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박정희’는 형용모순이다 1

케인스주의에 대한 집착과 보수주의적 가스라이팅

by 남재준

최병천 "규제개혁에 환장한 진보정부로 기억돼야" < 정치 < 기사본문 - 주간조선


1. 중도보수와 실사구시, 실질은 ‘효과 없는 표리부동’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웠다는 ‘중도보수’와 ‘실사구시’는 그의 본질이 아니다.


이 대통령의 본질은 ‘표리부동’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도보수라는 표현은 2가지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첫째는 정치공학적으로 보수 표심을 끌어온다는 것이고 둘째는 민주당이 진정한 민주주의 하의 보수고 국민의힘은 반민주적 독재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의 표명이다.


그러나 둘 모두 실제로는 무의미했다.


우선 정치공학적으로 해당 프레임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층이 모두 결집한 표를 얻었고 보수층은 그냥 보수층대로 각각 김문수와 이준석 후보에게로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진영 논리는 이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이나 인물 내지 정당에 대한 호불호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이재명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이재명이 ‘진보’나 ‘좌파’라서라기 보다, 그냥 ‘이재명’이어서였다.


그리고 설령 중도층이 이재명 대통령을 일부 택했다 해도 그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중도화했기 때문이라기보다도 달리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음으로, 민주당이 진정한 보수라는 인식은 진영 내에서나 통용될 법한 말이지 굳이 대국적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는 얘기였다.


어느 나라건 각자의 맥락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지는 것이고, 우리나라 보수 세력 역시 구조적으로 독재 세력이었다가 민주화 이후 다시 그 체제에 정착해 여기까지 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을 서구나 이론의 개념적 틀을 ‘규범적으로’ 적용해 ‘민주당이 보수이다’라는 사실진술과 ‘민주당은 보수이어야만 한다’라는 당위진술을 섞어버렸으니,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협소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보수를 자처한 것은, 그때 우리나라 정치의 압도적 패러다임이 ‘보수=정상’이며 ‘김대중=좌파=비정상’ 등의 가스라이팅에 상당 부분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이기고 JP의 자유민주연합과 연대하며, 김대중은 안정적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김 전 대통령은 보수를 자처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당이 구태여 보수를 자처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지도 않고 굳이 민주당이 보수로 평가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단지 국민들의 몫이다.


한편 실사구시의 측면을 보면, 정말 중요한 건 그 말을 하는 자의 언행과 스타일 및 그 내용이 그러한가에 달려 있다.


이 경우, 경제를 중시한다는 점인데 그의 경제정책이 과연 어느 정도로 실용적이냐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한 마디로 ‘21세기의 박정희’라 할 수 있다.


이는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보수에 호소하고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고자 하는 점, 박정희의 정치를 부정하면서도 그때의 경제발전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는 양가적 감정, 비주류 케인지안 경제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 주도 논리를 정치적으로 차용하는 전략 등..


그러나 이는 참으로 여러 가지 점에서 또한 문제가 된다.


우선 무엇보다, 지금의 문제는 ‘경제성장’ 그 자체라기보다 ‘경제성장의 효과’ 내지는 구체적으로는 ‘고용 없는 성장’에 있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과 2020년대의 대한민국을 비교하면 개발독재 논리를 피상적으로 차용하는 것조차 부적절하다.


1차 산업과 약간의 경공업 중심의 원조경제에서 적극적인 국가 중심의 경공업-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산업기획과 기업 육성, 거점 개발, 내수 억제와 수출 증가 등을 도모한 것이 박정희식 모델의 대강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이미 2차 산업을 넘어 3차 산업 중심의 경제이며, 중공업을 넘어 고도의 첨단기술이 요구되며 나아가 아예 노동이 자동화되어 경제순환의 기본 전제가 변화되어 가는 상황에 놓여 있다.


90년대-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T와 반도체 산업이 진흥하고 지식 기반 경제가 강조되었으나, 이제는 더 나아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스템의 시대에 이르렀는데, 이미 20세기 말-21세기 초부터 시작된 고용 없는 성장이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하여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하락하고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요와 소비를 억누르고 산업과 생산을 진흥시키는 박정희식 모델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박정희 정부 때에는 급속하게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어 국가가 적극적으로 물가를 통제하는 등의 문제에 이르렀는데, 규제완화라는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은 되려 개발독재 시대의 기획과 규제를 해체해가는 것이므로 이와는 정반대의 개념인 것이다.


당초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원하는 모델은 수요와 소비를 진흥시키는 케인지안-노르딕 모델에 가까웠는데, 이는 박정희식 등 동아시아의 개발독재 모델과는 상이하다.


설령 그 모델의 논리를 피상적으로만 차용한 것이라고 항변한들, 앞서 밝혔듯이 AI 등 2020년대의 첨단산업들은 20세기 중후반의 중공업과는 달리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기획을 해서 효과를 보기도 어렵고 설령 그것이 된다 하더라도 자동화가 더욱 가속화되므로 전체 사회의 인프라에 도움은 될지언정 고용 소멸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난망할 것이다.


결국 성장-분배-소비의 선순환이 장기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2020년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공공문제이며, 되려 이전에 이재명 대통령의 브랜드 정책이었던 기본소득제는 단순한 ‘좌파 정책’이라기 보다 최소한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의 하나의 대안일 수는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제에 반대하지만, 이것은 고용 창출 대책과 더불어 논의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생각하는데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되려 뒤늦게 보수가 정상이고 우리가 보수여야 한다는 가스라이팅에 젖어 역행되고 모순되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시장을 존중한다는 정책기조가 진심이었다면, 애초에 국가 주도 산업 발전이니 박정희니 하는 키워드를 꺼내지 않았어야 맞다.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함께 이루어져서, 신자유주의적 담론은 이미 5공 때부터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꽃피운 것은 YS-DJ 때였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처음에는 샌더스를 거론하며 좌파를 자처하고 기본소득제를 말했다가, 뒤에는 다시 박정희식 산업발전을 강조하고, 그러고는 또 다시 기본사회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는 산업 발전도 기본사회도 다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백 번 양보해 그런 대전략이 일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많은 돈이 다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재정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갑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영국에서 비꼬듯이 나온 말처럼(본래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과 중앙은행의 국채 흡수 - 양적 완화 - 를 비아냥거린 것이지만) '마법의 돈 나무(Magic Money Tree)'라도 있단 말인가?


작가의 이전글정치를 위한 정치에서 '내용이 있는 정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