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내리는 빗물

by 남킹


길에 내리는 빗물

Svefn-g-englar (몽유천사)

지그문트 거리의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발견한 카페는, 그리 넓지 않고 어두운 편이다. 지붕에 난 사각 창을 투과한 가느다란 자연광에 더하여, 흐릿한 갈색 꼬마전구가 듬성듬성 박혀있다. 그리고 천장을 따라 낡은 목제 기둥들이 교차한다. 회칠한 사각 벽면에는 <Egon Schiele>의 작품이 한 면에 한 개씩 매달려 있다. 모두 다양한 모습의 비틀린 나체 여인이다.

나는 <Sigur Ros>의 <Svefn-g-englar>가 흐르는 홀을 지난다. 가장 구석진 곳. 채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손바닥 크기의 창가 옆 테이블에 앉는다. 커피를 주문하고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입구를 응시한다. 투명에 가까운 출입구 유리. 12월의 잿빛 하늘이 가라앉는다.

유리를 투과한, 성기게 돋아난 서릿발로 세상이 꽁꽁 멈추었다. 바람이, 일렬로 길게 늘어선, 높고 앙상한 미루나무 가지를 톡톡톡 건드리며 지나간다. 그리고 가늘게 떨고 있는 잔가지들 사이로 붉은 지붕이 보인다. 그 너머 구릉 사이로 제멋대로 펼쳐진 들녘은 황량하다. 세상의 진화가 멈춘 듯하다.

잠시 의식이 사라진다. 돌과 나무처럼. 그저 밖을 바라본다. 음악이 꿈속인 듯 들려온다.

‘…. 그저 얼굴에 비가 내릴 뿐이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세상은 천천히 붉어진다. 저 멀리, 행글라이더 모양으로, 정연하게 대오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가, 얼마 남지 않은 빛에 반짝인다. 어스름한 기운이 홀을 메우기 시작한다. 유럽에 머문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겨울의 짧은 햇살은 당혹스럽다.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느낌이다.

독일에 온 첫해, 겨울이 떠오른다.

경사가 거의 없는 낮은 산과 앙상한 나무들로 채워진 공원 사이로, 눈들이 많이도 내렸다. 어떤 날은 함박눈이, 어떤 날은 싸라기눈이, 어떤 때는 눈인지 빈 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내렸다.

족히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은 왔다. 하지만 그다지 춥지 않은 기온 탓에, 도로 위 눈들은 금방 시커먼 흙탕물로 변했다. 회사 가까이에 숙소가 있었다. 나는 매일 질퍽한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하였다. 짧은 낮과 긴 밤으로 구성된 곳. 출근길은 어두웠고 퇴근길은 깜깜하였다. 나는 노란 가로등 불빛에 의존하여, 바지춤을 추켜올리고 까치발을 하고선, 거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고인 물과 눈 무더기, 혹은 가끔 개똥을 피하여, 조심스럽게 걷곤 하였다.

회사 건물은, 밀밭과 공원 입구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리고 낡았다. 지은 지 100년은 더 되어 보였다. 뼈만 남은 담쟁이덩굴이, 한쪽 벽과 지붕을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 중세 수도원 같았다. 흐린 날, 달빛에 쳐다보면, 공포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음산하고 기괴한 정신병원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낡은 외벽과는 달리, 실내는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개축되었다. 푹신한 카펫이 깔린 복도는 깨끗하고 단순하였다. 높은 천장에는, 환기구와 동그랗고 세련된 조명이 일렬로 일정하게 박혔다. 그리고 하얀 벽면을 따라, 손바닥 2개 정도 크기의 사진 액자가 듬성듬성 달렸다. 묘하게도 모든 작품에는 한 사람만 등장하였다.

"<Henrik Knudsen> 작품이에요." 작은 키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한 낯선 여자가, 출근 첫날,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자판기에서 막 뽑은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복도를 서성거리다, 사진 하나를 무심하게 쳐다보던 중이었다. 그 속에는, 버스 맨 뒤 칸에 홀로 앉은 흑인 청년이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느꼈다. 쓸쓸하기보다는 따뜻했다.

"무슨 생각을 할까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민 없이 "애인 생각이죠. 당연히…"

"행복해 보이잖아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일 거예요. 틀림없이…."

나는 미소로 수긍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통성명을 하였다.

