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론

by 남재준

나는 위계를 좋아하지 않지만, 딱 하나의 조건 하에서는 위계를 인정(반드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그냥 '그럴 만하다'라고 생각하는 하한선을 의미한다.)할 수 있다. 윗사람이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경우이다. 권위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응당 그러하다/그리해야 한다고 여기는 정당성(Legitimacy)을 통해 획득된다.

이때의 정당성은 규범성을 내포하지 않고 단지 실제로 권위가 성립하기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정당하다고 여기기만 하면 되는 객관적인 원천을 의미하는 사회학적 개념이다. 마치 뒤르켐이 도덕을 '사회적 사실'로 전제한 것과 같다. 이에 따르면, 정당성은 단지 설명의 개념이므로 아돌프 히틀러라고 해도 카리스마라는 원천에 근거해 정당성 나아가 권위를 지니게 된다.

권위(Authority)는 권력(Power)과는 다른 개념이다. 권위가 없거나 부족한 권력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 실은 권위가 '없다'는 설명은 좀 극단적일 것이고 '부족'한 경우는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왕조의 정통성 등의 붕괴가 목전에 달린 상태에서 단지 전통의 관성에 근거해 수권한 통치자는, 비록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반드시 전통적 권위를 획득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집권 자체의 성립 여부로만 따지면 전통적 권위라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조금 더 면밀하게 따지면 권위가 '있긴 하나 부족'하다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마침내 그 권위가 권력 유지를 위한 하한선 이하로 내려가면 레짐이 붕괴되고 실권하게 된다.

권위는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와는 구분할 수 있다. 권위주의가 반드시 실제 권위의 획득을 장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위를 향한 강한 추동이 반대로 권위를 크게 감소시킬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이 사상은 '권위지상주의'에 가깝다. 하지만 성과지상주의자라고 성과를 잘 내는 것이 아니고, 자유지상주의자라고 그의 자유만이 온전한 자유의 개념이 될 수 없듯이, 권위지상주의자라고 해서 권위를 온전히 획득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다.

사실 '권위의 부족'은 현대사회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베버의 설명대로 합리성(Rationality)과 이에 기초한 관료제(Bureaucracy) 등에 기초해 근대사회가 형성되어, 역시 합리성에 기초한 법 그 자체에 의한 권위가 나타났다. 법이 있더라도 결국 정치권력의 통치 수단일 뿐이었던 전근대와는 다른 현상이다.

그런데 구조화, 제도화된 관료제나 법은 마치 기계처럼 '작동'하게 되지만, 거의 여기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인 지도자들은 현대사회에서 많이 발견된다. 최근 세계의 상당수 기성 주류 정당 출신 정치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 더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은 카리스마적 권위이다. 포퓰리스트와 내셔널리스트 정치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이전의 파시즘과 구분되는 점은 구조화/제도화된 법적/합리적 권위라던가 이 권위의 최소한을 인정하는 문화가 기반 메커니즘으로 남아 최소한의 방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권위의 원천 중 어느 하나만 있고 다른 것이 없는 경우는 많지는 않을 것 같다(이런 의미에서 권위의 원천 개념도 이념형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 어느 권위의 원천이라도 위험해진다. 이 '위험'은 사회학적 설명으로서 권위-권력의 유지라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철학적 가치로서의 규범적 정당성의 위험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개발독재자는 카리스마적 권위로 압도하고 법적/합리적 권위도 약간 있으면서 그것을 도구로 사용한다. 이 체제가 장기 유지될 수 있겠지만 인문적 가치들은 근본적 수준에서 훼손된다.

또 단지 관료제나 법에만 크게 의존하면 전례에 대한 비합리적 집착 등 필요한 변화마저 가로 막게 되고 그 자체가 사람들의 자발적 권력 수인 즉 정당성을 침식시키고 이것이 되먹임되는 메커니즘이 발생한다.

전통이나 신성성 등에만 의존하는 것은 특정 가치나 교리, 전통에 대한 폭력적인 부과로 이어지고 이 역시 정당성 침식 메커니즘을 유발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사회의 지도자들은 대개 카리스마적 권위와 법적/합리적 권위 간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개의 사례들은 앞에서 언급했듯 그 둘 중 어느 하나만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역시 언급했듯 어느 하나만이 강한 것은 인간존엄성과 인권 등 본질적 가치에 비추어 거의 좋은 것이 못 될 뿐만 아니라 결국 상당수는 지속불가능의 특이점과 붕괴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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