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이 목격한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하였다. 2002년에 시작된 작은 기적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 서 있다. 누구도 몰랐던 이름 박칠규. 이제 누구나 알게 된 이름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신이 내린 재능이라고 감탄하였고 어떤 이는 악마적 기교라고 시샘하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경기장에 서면, 작고 깡마르고 불안에 떠는 여린 축구 선수일 뿐이다.
그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누군가가 이끌 듯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였고, 나는 운명에 충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는 것뿐이다.
이제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독일로 가게 된 그 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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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나는 29살이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러 갔다. 그것도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그래서 기분이 좋았냐고? 아니 더러웠다. 여행 가는 게 아니라 도망을 가기 때문이었다.
왜 도망가냐고?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뭐, 보는 사람에 따라서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대단한 로맨티시스트 측면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약간은 나쁜 짓인 것 같았다.
무슨 나쁜 짓을 했느냐고? 남의 여자를 건드렸다. 여기서 남은 우리 사장을 지칭한다. 즉, 보스의 여자와 동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딱 한 번 밖에 못 해봤다. 물론 그 한번이, 기구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내 인생에서, 정말 몇 안 되는 짜릿하고 황홀한 순간이었지만 말이다. 뭐, 이쯤이면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나의 첫 경험이었다.
아, 그렇다고 나의 첫사랑은 절대 아니다. 아니, 아예 사랑 비스름한 것조차도 느껴 본 적이 없다. 내 첫사랑은 엄연히 따로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임경자. 이미 남의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남의 여자라고도 할 수는 없다.
내 불알친구 안득희의 아내가 되었으니 말이다. 녀석의 결혼식 때, 나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너무 억울해서 말이다.
그런데 친구가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니 우정이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 내 절대 안 잊으꾸마”라고 하였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의 턱시도에 붙은 금빛 나비넥타이를 풀어 목에 돌돌 말아 콱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는 한마디로 좀팽이다. 무엇하나 당당하게 살아 본 적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인간인 것이다. 심지어 임경자에게 내 마음을 전달할 용기조차 없는 놈이었다. 초,중,고 12년을 줄곧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그날 친구의 결혼식을 끝으로 나는 고향을 등졌다. 도저히 녀석의 품에 안긴 내 첫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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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여자 이름은 예지라고 했다. 아마 본명은 아닐 것이다. 본명은 틀림없이 촌스러울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여자의 아파트 우편함에 꽂혀 있는 낯선 이름을 봤기 때문이다. 이름은 까먹었지만, 그 편지를 보면서 한동안 킬킬거리며 웃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예지를 처음 본 건, 사장의 빛깔 나는 벤츠 승용차를 모는 운전사로 입사한 지 대충 6개월쯤 지난 어느 음산한 여름날이었다. 그날은 장맛비가 사흘 동안 질척질척하게 오던 그런 꿉꿉하기 이를 데 없는 밤이었다.
나는 강남 뒷골목의 변두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채, 사장이 룸살롱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놓고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사장은 전형적인 한국형 사업가이신지라, 술 접대를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셨다. 덕분에 나는, 사장을 모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 일대의 주요 룸살롱과 요정 등을 훤히 꿰차고 있었다.
우리 사장은 주로 접대하는 쪽이었는데 그 대상은 면면이 실로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 그중에는 TV 토론 같은 데 심각한 표정으로 가끔 등장하는 띵띵한 국회의원도 있었고, 서슬 퍼런 눈동자를 삐딱하게 치켜세우고는 아무한테나 반말을 찍찍하는 검사 녀석도 있었다. 특히, 이 녀석은 많아 봐야 사십 초반인데 백발이 성성한 우리 사장을 마치 자기 집 똥개 취급하였다.
기분 나쁘면 쌍욕 종합세트를 사장 앞에서 날리곤 하였다. 그런데도 뭐가 좋은지 우리 사장은 그냥 굽신거리며 접대를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너나 나나 인생 불쌍하기는 매한가지다’라고 혀를 차며 그나마 약간의 위안을 받곤 하였다.