"송안나에요." 그녀는 작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 네, 저는 박칠규입니다." 긴장이 되었는지 가래 끓는 소리가 올라왔다.

"철규 씨요?"

"아, 아니, 칠규입니다. 일곱의 칠입니다." 따뜻한 손의 감촉과 함께, 짙은 화장품 향이, 살짝 설레는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혹시 일곱 번째 아들은 아니겠죠?" 그녀는 농담조의 비딱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 네….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음…. 아버지의 일곱 번째 자식이지만, 어머니의 유일한 아들입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짓궂은 질문이 돼 버렸네요." 그녀의 당황스러움이 왠지 정겨워 보였다. 그러자 긴장은 누그러지고 장난기가 올라왔다.

"안나 씨는 그럼 형제가 어떻게 되시나요? 실례가 아니라면."

"언니만 둘이에요. 두 살 터울로"

"아, 그럼 그 셋째딸?" 그녀는 활짝 웃었다.

"네, 바로 그 셋째 딸이에요.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높은 천장에 메아리쳤다.

그녀는 디자인 팀장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머지 작품에 대해서도,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사무실 안내를 하였다.

나는 그날, 20명 남짓의 회사 직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지하실에서부터 2층까지, 탕비실에서부터 시스템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안내받았다. 게다가,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곳곳을 장식한 작품의 해석도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4명의 창립 구성원이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방치된 건물 중 한 곳이었던, 이곳의 내부 인테리어를 모두 손수 도맡아 꾸몄다고 한다. 그리고는 매우 만족스러웠는지, 이곳에 새로운 직원이 나타나면, 사무실 안내는 으레 그녀가 맡는다고 하였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방을 사용하였다. 즉, 우리 방에는 디자인 팀과 웹 개발팀으로 양분되었다. 웹 개발 팀장으로 오게 된 나는, 그녀와 나란히 책상이 배치되었다. 나의 오른쪽에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복도가 훤히 보이는 큰 창문들이 두 개씩 짝을 이루고 있었다. 창으로, 복도에 걸어둔 사진들이 온전하게 다 보였다. 나는 작품들의 높이와 간격이,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바라본 창의 너비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세심한 그녀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왼쪽에도 창들이 있었다. 겨우내 정사각형의 창을 통하여 매일 일출을 맞이했다. 출근과 동시에, 따끈한 자판기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든 채, PC의 전원을 켜고는, 여전히 덜 깬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무거운 하늘과 낮은 산들이 맞닿은 곳이 언제나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해돋이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해가 뜨는 모습을 여태껏 지켜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학생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기숙사에서 포커 게임을 하거나 당구장 혹은 노래방에서 밤샘한 적은 있지만, 그때도 바라본 건, 푸른 기운이 도는 빨간 창을 힐끗 한번 쳐다보는 정도였다. 일찍 잠드는 게 어려웠고 일찍 깨는 건 괴로웠다.

그러고도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아니, 버텨냈다.

Take me somewhere nice

카페의 손님은 하나둘 떠나간다. 이제 홀로 남는다. 거리를 지나가는 이들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Mogwai>의 <Take me somewhere nice>가 끝났을 때쯤, 나는 마지막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찻값과 팁을 테이블에 두고 그곳을 나온다. 외로움이 길게 달린다. 안개비가 흐른다.

나는 잠바 지퍼를 턱 밑까지 올리고 갈색 털이 달린 귀달이 모자를 푹 눌러 선 채, 아주 천천히 걷는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줄기 세찬 바람이 먼지와 함께 스쳐 지나간다. 귓불 사이로 한기가 전해진다.

세상은 이제 차분한 어둠으로 쌓였다.

창밖 검은 마을 위로, 짙은 구름 사이로, 자신을 조금씩 깎아 낸, 노랗게 번진 그믐달이 스산한 빛으로 흐른다. 그 빛은 마을의 어둠에 묻혀있고, 마을은 자국만 남은 빛에 가렸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검은 지붕마다 뿜어 올린 연기가 스멀스멀 길 따라 부드럽게 흩어진다. 가로등과 나무, 간간이 뒹구는 낙엽들, 가녀린 빗방울 그리고 듬성듬성 불 켜진 창들이 켜켜이 쌓인 묽은 어둠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지그문트 13>이라고 적혀있는 거리 표시 팻말 아래에 도착한다. 나무 펜스 너머로 하얀 3층 집들이 보인다. 테라스와 발코니, 정사각형 창들과 두툼한 굴뚝, 낮은 각도로 경사진 지붕들이,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나는 주차장 입구 옆, 하얀 우편함으로 다가가, 작은 글씨의 명패들을 훑어보며 <슐츠>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낸다. 설렘과 회한의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S. Schultz> 스반 슐츠. 변호사의 편지에 적혀있던 이름.

