연신 시도했으나 불이 잘 켜지지 않았다.
갑자기 라이터를 든 손이 고개 숙인 내 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소년의 무심해 보이는 눈빛과 마주쳤다. 약간 헝클어진 리프 펌 헤어스타일을 한 소년은 짙은 눈썹과 선명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면서도 당연히 그 누군가와는 매우 다른 인상이었다. 키는 나와 엇비슷하거나 조금 작았는데 나보다 어깨가 넓고 전반적으로 체격이 컸다. 복장이 매우 추워 보였다. 급하게 나온 듯 교복 재킷만 걸친 상태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형태라 그런지 명찰은 없었다.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흐렸다. 진눈깨비라도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뜬금없이 그 여자가 변호사에게 상담을 한 번이라도 받고 온 걸까 싶었다. 아닐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뭐, 여자의 말은 엄밀히 따지면 자기가 상속인의 한 명으로서 자격이 있다기보다는 끝까지 아버지 옆에 있었던 점을 생각해 달라,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와의 아들을 감안해 달라 비슷하게 들렸다. 애초에 여자의 말이 불쾌하게 들리진 않았다. 수십 년 전부터 예상해 온 상황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마주하니 조금 미묘한 정도랄까. 하지만 동시에 그 여자에게 섣불리 돈을 주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은 상주 노릇을 하는 것 이상이 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면 더더욱. 과연 인지(認知)되었을까? 되었다면 언제 되었을까. 아버지 생전에, 아니면 사후에? 아니지. 인지가 되었건 그렇지 않건,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사실 자체는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안다는 당연한 상식이 있고.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서서는 벽에 등을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왼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왼손잡이인가. 문득 동생이 떠올랐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톤이 없는 목소리로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소년의 목소리가 상념에 잠긴 내 시선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고는 돌아서는데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당겨 뒤돌아섰다. 소년이었다.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저씨, 내 말 무시해요?
뭘.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물어봤잖아요.
그냥 우연히 시선이 너한테 갔을 뿐이야. 신경 쓰지 말고 네 갈 길 가.
나는 차분하게 내 팔을 잡은 소년의 손을 잡아 내렸다. 소년은 다시 내 팔을 잡진 않았으나 순순히 보내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표정 관리를 했다. 무표정하게. 최대한.
나한테 뭐 볼 일이라도 있어?
별 뜻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되레 나를 붙잡은 소년이 멈칫했다. 기시감이 든다 싶더라니, 돌아서는 나를 붙잡는 시선. 정작 붙잡아 놓고 선뜻 꺼내지 못하는 말. 그는 분명 누군가를 닮아있었다. 그리고 소년이 닮은 내가 아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 없으면 간다.
돌아서려는 찰나.
... 우리 엄마, 만났죠.
나는 소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까 봤어요. 장례식장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이 아이에게 어디까지 얘기를 하는 게 맞나, 싶었다. 뭐, 내 이복동생이라는 점이 새삼 놀랍진 않았다. 소년의 어머니를 만날 거라는 예상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있다면 언젠가 그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고 또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다. 다만 이런 식의 대면은 좀 의외긴 했다. 내가 손목시계를 흘끗 봤다.
너,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야?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질문에 대답이나 해요.
이번엔 내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소년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었다. 나는 담배를 다시 한 대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또 한 대를 꺼내 소년에게 내밀었다.
... 라이터 빌려준 값.
소년은 표정을 풀지 않으면서도 담배를 받아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소년에게 불을 빌렸고 우리는 나란히 담배를 피웠다. 나는 하늘을 보고 있었고 소년은 땅을 보고 있었다.
불량 학생이네. 공부는 잘한다더니. 하긴. 이런 거 하고 공부는 상관없는 건가.
소년이 피식 웃었다.
우리 엄마 만난 거 맞네. 별 쓸데없는 얘기까지 떠들고...... .
누구, 나? 아니면 네 엄마? 나는 속으로만 질문을 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우리는 몇 분간 더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이런 유의 말들은 자연스러운 맥락 속에서 나오기보다 별안간 불쑥 튀어나오는 법이었다.
... 대학 갈 생각 없어요. 성적은 그럭저럭인데, 공부엔 관심 없어요. 엄마가 잔소리하니까 하는 것뿐이지. 어차피 돈 달리는 거 다 아는데.
내가 기지개를 켰다.
