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평전 10. 육손 陸遜 (1)

by 남재준

1. 강동의 호족 가문 자제가 출세하다


육손(陸遜, 183~245(향년 62세))의 본명은 육의(陸議)로서, 육씨 가문은 강동의 호족 가문으로서 오의 건국에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오군 오현 출신인데, 오군은 양주 최동단에 있는 군 중 하나이다.


제갈량과 마찬가지로 육손도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당조부(할아버지의 사촌) 육강이 여강태수로 있는 여강에서 지냈다.


여강은 양주의 최북단에 있는 군 중 하나인데, 오와 여강 가운데의 고장군을 통해 다다를 수 있었다.


육손은 육강의 아들인 육적에 비해 나이가 몇 살 위여서 육강을 대신해 집안을 관리했다.


당시 원술은 육강과 사이가 좋지 않아 여강은 공격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육강은 육손을 오로 돌려보냈다.


손권이 장군으로 임명되었을 때 21세였던 육손은 손권의 부(府)에서 초기 이력을 쌓았다.

그 후에 오군 해창현의 둔전교위로 임명되고 현령의 업무도 겸임했다.

여러 해 연속으로 크게 가뭄이 닥쳐 육손은 백성들을 구제하고 농업과 양잠을 다시 일으켰다.

당시에 오군, 회계군, 단양군 등에 숲속에 숨은 자들이 많아 육손은 손권에게 그들을 징병할 것을 청했다.


육손은 이 사람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오래 관을 고생시킨 회계의 산적 두목이었던 반림을 토벌하는 데 성공한다.


또 파양군의 도적 두목 우돌이 난을 일으켰을 때도 육손은 이를 토벌했다.


이렇게 백성을 잘 다스리고 도적을 토벌하자 공이 쌓여 그 역량을 손권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손권은 조카(손책의 딸)를 육손의 배우자로 하여 혼인하게 하였다.

그리고 정무적 문제에 대해 육손과 수차례에 걸쳐 의견을 구하였다.

육손이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하였다.


‘군웅할거의 시대이니, 사람이 많아야 대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비로소 외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산월의 산적들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으니, 정예병을 통해 그들을 토벌해야 합니다.’


육손은 이번에는 단양의 비잔을 토벌하러 갔는데, 그는 조조의 인수를 받고 산월을 선동하여 서로 결탁했다.


육손의 군은 비잔의 군에 비해 수가 적었으므로 계책이 필요했다.


육손은 군기를 늘리는 등 수가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위장하고 밤에 잠복해 있다가 돌연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진격했다.


이 계책은 적중해 비잔은 대파되었다.

비잔의 토벌을 끝으로 오-회계군-단양군(동삼군)의 환란은 정리되었고, 이들 중 쓸만한 이들을 군에 편입하고 나머지는 농업에 투입하였다.


육손은 무호에 주둔했는데, 이곳은 건업에서 서남쪽, 합비에서 동남쪽으로 약 60~80km 정도에 위치하고 장강 남안의 평지였다.


그런데 회계태수 순우식이 손권에게 표를 올려 육손이 임의로 백성들을 취하여 관할 지역을 소란스럽게 한다고 아뢰었다.


하지만 소환된 육손은 손권에게 순우식을 훌륭한 관리라고 칭찬했다.


손권이 이유를 묻자 육손이 답하기를 ‘순우식의 뜻은 백성들을 기르려고 했기 때문에 저를 고발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를 비방한다면 성덕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이러한 기풍은 조장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손권은 범인(凡人)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 하며 칭찬했다.


개인적으로는 육손의 도량을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다.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빠르게 전쟁을 끝내고 민생을 안정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체로 삼국의 주요 인물들은 삼국쟁패에서 돋보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위/촉/오 삼국의 모든 조정은 전쟁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전쟁은 단순히 인명과 물자를 크게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행정과 정책에 어려움을 끼치고 질서 통제가 쉽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순우식의 의견은 사실 삼국 모두의 대체적 의견과 비슷했다고 본다.


위의 신료가 촉의 제갈량에게 서신을 보낸 일이라던가 오의 제갈각이 대군을 일으켜 북벌할 때 오의 신료가 반대했던 일 같은 것들이 그렇다.


또 군이 오가며 소란스럽게 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지방행정관의 입장은 편치 못했을 것이다.

육손이 집중적으로 토벌한 산적들도 결국에는 그 시대의 혼란과 난국을 틈타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일단 건국을 한 이상 삼국 중 두 나라는 반드시 없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십 년간 결론이 나지 않는 대치가 계속된다.


