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마음으로, 정부에서 사임합니다

2003년 로빈 쿡 전 영국 외무장관의 이라크 전쟁 반대 연설

by 남재준

https://youtu.be/T9CqiiI2Irg?si=grMw7ri_PeKBwW3Q


(일부 번역. 직역+의역이 함께 있다. 해량을 부탁드린다.)


“미국은 혼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국은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익은 일방적 행동이 아닌 다자적 합의 그리고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 의해 제일 잘 지켜집니다. 하지만 오늘 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협력관계는 약화되었습니다 : 유럽연합은 분열되었고, 안보리는 교착 상태입니다. 이것이 아직 개시되지도 않은 전쟁이 이미 낸 무거운 결과들입니다.”


“우리의 코소보에서의 행동에 대한 법적 기반은 긴급하고 강력한 인도적 위기에 대응할 필요였습니다. 이번에 지지를 얻기 어려운 것은 국제사회나 우리 국민 모두 이라크에서의 군사행동에 대한 긴급하고 강력한 사유가 있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전의 문턱은 언제나 높아야만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다가오는 이라크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 수를 예측할 수조차 없지만, 미국에서 단지 ‘충격과 공포’만 주는 것이라 경고한 이 폭격 작전의 사상자는 최소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우리 군인들이 전문성과 용기를 가지고 임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두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사담이 바그다드를 비우고 전쟁을 피하기를 바라지만, 전쟁을 지지하는 이들만이 우리 군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그릇된 것입니다. 그 군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갈등에 대한 대안을 탐색하면서도 동시에 군인들을 지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 전쟁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단지 이라크의 군사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는 등 군사력이 위협적이어서가 아니라). 전쟁을 지지하는 이들 중 몇몇은 사담의 군이 너무 약하고, 사기를 잃었으며 무장도 형편없으므로 며칠이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사담이 약하다는 가정에 기초해 군사전략을 세우면서 동시에 그가 위협이므로 선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정당화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라크는 보통 이해되는 용어로서의 대량살상무기, 즉 전략적 타깃 도시에 투하할 만한 기기는 가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생물학, 화학 무기는 아직 가졌을 수도 있는데, 이는 1980년대부터 미국 회사들이 사담에게 탄저균을 팔고 당시의 영국 정부(대처 내각)가 생물학, 화학 무기 공장을 허가했을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왜 20년 전부터 그들이 보유했고 우리가 개발에 도움을 준 군사 역량을 해제시키기 위한 군사행동이 새삼 그토록 절박한 것입니까?”


“저는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총리(토니 블레어)의 노력을 환영(미국의 이라크 전쟁 개전 의지에 대해 블레어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을 선결조건으로 내걸었음)하지만, 중동에서 영국의 긍정적 역할은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미국과 그 동맹국들 그리고 나머지에 달리 적용되는 이중잣대에 대해 느끼는 강한 부정의를 바꾸진 못할 것입니다.”


“의회에 오래 복무할수록, 우리 국민들의 상식과 집단지성에 대한 존경이 더하게 됩니다. 이라크에 대해서는,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분위기는 합리적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사담이 야만적인 독재자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가 영국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점은 납득하지 못합니다. 사찰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미국 정부만의 의제에 너무 빨리 밀어붙여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영국이 광범위한 국제적 지지가 없고 많은 동맹국의 반대에 반하는데도 군사적 모험에 홀로 나서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이번 위기가 시작될 때부터 하원 대표로서 저는 영국이 개전해야 하는지에 관한 의회의 표결권을 주장해 왔습니다. 의회가 영국정치에서 더는 중심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평자들이 가장 즐겨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의회가 국제적 동의도 국내의 지지도 없는 이 군 파견을 중지시키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틀렸음에 대한 최고의 입증이 될 것입니다. 저는 내일 밤 표결에서 군사행동에의 반대표를 던질 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오직 이 이유로 인하여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정부에서 사임합니다.”


_ 2003.3.17. 로빈 쿡 Robin Cook, 1946-2005,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외무장관(블레어 내각), 하원 대표(블레어 내각), 추밀원 의장(블레어 내각), 유럽 사회당 의장 역임)의 하원 대표 사임 연설 中 (번역)


*인물) 로빈 쿡은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중산층으로 태어났고 에든버러대 영문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등교사(아마도 영어교사(우리나라로 치면 국어교사가 된다))로 일하다 교사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약 30세에 정계에 투신했다.


대체로 노동당 내 연성좌파(Soft-left) 성향으로서 강성좌파(Hard-left)보다는 현실적이고 신노동당(New Labour)보다는 원칙적인 중간파였다. 1997년 정권교체 후 외무장관으로서 인권과 평화 등을 중시하는 '윤리적 외교'를 제시했지만 블레어의 계속되는 과잉 대외 군사 개입에 제동을 건 끝에 결국 정부에서 사임했다. 이 연설 2년 뒤에 그는 59세를 일기로 하이킹 중 심장마비와 낙상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당 지도부나 각료 등 Front Bencher가 아닌 평의원으로 돌아간 Back Bencher로서 연설하고 있다. 뒤를 보면 함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강성좌파 성향의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 1949-) 의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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