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프레임을 넘어, 합(Synthesis)의 사회로

사회비평 <시대는 당신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메타비평

by 남재준

제13회 수필 및 제19회 비평 공모 사회비평 부문 수상작 < 수필 및 비평 공모전 < 특집 < 기사본문 - 중대신문사


나는 세대갈등이 더 큰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호명되고 소비된다고 본다. 글쓴이도 인정했지만, 모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되게 되어 있으며 세대 간 인식이나 가치관의 차이 등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심각하게 본 사회갈등은 세대갈등이 아니라 이념(정확히는 진영)갈등이었다. 인식 차이는 곧바로 갈등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고 구체적 양상이나 패턴의 존재 여부 확인과 추가적 분석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이 비평은 문학적 일반화가 다소 과하다.


갈등이란 모순이나 대립이 자연적으로 해소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세대는 시간이 자니면서 갈등은 지속될지 몰라도 공수는 교대되는 것이므로 사실 구체적 내용이나 맥락의 차원에서 결국 현재의 신구세대의 갈등은 신세대의 구세대화와 구세대의 퇴장으로 필연적으로 종결될 운명에 놓여 있다. 다만 새로운 신세대와 새로운 구세대 간의 갈등이 새로운 내용과 맥락으로 펼쳐질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의 세대 갈등이라는 것은 실은 필연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더 들어가 보면 실은 그것이 시대의 본질인지 아니면 단면인지 나아가 어느 정도로 실존하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우선 86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일부에 불과하다.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전체 5060 중에는 그 비율이 매우 제한적이다. 즉 대학진학률이 지금보다 낮았다. 최근 청년세대는 은둔ㆍ고립이, 중장년층은 정년 후 불안정노동 재취업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부와 빈은 각각 대물림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상향 사회이동을 가능케 하는 교육이나 취업 등과 그것의 수단이 되는 능력도 이미 구조적으로 발휘의 정도와 성공 여부 등이 차별적으로 영향받는다.


86세대는 산업화 세대 자체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 산업화를 주도한 군사정권-관료-재벌 등의 카르텔에 적대감을 느꼈고 나아가 이러한 기득권을 민족내셔널리즘적 정서에 기반해 해방 이후 제대로 친일청산이 안 된 데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산업화 자체에 대한 86세대의 인식은 다소 복합적이어 보이는데, 적어도 86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90년대까지는 아직 성장세였고 취업 문제도 없었는데다 어렸을 때 박정희 신화의 영향을 간접적으로라도 안 받을 수 없는 세대였다.


86세대라는 개념 자체는 그 특정 집단이 정치권에 진입하면서부터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프레임으로서 탄생했다. 2000년대에는 386세대의 급진성을, 2010년대에는 486세대의 기득권성을 비판하는데 사용되었다. 신진욱 교수의 분석을 보면 촛불정국 등 주요 사건에서 86세대의 언급 빈도가 높아졌다. 그 절정은 조국 사태였다.


왜 조국 사태가 잦아든 이후 현재까지 세대 키워드가 부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정치 지형은 계속해서 역사적 정체성을 둘러싸고 사회를 주도하는 4050과 60대 절반ㆍ70대 이상의 대립 구도로만 이루어져 있다. 청년세대는 그냥 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항을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고, 무엇보다 청년세대라는 정체성으로만 연대하기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너무 다르다. 피해의식이나 소수자성이 그렇게 강하다면, 청년 운동이 전 사회나 최소 전 청년세대 차원의 주목이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세대 간 불평등 문제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열세에 처한 집단은 그 요인 자체로 인해 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


86세대의 인식도 점차 발전한 부분이 있었다. 동구권의 붕괴를 목격하고, 현실 정치나 행정에 참여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 민족주의ㆍ사회주의 정서가 강했던 것이 통상적인 진보주의 수준으로 중도화됨을 상당수 86세대의 인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80년대 운동권이라 하면 10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들이 정치권에 있었던 기간은 훨씬 더 길다). 그들 중 일부는 아예 보수 진영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또 86세대 용퇴론은 이미 2010년대부터도 있던 얘기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대교체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컨대 86세대 국회의원이 당선되었던 지역구에 갑자기 2030 후보를 대대적으로 투입하면 당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실제로 86세대에 가해지는 비판이 타당한지에 대한 86세대 스스로의 반론도 있었다. 조국 사태 때 불거진 갈등은 실은 갈등이라기보다 거의 일방적인 프레이밍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독재 대 민주의 역사적 정체성 대립,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 이러한 구도에서 내부 단결의 논리 등은 계속 강화되었다. 아마 이 부분만큼은 86세대 스스로도 부인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 정체성의 정치를 86세대는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이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일은 우리 세대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청년세대가 진영 정치를 넘어 이념적 극단의 정치로 나아간다면 이전 세대보다도 더 악평을 듣게 될 것이다.


한편, 청년세대가 경제 수준의 전체적 평균을 놓고 볼 때 풍요를 전제하고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청년세대는 본격적 저성장ㆍ저고용과 학력인플레이션, 각자도생과 경쟁 시대 등을 맞아 번아웃ㆍ고립감ㆍ일부의 비뚤어진 사회인식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세대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며 동시에 그 세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모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86세대를 포함해 베이비부머세대의 자식 세대가 바로 청년세대이다. 중산층이 많았던 구조에서 점점 피라미드형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으로 가고 있고 이는 자신은 몰라도 자식들은 더 나은 삶을 누릴 가능성이나 기회가 적어짐을 의미한다. 결국 실질적으로 은퇴를 하지 못하고 노후대비와 자식의 취업 등을 뒷받침해야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만사ㆍ만물에는 양면이 있다. 결국 세대관계의 본질도 실은 갈등이나 피해의식보다는 애증에 있을지 모른다. 부모세대가 자식세대를 볼 때에는 인생선배로서 답답하면서도 결국엔 잘 되기를 바랄 것이다. 자식세대도 부모세대가 이해해주지 않아 힘겨워할 때가 있지만 결국엔 나이가 들며 부모세대를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간다. 시대는 누구에게 독점될 수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그 시대의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사회에 속해 있는데 그것의 전체적 흐름과 본질 등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종국에는 어떻게 역사를 채워나갈지에 관한 생산적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에 주어진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협력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대의 피해의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실로 젠더나 세대나 이념 등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효능감이나 사회적 연대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합(Synthesis)이 아닌 각자의 논리의 반(Antithesis)에 머물러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본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 극복하고 진전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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