2. 관우와 유비를 패배시키다


여몽이 칭병하여 건업으로 귀환했을 때, 육손이 그를 찾아가 물었다.


‘관우와의 경계선에 있으면서 멀리 왔으니 우려되는 것이 없습니까?’


여몽이 답하기를 ‘당신의 말이 맞지만, 나의 병이 심합니다.’ 하였다.


그러니 육손이 다시 말하기를 ‘관우는 자신의 용기만 믿고 타인을 모욕합니다. 처음으로 큰 공을 세워 교만하고 안일해져 북쪽만 신경 쓰고 동쪽의 우리는 경계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당신의 질병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더욱 경계를 풀 것이니 그때 치고 들어가면 그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여몽은 약간 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관우는 평소 용맹하니 그를 적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는 형주를 점거하고 인심을 얻고 있으니 도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손권이 여몽을 만나보고 ‘누가 그대를 대신할 수 있소?’라고 묻자 여몽이 답하기를 ‘육손은 사려 깊고 중한 임무를 맡을 재능이 있습니다. 그가 미래의 일까지 살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는 이를 알았습니다. 또 그는 아직 유명하지 않고 관우가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를 기용하면 관우의 방심을 노려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손권이 여몽을 대신해 육손으로 하여금 형주에 가서 관우를 상대하도록 했다.


육손은 가면서 관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 이전에 당신이 적군의 동태를 관찰하고 계책을 통해 가볍게 승리하는 것을 보았으니 당신의 공적은 위대하오. 적국의 패배는 동맹국의 이익이므로 함께 중원을 석권하는 대업을 이루기를 바랐소. 최근 무능한 이 사람이 임명받아 오게 되었소. 그대의 환대와 가르침을 바라오.

우금 등이 당신의 포로가 되니 모두가 그대를 존경하였소. 서황 등은 적은 수의 기병을 주둔시키고 당신의 동향을 엿보고 있소. 조조는 교활한 적이니 실패한 분노 때문에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은밀히 군사를 늘려 치려고 할 것이오. 군대는 강하지 않지만 승리한 후 항상 적을 경시하게 되었소.

장군이 경계하고 계책을 세워 완전히 승리하기를 희망하오. 나는 서생으로서 재능이 없고 행동은 더딘데 중임을 맡게 되었소. 부디 잘 부탁하오.


관우는 편지를 보고 육손이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해 경계를 풀었다.


육손은 손권에게 이러한 상황을 보고하고 관우를 잡을 계책을 제출하니, 손권은 은밀히 군대를 파견하고 육손과 여몽을 선봉으로 하여 신속하게 진군해 공안과 남군을 점령토록 했다.


형주 점령 후에 그곳의 선비들이 막 오로 귀의했는데 임용된 자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있었다.

이에 육손이 소를 올려 아뢰기를


- 한고조가 대업을 이룰 때 남다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임용했고, 광무제가 중흥했을 때에도 걸출한 사람들이 귀의했습니다. 형주는 이제 막 평정되었고 인재들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들을 모두 발탁하거나 지원하여 등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천하 만인이 우리에게로 귀의하려 할 것입니다.


손권이 이 의견을 수용했다.


222년에 유비가 오를 치러 진군하니,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장수들과 5만 군사를 통솔토록 했다.


유비는 무협-건평-이릉에 이르기까지 둔영 수십 개를 세우고 그 인근의 소수민족들을 회유했다.

그러고는 수천 명을 인솔해 평지에 군영을 세워 도전하도록 했다.


오의 장수들은 응전하려고 했지만 육손은 유비에게 계책이 있을 것이니 좀 더 관망하자고 하였다.

유비의 촉군이 산기슭에 있는 상황에서 평지의 아군이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애초에 불리하기도 함을 언급했다.


그러나 장수들은 이해하지 못하고는 육손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분기를 품었다.


육손이 상대하지 않으려 하니 유비는 매복을 포기하고 철군했다.


육손은 손권에게 소를 올렸는데 대강은 이렇다.


- 이릉은 요충지이고 최전선에 있는 형주의 관문입니다. 이곳은 쉽게 얻었으나 쉽게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비가 지금 이곳으로 깊이 들어왔는데, 전체적으로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습니다. 처음에 신은 그가 수륙으로 함께 진출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배를 버리고 육지 곳곳에 진영을 쳤습니다. 다른 변화는 없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수하 장수들은 불평하며 말하기를 ‘유비를 공격하려면 처음 그가 들어왔을 때 쳤어야 합니다. 지금 그는 우리나라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서로 대치한 지 7-8개월에 이르렀고 많은 요충지들을 그가 점하고 지키니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하였다.