나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공허한 가슴 한편을 꾹 누르고 시린 발끝을 참으며, 불 켜진 창들을 돌아가며 응시한다. 한줄기 밤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연관도 없는 일들이 뒤죽박죽 기억난다.

낮은 언덕과 판잣집들. 좁은 골목과 무척 높은 계단. 그 꼭대기에서 바라본,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 그곳에 점점이 박혀있는 깨알 같은 배들.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 주름진 할머니의 영정 사진. 그리고 낯선 아버지와 형제들.

습한 여름날, 삼베 주머니에 담긴 우뭇가사리가 끓고 있는 냄비. 할머니의 손이 분주하다. 뜨거운 콩이 희뿌연 연기와 함께 비릿한 메주 냄새를 쏟아낸다. 믹서기가 부서질 듯한 굉음을 내며 흔들린다. 반짝거리는 우무묵을 철망에 대고 손으로 꾹 누른다. 철망을 빠져나온 투명한 국수가 다소곳하게, 콩국이 담겨 있는 노란 양푼이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천일염을 국자로 떠서 휙 뿌리고는, 콩국을 몇 번 젓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자에 국을 떠서 간을 본다. 수박만 한 얼음을 비닐로 싸고 고무줄로 묶더니 콩국에 조심스레 띄운다. 그녀의 모시 속옷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온다.

외할머니는 여름이 되면 항상 콩국 장사를 하셨다. 우리가 사는 시장 아파트 입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엉성한 나무 식탁과 앉은뱅이 의자 2개를 갖추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애 딸린 아주머니가 지나가면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새댁, 여 와서 시원한 콩국 한잔하고 가! 아도 더위 묵었네. 보니까" 하고는 애들 팔을 잡아당기시곤 하셨다. 그러면 잠깐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아줌마 대부분은 할머니의 호객행위를 뿌리치고 가던 길을 가지만, 가끔은 마지못해 혹은 할머니가 애처로워 콩국을 사곤 하였다. 나는 그런 모습이 부끄러워, 될 수 있는 대로 할머니 근처에는 안 가려고 했지만, 낡고 오래된 시장 아파트 입구가 딱 한 곳밖에 없는 데다 하필이면 그 입구에서 할머니가 장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한두 번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나가면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부르셨다.

"우리 강새이 왔나. 일로 안자바라." 그러고는 묻지도 않으시고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콩국을 가득 채워 주셨다. 그 구수하고 고소한 맛은 일품이었지만, 그 맛을 음미하기에는 나의 창피함이 너무도 컸다.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록 후루룩 꿀꺽 들이키고는 재빨리 아파트 3층 계단을 뛰어 올라가곤 했다.

나의 유년 시절 대부분은 그렇게 할머니와 엮어졌다.

치밀어 오르는 격정도 있었다. 이상한 소리였다. 너무도 이상해서 그 소리는 이제 나의 귓속에서 비죽이 삐져나오는 환청으로 굳어졌다. 내 귀여운 강아지에게서 짐승의 울부짖음이 뿜어져 나왔다. 그날, 상가 번영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쥐 잡는 날. 쥐약이 든 음식이 시장 곳곳에 구석구석 뿌려졌다. 이모와 나는 <복실이>를 예의주시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이모는 시장 한복판에서 청과물 가게를 하셨다. 그리고 그 가게 옆에, 이모부가 빈 과일 상자로 듬성듬성 만들어준 복실이 집이 있었다. 진돗개를 아파트에선 키울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모 가게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마당이 있는 이모 집으로 데려가서 재웠다. 그 개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다. 노르웨이로 시집가기 전, 그녀는 한 움큼의 눈물과 강아지를 주고 가셨다. 그리고 그날, 인적이 끊긴 밤거리를 졸린 눈으로 바라보던 이모는 가게 문을 닫기 위하여 남은 과일들을 정리하셨다. 그리고는 그녀는, 복실이를 묶은 줄을 잡고 집으로 가려다가 멈칫했다. 가게 구석진 곳, 조그마한 평상에 잠들어 있는 나를 기억한 것이다.