뭐, 가서 판단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돈이야 둘째 문제고. 일단 네 인생부터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네 엄마도 그러니까 잔소리하는 걸 거고.
소년이 담배를 비벼 끄고는 나를 향해 섰다.
엄마한테 가지 말라고 했어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근데도 기어이 가서 쫓아온 거예요.
나는 또 한 번 표정 관리를 했다. 이번엔 표정만이 아니라 몸짓도 관리해야 했다. 소년을 향해 서지 않은 채 계속 담배를 태웠다. 후우- 투명한 안개를 하얀 연기가 걷어냈다.
- 대학 얘기하다 말고 웬 동문서답?
아저씨 지금 알면서 이러는 거죠.
소년이 훅 들어왔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소년을 향해 돌아섰다. 두 손을 주머니에 끼운 채로. 소년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두 개의 짙은 갈색 눈동자.
네가 신경 쓸만한 일이 아니야. 그만 가봐.
나하고 관련된 일인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몇 년만 기다려. 그러면 신경 쓰고 싶지 않더라도 쓰게 될 테니.
내가 돌아서서는 소년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걸음을 뗐다. 멀어져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심사가 복잡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어지간한 일들은 그냥 무감하게 넘길 수 있게 된 지 오래였다. 시끄러운 고객이건, 은근히 사람 속을 긁어놓을 듯한 말을 하는 동료나 선배라도. 심지어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아내도 내 속을 복잡하게 만들지 못했다. 아버지 이후로는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당신은 결혼 같은 걸 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야. 아내는 내게 소리쳤지만, 나는 그 말을 한참 동안 기억하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 게 아니라 기억하지 않았다. 이혼 후에도 아내의 말 중 그 말처럼 간혹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아주 가끔 저릿할 때를 빼고는 어떤 것도 내 내면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소년이 딱히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건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애써 소년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난 유도(柔道) 계속할 거예요!
뒤통수를 때리는 큰 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끝내 뒤돌아보지 않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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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디를 그렇게 쏘다녀? 혼자 문상객 받느라 힘들어 죽겠다. 휴일도 내일까지만인데.
돌아오자마자 엄마의 타박이 떨어졌다. 뭐야. 너 또 담배 피웠어? 피우지 말라니깐. 냄새 배고 건강에도 안 좋고.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완장을 슬며시 놓아두고 문상객들이 식사하는 자리들을 가로질러 조용히 구석으로 갔다. 거기엔 소년이 앉아 있었다. 앞에는 식사가 차려져 있었지만 소년은 손도 대지 않고 앉은 채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끼워 넣고는 겸연쩍어하고 있었다. 나는 겉옷을 벗고 앉았다. 문상객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등을 보이고 앉았다.
왜 안 먹어? 소식하게 생기진 않았는데.
나는 검은 넥타이를 살짝 끌어 내리고 와이셔츠 맨 위 단추를 풀었다. 소년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소주를 한 병 땄다.
상주가 술 마셔도 되는 거예요? 그것도 미성년자 앞에서.
소년이 물었다. 정말 별것 아닌 말이었는데 관리한 표정이 무너질 뻔했다. 나는 빠르게 한 잔을 들이켰다.
요즘 미성년자들은 담배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나 보지?
그래도 상주잖아요.
나는 소년의 말을 무시하듯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그러고는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또 부으려고 했다. 그러자 병을 잡은 내 손을 소년이 잡아 내려놓도록 했다.
그만 마셔요. 그리고 나 여기 왜 데려왔는지나 말해요.
마셔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말이 있어서 그래.
그렇게 말한 후 다시 소주 병을 잡았다. 그러고는 또 한 잔을 따랐다. 소년은 약간 난처해하는 듯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잔을 비우고는 턱을 괴고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시선을 느끼고는 슬쩍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와 소년은 약간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긴, 아버지가 같으니까 당연한 건가.. 싶으면서도, 꼭 생김새를 두고 든 생각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40년 정도 봐 온 아버지의 수많은 얼굴들.. 아니지. 한 20년 좀 넘게 봤다고 하는 게 정확하려나. 어쨌든, 내가 봐 온 아버지의 그 얼굴들 중 내가 보지 못하고 너만 본 얼굴이 있을까. 나는 문득 그런 질문을 마음속으로 했다. 내게 아버지는 이미 인생에서 말소되고 연소된 존재인데, 네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아직도 아버지가 산화제로서 유의미한 존재일까.
