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줄리아노 아마토(Giuliano Amato, 1938-, 이탈리아, 총리 1992-1993 + 2000-2001, 헌법재판관)는 진보적 이민정책을 옹호하는 취지의 국제 보고서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이렇게 언급했다.
'요즘 사람들은 이성적 논증이 아니라 감정에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주장은 옳은 것이지만 망한 것이죠. 왜냐하면 누구도 여러분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든요. 안 되죠.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논자들의 감성과 지성에 의하여 성공할 수 있는 논증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직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단지 뱃심으로 밀어붙여지는 감정에 항복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적응하거나 아니면 방황할 겁니다. 저는 적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적응은 항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포기죠.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첫 단계에 있었던 동물들이 아닙니다.'
작년에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마크 매런(Marc Maron, 1963-, 미국, 코미디언)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관용과 특정 상황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요. 이제는 그런 게 없어졌죠. 저는 관용이나 공감 없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을 말하는 선진국의 윗세대들을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미묘하게 보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는 마치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과 같다.
실용과 효율성을 말하지만, 예를 들어 '이 시대는 이제 힘의 시대이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정확히는 그 말의 사고방식 같은 것이 말이다.
마치 자신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또 무엇보다 그런 세상이 온 것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인류가 장구한 역사를 거쳐 학습해 온 중요한 가치와 원칙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대강 70년대 초, 서구 기준으로 대강 60년대생 정도가 역사적으로 '큰 일'을 목격한 거의 마지막 세대일 것 같다.
90년대는 탈냉전과 동아시아/동유럽 등에서의 민주화 및 공산 국가의 개혁/개방 등이 이루어진 때였다.
이 시대는 아직 낙관적인 현대사회의 초입이자 동시에 근대의 마지막 열차가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 세대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겪었지만, 현재 맞고 있는 문화 전쟁, 극단주의와 포퓰리즘/내셔널리즘, AI의 부상과 경제체제의 지속가능성 문제, 자연의 지속가능성 위기 등 복합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좀처럼 반성이나 성찰, 협력 등의 모습이 관찰되지 않는다.
'고루한' 세대 중에는 일례로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의해 얼마나 인문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지를 어느 정도라도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20세기는 열전과 냉전, 인종 말살, 독재의 폭압, 68혁명, 경제위기 등 참으로 다양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었고 비록 상시적으로 인류의 잔인함과 맞서 싸워 무감해질 정도였다고는 해도 그 이후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아직은 집단적 파시즘과 인문주의의 충돌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파편화되고 무기력하며 적응와 효율성의 논리 등이 팽배하다.
성숙하고 모범이 될 만한 담론과 행동은 리더십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지금 민주정치체제의 정치효능감이 없다는 열패감과 서민에게 희생만 요구하는 구조개혁의 방향성을 극복하려면, 결국 성숙하고 모범적인 리더십과 시민성이 어우러져 숙의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나 제국주의 같은 것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안에서'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 '고루한' 가치들의 재소환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