그녀가 나를 깨우러 간 사이 개가 사라졌다. 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복실이는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엉성한 자기 집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더니 괴성을 지르며 집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모부가 어느새 달려 나와 그의 거친 손으로 내 눈을 꽉 틀어막았다.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만 짧게 굵게 짧게 굵게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이모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거칠게 잡고 집으로 끌고 갔다. 이모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머니에 대한 욕이었다.

"이런 호양년 같은 것이 얼굴 뺀질뺀질하니 지 이뿌다고 카니 미스코리아 나간다고 돈만 처발라 코 수술에 눈 수술에 처 하면 뭐하노 예선전에서 미끄러진 년이…. 꼬라지 하고는 늙은 유부남한테 빌붙어 아나 처 낳더니……. 낳으면 지가 고이 키우던가…. 늙은 오메한테 처맡기더니 이젠 개새끼까지 처맡기고…. 빙신같은 늙은 양놈 새끼하고 눈이 처맞아 달나뿌면…. 오데 있는 나란지 알아야 가서 맥살이라도 잡아보제…. 우리 칠규 인생이…. 너무 불쌍하다……. 너무…."

나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모의 분노를 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예쁜 강아지를 한 마리 내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나는 받기를 거절했다. 시장에서는 끝까지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나는 어떤 동물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나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큰 대문을 지나자 푸른 잔디와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넓은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네 마리의 복실이를 보았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요동치며 크게 짖었다. 나는 눈길을 접고 돌아섰다. 울부짖는 환청이 따라다녔다.

This will destroy you

프랑크푸르트 공항 2터미널 D 홀에 도착하면서 시간을 체크했다. 오후 5시 17분. 아직 이른 시간이다.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식당가로 향했다. 식당가라고 하기에는 사실 좀 아담한 곳이다. 식당 홀이라고 해야겠다.

오른쪽 전면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차지하고 왼쪽은 카페와 빵집이 절반씩 나누고 있다. 홀의 중앙은 마치 우주선 같은 선명한 금속 색깔의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은 아치형의 거대한 유리 벽이 있는데, 다양한 크기의 비행기 이착륙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깜짝 놀랄 만큼 아주 가까이에서 말이다.

언제나 최초의 충격은 기억되기 마련인가 보다.

이곳에 처음 방문한 날, 아무 생각 없이 달콤한 커피와 <Rammstein>의 폭발적인 사운드에 빠져 멍하니 창을 바라보던 순간, 발밑에서, SF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은빛 쇳덩이가 중저음의 굉음을 내며 유리 벽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더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은근히 놀란 가슴에 황급히 이어폰을 뽑는다는 게 그만 커피를 바닥에 쏟고 말았다. 민망하고 황당한 그때의 기억은, 이젠 재미난 추억으로 나를 이곳에 매번 이끈다.

나는 공항에서 가장 저렴한 커피를 맥도날드에서 주문한 뒤, 아스파탐 2알을 넣고 뚜껑을 닫은 채 천천히 전망대로 향했다. 종이컵을 쥔 왼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함이, 4월에 맞는 모처럼의 맑은 하늘만큼이나 포근했다.

이어폰에서는 <Quiet>의 This will destroy you가 흘러나온다.

나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눈부시게 맑은 하늘을 신기한 듯 한동안 올려다봤다. 여기에 살면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다. 구름 없는 하늘이 귀하다 보니 선명한 직사광선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게 되었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해만 나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공원이나 베란다, 혹은 햇빛을 마주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든 마다하지 않고 누워 버린다. 10년 전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일 때의 낯설고 불가해한 풍경 중 하나였지만 이젠 이해가 된다.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해바라기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선탠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 본 적도 없다. 사실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의 얼굴과 팔은 햇볕에 그을려 새까맣다. 내 업무의 대부분은, 탁 트인 도로 위, 직사광선을 온몸으로 받는 자동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관광 혹은 업무차 방문하시는 분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리는 일을 주로 한다. 덧붙여 약간의 통역 서비스도 포함되는데, 예를 들자면, 호텔 예약, 식사 주문, 대중교통 발권 등등의 일상적인 대화 수준 정도를 지원한다.

시작한 지는 1년이 채 안 된다. 초보자인 셈이다.

