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제도의 구조적 문제점과 대법관 증원 관련
조희대 대법원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견해는 모두 타당하다. 정의당 법률위원회와 국민의힘 측 의견도 대안은 달라도 비판 취지는 유사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의견들을 충분히 듣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제안에 따르면, 점진적으로 대법관 수를 증원하면서 상고심사부를 두고, 소부-연합부-대연합부라는 독일 연방일반법원식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다만 독일 연방일반법관 수(해에 따라 다르나 대강 150인)에 달하도록 대법관 수(법원행정처장 제외 13인)를 급진적으로 대폭 증원하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 재판소원제도는 헌법재판소의 업무 과중이 예상되므로, 그보다는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을 한 경우를 재심청구요건으로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이 지점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충돌점이어 왔다). 법왜곡죄에 대해서는 이전에 언급한 바 있고, 조희대 대법원장이나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의 논리와 취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한국법과 독일법을 좀 더 들여다봤다.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
제31조
연방법은 주법에 우선한다.
제92조
사법권은 법관에 속한다. 사법권은 연방헌법재판소, 기본법이 정하는 연방재판소 및 주의 재판소에 의하여 행사된다.
제93조
②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법관 및 그 밖의 구성원으로 구성되며 2개 재판부로 나뉜다. 각재판부는 연방의회와 연방참사원에서 절반씩 선출한 8명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해당 재판관은 연방의회, 연방참사원, 연방정부 또는 이에 준하는 주의 기관에 소속되어서는 아니된다. 재판관의 임기 종료 또는 조기 퇴직 후일정 기간 내에 후임자 선출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경우 다른 선거기관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5항에 따른 연방법률에서 정할 수 있다.
제95조
① 일반적 재판, 행정재판, 재정재판, 노동재판 및 사회재판을 위하여, 연방은 최고법원으로 연방일반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및 연방사회법원을 설치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01조
①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②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
제111조
① 헌법재판소는 다음 사항을 관장한다.
1.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 탄핵의 심판
3. 정당의 해산 심판
4.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②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제2항의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④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연방헌법재판소, 연방재판소, 주재판소가 사법권을 분담한다. 또 분야별로 종심을 담당하는 특수법원(행정, 재정, 노동, 사회)을 연방일반법원과 따로 둔다. 전체적으로 독일은 연방제를 시행하고 특수최고법원을 연방일반법원과 평등하게 두어 사법 분권도 고도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 헌법이 존재한다. 이에 상당수 사건들이 보충성의 원칙에 의해 적용 순서는 주법 규율 사안이면 주법이 먼저 오되 효력은 연방법이 주법에 우선한다. 연방헌법재판소와 연방일반법원 및 특수최고법원 등은 모두 기본법 제9장 사법에 함께 규정되어 있다. 연방헌법재판관의 수는 기본법과 연방헌법재판소법에 규정되어 있다. 기본법 제93조 제2항, 연방헌법재판소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연방헌법재판소는 2개의 재판부로 구성되고 기본법 제93조 제2항과 연방헌법재판소법 제2조 제2항에 따르면 재판부별 재판관 8인씩을 선출해 총 16인이 된다. 연방일반법원은 20여 개의 재판부로 구성되는데, 판사 총수가 약 150~160명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제5장 법원과 제6장 헌법재판소를 따로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관장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고(헌법 제111조 제1항),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특수법원에 대해서는 헌법에서 별달리 규정하는 바가 없다. 단 법원조직법 제3조 제1항에서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 이외에도 특허/가정/회생/행정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을 두고 있다. 특허법원, 가정법원, 회생법원은 2심까지 맡고(법원조직법 제28조의4, 제40조, 제40조의7), 행정사건의 경우 행정사건은 1심을 맡고(법원조직법 제40조의4) 고등법원이 2심을 맡는다(법원조직법 제28조). 모든 사건의 3심(법문상 '종심(終審)')은 대법원이 맡는다(법원조직법 제14조). 우리나라는 연방제가 아닌 단일제 국가이기 때문에 지방은 어디까지나 국가 전체의 일부로서만 유의미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치 규정은 법령의 허용 범위 안에서만(헌법 제117조 제1항) 제정이 허용된다. 대법원을 중심으로 각급 법원이 통일적으로 조직된다. 우리나라는 헌법재판관의 수를 9인으로 헌법상 고정하고 있다(헌법 제111조 제2항).