육손이 답하기를 ‘유비는 경험이 많고 계책이 많아 처음에는 섣불리 치지 못했다. 그런데 현재는 장기간을 지나버려 촉군은 지쳐 있고 아군을 압도하지도 못했다. 이제야말로 그들을 칠 때이다.’ 하였다.


그 후에 육손이 유비의 진영 하나를 쳤지만 쉽지 않았다.


장수들이 또다시 ‘헛되이 병력을 소모할 뿐입니다.’라고 하니 육손이 답하기를 ‘나는 이미 유비의 진영을 격파할 방법을 안다.’ 하였다.


육손은 병사들에게 화공으로 격파하도록 명했고, 이것은 대성공하여 오군은 촉군을 대파했다.


유비는 백제성으로 후퇴했고 매우 부끄럽고 분하게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육손에게 좌절과 모욕을 당했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처음에 손환이 단독으로 유비의 선봉대를 치려다 도리어 유비에게 포위되니 육손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육손이 말하기를 ‘안 된다.’라고 하니 장수들이 ‘손환은 주군의 동족인데, 그가 포위당한 것을 알면서도 어찌 구원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육손이 답하기를 ‘손환은 군심을 얻었고 성은 단단하며 식량이 충분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내 계책이 성공하면 지금 구하지 않아도 결국 포위가 자연스레 풀릴 것이다.’ 하였다.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참패한 후 손환이 육손을 만나 말하기를 ‘이전에 내가 구원받지 못한 것을 원망했었는데, 대국이 결정된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당신의 조처에는 방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는 손씨 가문을 일찍부터 따른 무장들이라던가 그 구성원들 그리고 호족 가문들이 연합하여 구성하였는데 그들은 육손과 같은 젊은이를 처음에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러나 육손이 손권으로부터 받은 검을 들고 위엄을 떨쳐 보이자 복종하게 되었는데, 이를 손권에게 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권은 상황을 몰랐다.


후에 고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육손이 답하기를 ‘주군께서는 두터운 은혜를 내리시어 제가 맡은 대임은 제 재능을 넘는 것이었습니다. 제장들은 주군께서 신임하는 이들, 장수와 공신들이니 국가대사를 함께 이루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손권은 그를 칭찬하고 형주목으로 임명했다.


몇몇 장수들은 백제성의 유비를 사로잡아야 한다며 공격을 청했는데 이에 대해 손권이 육손에게 자문을 구하자 그는 이를 만류했다.


‘현재 오가 촉을 대파하여 이 기회를 노리고 위의 조비가 군을 몰아 촉을 치려 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결국 우리를 치려 할 것입니다.’


조비의 대군이 결국 오를 치러 남하하니, 육손의 예상이 적중했다.

이릉대전 직후 위가 촉과 오가 서로를 쳐서 약화시킨 것을 두고 어부지리를 얻으려 한 것이었다.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는 촉보다 북방의 군사들을 수전에 익숙하게 하여 오를 먼저 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오록」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는데, 다름아닌 유비와 육손의 서신 교환이다.


유비가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적군이 지금 벌써 강릉(형주의 오 측 영역에서 최북단)에 있소.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동진할 생각인데 장군은 동의하오?'


육손이 답하기를 ’당신의 군대는 방금 패배하여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이제야 막 촉오 간 화친 관계를 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걱정입니다. 지금은 스스로 보충하는 것이 우선이지 다시 뒤엎어지는 상황 속에서 생존자들을 멀리 파견하게 하면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조비의 남정은 오가 스스로 물리치긴 했지만 그래도 육손이 유비에게 보낸 답신은 흥미롭다.


얕게 생각하면 촉이 이미 약해졌으니 더 치명타를 입는 것, 그리고 최소한 오를 치는 위의 기세를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육손의 입장에서 유비의 진군을 말릴 이유는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면 약화된 촉이 위에게 치명타를 입는 경우, 승리하긴 하였으나 큰 피해를 입은 오의 입장에서는 순망치한이 되는 셈이었다.


또 이제 막 촉오 간 관계가 회복되는 중이라는 점을 언급한 것도, 방금 전까지 서로 상잔하며 피를 흘린 촉과 오가 군사적 협력을 할 만큼 외교적 신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순우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비에게 보냈다는 서신의 내용을 보면 육손이 사심보다 대국적으로 더 타당한 방향이 어디인가를 우선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내부의 정적이나 외적에 대해서도 인정하거나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이는 육손이나 오의 사사로운 앙심이라던가 하는 것보다 민심 안정의 중요성과 촉의 회복 필요성에 대한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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