그전에는, 이미 언급했듯이, IT 쪽 일을 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내 경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산 계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웹 프로그래밍부터 시작하여 웹 기획 및 관리, 시스템 관리, DB 관리, 프로젝트 매니징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내 젊음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다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하는 한국계 독일 회사에 2년 계약으로 취업이 되어 유럽으로 오게 되었다. 이듬해 가족들도 왔다. 하지만 회사는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국 업체에 팔려버렸다. 다행인 건, 임원진을 제외한 직원 대부분이 고용 승계를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

그사이 자식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어 베를린과 런던으로 각각 흩어졌다. 그리고 작년엔 아내도 영국으로 가버렸다. 그녀가 다니던 구매대행 회사가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내면서 지점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다. 사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져 버린 나와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이미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이전부터 우리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한 지붕 아래에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순전히 <자식 부양>이라는 고귀한 의무에 기인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정반대의 꼭짓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에 얽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이 우연히 만나, 나에게 부족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이, 풍족한 상대에게 끌리게 되는 묘한 감정 같은 거 말이다. 나의 경우가 그러했다.

나는 정적이고 그녀는 동적이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그녀는 외향적이었다. 나는 사람을 싫어했고 그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겨 했다. 나는 직장을 싫어했고 그녀는 살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오후의 따스한 날, 길거리 카페에서, 커피와 담배를 즐겨 했고, 그녀는 놀이공원의 바이킹과 롤러코스터를 사랑했다. 나는 포스트 록에 심취해 있었고 그녀는 테크노에 열광했다. 그녀는 춤췄고 나는 감상했다. 그녀는 나의 느긋함을 찬양했고, 나는 그녀의 부지런함에 반했다.

아내는 처녀 시절, 틈만 나면 전국의 크고 작은 산을 누비고 다녔다. 나를 처음 만난 곳도, 겨울 태백의 눈 덮인 등산로였다. 나는 그때 모 식품회사의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중이었는데, 보름의 연수 기간 중 마지막 단계인, 극기 체험을 하던 중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겨울 산행에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산허리로 감겨드는 가파른 길모퉁이,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가늘어지는 햇살을 조급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일행과는 한참 뒤처져 있었다. 이때,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지나가면서 한 번씩 힐끔 쳐다보더니 낮은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일행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두툼한 구글을 벗어든 채, 측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 네, 발목이 좀 삔 것 같습니다." 나의 답변에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해가 곧 질 거에요. 산속이라 금방 어두워질 겁니다. 기온도 많이 떨어질 거고요…. 서둘러야 할 거예요……."라고 하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는 줄곧 손을 잡은 채 밤 산행을 하였다. 그녀는 이끌고 나는 따라갔다. 그녀는 전국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 이야기를 가는 내내 하였고, 나는 헉헉거리며 귀담아들었다.

중간 기착지인 산장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떨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회사 일행들과 재회했다. 나는 한숨을 돌린 뒤 다시 그녀를 찾았다. 나무로 된 2층 침대가 일렬로 마주 선 복도에는 배낭과 각종 식기 도구들로 번잡했다. 그곳을 어렵사리 헤치고, 나는 구석진 곳에서 침낭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구릿빛 얼굴에 눈가의 잔주름이 잔뜩 솟아났다. 그녀는 손으로 침대 바닥을 톡톡 건드리며, 잘 곳이 마땅치 않으면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침낭을 들고 와 그녀 옆에 깔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등되었다. 깜깜해졌다. 이어 침묵이 찾아왔고 사각거리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한 번씩 들려왔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본능을 좇아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나는 전망대에서 제법 많은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2잔의 커피를 이미 비웠고 <Explosions in the Sky>의 세 번째 앨범인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친숙한 비행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하늘색 바탕에 짙은 파랑의 <Korean Air> 글자가 선명한 비행기는, 천천히 몸을 낮추더니, 이윽고 육중한 몸을 가뿐하게 활주로에 내려놓았다.