이러한 구조를 비교해 보면, 독일의 사법 체계는 수직적-수평적으로 다층적이고 다종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독일의 판사 수는 약 20,000명으로 약 3,000명인 우리나라의 판사 수에 비하면 거의 7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충실히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사건의 적체로 인한 업무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법부의 규모가 매우 작으면서도 상소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로 인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고 해당 법 제4조 제1항상 심리불속행제도를 통해 상고 사유를 못 박았다. 독일은 상고허가제를 통해 2심 법원에서 상고 여부를 판단한다. 심급제도에 따라 하급심은 사실심 + 상급심은 법률심으로서 심급 체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사건이 적어질 것을 단순히 예정/예상하기보다 구체적으로 실현한다.
이는 불가피한 일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 제3항)가 기본권으로 보장되지만 현실적으로 재판 당사자들이 생각하기에 재판은 너무 느리고 고통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소원제도를 도입하면 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또 법원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질서에 복무하긴 하더라도 그 자체가 민주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전문적, 독립적 필요 등에 의하여 헌법상 사법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니 법원에 대한 막연한 포퓰리즘과 불신이 아예 제도적으로 이어져 마치 또 희망이 있는 것처럼 사실상의 ‘4심’을 두면, 그러한 입법의 정치적 의도에 따르면 차라리 처음부터 법관의 대표성을 증진하자고 주장하는 편이 맞다.
또 헌법재판소는 적법요건 불비로 각하할 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할 텐데, 이미 9인이 직접 모든 사건을 담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판소원제도가 도입되면 헌법재판소 기능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앞서 언급했듯, 독일은 헌법재판관의 수가 우리의 2배에 달한다. 하지만 둘 모두 개헌을 해야 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은 중요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도 조금이라도 더 신속한 재판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판사 증원 등을 통해 하급심을 강화하고, 상고를 좀 더 통제하거나 또는 대법원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것이 사법개혁의 기본적 취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대법관 수 증원은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경우 우리보다는 상고심의 부담이 덜하고 연방일반법원 등의 법관의 수가 많기 때문에 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고심의 부담이 심한데 대법관의 수도 적다. 그렇다고 사법 자체의 수용력 제고 없이 상고를 통제하려고만 드는 것은 헌법상 재판청구권의 침해가 될 여지도 있다. 그러니 사법의 수용력 제고를 위해서는 대법관 수 증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법관 수가 너무 많아지고 대법원이 상고심의 모든 사건을 관할해야 하는 입장에서, 만약 현재의 2배 이상 대법관 수가 증가하면 제대로 된 재판이 가능할까의 의문도 있다.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의 심판권은 기본적으로 대법관 전원의 2/3 이상 합의체에서 행사하고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지만, 대법관 3인 이상의 소부에서 먼저 사건을 심리해 의견이 일치된 경우 그 부에서 재판한다(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통상 소부 제도는 아주 활발하게 사용된다.
독일의 경우 연방일반법원 법관 수가 백수십 명에 이르므로, 크게 민사와 형사를 나누어 5인으로 구성된 소부(Senat, 독일 법원조직법 제139조 제1항)에서 통상의 재판을 맡는다. 소부 간 의견이 다르면 대합의체(Großer Senat)를, 부 간 의견이 다르면 연합대합의체(Vereinigte Große Senate)를 구성한다. 민사와 형사 대합의체의 경우 연방일반법원장+각 소부에서 1인씩, 연합대합의체의 경우 연방일반법원장+민사/형사 대합의체 전체로 구성한다. 이렇게 다층적인 구성을 취하므로, 소부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디폴트값일 것이고 합의체는 예외적인 경우에 재판할 것이다.
총 약 150명대 중반이고 13개의 민사재판부와 6개의 형사재판부가 있다(올해 7월에 형사재판부 1개를 신설). 실제로는 소부마다 수가 다르겠으나 직관을 위해 거칠게 계산하면(실제로는 민형사 이외 별도 겸임/배치 구조도 있고.) 소부당 약 7-8인 정도가 있을 것이다. 민사 대합의체는 13인으로 구성되고 형사 대합의체는 6인으로 구성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대합의체가 각각 민사 또는 형사의 상호 판결 일관성 보장이라던가 해당 법체계 내에서의 중요 결정이라던가 하는 것을 결정할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는 13인(법원행정처장 제외)이 모든 사건을 맡는데,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많은 사건들을 담당한다고 해도 3인이라고 해봐야 대강 4개 정도의 소부 밖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떻든 사법 운영 실태를 본다면 소부 제도는 아주 활발하게 사용되므로, 결국 대법관 수 증원을 한다면 전면적인 상고심 재판 내부 체계를 재구조화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 수는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