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클럽

by 남킹


I.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보흐단의 온몸은 클럽을 집어삼킬 듯이 포효하는 음악의 격랑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네온의 인광(燐光)이 짙은 어둠을 가르며 흘러내렸고, 현란하게 명멸하는 색채의 파편들은 찰나마다 새로운 패턴의 혼돈을 직조해냈다. 공기는 수백 명의 젊음이 내뿜는 뜨거운 숨결과 땀, 값싼 향수와 알코올의 향취로 농밀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발 디딜 틈조차 허락되지 않는 인파 속에서, 그는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혈관 속을 떠도는 미립자처럼 느껴졌다. 타인의 체온과 움직임이 그의 피부에 끊임없이 스며들었고, 그 불가해한 밀착감 속에서 기묘한 연대감과 동시에 철저한 고독이 교차했다.

스피커라는 이름의 괴수는 검은 입을 벌려 테크노 비트의 포탄을 쏘아댔다. 그 음파의 충격은 물리적인 힘이 되어 그의 흉골을 강타하고 내장을 뒤흔들었다. 쿵, 쿵, 쿵, 고막을 찢을 듯한 베이스의 진동은 그의 심장 박동과 공명하며 하나의 거대한 리듬으로 승화했다. 이 순간, 도시의 불안한 그림자는 희미해졌다. 국경 너머에서 들려오는 포성 같은 뉴스 속보, 우편함에 쌓여갈지도 모르는 징집 통지서의 싸늘한 예감, 젊은 남성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시대의 중압감. 이 모든 것이 저 강력한 비트 아래 잠시, 아주 잠시 유예되었다. 이곳은 현실로부터 도피한 자들의 성역이자, 허락된 일탈의 제단이었다.

보흐단은 눈을 감았다. 그의 눈꺼풀 뒤편에서 어지러운 빛의 잔상들이 춤을 추었다. 그는 이 짧고 강렬한 자유가 얼마나 위태롭고 귀한 것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일상은 이미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친구들의 얼굴에는 웃음 대신 불안이 서렸고, 거리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으로 팽팽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는 오롯이 존재했다. 음악과, 빛과, 군중과 하나 되어, 오직 육체의 본능적인 움직임만이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몸을 내맡겼다.

"살아있다는 감각, 어쩌면 이게 전부일지도 몰라."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른 생각은 금세 음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성수(聖水)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그가 이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희열과 뒤섞인 생명의 뜨거운 징표였다. 그는 찰나의 환희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졌다. 내일의 무게를 잠시 잊고, 오직 이 밤의 광휘 속에서 호흡하기 위해.

II.

시간 감각이 마비된 채 얼마나 흘렀을까. 격렬한 스트로브 라이트가 망막을 태울 듯 번쩍이는 찰나, 보흐단의 시선은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듯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돌연 느려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아우성은 멀고 희미한 배경음처럼 물러났고, 오직 그의 시야에는 한 사람만이 선명하게 부유하는 듯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한 소녀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칠흑 같았다. 클럽의 인공적인 빛들이 끊임없이 그 위를 유영하며 푸른색으로, 때로는 붉은색으로 물들이려 했지만, 심연과 같은 본연의 검은색은 결코 침범당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이 현란하고 무질서한 공간 속에서도 결코 길들여지거나 변색되지 않는, 그녀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웅변하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은 혼돈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은 등대처럼, 보흐단의 영혼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순간,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춤추는 군중은 투명한 막 너머의 풍경처럼 아득해졌다. 그들은 오직 눈빛만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보흐단은 그녀의 희미한 미소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동질감, 혹은 운명적인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예기치 못한 만남과 섬광 같은 교감의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썼다. 그녀의 눈동자는 고요한 밤의 호수처럼 깊고 투명했으며,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이트클럽의 용광로 같은 열기,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한 음악, 그리고 이 공간을 채운 젊음의 들끓는 에너지가 그를 온전히 감쌌다. 그는 깨달았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에 뿌리내리는 것에 있음을. 모든 상념과 걱정이 증발하고, 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에 온전히 집중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의 속삭임은 굉음에 묻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 자신에게는 강력한 주문처럼 작용했다. 시간이 왜곡되고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 그녀가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숨 막힐 듯 가까워졌지만, 동시에 그 사이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펼쳐진 듯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한 거리가 아닌, 서로를 향해 팽팽하게 당겨지는 인력(引力)의 장(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무언가를 속삭이듯 달싹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천상의 계시처럼, 혹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클럽의 소음에 섞여 형체를 잃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보흐단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의 언어를 공유해왔던 것처럼, 그들의 영혼은 이미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III.

