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 : 비전 없는 리더십의 실패

by 남재준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26/feb/27/labour-leadership-truce-keir-starmer-may-countdown?CMP=share_btn_url&fbclid=IwdGRjcAQVwqRjbGNrBBXCmWV4dG4DYWVtAjExAHNydGMGYXBwX2lkDDM1MDY4NTUzMTcyOAABHm36Cwf3SUlTCLFx2s61EjWr1HEMK1EOYXj3hUviv-WOKSui-x1sX69KVc2h_aem_I1EhFQ6KyH1QOmCSPcVIRw

[하지만 많은 의원들에게는 스타머에 대한 문제는 당이 왼쪽으로 가느냐 오른쪽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식된 우유부단함이다. 이는 정치적 결단력의 부재이며 국가의 미래에 대한 더 낙관적인 서사 제공의 실패이다.


"우리는 내부의 좌파나 우파를 택하거나 어느 쪽이건 정적들에 대한 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 우리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각료는 말했다.]


노동당 강세 지역이었던 고튼 앤 덴턴 지역구에서의 참패는 예견된 대로 영국 유권자들의 스타머 내각에 대한 불신과 경멸을 보여준다. 스타머 내각의 빠른 하락세는 개인적으로는 스타머가 집권하기 한참 전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실은 나는 우리나라의 이재명 정부도 계엄이라는 역사적 규모의 대사건이 아니었다면 크게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이재명은 야당 대표일 때에도 '우리 자신의 혁신'과 '대여 투쟁' 중 후자에만 모조리 힘과 관심을 몰아넣었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아래 문단에서 제시한 세 가지 선택지 중 3번이라는 것이 나올 리 없는 민주당이 실패하는 건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비문의 주장은 비합리적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현재 강경 친명과 초강경 친명 심지어는 저희들끼리 '친명 참칭자'를 지목하며 린치하고 서로 누가 더 '이재명을 위하느냐' 비슷한 걸로 싸우는 점입가경을 보이는 민주당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최고 리더십이 위기에 빠지면, 보통 당 내에선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반응이 나온다.


_1. 리더십 엄호 : "지금 이 사람 말고 달리 대안이 있나? 만약 리더십 교체를 지금 한다면 당 내 분열만 심해질 것이다. 아직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_2. 리더십의 변화 촉구 : "대안이 없다거나 리더십 교체가 당에 혼란을 안길 것이라거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_3. 리더십 교체 촉구 : "우리는 처음부터 경고했거나 이미 일찍부터 이 리더십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눈치 챘다. 파국을 당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정치도 "업계"라서 그런지 1, 2번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전통이 오래된 정당일수록 그렇다. 당내 기율이 강하거나 한 전통적 정당에선 3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특히나 영국에서 보수당과 달리 노동당은 성과가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 같은 것을 기반으로 리더를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기실, 우리나라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현주소도 그렇다).


하지만 세상이 모두 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하는데 웨스트민스터나 여의도에 자기들끼리 둘러앉아 희망 회로를 돌린다고 해서 미래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결국 권력도 신념도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스타머는 처음부터 답이 아니었다. 적당히 무난한 이념적 노선의 야당 대표로서 일시적인 반사적 이익의 수혜를 거하게 누렸을 따름이다.


내가 최근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의 리더들을 왜 무미건조하거나 유치하거나 불쾌하다는 등의 이유로 거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지를 고민해봤다. 그 답이 이 기사를 통해 명료해졌다. 정치는 노선과 정책만으로 정의되고 또 유효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 리더십과 신념/서사/철학이 뚜렷하게 서야 한다. 이 두 요소가 정치를 행정 등 다른 공적 활동과 구분하는 지점이 되고, 무엇보다 국정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를 가르게 된다(물론 상대방의 역대급 실책 등 변수가 없다면).


그러나 스타머에게는 애초에 그런 것이 없었고, 야당 대표일 때에도 준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토니 블레어와 비슷한 '중도'라는 레퍼토리를 내세웠지만 블레어와 달리 '제3의 길'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리비전도, 젊고 쾌활하며 긍정적이면서도 주도적인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무런 개인적 매력과 독자적 철학이 없었다. 되레 그는 노동당이 갈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철학적 후보지를 제공한 제레미 코빈을 내쳐버렸다.


블레어를 흉내낸다고 해서 블레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블레어를 상대했던 윌리엄 헤이그 전 보수당 대표의 말이 그대로 였다. 1997년과 달리, 2024년의 영국 국민들은 스타머의 노동당에 기대하고 희망을 걸었기 때문에 압승을 안긴 것이 아니다. 그저 양당제가 당장은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 14년 간의 보수당 내각에 대한 거대한 불만을 터뜨릴 '배출구'가 필요했던 것 뿐이지.


결국 지금 영국 노동당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정당들이 마주한 현실은 단지 '좌냐 우냐'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비합리적이어 보이지만, 같은 이념과 정책도 어떤 리더가 어떤 사고와 언행으로 '보여주고 행하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이것이 리더 중심 정치라는 포퓰리즘으로 가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결국 리더십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건 엄연한 본질적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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