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의 문제 : 규범적 전제 영역의 축소

'보수적 진보'와 '혁신적 보수'의 미래 (?)

by 남재준

최소한의 규범적 합의가 부재할수록 가능한 합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1) 갈등의 국면을 매듭짓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 '다음 챕터'로 나아갈 수 있게 안정적으로 유도하고, (2)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회변동ㆍ사회문제에 기민하게 입법ㆍ정책 차원의 대처를 하고 답을 내고 리더십을 보이는 것이 이 시대 정치인의 기능ㆍ역할이라 본다.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을 위한 연금개혁의 경우가 그 예이다.


세대 간 이해충돌이나 토론 중심으로만 접근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연금의 지속가능성과 노후보장의 충실이라는 측면에서 토의적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처 내각 시절 대대적인 산업 재구조화로 인해 영국은 공업에서 금융업과 서비스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변동했는데, 특히 스코틀랜드의 타격이 컸다.


대량 실업이 발생했으나 동시에 정부에서 감세와 동시에 재정지출 감축의 방향으로 재정을 운용하니 사실상 노동자와 저소득층 등은 완전히 사회적 배제를 면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 당시 노동당에서 일관되게 말한 레토릭은 '시장/기업 이전에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제레미 코빈 의원의 아동빈곤 문제에 대한 PMQ에서의 지적이나 토니 벤 의원의 대처주의적 기업가정신 논리의 허위성과 실제 생활을 운영하고 있는 직업들(사회서비스, 간호, 교육 등)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이 그렇다.


이러한 부분들은 대체로 영미에서 일관되게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가 2012년 대선에서 '기업은 곧 사람입니다(Corporations are people).'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아뇨, 롬니 주지사님. 기업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가집니다. 그들은 취업을 합니다. 그들은 아픕니다. 그들은 번성합니다. 그들은 춤춥니다. 그들은 살아갑니다. 그들은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를 기업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No, Governor Romney, corporations are not people. People have hearts. They have kids. They get jobs. They get sick. They thrive. They dance. They live. They love. And they die. And that matters. That matters. That matters because we don’t run this country for corporations, we run it for people.)


이 연설은 대중주의(Populism)적 언어라는 말도 있기는 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지원하는 국가가 왜 대중주의적인가?


그런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난 인본주의적 국가(Humanist state)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일본 민주당(民主党/1998-2016)의 기본 이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득권의 구조로부터 배제되어 온 사람들,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자립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선다. 즉 "생활자", "납세자", "소비자"의 입장을 대표한다. "시장 만능주의"와 "복지 지상주의"라는 대립하는 개념을 넘어 자립한 개인이 공생하는 사회를 지향하며, 정부의 역할은 이를 위한 체제 구축으로 한정한다는 "민주중도"의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준석 후보의 철학, 정책, 언행은 매우 걱정스럽다.


공통의 규범적 전제를 가지고 시작할 수가 없고, 철학과 정책은 훨씬 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경쟁, 능력, 시장 강조) 색채를 띠고 있다.


중도적이고 정책 중심의 정치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큰 틀에서 국가적으로 필요한 과제들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위임(Mandate)을 필요로 한다. (2016-2019 테레사 메이 영국 내각을 보며 절감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정치체제 자체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국회와 정부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나아가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를 너무 강조해 비이성적인 대중주의로 흐르거나, 그 반대로 서민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손해를 강요하는 엘리트주의로 가거나 하다 보면 국민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많이 하게 되고 집권 후 수정 축소되는 폭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양상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인 국민의 대표자에 대한 신임과 위임에 손상을 주게 된다.


또한 시스템 자체를 흔들어서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명목으로 합의 중심이 아니라 대결 중심의 극단적 정치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득세하게 되면 중도적 정치인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는 정치 참여의 활성화를 수단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혐오를 자원으로 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정치란 결국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제도적ㆍ공공 인프라ㆍ프레임에 관한 공동체적 의사결정 과정이자 시스템이므로, 결국 그러한 정치혐오와 극단정치는 민주주의 파괴만이 아니라 삶에 해악을 미칠 것이다.


중도 성향 정치인들은 오직 시민의 이성에 기반할 수밖에는 없다.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국정을 처리할 역량은 없더라도 대신 처리할 사람을 선택할 역량은 있다'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은 이준석 의원은 이런 전제에까지도 후보자 테스트 도입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도전했다.)


본래 보수가 보수였고 진보가 진보인 시대에서, '보수적 진보'와 '혁신적 보수'로 장래에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안정 및 통합을 중시하는 방향에 진보가 초점을 맞추고, 자유시장과 능력주의 및 다수자적 관점 등을 중시하는 방향에 보수가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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