손님이 이제 막 도착한 것이다. 최소 30, 40분 정도의 수속을 마치면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한 뒤, 일회용 컵을 든 채, 2층 입국장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아직 여유가 있으므로, 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바깥 택시 승강장으로 나갔다. 벽감처럼 움푹 들어간 흡연구역에는 땅딸막한 중년의 남자들이, 자신들이 조잡하게 만든 것 같은 담배를 피우며,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이 따뜻하고 햇빛으로 가득한 4월의 독일 날씨를 찬양하더니, 곧바로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던 지난겨울에 대하여 과한 표정으로 킬킬거리며 넌더리를 쳤다. 한쪽 벽면에는 어지럽게 세워놓은 그들의 짐들이 보였다. 그 위로 선명한 햇살이 사금파리 모양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짐을 피하여 창가 쪽으로 바싹 다가서서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줄곧 열려있는 귀에,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그들의 소음을 상쇄하기 위하여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켰다. <Mad Soul Child>의 <Breath>가 흘러나왔다. 안나의 USB에 있던 곡이다. 그녀는 음악 취향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그냥 무작위로 음악방송 같은 걸 들어요. 다 좋으니까요. 가볍게 듣는 거죠. 뭐." 그녀는 겨울의 끄트머리에 선 어느 맑은 날, 사무실 옆, <피닉스>라고 이름 지어진 공원의 나무 벤치에서 나에게 이어폰 한쪽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마음에 드는 노래가 쏙 들어올 때가 있어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요. 그러면 그 노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려받아요. 그리곤 관련 정보도 알아내죠. 뭐 이를테면, 싱어가 누군지, 가사는 어떻게 되는지, 어느 앨범에 들어있는 것인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리고는 리스트를 만들죠. 나만의 음악 리스트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 이 노래는?"

"네, 안나의 베스트 음악이죠." 그녀의 감은 눈꺼풀에 푸른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상쾌한 바람이 호두나무 가지를 흔든다.

그녀가 꽂아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들은 대체로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재즈풍의 여성 솔로 곡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대중적인 팝이나 가요들도 있었고, 실험적인 인디 음악이나 심지어 사이키델릭 풍의 연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다양했다. 그녀는 곡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채집한 노래의 정보를 들려줬다.

"<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U>라는 곡이죠." 그리고 그녀의 느낌을 말해주었다.

"막연한 열망이나 슬픔 같은 게 느껴져요……. 음……. 뭐랄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안타까움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노래 가사를 방심한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눈을 감은 채. 투명한 봄볕에 반짝거리는 그녀의 조그맣고 빨간 입술이 오물오물하는 모습을, 나는 따스하게 지켜보았다. 그해 봄은 특이하게, 더울 만큼 맑은 하늘이 많았다. 누군가는, 지난겨울의 지독한 눈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많아진 날들만큼 자주 음악 산책을 즐겼다.

그녀는 재즈 싱어인 <Diana Krall>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가수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는데, 재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처음 얼마 동안은 그저 심드렁하게 듣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나는 거라고는, 그 가수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뿐이었다. 또 한 가지를 들자면, 이건 순전히 나의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데, 나는 그 여성 재즈 가수가 흑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안나가 이메일로 보내준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그녀가 금발의 백인이라는 사실에 적이 놀라고 말았다.

'<Diana Krall>의 <The Look of Love>라는 곡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죠. 당연히. 하지만 음악에만 빠지세요……. 그녀의 미모에는 절대로 빠지지 마시고요……. 크크크 송안나 드림'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왜 이 가수를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입술을 뾰족하게 하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즉답을 피하고는, 내게 반농담식으로 숙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음날 내게 USB를 하나 주었다. 그녀와 예전에 같이 들었던 노래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젠 귀에 익숙하게 된 음악들이었다. 나는 내 노트북에 <안나의 음악>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그곳에 음악 파일들을 저장하고 휴대폰에도 복사해 두었다.

그리고 이제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떠났지만, 그 폴더는 아직 내게 남아 있다. 신기하게도 폴더가 살아남았다.

