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권좌(權座)가 묻는다: 옥좌에 드리운 그림자, 역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경복궁, 그 심장인 근정전(勤政殿)의 한가운데에는 말이 없는 하나의 자리가 있다. 단순한 의자가 아닌, 한 국가의 주권과 역사의 무게를 오롯이 지탱해 온 상징, 바로 어좌(御座)다. 그곳은 비어있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제왕의 시대가 막을 내린 민주공화국에서 텅 빈 옥좌는 이제 권력이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엄숙한 증표다. 그런데 2023년 9월 12일, 휴궁일의 적막을 깨고 그 신성한 공간에 사사로운 발걸음이 들어섰고, 끝내 비어있어야 할 자리가 채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가 휴궁일에 경복궁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근정전 내부에 들어가 임금의 자리인 어좌에 앉았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2023년 9월 12일 김건희씨가 경복궁 근정전에 방문했을 당시 용상(어좌)에 앉은 사실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을 넘어, 국가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대하는 권력의 민낯과 그릇된 특권 의식을 드러낸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계획에 없던 발걸음, 기억나지 않는 1~2분
사건의 전말은 국정감사장에서의 질의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당초 김 씨의 방문 목적은 '광화문 월대 복원과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맞이 행사 점검'이었으나, 계획에 없던 근정전 내부 관람이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경복궁관리소의 '상황실 관리 일지'에는 김 씨가 'VIP'로 표기된 채, 오후 1시 35분부터 약 2시간 동안 근정전과 경회루 등을 둘러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김 씨를 수행했던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은 국회에서의 추궁에 처음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위증죄 고발까지 거론되는 질타가 이어진 끝에야 "(김 여사) 본인이 가서 앉으셨지 않을까 싶다"며 "1~2분 정도"라고 마지못해 털어놓았다. 또한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앉기를 권유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이배용 전 위원장과 최응천 전 국가유산청장은 이 방문의 핵심 동행자였으나, 국감 증인 출석을 거부하여 국회로부터 동행명령장이 발부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사건을 목격한 증언도 나왔다. 당시 경복궁 관리소장이었던 고정주 국가유산청 법무과장은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 여사가 어좌에 올라간 부분을 분명하게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이로써 한 조각의 진실이 권력의 장막을 뚫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보인 관계자들의 회피와 망각, 침묵은 오히려 사건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단 1~2분의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 행위가 담고 있는 역사적, 상징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어좌의 상징성: 단순한 의자를 넘어선 국가의 구심점
근정전 어좌는 단순한 골동품 의자가 아니다.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다'는 뜻의 근정(勤政)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왕이 신하들의 조회를 받고 외국 사신을 맞는 등 국가의 중대사를 거행하던 자리였다. 어좌 뒤에 펼쳐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그려 넣어 왕의 권위와 우주의 질서를 동일시했다. 즉, 어좌는 조선왕조의 통치 철학과 국가의 위엄이 응축된 가장 신성한 공간의 중심이었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어좌는 엄격하게 관리되어 왔다. 일반 관람객의 내부 출입은 당연히 금지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청의 공식 확인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이 용상에 앉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민주주의 시대의 선출된 권력자들조차 전 시대의 상징물에 대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중과 역사적 거리감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주변 인물이, 그것도 사적인 방문 중에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역대 누구도 넘지 않았던 선을 넘은 행위다. 이는 국가유산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그것을 사유화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을 드러낸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관계자는 "어좌는 재현품으로 파악된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본질을 흐리는 변명에 불과하다. 진품 여부를 떠나 그 자리가 갖는 상징성과 역사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재현품이기에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국보로 지정된 건축물 안에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벌어진 전례 없는 행위에 분노하고 있다.
반복되는 사적 유용: 놀이터가 된 문화유산
이번 사건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제기된 '국가유산 사적 유용' 논란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외부인과 '차담회'를 열고 왕의 신주를 모신 신실을 둘러보는가 하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국립고궁박물관의 '비밀의 방' 제2수장고를 출입 기록도 없이 방문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 국보급 유물이 보관된 수장고를 역대 영부인 중 방문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국가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마치 개인의 소유물이나 놀이터처럼 취급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국감에서 "국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적 행위이고,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특혜"라며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의 사과는 늦었지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진정한 사과와 성찰 없이는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역사는 영원하다. 한 시대의 권력자가 역사의 상징물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려 할 때, 역사는 그것을 오만으로 기록한다. 비어있는 어좌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과거 역사에 대한 후손들의 경외심을 담는 그릇이다. 그 자리에 올라앉는 행위는 단순히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그 결과는 국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권력의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역사는 이 짧은 1~2분의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 그 답은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 새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