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길(Fourth Way)? : 지속가능한 사회

(추후 보완, 수정, 추가 등 가능)

by 남재준

시장경제는 능력을 기반으로 하므로 경제적 기득권층의 과세를 강화하면 징벌적 과세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는 분석 차원의 차이일 뿐 분리되지 않는 것이어서, 실은 능력이라는 것도 계층 등 사회구조나 문화 등에 영향 받거나 힘입을 수 있는 것이고 시장도 완전경쟁이 아니며, 각자도생과 자동화가 계속되면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해체될 수 있다. 결국 재정재건과 사회투자는 같이 가야 하는 것이고, 사회가 불안정해지면 고소득자나 자산가 등도 지위와 재산 등을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므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라는 차원에서라도 그들은 증세의 부담을 수용해야 한다. 이는 사회계층구조상 줄어든 중산층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 대안은 없다.


우리나라 개혁신당이나 일본 유신의 회의 ‘능력주의’, ‘효율성’ 강조는 하나의 신앙과 같다. 그러나 능력은 앞서 밝혔듯 사회구조나 사회계층, 문화, 교육, 건강, 가족 등에 강하게 영향 받는다. 따라서 능력을 이유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분배에 부정적인 것은 능력의 배후에 자리한 사회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지우는 것이다. 소위 ‘합리적 보수’, ‘뼈를 깎는 개혁’ 등의 정책적 귀결은 결국 더욱더 노골적으로 서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을 더 극단적으로 강화할 뿐이다.


이러한 담론의 규범적 전제를 나는 사회정의가 아닌 ‘지속가능한 사회’에 두고 싶다. 단순히 ‘더 가진 사람이 더 내는 것이 정의’, ‘분배의 공정성’이라는 철학적 차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장기적으로 기능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사회시스템의 안정성, 응집력, 회복탄력성’이 중요한 것이다. 사회가 붕괴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을 보장하자는 규범적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외침이다. 정의론이 한가한 담론으로 보일 정도로 온 세계가 위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정의가 아닌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 제반 사회문화, 정치, 경제, 행정/정책, 법, 외교, 국방, 환경 등 모든 문명의 선택에 접근해야 한다.


정책적 방법론의 차원에서는 더는 창의적인 무언가가 나오기 힘들다. 진정한 문제는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정치사회적 합의와 협력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낡음은 규범적 평가의 준거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와 이를 위한 전략과 방도가 무엇인지에 있다. 새로운 정치보다는 ‘필요한 정치’, ‘대안 중심의 정치’가 중요하다.


이러한 정치적 인식과 진단 및 가치관 등은 굳이 말하자면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배하는 중인 정체성 정치,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권위주의 등에 대항하는 종래의 주류 중도(중도좌파~중도우파)정치의 리뉴얼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 ‘새롭다’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에마뉘엘 마크롱처럼 이전과 아주 다른 새로운 무언가라고 강변하는 순간 그걸 입증해야 하는 자기실현적 함정 내지 저주에 걸리게 된다. 결국 이니셔티브의 핵심이 아니라 새로움의 여부가 더 주목을 받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만일 내가 이것을 주장한다면 아마 나 자신은 이것이 새로운 무언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게서 고유하게 연원된 것처럼 보여서 내게 귀착된 이념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문제의식조차 공유하지 않고 유사한 세계관이나 기치관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사실 내 사상은 결국 이념이기도 하고, 이념성을 부인할 생각도 없다. 꼭 결과적으로 실천이 성공했을 때 이념에 비로소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실천이 성공하기 위한 강한 리더십의 일환으로서 이름이 유의미할 수도 있다.


제3의 길은 본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차원과 후기근대의 중도적 수렴을 상징했다. 그러나 실은 오히려 그러한 중도적 수렴과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고착화가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정체성 정치 등이 기성의 중도 세력을 모조리 묶어 기득권이라고 칭하기 용이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만약 제4의 길이라고 한다면, 나의 사상은 정치적 지속가능성의 견지에서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정체성 정치 등과 맞서 싸우고 성찰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의 길을 부활시키고자 한다.


제4의 길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

1. 끊임없는 사회문화적 가치 갈등과 가속화되는 사회변동 및 문화변동, 불확실성 및 불안정성의 극대화와 위험사회, 저출생-고령화 등 복지국가와 사회보장의 위기와 불안정노동 문제 및 사회적 고립 등 신사회문제

2. 정치적 차원에서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시대 즉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정체성 정치, 신권위주의 등의 종래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스템에 대한 도전

3. AI 등의 발전으로 상징되는 자동화 및 가속화와 산업-고용/노동 간 비례 관계의 파괴 등 근본적 차원의 경제변동

4. 폭력적인 정치사회의 법치와 사법에 대한 위협 및 인권/기본권에 대한 백래시와 침해

5.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는 신권위주의의 부상 및 맹위와 신냉전 시대의 도래

6. 지속되는 기후위기와 자원-에너지 위기


그리고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안적 방향을 제시한다. :

0.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나라 / 삶을 지키는 힘이 되는 나라 / 지속가능한 나라

1. 개성과 다양성을 관용하고 공존하는 문화

2. 삶의 질을 보장하는 포용적이고 섬세한 사회

3. 생태와 문명의 공존과 상생

4. 숙의와 대의가 조화되는 정제된 정치

5. 민간이 혁신과 성장을 주도하는 고용 있는 경제

6. 섬김의 리더십과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개혁하는 행정

7. 인권과 기본권 및 적법절차를 최우선으로 법치를 실현하는 법무

8. 대화와 협력 및 규범을 중심으로 평화의 제도화, 인간안보를 중시하는 외교와 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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