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무엇으로 살 것인가

by 남재준

[그녀는 피곤해서 졸리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소설 <견환전>에서 안릉용의 마지막을 묘사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면 결국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릉용은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이었으나 그러한 성격을 결국 스스로 잘 통제하지 못했다.


모든 특성이나 자질에 양면성이 있어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을 잘 활용하면 명철보신하고 천수를 누리나, 릉용처럼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고 결국 망상 속에 남을 오해하여 해치다가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의 인생이 처연하다.


소리 없이 남의 발판이 되는 것이 억울했다는 그의 항변에는 들을만한데가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취급하지 않는 일은 고금을 통틀어 항상 그래왔다.


그리고 공허한 실존을 어떻게 채우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렸다.


결국엔 그런 부조리에도 스스로를 다잡고 때로는 무너지기도 하면서 돌고 돌아 인생을 최선의 선택으로 채워야 한다.


릉용은 다른 이들의 피로 자신을 따뜻하게 하고, 남을 끌어내려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했다.


응보의 심판에는 자비란 없고, 중생이 윤회에서 벗어날 방법은 해탈뿐일 것이다.


그러나 궁만이 아니라 어디서건 최고의 해탈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견환의 손을 빌려 릉용의 악행을 벌한 셈인데 그런 일이 세상에 참으로 많다.


미국 육군 군의관이었던 더글러스 케리 소령이 빌헬름 카이텔 전 나치독일 원수를 두고 그가 삶의 목적을 잃었으며 자살 위험이 높다 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카이텔의 사형은 자비의 일격Coup de Grâce이었을지도 모른다.


악행으로 자신이 처한 공허와 부조리를 채운 릉용과 카이텔의 결말은 파멸이었다.


인생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여러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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