나는 늙어 가는 만큼의 강도로 점점 더한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혼자 사는 10평 크기의 원룸에는 단 하나의 가구, 옷장만 있다. 그리고 각각 한 개씩의 냉장고, TV, 세탁기, 매트리스, 이불, 베게, 밥상 겸 책상, 노트북, 다리미가 있다. 하얀 모든 벽면에는 액자 하나 없이 깨끗하다. 냉장고 문에 가족사진 한 장만 붙어 있다. 대부분 소모품이나 생활용품들도 한 개씩만 가지고 있다. 치약, 칫솔, 샴푸, 수저, 밥공기, 국그릇, 냄비, 프라이팬, 걸레, 휴지, 보온병, 커피잔, 운동화, 구두 등등. 그나마 중복으로 가진 것은 속옷과 양말뿐이다. 매일 하루에 한 개씩 일주일 치 해서 각각 7개가 있다. 이를테면 일요일 오전에, 세탁기에 매일 한 개씩 벗어둔 속옷과 양말들을 한꺼번에 세탁하고, 월요일부터 다시 한 장씩 소모하는 것이다. 잠바, 양복, 셔츠, 넥타이, 티셔츠, 잠옷 모두 한 개씩만 두었다. 잠바는 6개월에 한 번씩 바꾸었다. 즉, 가을이 되면 가장 저렴하고 두툼한 잠바를 산 뒤, 겨우내 입고 버린 뒤, 봄이 되면 가장 싸면서 얇은 잠바를 사서 가을까지 입고 버렸다. 냉장고도 텅 비었다. 기껏해야 이틀 치 정도의 양식거리만 딱 들어있다. 반찬도 없다. 내가 집에서 해 먹는 메뉴는 단 하나, 비빔밥뿐이다. 모든 재료를 섞어서 물과 함께 먹었다.

나의 스마트 폰에는 기본 앱 외에 단 3개의 앱만 추가되어 있다. 메신저와 음악 그리고 도서. 나의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남태평양의 어느 아름다운 섬 사진과 아래쪽 작업표시줄에 있는 4개의 빠른 실행 버튼만 있다. 탐색기, 브라우저, 도서 그리고 워드. 그리고 나의 윈도 탐색기 디렉터리는 아주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생성된 중요 폴더들은 모두 숨김으로써 감추어 버렸고, 단 2개의 폴더만 추가하였다. <도서>와 <음악>. 그리고 그 음악 폴더에는 <안나의 음악> 단 하나의 폴더만 존재한다. 예전에는 몇 개의 음악 폴더가 존재했었다. 예를 들면, <포스트 록 모음>, <프로그레시브 록 모음>, <인디 베스트 모음> 등등. 하지만 다 지웠다. 요즈음에는 음악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주로 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최 뭘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더 큰 작용을 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는 자의든 타의든 버리거나 떠나보내게 됨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타고난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안나의 음악>은 몇 번의 망설인 끝에 그냥 남겨뒀다.

그리고 그녀가 뉴욕으로 돌아간 그 날 이후,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애써 잊고 살았다. 적어도, 지난봄,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자그마한 재즈바를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곳에서 매년 봄마다 개최되는 국제 악기 박람회에 참관하는 고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7명으로 구성된 재즈 뮤지션으로, 3박 4일간의 마지막 일정을 끝낸 일요일 저녁, 그들이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유명한 - 어쩌면 한국인들에게만 잘 알려진 - 작센하우젠에 있는 독일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이번 방문의 마지막 만찬에 기꺼이 나를 초대했고, 우리는 아펠바인이라는 사과로 담근 술과 독일의 전통 음식이라고 알려진, 돼지 족발 튀김 요리인 슈바인스학세를 주문하였다.

홀은 적지 않은 손님들로 떠들썩했고, 웨이터는 유창한 한국어 인사말로 우리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주 친한 듯, 짓궂은 말장난들이 난무하였는데, 대부분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났다. 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한 대식가였다. 접시에 수북이 담긴 감자와 두툼한 족발을 쉴 새도 없이 먹어 치웠다. 또한, 그들은 술도 엄청나게 마셨다. 사과술은 우리네 백자와 같은 흰 항아리에 담겨 나왔는데, 홀서빙 담당자가 쉴 틈도 없이 빈 항아리를 채워 날랐다. 그들은 입으로 떠들고 마시고 채워 넣었다.

나는 운전을 핑계로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사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였다. 물려받은 체질이었다.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소주 몇 잔만 마셔도 속이 울렁거리고 편치 않았으며, 다음날 꼭 설사하였다. 아버지와 닮은 몇 안 되는 특징 중의 하나였다. 반면 아내는 술을 잘 마셨다. 당연히 술을 좋아하기도 하였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소주와 맥주가 비치되어 있었고, 베란다 끝에는 늘 빈 술병들이 상자째로 포개져 있었다. 그녀는 종종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한 뒤, 홀로 식탁에 앉아, 간단한 안주와 함께 긴 시간 동안 두세 병의 술을 마시곤 하였다. 그러고도 아침이면 거뜬하게 일어나 뒷동산으로 달리곤 하였다. 나는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가 멀어지는 광경을 가끔 지켜보곤 하였다. 그럴 때면 묘한 서글픔 같은 것을 느끼곤 하였다. 마치 기차 철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달려도 우리는 좁아지지 않았다.

