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동전

by 남킹

부장이 오기 전, 나는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하고 바닥을 밀대로 닦았다. 휴지통을 비우고 새로운 비닐도 씌웠다. 그리고 탕비실에 무질서하게 뒹굴고 있는 컵을 세제로 깨끗이 씻었다. 전임자에게서 처음 교육받은 것이고 후임자에게 물려 줄 중요한 일이다.


나는 환기를 위하여 창문을 활짝 열고, 잠깐 항구의 배들과 그 위를 까옥거리며 날아가는 갈매기들을 쳐다봤다. 단조로운 울음이 마치 신세계를 연주하는 목관악기처럼 들렸다.


언제나 그들이 부러웠다. 나와 관계한 거추장스러운 사슬을 끊고, 끝없는 푸른 대양으로 훌훌 날아가고 싶었다.


훅하고 바다 내음을 담은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기름 냄새도 묻었다. 열어젖힌 창에 골이 난듯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도, 저음으로 창문턱을 슬슬 넘어오고 있었다.


현수는 바다를 좋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토요일이 되면, 산 중턱이나 언덕에 있는 모텔들만 찾아다녔다. 이 도시는 평지보다 산이 훨씬 많다.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산들이 제멋대로 솟아있고, 그 산들의 허리춤까지는 빼곡하게 집이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밤에 배를 타고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 선원들은, 맨해튼보다 더 화려한 야경에 원더풀을 연발하곤 한다. 물론, 날이 밝으면, 곧 실망으로 바뀌지만 말이다.


우리는 산동네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고불고불한 산복도로를 돌아다니다 마음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잽싸게 내려서 마을을 둘러 보았다. 식당이 있으면 밥을 시켜 먹고, 다행히 모텔이나 여관이 보이면 그곳에서 잠을 잤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음 버스를 또 기다렸다.


그러다 우리는 한마을에 고착하였다. 이곳은 마치 높은 성벽의 탑처럼 하늘에 맞닿아 있어, 어디에 위치하든 멀리 항구의 잿빛 바다와 배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마을 한가운데, 십자 도로 옆에 자리 잡은 낡은 모텔은, 어느 방에서나 푸른 수평선이 창에 걸쳐있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던 날 밤, 남자는 나를 모텔의 옥상으로 이끌었다. 드물게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철로 된 옥상 문을 통과한 우리는, 곧 눈 앞에 펼쳐진 풍부한 야경 속에서 다양한 자세로 섹스를 즐겼다. 남자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 하였다. 그러자 나도 이곳이 좋아졌다.


과장이 어느새 들어와 커피를 주문한다. 그는 자주색 골이 파인 넥타이를 매고 있다. 처음 보는 거였다. 양복도 밝은 쥐색으로 바뀌었다. 그는 언제나 검거나 짙은 색의 옷과 넥타이만 하고 다녔다. 마치 가톨릭 사제가 입는 검은 수단처럼.


나는 공용 서랍에 수북한 동전 한 개를 꺼내 복도로 갔다. 그는 자판기 커피광이다. 그가 퇴근할 때쯤에는 그의 책상 위에 버려진 종이컵이 수북하다. 커피 자판기는 내가 관리한다.


내가 두 번째로 교육받은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복도 양 끝에 놓인 자판기에서 동전을 수거하고 커피와 설탕, 프리마를 채우고 소독을 한다.


수거한 동전은 한동안 서랍에 머물다 다시 자판기 속으로 들어간다. 즉 이곳 동전들은 서랍과 자판기만 들락날락할 뿐이다. 마치 나를 보는 기분이다. 나는 평생 일과 돈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집안의 두 남자를 위해 빨래하고 청소하고 음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직장의 두 남자를 위해 똑같이 청소하고 커피를 제공한다. 여러 가지 직종을 거쳐 봤지만, 기본적인 나의 의무는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서랍 속의 동전처럼 낯선 누군가가 나를 집어가 주기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간 충의 알일 수도 있다. 양의 항문에서 나와 세상의 혼란스러운 풀숲에서 뒹굴며 기약 없는 숙주를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영영 다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의 운명은 정해진 법이 없이 충동적이고, 세상이 요구하는 이성은 언제나 감성에 휘두르기 마련이다.


신의 땅 물의 꽃 (1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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