그 날도 그 버르장머리 없는 검사 녀석과의 술판이었다. 나는 그때, 새로 끼워 넣은 차량용 방향제의 향긋함과 상쾌한 에어컨 바람 속에 일종의 행복한 가사상태에 빠져 비몽사몽 간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벅지에서 강한 진동이 전달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 술판이 끝났구나’를 감지하며 차량 계기판에 붙은 디지털 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평소보다 아주 많이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의아심을 품은 채 운전대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저씨 빨리 와주세요! 사장님이 다쳤어요! 빨리요! 빨리!”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주변의 차량 경적을 배경으로 칼날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서둘러 정신을 수습하고 시동을 켠 뒤 핸들을 심하게 꺾으며 주차장을 빠져나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목적지까지 채 3분이 걸리지 않았다.
검사는 보이지 않고 사장은 가로수 옆에 앉은 채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거의 팬티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걸친 여자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사장의 머리와 손, 셔츠에 핏자국이 듬성듬성 보였다. 나는 그를 부축하여 뒷좌석에 비스듬히 눕히고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자가 조수석으로 불쑥 들어왔다.
“아저씨 저기 저 사거리 오른쪽으로 가시면 응급센터 보일 거예요. 그쪽으로 가주세요.”
마치 능숙한 응급실 간호사같이 느껴졌다. 진하게 풍겨오는 화장품 냄새만 뺀다면 말이다. 병원에 도착한 뒤, 그녀는 이제 훌륭한 보호자로 변신하였다. 익숙한 듯 수습을 마치고 환자 곁에서 내내 다정한 눈길로 옆을 지키는 거였다.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약간 떨어진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의사와 환자들이 훤하게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무심히 창을 바라보니 어느새 날이 새고 있었다. 푸른 기운이 온 창에 가득하였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피곤함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밀려왔다. 육신의 고단함과 함께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자신의 신세와 암울한 미래가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든 순간, 누군가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시죠?” 어느새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종이 커피잔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따끈한 커피를 받았다. 향긋한 커피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저 예지라고 해요.” 그녀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아 네 저는 박칠규입니다.” 나는 커피잔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없이 부드러운 손이었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진한 화장품 향기와 구수한 커피 향 그리고 몰랑한 손의 감촉에 그만 취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성이 마비된 거였다. 그녀의 덜렁거리는 오른쪽 속눈썹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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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나는 그날 룸살롱에서 벌어진 일을 사장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동석한 검사가 기소한 조폭을 그 날 그곳에서 마주쳤는데, 눈치 빠른 검사는 재빠르게 자리를 떴는데 애꿎은 자기가 걸려들어 갔다는 거였다.
하지만 신문 기사에 난 내용은 약간 달랐다. 조폭 얘기는 빠져있고 검사가 룸살롱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이야 어떻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거는, 그날 이후 사장이 예지한테 푹 빠졌다는 거였다.
아파트 한 채를 사 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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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국제공항에 들어선 나는 입을 딱 벌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크고 멋진 건물은 처음이었다. 투명한 사각 혹은 삼각 모자이크 행렬이 유선형의 파도를 타고 끝도 없이 펼쳐진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온통 유리로 덮인 천장으로 따스한 자연광이 반짝이는 바닥을 살살 어루만지는 듯 보였다. 그 바닥을 수많은 여행객이, 한 손에는 여행용 가방을 끌면서 저마다의 미소를 머금고 걸어 다녔다.
순간적으로 천국에 온 듯 황홀경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도망자 신세라는 차가운 현실을 되새김질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어디선가 사장의 사주를 받은 똘마니들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사장의 주위에는 항상 수상한 자들이 맴돌았다. 사장이 접대하는 이들은 주로 정치인, 법조인, 재력가들이었지만 검은 세력도 적지 않았다. 어떤 녀석은 양팔 끝까지 용 문신이 휘감겨져 있는가 하면, 얼굴에서 목까지 칼자국 흉터가 선명한 놈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육중한 몸매를 자랑했다. 키 170cm에 몸무게 60kg도 되지 않는 나는 그들과 비교하면 고목에 붙은 매미 정도였다.
나는 사장을 일 년 가까이 모셨지만, 정확히 무슨 사업을 하는지를 모른다. 내가 얼핏 설핏 들은 바로 추론하자면 무역업이었지만, 법과 정치에 관계된 사람이나 지하 세계 종사자들까지 엮인 거로 봐서는 그다지 합법적이지만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사장은 출장이 잦았다. 주로 중국, 홍콩, 마카오, 동남아 쪽이 많았고 남미나 북중미 쪽으로도 심심찮게 다녀 왔다.