그녀의 눈빛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깊고 그윽했으며, 동시에 장난기 어린 호기심이 반짝였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연인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침내 그를 찾아낸 듯, 그 시선은 보흐단의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존재는 안개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풍경처럼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녀가 내쉬는 숨결이 그의 뺨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순간, 그의 호흡은 멈추는 듯 아찔했다. 음악은 여전히 그의 귓전을 광포하게 때리고 있었고, 네온 불빛은 그들의 주위를 맴돌며 몽환적인 후광을 만들어냈지만, 보흐단의 의식은 오직 그녀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시각적 자극은 무의미한 배경으로 전락했고, 오직 그녀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보흐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얼굴 윤곽을 탐색했다. 그녀의 매끄러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조명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 곳곳을 섬세하게 훑었다. 너무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너무 유약하지도 않은 콧날. 살짝 치켜 올라가 고집스러워 보이면서도 매혹적인 눈꼬리. 도톰하면서도 단호하게 다물린 입술. 그 모든 요소들이 개별적으로도 아름다웠지만, 함께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언어 이전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었다. 음악의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부드럽게 한 방향으로 밀어냈고, 그들은 저항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미미한 움직임 속에서, 그들은 리듬에 맞춰 조금씩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혹은 서로를 탐색하는 두 마리의 나비처럼. 불과 몇 분 전에야 존재를 인지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이미 오래되고 깊은 인연의 실타래가 풀리고 있는 듯한 기묘한 친밀감이 감돌았다.

클럽의 데시벨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스피커는 터질 듯 울부짖었고, 군중의 함성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보흐단과 그녀 사이에는 깊은 심해와 같은 고요함이 흐르는 듯했다. 그것은 폭풍의 눈과 같은 평화였고, 광란 속에서 피어난 기적적인 정적이었다. 보흐단은 문득 이 순간이 영원히 박제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이 마법 같은 시간 속에서는 바깥세상의 냉혹한 현실도, 불확실한 내일의 무게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오직 그녀와 함께하는 이 순간만이 전부였다.

마침내, 춤의 흐름 속에서 그들의 팔이, 손등이, 살갗이 미세하게 스쳤다. 그 찰나의 접촉은 그의 온몸에 강력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심장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뛰어올라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듯했고, 손끝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역류하는 듯한 격렬한 흥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피부가 자신의 것에 닿는 순간,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며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로 녹아드는 듯한 환상적인 감각에 휩싸였다.

그 접촉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보흐단에게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우주의 모든 시간이 그 짧은 순간으로 응축되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체온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생생했다. 그것은 추운 겨울밤, 벽난로 앞에서 느끼는 아늑하고 위안이 되는 온기, 혹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마침내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과도 같았다.

"이것이… 운명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질문의 형태를 띠었지만, 이미 답은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운명이었다.

IV.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이트클럽 전체를 용광로처럼 달구던 광란의 비트가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멈춰 섰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전원을 내려버린 것처럼, 모든 소음이 칼로 베어낸 듯 단절되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짧게 흘렀고, 그와 동시에 공간을 부유하던 공기마저 일순간 얼어붙는 듯했다. 사람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어색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스피커에서는 전혀 다른 질감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의 격렬함과는 정반대로, 우아하고 감미로운 발라드의 선율이 안개처럼 부드럽게 공간을 감싸 안았다. 어지럽게 충돌하던 리듬은 이제 유려하고 서정적인 흐름으로 변모했고, 그 음악은 마치 이 혼돈의 밤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듯, 혹은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듯 다가왔다. 세상이 오직 그들 두 사람만을 위해 특별히 조율한 사랑의 성찬(聖餐)처럼, 그 선율은 완벽하게 느껴졌다.

