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노무현 - 21세기 중반을 향해, 어떤 원칙인가
원칙의 정치가 없어졌다고 느낀다. '노무현의 시대'는 오는 듯 떠났다. 사람이 가면 뜻은 오롯이 이어질 수 없음이 느껴져 씁쓸하다. 노무현은 지금까지도 주요 정치인 중 인치(人治)가 아닌 의치(義治)의 외로운 길을 간 거의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노무현 사후 20년을 향해 달려가는 현재, 노무현의 정치에는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그의 자리를 채울 사람은 없다. 그와 같은 독특하면서도 성숙한 사상가, 토론자, 아이디어 뱅크 그리고 서민ㆍ생활인과 있는 그대로 진솔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치인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정치가 (과열을 완화하려던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안고 있던 비이성적 포퓰리즘의 불씨는 결국 오늘날 온 나라를 감싸는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또 그의 이상주의가 실패로 귀결된 부분들은 극복되지 못하고 같은 레토릭만 반복되고 있다.
지방소멸로 노무현이 맞서 싸우던 지역주의는 더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권위주의의 잔향, 집단주의와 이기주의의 교차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개성의 공존이라는 성숙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기심의 병존만 확산되고 있다. 다른 한편 대의 없는 극단주의의 득세는 계속된다.
노무현의 참여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변질되었다. 드넓은 평범한 시민들의 힘이 아니라, 분노하는 폐쇄적 세계관의 당원들에게만 호소한다. 조중동 중심 체제를 넘어섰지만 뉴미디어의 위험한 음모론과 프레이밍에 대한 자성과 견제는 없고 되레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긴다.
관료제나 전문가에 대해 포퓰리즘적으로 과도하게 적대시하고, 정치인이건 관료건 전문가건 국민이건 일단 자기 편이 아니면 무조건 배척한다. 보수 진영의 뒤에 숨어 끊임없이 자기합리화와 확증편향, 피해 서사를 재생산하고 강화한다.
그러는 동안에 인문주의, 인간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사회적 개인주의(박완서 작가의 생각을 참고하면 더 좋다)' 정서와 가치는 훼손되고 일상생활의 변화, 구조와 제도의 개혁의 비전이라는 원칙은 몰각된다.
이제 민주주의는 그냥 포퓰리즘과 다수의 폭력이 되었고, 실제로 민주당이 소수파였을 때조차 선배 정치인들이 최소한 노골적으로는 하지 않던 '보수 흉내'를 낸다. 어느 정도는 보수적이기도 하다. 보스 중심 패권 투쟁이라던가. 정적들과 '프락치'에 대한 낙인찍기와 린치를 보면 운동권과 보수 세력은 기묘하게 비스무리한 한국적 집단주의 폭력의 정서를 안고 있다.
이제는 참여민주주의를 넘어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화와 기득권에 대한 투쟁의 서사를 넘어, 시민들의 삶 속에 정치를 두고 삶의 배후에 있는 제도ㆍ구조를 고치는 정치여야 한다.
'개성과 공존'의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얼마 전 마시모 카차리(Massimo Cacciari, 1944-/이탈리아/철학자, 정치인) 전 베네치아시장이 유럽문화에 대해 한 말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쳤다. '유럽은 하나(one)가 아니다. 그들은 여럿(Many)이다. 우리는 여럿으로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 다문화주의와 동화주의에 관한 토론에서였나, 개인적으론 내셔널리즘ㆍ쇼비니즘도 문화융합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각 문화는 자신의 문화를 보존하는 것이 아름답다. 그러지 않고 억지로 합치려 들면 사단이 생긴다.
모순적이어 보이지만, '여럿인 하나'가 유럽의 정체성이요 곧 인류문명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개성이 없으면 공동체는 무의미하고, 공존이 없으면 개성의 기반이 파탄난다. 오늘날 해체와 균열을 특성으로 하는 현대사회에 중요한 테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