그리고 출장을 갈 때는 언제나 나는 배제되었다. 즉, 출장 전용 기사가 따로 있었다. 손 전무라는 자였는데 30년 가까이 사장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놈이었다. 그는 항상 낮은 목소리로 쑥덕거리곤 하였는데, 회사의 실질적인 브레인이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즉, 나는 사장의 국내용 운전기사였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장의 룸살롱 대리 기사인 셈이다.
아무튼, 그들은 출장을 다녀오면 모임을 자주 가지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나는 항상 5분 대기조로 늘 밤잠을 잊고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나면, 나는 사장 사모님의 가사 도우미가 되어 오만 잡스러운 시중을 다 들어야만 하였다. 어찌 보면 사장의 대리 기사가 더 편한 셈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술 더 떠 사장의 첩으로 들어앉은 예지의 호출까지 받아야만 하였다. 처음에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들어갈 가구나 가전제품 같은, 혼자 힘으로 부치는 것들만 도왔는데, 점점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이제는 벽에 못질부터 변기 뚫기, 전구 바꿔 끼는 것까지 도와야만 하였다.
그녀의 호출은 사장의 출장과 궤를 같이하였다. 즉, 출장과 동시에 호출이 잦아지는 것이다. 심한 날은 스무 번도 넘게 내게 전화질하여, 이것 좀 사달라, 저것 좀 고쳐 달라, 요것 좀 대신 하라는 식으로, 마치 자기 집 머슴 부리듯이 하는 거였다.
사실, 그날도 그랬다. 사장이 필리핀 출장을 간 아침부터, 속된말로 전화통에 불이 나는 거였다. 나는 거의 폭파 직전의 활화산이 되어있었다. 나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를 꽉 물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설령 회사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에게 확실한 경고성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겠다고 작심을 하고는 아파트로 씩씩거리며 찾아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만 해도 나의 결심은 굳건하였다. 그런데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늪에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백도 없고 학벌도 달리고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작은 몸뚱이 하나뿐인 내가, 객지에 홀로 나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겨우 얻은 만족스러운 직장인데, 저런 싹수없는 년 때문에 사장 눈 밖에 나서 쫓겨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라는 차가운 이성이 발목을 잡아끄는 거였다.
더군다나 여길 나가서 다른 데서 이만한 돈벌이를 할 자신이 솔직히 생기지 않는 거였다. 사실, 우리 사장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이 버는 만큼 돈 씀씀이가 헤퍼 다는 거였다. 기본 급여 외에, 기분 좋은 날에는 수시로 불룩한 지갑에서 손에 잡히는 데로 지폐를 꺼내 내게 툭 던져 주곤 하는 거였다.
결국, 그녀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를 때, 나는 다시 휴화산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결코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부루퉁한 모습으로 그녀의 아파트 현관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예지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세상 물정에 닳고 닳은 그녀는, 단박에 나의 적개심을 간파하고는, 자신이 지금껏 훌륭히 써먹었던 최고의 무기를 활용하여 반전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내게 지시할 사항을 모두 잊은 듯,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푹신한 소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진한 음색의 재즈 음악을 틀고는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와인 병을 가져와 영롱한 크리스털 잔에 따라 주는 거였다.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샤워실로 들어가는 거였다. 샤워실 문이 열린 듯 물소리가 스테레오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 순간 집을 박차고 나갔어야 했다. 사실 순간적이나마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이성은 쓰나미처럼 덮쳐 오는 감성에 한순간에 묻혀버렸다.
나의 심장은 터질 듯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나의 오감은 극도로 예민하게, 샤워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나는 첫사랑의 실연 이후 오랫동안 이성에 대한 욕망을 억눌러왔다. 사실 옷깃만 스쳐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욕정을 거의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나의 이십 대를 넘긴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나의 신념도 한몫했다. 나는 육체적 끌림 이전에 친구처럼 편안하고 선한 여인과 넓은 호수 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는 말벗이 필요했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바다 같은 애정을 갈구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현실은, 육체적 욕구를 돈으로 풀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고향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계셨고 대학을 다니는 동생이 있었다.
나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불여우 같은 여자가 나의 모든 것을 박살 내고 말았다.
