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의 꿀

by 남킹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나는 두 학생의 집에 방문하여 영어를 가르친다. 그들은 형제로 각각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이 다 빠진 상태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시력도 안 좋은지 TV를 바로 코앞에 바짝 갖다 붙이고는 심각하게 들여다보곤 하였다.

어쩌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습이지만 병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것만 같아 날이 갈수록 안타까움으로 전해져 왔다. 아버지는 선장인 듯, 큰 가족사진 속에, 멋진 제복을 차려입고 어색한 미소로 앉아 있었다. 그를 집에서 본 적은 없다. 아마도 수개월이나 수년간 외국으로 다니는 그런 큰 배를 타는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의 엄마는 소위 복부인이다. 아주 잘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38층의 대궐만 한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대리석 입구가 쫙 펼쳐진다. 부엌, 안방, 거실, 베란다에 이르기까지 새롭고 신기한 물건이 가득하고 또한 호화롭기 짝이 없다.


아버지의 직업을 유추할 만한 물건들도 보였는데, 우선 거실에 거대한 바다거북과 붉은 새우 박제가 걸려 있고 현관 입구에는 병 속에 갇힌 정교하기 짝이 없는 범선도 놓여 있다.


그들의 엄마는 오래전부터 우리 형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대도시지만 작은 규모의 모서리 동네에서 삼 형제가 모두 우등생으로, 명문대학을 진학했으니, 자식 둔 부모치고 흘러가는 얘기라도 한 번쯤은 귀담아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의 엄마는 나와의 첫 대면 자리에서 긴 한숨으로 일관했는데, 자신이 이룬 놀라운 부에 대한 대단한 만족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학업을 중단한 딸과 성적이 밑바닥을 기는 아들들에 대한 도저히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욕심의 한계에 절망한 듯이 보였다.


우리 사회는 돈과 학벌의 잣대 위에 세워지고, 신분이나 계급으로 정착되었으니, 그녀의 눈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혹은 채울 가능성이 희박한 학벌이 한스럽기만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아들의 성적만 올려 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나에게, 단지 학벌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맹목적으로 나를 신뢰하고 자신의 기대치를 한 단계 높이려고 아우성이다.


그녀의 아들들은 사실, 지금까지 숱한 과외선생과 학원들을 거친 상태였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나를 포함하여 주요 과목 당 선생들이 따로 있었다. 그들 중에는 족집게 선생으로 유명한 이들도 있고 심지어 학교 선생도 끼어 있다.


그들은 그들이 터득한 놀라운 노하우로 무장한 채, 정해진 시간에 이 가여운 학생들에게 찾아와 무차별 폭격을 퍼붓고 돌아가지만,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는 중하위권을 그나마 유지할 뿐이었다.


내가 본 바로는, 이 학생들은 놀라운 재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의 뇌는 선생의 설명을 듣는 동안, 기본적으로 반응해야 할 동작을 적절한 시기에 적당하게 표현하는데 약간 할애할 뿐, 그 외 나머지 대부분은, 학교 수업에서나 과외 수업에서나 할 것 없이 상상 속의 세상을 노닐고 있다.


우리 세상에서는 이게 가능한 일이다. 책상에 앉아 눈만 선생을 향하고 있으면 무사통과가 되니깐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더욱이 설명도 잘못한다. 도대체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도 전혀 없다.


학생들과의 첫 대면은 긴장 속에 뻣뻣한 선생과 너무도 익숙하여 무심하기까지 한 학생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거쳐온 선생들과 확연히 다른 나의 존재를. 그래서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영어에 관해서 어느 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시켰다. 영어 교과서를 펼쳐 놓고는 읽고 해석하라고 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놀랍도록 엉성한 그들의 발음만큼이나 해석은 엉망이었다. 그렇다고 잘못된 해석을 그냥 무상으로 고쳐 주지도 않았다. 사전을 뒤져보고 다시 생각해보라고만 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껏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에 불편해했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머리를 굴리느라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진도는 느리게만 나갔다. 학생들은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그들 스스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모든 뇌세포를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실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에게 시간은 아마 무척 더디게 흘러갔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짧은 몇 마디의 말로 2시간을 수월하게 채울 수 있었다. 내가 뱉은 말은, 아냐 다시 생각해봐, 틀려서 혹은 나아졌어,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들에게, 말을 하지 않는 이상한 선생의 출현은,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그들의 수업방식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고, 당황한 그들은 그들의 엄마에게 선생에 대한 각종 험담을 늘어놓았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녀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만, 턱없이 비싼 유명 강사를 붙여도 실패한 전례가 있는지라 어쩌면 몇 달 정도는 지켜보기로 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몇 달 뒤, 학생들의 영어 성적은 놀라보게 많이 향상되었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학생 엄마의 나에 대한 신뢰는 굳어지고 수업시간도 늘고 수업료도 대폭 올라갔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자가 한 달 동안 열심히 회사에 다녀서 번 돈 만큼을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각각 3시간의 과외로 벌었다. 세상은 돈과 학벌이 지배하고, 나는 그 틈에서 수혜의 꿀을 빨아 먹고 있다. 나는 만족하게 되고 안주하게 되었으며 이기려고 달려드는 세상에서 비켜 나와 천천히 걷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그녀를 만나 섹스하는 것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뿐이었다.


그레고리 흘라디의 묘한 죽음 (18).jpg
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17).jpg


매거진의 이전글영어 배우시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