음악의 변화는 클럽 내부의 풍경마저 바꾸어 놓았다. 방금 전까지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각자의 세계에 몰입해 있던 사람들은 이제 느려진 박자에 맞춰 서로의 허리를 감싸 안거나 어깨에 기댔다. 천장에 매달린 미러볼이 천천히 회전하며 은하수 같은 빛의 조각들을 흩뿌렸고, 일렬로 늘어선 스포트라이트들은 바닥을 향해 부드럽고 따스한 빛의 원을 그렸다. 그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농담(濃淡)은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 혹은 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비밀스러운 문처럼 보였다.

보흐단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용기를 내라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 질문이 그의 결단을 재촉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보흐단은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긴장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억누를 수 없는 깊은 감정의 파동에서 비롯된 떨림이었다. 그녀는 그의 내민 손을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을 그의 손 위에 포갰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두 사람의 손이 마주 닿는 순간, 보흐단은 마치 잃어버렸던 자신의 일부를 되찾은 듯한 충족감을 느꼈다. 그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서로에게 꼭 맞물리는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마치 그들이 태초부터 이렇게 연결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 결속은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져 오는 그녀의 섬세한 체온과 맥박이 그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보흐단은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다는 감미로운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 단단히 맞잡은 손깍지는 단순한 신체적 접촉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것은 혼돈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 두 영혼의 묵언의 약속이었으며, 설령 이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결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이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닻이 되어주겠다는 암묵적이고도 불굴의 서약처럼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손안에 깃든 힘과 온기를 통해 서로의 결의를 느끼고 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세상의 모든 소란으로부터 격리된 작은 섬처럼, 서로의 존재만을 느끼며 느리고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들의 발걸음은 서툴렀지만, 그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향기가 풍겨왔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슬픔이 배어 있었고,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향이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 기억 저편의 어느 날 맡았던 적이 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리운 사람의 향기 같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의 심장이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예요?" 그가 거의 속삭이듯, 그녀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음악 소리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올레나."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낮은 속삭임이었지만, 보흐단의 귀에는 오래된 서정시의 한 구절처럼 아름답고 울림 있게 들렸다.

"나는 보흐단이에요."

이름을 교환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과 같았다. 그것은 익명의 군중 속에서 서로를 구별 짓는 첫 번째 표식이었고,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진솔한 선물이었다. 이름은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이자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서로의 이야기 속으로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V.

보흐단과 올레나는 발라드의 선율에 몸을 맡긴 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친밀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졌다. 올레나는 미래의 의사를 꿈꾸며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보흐단은 언어와 이야기의 세계에 매료된 문학도였다. 그들은 서로의 전공, 꿈,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나누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지성이 느껴졌고, 그의 말 속에는 섬세한 감수성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며 서로에게 더욱 강렬하게 끌리고 있음을 느꼈다. 웃음이 오갔고, 눈빛이 교차할 때마다 미묘한 설렘의 스파크가 튀었다. 이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내일… 혹시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보흐단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의 심장은 기대감으로 터질 것 같았다.

"그럼요. 당연히…" 올레나가 미소와 함께 긍정의 대답을 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고 날카로운 외침이 그들의 감미로운 대화를 무참히 갈라놓았다.

"모두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서!"

방금 전까지 부드럽게 공간을 비추던 조명들이 일제히 강렬하고 차가운 백색광으로 바뀌며 클럽 내부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흐르던 발라드 음악은 마치 전원이 끊긴 것처럼 갑자기 뚝 멈추었고, 사람들의 당황한 웅성거림과 불안한 속삭임이 순식간에 공간을 잠식했다. 보흐단은 혼란과 불길함이 뒤섞인 눈으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싸늘한 예감을 느꼈다. 클럽의 정문과 비상구 쪽에서부터, 단단한 군화 소리와 함께 제복을 입은 헌병들이 질서정연하게, 그러나 위압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는 헛웃음처럼 중얼거렸지만, 이미 그 답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내려앉았다.

헌병들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멈춰선 군중 사이를 헤치며 클럽 안쪽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집요하게 찾고 있는 듯했다. 클럽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방금 전까지 넘실대던 흥분과 열기는 차갑고 불안한 긴장감으로 대체되었다.