나는 한순간의 유혹을 떨쳐 내지 못하고 그녀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이 끝나고 주체할 수 없는 후회가 몰려와 비틀거리며 방을 나서는 순간, 장미 한 바구니를 가득 들고 함박웃음으로 현관에 서 있는 사장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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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만 걸친 나는 그 자리에 딱 멈추고 말았다. 놀란 건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바구니가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툭 떨어지며 붉은 장미가 흩어졌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너 칠규 이 새끼!!!” 나는 지금까지 그처럼 무서운 사장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잽싸게 달려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실은 예지가 먼저 유혹을 한 것이라고 실토를 하며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나의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의 바지를 붙잡은 건 예지였다. 그녀는 반라의 상태로 달려와 사장의 발아래 쓰러지듯이 엎드리며 울부짖었다.
“사장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놈이 나를 겁탈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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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파트를 도망쳐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출장 간 사장이 왜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거는, 현장에서 나는 강간범으로 몰렸고 분노한 사장은 고가의 골프채를 휘두르며 내게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는 거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속옷 차림으로 말이다. 그것도 대낮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막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라 행인이 거의 없었고, 내가 거주하는 옥탑방이 걸어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다는 거였다. 게다가 나는 달리기에 관한 한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도내 육상대회에서 단거리 부문 우승은 거의 혼자서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진로를 바꾸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어쩌면 빛나는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은 하곤 했었다.
하지만 운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가버렸다.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만 하는 대한민국 단거리 육상을 짊어질 차세대 꿈나무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나는, 중학교 3학년 어느 초여름에 벌어진 놀라운 사건으로 인하여 내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는 충격을 그만 목격하고 말았다.
그 해는 다름 아닌 2002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 그리고 이어진 4강 신화. 나는 단일 스포츠에 이렇게 온 국민이 미친 듯이 열광하는 장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너무나 부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온 국민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들이 달리다 그라운드에 쓰러지면 안타까운 탄식이 삐져나오고, 공을 몰고 달리면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골을 넣으면 모두가 패닉상태에 빠지는 거였다. 골 장면은 TV에서 수백 번도 넘게 방영이 되고, 인터넷에 응원 댓글은 하루에도 수만 건씩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저들처럼 뛸 수 있는데. 나도 할 수 있는데. 어쩌면 나는 더 잘 뛸 수도 있는데.’ 나는 중계방송을 보면서 수도 없이 이렇게 되뇌곤 하였다. 그러자 육상의 현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를 제외하고는 육상으로 올림픽 본선에 올라가는 것조차 버거운 게 사실이었다. 더욱이 단거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올라가더라도 메달을 딴다는 것은 벼락을 연속으로 5번 맞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나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월드컵이 끝남에 따라 사람들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고, 축구 이야기가 더는 화제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서 나의 기우도 서서히 누그러져 간 것이다. 나는 잠시 스쳐 간 열병 정도로 치부하고 다시 육상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고등학생이 된 나는 고3 형들보다 더 빨랐으므로 입학과 동시에 전국 체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의 최고 기록은 전국 고등부 3위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나의 목표는 2학년이 되기 전에 고등부 1위를 하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 나는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열정적인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언제부터인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묘한 거부감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예전부터 육상부와 축구부가 유명하였다. 사실 경쟁 관계라고 해도 무방하였다. 보이지 않는 시샘 혹은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게 있었다. 전국대회 입상은 육상부가 많이 하였지만, 학교 이름을 알리는 데는 축구부가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의 영광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편향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는 육상부 전용 트랙과 인조 잔디로 된 축구장이 있었다. 몇 안 되는 육상부원들은 언제나 우리만의 훈련이고 연습이었다. 봐 주는 이도 없고 볼거리도 사실 없는 거였다.
그런데 축구부는 달랐다. 언제부터인가 관중이 하나둘 생기더니만 지금은 눈에 띄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하는 거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와 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선택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 같은 게 슬그머니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이런 인기에 편승하여 학교는 이제 늘씬한 여학생들을 선발하여 응원단까지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응원단 속에는 나의 첫사랑이 끼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방과 후, 한 시간씩 축구부원들을 향하여 몸을 흔들며 격려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내 몸을 가득 채우던 열정이 쭉 빠져나가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결국, 전국 체전에 참가한 나는 입상은커녕 예선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이미 육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 축구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2학년이 되기 전 나는 육상부를 탈퇴하고 억지로 우겨서 겨우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비극은 그때부터였다.