그래도 몇 년 전까진 내심 아버지의 죽음이 새로운 산화제가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아내와의 이혼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있을까.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슬픔, 우울, 감흥 그 무엇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내연녀를 자처하는 그 여자의 등장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자의 생김새까지 상상해본 적은 없었지만 대충 여자가 무엇을 요구할 것 같은지 정도는 예상했다. 만약 아버지가 오래 아프고 그 여자가 옆을 지켰다면 도의적 책임의 여지 같은 게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상황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몰라도 끝까지 이혼은 물론 별거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TV 드라마의 대사 – 내 옆에서 늙어 죽어! - 처럼, 엄마는 절반 정도는 복수에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는 아쉽게도 아버지는 오래 앓다가 죽지 않았고 사실상 급사했다.
그리고 이 아이.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아이에 대해 깊이 예상해 본 적이 없었다. 보통 내 인생에선 예상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일은 물론이거니와 즉흥적인 결정은 거의 단 한 번도 없었다. 잠깐의 슬럼프나 번 아웃이 있어도 돌고 돌아 결국 나는 예상과 계획에 따라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후회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이 말을 해야겠노라고 마음먹었다.
... 너, 공부 좀 한다고 했지.
그럭저럭이요.
그래 뭐, 그럭저럭.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만 있으면 돼.
.... 무슨 말이요.
나는 술을 한 잔 더 따르려고 했지만 이번엔 소년이 완강하게 막았다. 두 개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다시 맞부딪혔다.
.. 아버지가 널 유언에 상속인으로 포함했어. 나하고 내 동생만큼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네 앞길에 보탬 정도는 될 거야. 아직 내 동생하고 엄마는 이 사실을 몰라. 하지만 넌 당사자니까...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어차피 너하고 난 오늘이 아니었어도 결국 만나게 됐을 거란 거지. 뭐, 그냥 그렇다고. 실은 너희 집 주소도 알고 있었고.
소년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생수병을 따 몇 모금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하, 하는 소리를 뱉어냈다. 나는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나와 소년은 한참 동안 별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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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는 계속 무표정하게 조문객을 맞았다. 동생은 장례가 모두 끝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유언이 집행되었는데 내가 약간 걱정했던 바와 달리 동생과 엄마는 그 소년도 상속인으로 지정된 것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두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미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엄마는 한 마디만 했다.
넌 이미 알고 있었니?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언을 공개하는 자리에는 소년도 있었다. 그의 엄마는 오지 않았고 소년 혼자만 왔다. 소년과 거리를 두고 앉은 동생과 엄마는 그를 향해 시선을 두지 않았고, 어울리지도 않는 검은 정장을 입은 소년은 두 손을 모은 채 내내 바닥만 보고 있었다.
의외로 아버지는 상속재산에서 빚을 덜 남겼다. 동생은 의외라는 반응이었고 엄마는 이 정도로는 지난 세월을 절대 배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리 세 사람에게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건 더는 산화제가 될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후 적막의 양상은 서로 달랐다.
유언 집행 관련 고지가 끝난 후 소년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나는 조용히 소년을 따라갔다. 소년은 건물 뒤편의 흡연 공간으로 가고 있었다. 그제야 좀 편한 듯 소년은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담배를 피웠다.
차유건.
나는 처음으로 소년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보았다.
유건이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누가 지은 이름일까? 그의 이름엔 돌림자가 없었다. 아버지가 지은 이름일까, 아니면 유건의 엄마라는 여자가 지은 이름일까. 언젠가는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질문을 마음속 깊이 눌러놓았다.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가 또 말썽이었다.
또 불이 안 붙네. 불 좀 빌려줄래.
유건은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고 우리는 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며 두 개의 하얀 연기가 차고 공활한 초겨울의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것을 응시했다.
내가 상속인인 거, 왜 우리 엄마한테 말 안 했어요?
어차피 알게 될 텐데 뭐. 그러는 넌, 왜 혼자 왔냐. 엄마가 뭐라든?
아직 말 안 했어요.
왜 엄마한테 말 안 했냐?
어차피 알게 될 텐데요 뭐.
유건이 나를 흉내 내듯 말했다.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듯 만 듯했다. 어느새 나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미소라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시간을 지나 정말 오랜만에 지어 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