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지리학(Geography)과 지구과학(Earth science)의 차이가 정확히 뭔가 하고 궁금해 했다. 특히 지리학은 거의 독립 분야로서의 의미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건, 일단 해당 분야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한 우선 그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특색이 무엇인지와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그로 인해 독립 학문을 유지할 수 있는지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당연히 지리학은 독립 분야로서 유지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지리학은 어느 상위 분야에 포함되는가? 지리 교사 중에서도 간혹 지리학이 자연과학이거나 아니면 복합학에 속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리학은 사회과학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이 분야의 특색 즉 고유의 존재 의의에 비추어 맞다고 본다.
그 이유는, 지리학은 '인간과 그 환경으로서의 공간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나아가서는 행성으로서의 지구로 본다면 행성과학까지 포함해) 시스템의 각 권역 그리고 이들의 통합적 상호작용 및 메커니즘' 그 자체를 다루는 자연과학인 지구과학과는 구분된다.
이 차이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개념이 '지역(Region)'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이란 일정 공간적 범위를 지리적 특성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을 '구획(Compartmentalize)'하는 행위 자체부터가 일단 인위적인 행위이다. 또 심지어 자연적 구분이라고 하더라도 예컨대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하는 기준선에 대한 논쟁이 있는 것처럼 결국 지역은 인간과 환경/공간의 상호작용을 상징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들의 지표면을 구분해 편의상 '지역'이라고 부르더라도, 우리가 흔히 지리학이라고 하면 하위분야로서 생각하게 되는 세계지리나 아시아지리나 유럽지리나 한국지리와 같은 지역지리학(Regional Geography)에서 전제되는 지역의 의미와는 확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수성의 지역 구분'이라는 말은 약간 어색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두 대상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면 우선 그 두 대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당연히 전제된다. 이렇게 볼 때, 지리학은 자연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지형학, 기후학, 수문학 등 실질적으로 지구과학과 직결되는 자연지리학을 다루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러한 자연'지리'도 예컨대 특정 지역에서의 기후와 지형 그리고 인간 생활 등을 다루게 되므로 순수한 의미에서 지구과학의 하위분야로서의 해당 분야들과는 다르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최근 중등 지리과 교육과정의 재구성 양태를 보면 이러한 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15 개정과 22 개정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자연지리보다 인문지리, 사회지리, 경제지리 등의 내용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범사회과(도덕과 포함)의 교육과정 내용요소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특정 분야를 독립(쪼개기)시켜 과목을 신설하는 식으로 가거나, 단원 배치를 바꾸거나 개념을 최신 변화에 맞추어 부분 변경하는 정도가 대체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 인상으로는 지리과는 다른 교과들보다 변화 폭이 상당해 보인다. 22 개정은 경제지리 폐지 때와 필적하는 변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실은 나는 학창 시절에 지리를 잘하지 못했다. 애초에 지도를 보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지도보다는 연표를 보는 걸 선호했기에 역사를 더 좋아했다. 나아가서는 생각이나 인식이 복잡화되면서는 도덕윤리와 일반사회 쪽에도 관심이 많아졌고 결국엔 일반사회 쪽으로 귀착되었다.
교과 편식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무관심하거나 못 하는 교과는 속으로 약간 낮춰보기 마련이다. 굉장히 잘못된 생각인데, 개인적으로는 지리가 내게는 약간 그런 교과긴 했었다. 일반사회 측에서 보면 지리는 너무 피상적인 면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경제학에서 보는 경제보다는 지리학에서 보는 경제가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
모든 분야가 존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민주시민, 세계시민에 이어 '생태시민' 개념이 범사회과에 도입된 상황이다. 이는 지구와 자연 시스템 그 자체를 이해하는 지구과학과,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지리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하는 도덕윤리과 등의 협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과 환경문제를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자연과의 공존 의식을 함양하며 실천하도록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계속 가속화되는 다문화사회로의 진전 그리고 서구에서 확산 및 강화되는 중인 외국인혐오 등의 변화를 감안할 때 시민교육은 더욱 다양한 인종이나 문화 등과의 공존 의식 함양과 실천을 요구한다. 또 사회, 경제, 자연환경 등 모든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과 협력의 자세와 실천 역시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등교육은 종국적으로서는 시민으로서의 공통 소양과 역량의 함양에 목표를 두고 각 교과의 지식 교수학습은 결국 이러한 목표에 복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22 개정 교육과정으로 들어오면서 학생의 실질적인 선택의 자율을 보장하려는 큰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입시 등으로 몰각된 국민공통교육의 취지를 되살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무엇보다 입시 중심 중등교육에서 상당수 학생들이 학습동기 자체가 없어 이탈(꼭 고교 자퇴가 아니더라도)하고, 학교가 사회생활로 나아가서는 기초 사회화 역할을 못하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중요하다. 사각지대가 생기면 왜곡되고 위험한 사회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일부 학생들의 사회적 감수성 저하나 정치적 극단화 등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제도 인문사회교육의 사각지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복합위기가 도래하면서,
- 어휘력과 문해력 및 소통
- 자기 성찰과 타인 배려
- 미디어와 비판적 사고
- 다문화 사회와 간문화 소통
- 다원주의 및 평화와 공존 의식
- 인권과 준법 의식
- 정보 처리와 IT 활용
- 지속가능한 인류문명과 자연을 위한 노력
- 과학기술 고도화와 그 의의를 이해하기 위한 수학-과학-공학적 소양
- 기초적인 문화예술 창작과 감상 역량
- 스포츠와 건강 관리
- 의식주 총체적 차원에서의 1인 가구 확산에 따른 생활관리와 자기 독립
등,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어떤 직업을 가지건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소양의 최저한도가 계속 인상되고 있는 중이다.
대학입시도 결국에는 평가인 만큼, 평가 중심 교육과정이 아니라 교육과정 중심 평가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앞으로의 교육혁신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