빠르기만 빨랐지 공을 지키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왜소한 체격이라 몸싸움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세월은 총알같이 흘러갔다. 졸업은 하였지만, 주전으로 한 번도 나서지 못한 나를 원하는 대학은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자포자기 상태가 된 나는, 그해 봄을 집에서 빈둥거리며 흘려 버렸다. 그리고 더위가 찾아올 무렵 나는 주인집 밭일을 돕기 시작했다. 수박재배였다. 결국, 그해 여름을 나는 땡볕과 땀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더위가 절정에 달한 어느 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주인집 아들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 친구 안득희가 오는 것이다.
나는 밭에 나가 가장 잘 익은 수박 하나를 땄다. 내가 정성을 다해 키운 수박을 친구에게 자랑삼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간이역에 일찌감치 나가 초조하게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수박을 정성스레 안고서.
이윽고 쇳소리와 매캐한 경유 냄새를 머금은 열차가 미끄러지듯 플랫폼에 정차하였다. 잠시 후, 철문이 덜컹거리며 열리면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짐을 안고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친구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여인의 손을 다정히 잡고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다 그만 딱 멈추고 말았다.
그녀는 임경자였다.
수박이 나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플랫폼 바닥에 툭 떨어지며 데굴데굴 구르더니 철로에 콱 처박혔다. 수박이 쩍 갈라졌다. 붉은 속이 선명했다. 너무 잘 익은 수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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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바람으로 나는 집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아마 학교 졸업하고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힘껏 달려본 게. 골목과 구멍가게, 초등학교 담장을 끼고 달렸고 오피스텔 공사장 뒤편으로 헉헉거리며 달렸다. 신호등은 무시하고 건넜고 놀란 운전자의 경적은 귓전으로 흘러버렸다.
호각소리도 난 것 같고 분식집을 막 나오던 한 무리 여학생들의 요란한 비명도 들었다. 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각자의 휴대폰을 들고선 이 진기한 장면을 마구 찍어대는 듯 보였다. 찰칵찰칵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다. “바바리 맨이다!”라고 외치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가던 어떤 아줌마는 놀란 표정으로 비실거리며 물러났고, 스쿠터로 치킨 배달을 하던 청년은 “아저씨 파이팅” 하면서 50미터쯤 졸졸 따라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나는 겨우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철문으로 된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가, 다세대 주택 외벽으로 난 녹슨 3층 계단을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그런데 막상 나의 보금자리인 옥탑방까지 도착하고 보니 집 열쇠가 없었다. 갑자기 벼랑 끝에 선 느낌이 쏴 하게 올라왔다.
최근에 빈집털이가 성행한다는 뉴스를 접한 뒤, 나는 기본 잠금장치에 추가로 2개의 자물통을 더 채워 놓았다. 그것도 겨우 이틀 전에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옥탑방 뒤로 돌아가 난간을 딛고 올라 지붕을 타기 시작했다. 비스듬한 지붕 중간에 있는 정사각형의 화장실 창문을 노린 것이다.
나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지붕 슬레이트에 최대한 몸을 붙여서 올라갔는데, 맨몸이다 보니 살갗이 거친 표면에 까지기 시작하였다. 바늘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 왔지만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창가로 기어갔다. 그야말로 딱 빈집털이 모습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화장실 창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나는 겨우 집 안으로 몸을 들여놓았다. 나처럼 비쩍 마른 몸매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장면이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탈출 한 사람처럼 보였다. 온몸은 땀과 먼지, 상처로 범벅이 되었고 얼굴은 저승사자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늙고 창백해 보였다.
나는 우선 찬물로 대강 몸을 씻은 다음 서둘러 옷을 차려입고, 배낭을 열어 필요한 옷가지와 기본 생활 도구 등을 빠르게 쑤셔 넣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통장과 인감도장을 안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나는 사장을 알고 있다. 곁에서 1년 이상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도와줄 건달들이 차고 넘쳤다.
“이게 웬 떡이냐!” 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충성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나는 배낭을 메고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뒤, 발소리를 죽여가며 은밀하게 집을 나왔다.