"보흐단 코발!" 헌병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장교가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름을 외쳤다. 그 이름은 클럽의 정적 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보흐단 코발, 여기 있나?"

보흐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올 것이 왔다는 체념과 함께, 피할 수 없는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는 순간이었다. 그는 언젠가 이런 순간이 닥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두려움 속에서 매일같이 상상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하필이면 오늘 밤,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리고 이토록 잔인한 방식으로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짧았던 행복은 너무나 허무하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보흐단 코발! 다시 한번 묻겠다!" 헌병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위압적으로 변해 클럽 전체를 다시 한번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그 이름을 향해 쏠렸다.

올레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이제 당혹감과 함께 의아함, 그리고 희미한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애쓰는 듯했다.

"…그 이름, 너야?" 그녀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물었다.

보흐단은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메어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짧은 긍정의 몸짓에 담긴 무게는 천근만근과 같았다. "그래… 나야."

"어째서… 왜…?"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혼란이 담겨 있었다.

그 질문에 대답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헌병들이 이미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망설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군화 소리는 보흐단의 심장 박동처럼 무겁게 울렸다. 헌병들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그의 양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보흐단 코발, 병역법 위반, 징집 회피 혐의로 당신을 체포한다."

차가운 금속성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선고처럼 박혔다. 보흐단은 저항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예행연습해왔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배달된 소집 통지서를 애써 외면하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개인의 삶과 평화를 지키고 싶다는 열망으로 도피처를 찾아 헤맸다. 그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다. 평범하게 사랑하고, 꿈을 꾸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비겁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달랐다. 호기심 어린 눈빛, 동정하는 눈빛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싸늘한 경멸과 노골적인 비난의 눈초리였다.

'나라가 위험한데, 군대 가기 싫어서 클럽에서 숨어 지내는 비겁한 놈.'

'저런 놈 때문에 우리 아들들이 대신 피 흘리는 거야.'

그들의 침묵하는 시선은 그 어떤 욕설보다 더 날카롭고 아프게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마치 수백 개의 보이지 않는 칼날이 그의 온몸에 내리꽂히는 듯한 통증. 그는 자신이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그는 이미 조국을 등진 도망자였고, 용서받을 수 없는 비겁자일 뿐이었다.

절망 속에서 보흐단은 마지막으로 올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그의 심장은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그녀의 눈빛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차갑고 더 날카로운 경멸이 담겨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그 깊고 따뜻한 눈동자에는 이제 얼음 같은 냉담함과 깊은 실망감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배신당한 사람의 그것처럼 차갑고 절망적이었다. 그가 잠시나마 느꼈던 모든 설렘과 교감은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결국 넌, 도망자였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낮았지만, 얼음 조각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그의 심장을 찔렀다.

"올레나,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설명할 수 있어…" 보흐단이 필사적으로 변명하려 했지만, 헌병이 그의 팔을 더욱 강하게 잡아끌며 말을 끊었다.

"이동한다. 조용히 따라와." 헌병의 단호한 명령이 내려졌다.

보흐단은 속수무책으로 헌병들에게 이끌려 클럽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올레나가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차갑게 고개를 돌려 그에게 등을 보인 채, 마치 그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싸늘한 뒷모습은 그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깊이 새겨졌다.

클럽 문밖으로 나서자, 차갑고 습한 밤공기가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지만, 가슴을 채우는 것은 상쾌함이 아닌 깊은 절망감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아니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 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짧았던 환희는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어둠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헌병차의 뒷좌석에 구겨지듯 태워지며, 보흐단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방금 전까지 속해 있었던 나이트클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현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문 앞에서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젊은이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너무나 멀고 비현실적인, 마치 유리벽 너머의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가 더 이상 속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세계.

차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보흐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의 짧았던 자유와 사랑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또 다른, 혹독한 현실의 시작일 뿐일까? 그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오늘 밤 그가 찰나처럼 경험했던 눈부신 행복의 기억이 이제는 아프도록 아련한, 손에 잡히지 않는 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뿐이었다.

차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가는 동안에도, 나이트클럽 안에서는 다시 음악이 터져 나왔고, 멈추었던 젊음의 열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은 그의 부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담하게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그리고 보흐단에게는, 바로 그 변함없는 세상의 무심함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바티칸의 최종 병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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