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의 정치'에 대한 거부

by 남재준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34355


가치 없는 정치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실 2000년대 이후로의 신자유주의를 본위로 한 중도화는 가치의 공허였다. ‘이념 정치에서의 탈피와 실용 정치로의 이행’은 이미 한참 전에 나온 얘기이다. 그런데 그 실용 정치라는 게 지난 수십 년간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겠다. 마지막 ‘이념가’라고 부를 수 있는 마거릿 대처는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구조개혁을 이루었다. 지방행정과 국정은 다른 법인데, 국정은 고도로 다층적이고 복잡하므로 역설적으로 가치와 원칙을 분명히 제시하고 이를 각 정책 영역에서 제대로 해석하여 정책 패키지를 정렬하여 일관성 있게 관철해야만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중도개혁연합의 가치는 결코 틀리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청년층이 소위 ‘실용’을 원한다면, 다카이치 사나에의 자민당의 어떤 점이 그렇게 ‘실용적’인가? 사나에노믹스는 예견된 대로 벌써 문제에 부딪히고 있고, 헌법 제9조 개정은 민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의제이며, 자민당이 다카이치의 개인기로 그냥 묻어버린 정치자금 문제는 총선에서 기록적으로 압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불거지고 있다. 자민당이 만든 건 그냥 ‘이미지’일 뿐이다. 워낙 오랫동안 거의 ‘구조’에 가깝게 고착화되어버린 권력인데 야당이 너무 심하게 대안도 존재감도 없는 데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개인기 덕분에 성공한 것이다.


애초에 일본과 한국의 청년들은 자기들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여기서 ‘뭘 원하는지’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의 개인적 선망 – 대기업이나 전문직 취업 같은 것 –을 말하는 게 아니라 청년실업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체제나 사회구조가 어떻게 재편되었으면 하는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게 단지 사회학자나 경제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이렇게 복잡화되고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그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 없이 무슨 기준으로 ‘실용’이냐 아니냐를 따질 것인가? 아니면 청년의 ‘유행’에 발맞추는 것이 옳은 정치인가?


중도개혁연합이 실패한 건 노다 요시히코라는 무미건조한 리더십, 평화헌법 수호와 같은 강력한 존재 의의와 명분의 부재, 내부 숙의나 지지층과의 공감 없는 공명당과의 통합 등이 가져온 것이지 리버럴적 가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인간존엄성이라는 가치가 2026년 현재 일본의 사회와 경제 무엇보다 국민의 삶과 일상이라는 구체적 맥락에서 어떻게 ‘정책으로 번역’되느냐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포용사회’를 내세우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성장-고용의 연계가 떨어져 가고, 사회경제가 양극화/극단화되는 상황 속에 개인은 고립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공이건 민간이건 고용 창출을 활성화하고, 직업생태계를 다양화하여 적정경쟁을 보장하고, 교육체계를 혁신하여 교육 자원의 합리적 이용과 적재적소에의 인재 배치를 강화하며, 사회서비스 공공화 및 의료/복지 분야 인력 처우의 혁신적 개선을 통해 고령사회에 대응하면서 장애인 인권보장 향상을 도모하고, 공보육의 강화로 맞벌이 보편화 상황에서 여성의 부담을 감소하고 여성 인력 활용을 제고해 잠재성장률을 제고하면서 동시에 저출생 문제에도 대응하며,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온라인과 집회/시위 등을 통해 극단적으로 분열된 사회의 담론을 오프라인 공론장으로 개방화하면서 국민의 정치효능감을 제고하고 담론의 ‘품질 관리’를 하여 ‘사람 주도의 정치’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향이다.


팀 미라이의 접근은 신선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프로그래밍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등이 자신만만하게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정치’에 과학기술의 논리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행정이나 사법조차 온전히 가치판단이 배제될 수 없고 본질적으로 가치에 복무하는 사회적 행위일진대, 사회 전체의 가치판단과 지향성을 설정하고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특정 방향으로 지휘하는 기능을 하는 정치는 고도의 가치적 행위이다. 메커니즘 설계만으로는 정치의 핵심적 실체라고 말할 수 없다.


소비세 감세가 포퓰리즘이라고 기사에서는 단정하고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소비세 감세는 가장 직접적으로 물가의 영향을 완화하고 소비 심리를 제고할 수 있는 하나의 정책수단이다. 일본의 재정건전성은 심하게 악화되었지만, 그동안에도 저소득층일수록 사실상 과세가 강화되어 담세력에 과세가 비례하지 않는 역진성이 나타나 왔다. 일본 정부는 ‘재정 출동’을 단행하면서도 소비세 인상을 함으로써 서민 가계 입장에선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정책을 펴 왔다. 그러니 증세를 하더라도 소비세여야만 하느냐는 질문부터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을 회피한다면 재정건전성 문제를 직면한다 할 수 없다.


또 사회보험료를 줄이는 것은 특정 측면에서만 유의미하다. 만약 청년세대 입장에서만 보고, 또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이 지속불가능하다고 전제할 때는, 사회보험료보다 사회보험금이 적게 되면 불공평하므로 차라리 사회보험료를 줄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회보험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연대의 원리에 기초한다. 무슨 대단한 이타심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전 국가적 차원에서 모두가 갹출하여 연금이나 건강 그리고 요양이나 산업재해보상 등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을 의무적으로 제도화하자는 취지라는 의미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다가올 수 있는 위험들인데, 만약 사회보험료를 낮춘다고 하면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는 상황 속에 사회안전망이 성기어져서 다수의 국민들이 결국 사회적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가? 결국 이 역시도 앞의 문단에서 언급했듯, 가치와 재정의 문제로 직결된다.


나는 과학기술이 그 자체로 정치의 문제들을 해결해준다는 데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영역이고, 사회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물질문화를 수용하고 활용하는 비물질문화에 달려 있다.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화두, 가치, 비전, 신념이 명확한 정치인이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그 정치인에게 동의하건 하지 않건 간에. 그래서 나는 ‘실용의 정치’를 과감하게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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