아직은 벌건 대낮이므로 멀리서도 얼마든지 눈에 띄기 쉬웠다. 최대한 집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나는 대로를 피하여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언덕길을 최대한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눈에 띄는 첫 버스를 탔다. 그리고 두 번의 버스를 더 갈아탄 뒤, 나는 도시 외곽의 한적하고 조용한 모텔에 투숙했다. 그곳에서 이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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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규니? 형이야.” 나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전화기에 대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는 더 낮았다. “형! 절대 집에 오지마! 지금 수상한 사람들이 형을 찾고 있어.”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모은 돈을 전달해야만 했다. 집은 당분간 포기하더라도, 내가 피신해 있는 동안, 동생의 학비와 어머니 병원비는 챙겨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을 꼭 만나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중간 전달자가 필요했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면서, 동생과 내가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이가 필요했다. 결론은 안득희였다. 돈을 안심하고 맡기고 또 전달도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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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나는 서둘러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안득희는 현재 중소 지방의 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뒤,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소식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임경자와 결혼 한 그 해,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며, 이듬해 첫아들 그리고 2년 뒤 둘째 아들을 낳았다. 사실, 그의 아들 돌잔치 때 꼭 참석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몇 번이나 받았건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결국 내려가지 않았다.
아직도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정리되지 않은 첫사랑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 실연의 통증은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나타나 한동안 주체할 수 없는 우울을 낳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멍청한 인간인지 뼈저리게 느끼곤 하였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달고 다녀야 하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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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갔건만 안득희는 반갑게 나를 맞아들였다. 우리는 학교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 겸 술자리를 가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통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꼬?”
“미안한데 내가 피신해 있을 동안, 내 동생 팔규한테 다달이 돈 좀 부쳐주길 바란다.”
“그럼 니는 우짤낀데? 니는 뭐 묵고 사노?”
“내야 뭐 어딜 가던지 내 한 몸, 뭔 짓을 하더라도 묵고 산다.”
그러자 친구는 들고 있던 통장을 조용히 다시 내게 내밀었다.
“친구야, 니가 남이가? 그리고 니 엄니가 내 엄니고 내 엄니가 니 엄니 아이가. 내가 책임지고 니 동생 졸업시켜주꾸마. 이 돈이 정작 필요한 사람은 바로 니다. 도로 넣어라.”
이 말은 듣는 순간, 나는 울컥하고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돌아선 채, 일어나 배낭을 들고 식당을 뛰쳐나왔다.
“야 칠규야! 여까지 왔는데 너거 형수 얼굴 한번 안볼끼가?”
나는 그 소리에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눈물로 번진 시야에 허둥지둥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통장은 내가 보관할 테니까, 우리 아들 얼굴은 한번 보고 가라. 내 돌잔치 때, 니 없으니까 무척 허전하더라.”
나의 시야에 그의 둥근 얼굴이 들어 왔다. 그리고 나는 그의 미소를 비로소 쳐다봤다. 나는 그동안 단지 사랑을 보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미래가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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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우리 큰 누나 알지?”
“아 그 문숙이 누나?”
“아니, 문숙이 누나는 둘째 누나고….”
“아 맞다, 소영이 누나. 그 성악 한다는 누나 맞지?”
“그래 우리 큰 누나. 독일에 사는.”
“근데 큰누나가 왜?”
“그 독일에 사는 매형이 얼마 전에 사업차 한국에 다녀가면서 나하고 만났거든.”
“예전에 매형이 뭐 이것저것 하기는 많이 했는데…. 식당도 하고 여행사도 하고…. 아, 그 식품점도 했었는데 다 말아 먹었잖아. 빚만 잔뜩 지고. 그런데 요즈음 구매대행 하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 팔정도로 잘 나간다고 그러더라고.”
“대형 물류 창고도 이번에 임대하고 아무튼 잘 나가는가 봐.”
“그런데 사람이 없데.”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도 직원 뽑으려고 왔다고 하더라고.”
“너 독일 가라. 내가 매형한테 얘기해 놓을게.”
“너거 매형이 니 말 듣겠나?”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라. 우리 매형이 그동안 나한테서 꿔간 돈이 얼만데. 내 말 한마디면 껌뻑 죽는다. 진짜다.”
