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보수와 장년 진보

세대는 정치성향이 아닌 인지 경향과 유관하다

by 남재준

세대와 정치성향은 상관이 없다는 점은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이 이미 밝혀낸 것이다.

장노년 세대로 갈수록 '보수적'이어지는 것은 맞지만, 그 '보수성'은 정치성향으로서의 보수주의가 아닌 '인지적 경직성'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세파를 많이 겪은 후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견고해지는 것을 말한다.

청년 보수와 노인 진보, 청년 진보와 노인 보수는 모두 어렵지 않게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세대라는 사회집단이 청소년기나 청년기 등 자아정체성이 형성될 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회적 사건에 의한 것이라는 정의에 비추어, 세대의 정치성향 자체는 이 '공유된 사회적 사건'과 연계된다.


예를 들어, 60년대생이 20대였던 80년대에는 아직 대학진학률이 30% 정도였고 경제발전의 마지막 수혜를 누리고 있었다.


대신에 정치적으로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어느 정부보다 강력하게 압제적인 정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식인이자 청년으로서의 '사회적 의식'도 강했고 결과적으로 학생운동의 흐름이 강렬하게 펼쳐졌다.


이들은 80년대가 지나면서 '역사의 진보' 다시 말해 '우리가 옳았다'라는 점을 확인했는데, 90년대에 서서히 정체되던 한국경제가 97년 외환위기 때 치명타를 맞은 이후 2000년대부터의 흐름에는 이미 기성세대로 진입하는 중이었거나 진입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매우 교조적이고 강력한 진보 성향이 되었는데 동시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교조성이 더욱 강해졌다.


한편 소위 MZ 세대라고 불리는 90년대생들은, 대개 2000년대~2010년대에 성인이 되었다.


이때는 이미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로 인한 불안정 노동의 보편화, 계속 극심해지는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실업 문제 등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대학진학률이 이미 70%에 이르렀는데 그들이 원하는 대기업이라던가 전문직 등의 화이트칼라 직종은 그 많은 인원을 전부 수용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레드 오션이 되어가면서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이미 보수-민주의 양대 세력이 보수의 권력과 민주진보의 명분 사이에서 한창 자웅을 겨루고, 사회문화적으로 90년대부터 진행된 계속되는 자유화 경향으로 인해 좀 더 개방성과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MZ 세대는 하나의 정체성이나 시대정신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굳이 말하자면 경쟁과 실업 시대에 양태되는 소시민성이라던가 그럼에도 (당연하지만) 기성세대보다는 다양성에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


이는 전형적 의미의 '보수성'과는 다르긴 하더라도 기성세대의 '진보적 공동체성'과는 확실히 다른 '냉소적 개인성'을 의미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밝혔듯 사회문화의 다양화가 이미 크게 진전된 상태에서 사회화된 세대인 만큼, 단일 경향으로 맞추려 드는 것은 세대가 내려올수록 위험하고 또 사회변동의 속도가 가팔라지고 정신적 성숙이 빨라지면서 기존 세대의 시간적 경계선(대강 30년)은 너무 길게 되기도 했다.


다시 정치성향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진보가 보수보다 더 원숙한 경우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나쁘게 말하면 보수는 세상에 항복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이지만, 진보는 계속 세상에 저항하고 무엇보다 어두운 '진실'을 직시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보수의 '자유민주주의'는 보편적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볼 때 인권보장의 진전에 기여한 것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되레 인권침해와 퇴보에 기여한 점이 더 많다. 자유주의의 본질은 개인과 인권의 우선에 있는 것이지 '반자유'에 대한 압도에 있지는 않다. 후자가 우선하는 경우, '반자유'를 임의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것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결국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게다가 무엇보다 자유주의의 시초는 봉건 권력이 고권성을 띠는 '임의적 판단'을 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근본적 수준에서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청년기를 지난다고 해서 반드시 약화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이 든 진보'란 없어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실재한다.

예를 들어, 강성좌파 성향인 영국 노동당 정치인 토니 벤(Tony Benn, 1925-2014)은 되레 나이가 더 들수록 진보화된 경우이다.

그는 세계대전에 참전해 복무한 군인 출신으로서, 전후 세대로서 제대로 된 전쟁을 겪어본 일이 없는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 전쟁을 개전하려 할 때 강하게 반대했다.

단순히 윤리적 이상주의가 아니라, 그 본인이 전쟁을 직접 겪으면서 인류에게 절멸적인 위기가 되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참혹한 붕괴를 가져다 주는지 목격하고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보 성향이고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대의명분은 그럴 듯한데도 결정적으로 인지적 경직성 때문에 권위주의적이고 자기모순적인 행보를 보이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자기가 젊었을 때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 채로 그 안에 갇혀서 억지로 현재에 과거의 상황을 끼워 맞추려는 식의 사고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지혜와 현명은 본래 나이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지혜와 윤리성의 핵심은 '반성, 성찰, 개선'이다.

그것이 없다면, 또 사회가 그것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체제나 문화 등을 지녔다면 그러한 개인과 사회는 오래 갈 수 없거나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채 계속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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