“아 그리고 이번에 한진항공에서 할인 행사할 때 독일행 표를 사 놓은 게 있거든. 이거 가져가라. 언제든지 갈 수 있는 표다. 니 여권은 있나?”
“아니 아직….”
“그래? 그럼 내일 당장 여권부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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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이라는 곳을 가게 된 것이다. 장장 11시간 동안 8,500km를 비행하여, 마침내 세계 4대 축구 리그의 하나이자, 군대스리가의 원조인 분데스리가가 펼쳐지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어릴 적, 축구에 관한 한 최고의 전설 중 하나인, 베켄바워의 나라. 바로 독일말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익히 잘 아는 바 대로다. <FC 에쉬본>이라는, 자그마한 축구 클럽이 바로 내다보이는 곳에 숙소를 마련한 나는, 오후 5시 반이면 몰려드는 동네 청년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의 축구 스승인 이바노비치 코치를 만나게 되었다. 나의 빠른 발을 눈여겨본 그는, 자청하여 개인 강사가 되었고, 하루 다섯 시간씩 혹독한 기본기 훈련을 주문하였다.
나의 작은 기적이 그렇게 시작하였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3년 뒤, 나는 2부리그 주전이 되었고, 스포츠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신데렐라로 탈바꿈하였다. 그리고 월드컵을 1년 앞둔 어느 날, 마침내 국가대표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축구 선수로 은퇴할 나이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것이었다. 사람들은 축구계에 입지전적인 대표 인물로 나를 주저 없이 호명하곤 한다. 무명의 육상 선수가 어느 날 느닷없이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는 스타가 되었으니, 사실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성공은 그저 우연이 겹친 우발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날, 갑작스러운 항공기 결항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장이 필리핀 출장을 갔더라면, 혹은 예지의 휴대전화기가 샤워실에서 우연히 날아온 물방울에 단전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장의 전화를 미리 받았다면, 이 모든 독일 도주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여전히 사장의 빛깔 나는 자가용 운전사 신세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월드컵 결승 연장전에 나온 골에 대해 여러분에게 고백하려 한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결승 골을 터트린 그 순간,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극찬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내게 공이 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극도로 지쳤고 상대 수비수의 거친 몸싸움에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그때, 우영이가 우측 라인을 파고들며 강인이에게 패스한 공을, 그가 어렵게 지켜내며 다시 파넨카킥으로 센터링하였고, 하필이면 그 공이 음바페의 뒤통수를 맞고 내 앞에 데굴데굴 굴러 왔을 때, 사실 나는 극도로 두려웠다. 내 앞에는 덩치 큰 두 명의 수비수가 씩씩거리며 달려들었고, 나의 다리는 쇳덩이를 붙여놓은 듯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축구공이 수박으로 보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 익은 수박으로 말이다. 나는, 이번에는 절대로 깨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사뿐 사뿐히 드리블한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두 명의 수비수가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렇게 골키퍼와 맞서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지난 7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은 철벽 요리스가 아닌가! 도저히 그를 제치고 슛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그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든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불과 몇 분 전에 승우의 강력한 슛을 얼굴로 막아 혼절하였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그저 나의 슛이 그의 얼굴에 맞지 않기를 바라며 그냥 톡하고 공에 발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한 거였다. 그렇게 된 거였다.
여러분이 역사상 최고의 칩슛으로 인정하는 바로 그 슛 말이다.
아 그리고 도망자의 신분으로 외국에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를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기에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자면, <두렵지 않았다>이다. 왜냐하면, 내가 독일에 온 지 육 개월도 되지 않아, 사장과 예지, 그의 일당은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외국환관리법 및 밀수 등등 스무 가지도 넘는 그의 범죄 행위가 속속 드러났고, 그를 감싼 검사 녀석도 같이 싸잡아 인터폴의 적색 수배령을 받게 된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필리핀 오지에 꼭꼭 숨어 있다고 하였다.
아! 그리고 첫사랑 임경자는 넷째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나의 이름을 따, 안칠규. 나처럼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나의 진정한 친구 안득희가 전해 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선한 여인과 넓은 호수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독일로 도주를 하던 그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 앉아, 생면부지인 나의 손을 꼭 잡아 준 여인이다. 사실 경험하기까지 나는 전혀 몰랐다. 내가 비행공포증이 심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