식당의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이 요란한 재즈 패거리들은,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잠으로 때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몇몇은 각자 휴대폰을 꺼내더니 다음 목적지를 부산하게 찾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끼리 쑥덕거리더니, 공론화된 그들의 뜻을 내게 전했다. 재즈바의 주소였다.

Comes Love

허름한 입구만큼 내부는 작고 단출하였다. 흐린 조명이 적갈색의 벽을 물들였다. 일행은 객석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몇몇은 벽에 기대거나 포개 앉았다. <September in the Rain>이 홀에 흘렀다. 갈색 머리의 여인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흥겨움이 절로 묻어났다. 일행은 벌써 드럼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이거나, 발을 바닥에 가볍게 두드렸다. 젊고 구부정한 백인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콘트라베이스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몇몇은 자신의 술잔을 홀짝거렸고, 가수로 보이는 흑인 여성은, 검은 파이프가 드러난 천장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그녀의 손에는 굵고 독특한 반지가 모든 손가락에 끼워져있었다. 요란한 장식의 팔찌와 목걸이도 그녀의 하얀 이빨처럼 반짝였다. 홀의 중앙에는 유난히 다정스러운 커플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이제 막 사랑의 열정에 빠진 듯, 서로를 손으로 감싸고 잠시도 쉬지 않고 서로의 살갗을 비벼대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순간은, 연주가 끝났을 때뿐이었다. 손뼉을 치기 위해서. 그 순간에도 그들의 눈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지 않아, 바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색소폰을 들고 홀에 나타났다. 그리고 가수는 무대 중간에 있는 마이크로 이동하였다. 그녀는 좌중을 빙 둘러보며 고개를 숙였다. 간간이 박수가 다시 터졌다. 드럼연주자의 신호에 따라 연주가 다시 시작되고 커플은 다시 붙었다. 익숙한 노래가 흘렀다. <Comes Love>. <Billie Holiday>가 부른 이 노래는 가사를 외우고 있는 거의 유일한 재즈곡이다. 안나의 베스트 곡이었다.

Comes love, nothing can be done.

“사랑이 오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요?” 그녀는 내게 이어폰을 건네며 그냥 흘리듯 속삭였다. 지독하게 노란 유채꽃이 세상을 덮은 4월이었다. 폭설이 유난을 떨었든 그해 겨울, 첫 만남을 지나면서, 우리는 벤치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로 음악과 소설 이야기였다. 그녀는 독일과 프랑스 작가에 푹 빠져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읽기를 원하는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행복했다. 오랜만에 삶의 기쁨을 느꼈다.

정말이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다. 다른 이들처럼.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일을 많이 하는 인간을 존경하는 사회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 삼시 세끼를 바깥에서 해결할 때도 많았다. 아침은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서, 마가린과 설탕이 범벅된 토스트로 때웠다. 점심은 직장 동료와 함께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저녁에는 고기 안주에 소주와 맥주를 함께 먹었다.

치열했던 직장생활은, 내 속에 남은 선한 마음을 뺏어갔다. 지나치게 긴 근무 시간과 냉담한 아내의 반응에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나중에는 너무 지친 나머지 고통과 행복의 경계선도 모호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즈음 무수히 많은 상상을 하곤 했다.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그즈음 나는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었다.

“팀장님 커리어에 비해 페이가 형편없이 작은데 괜찮으시겠어요?” 헤드헌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중소 온라인 게임 회사라 언제 문 닫을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한국과 비교하면 유럽 PC 게임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인지라…. 조금 더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투에 진심 어린 충고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절망적이었다. 무조건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우려대로, 내가 선택한 한국계 독일 회사는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산했다. 안나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남았다. 그녀가 두고 간 책들이 내 서재를 가득 채웠다. 외로움과 그리움, 행복했던 추억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공항에서 맞이한 손님들은 무척 빠듯한 일정이었다. 숙소 체크인이 끝나자마자 휴식도 없이 곧바로 시내 모처에 있는 한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저녁 겸 회의가 잡혀있었다. 나는 마인강 변에 있는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하였다. 준비한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나는 어슬렁거리며 강변을 걸었다. 얕은 바람이 잿빛의 강 수면에 잔잔한 물살을 일으켰다.

아내가 떠나자 나는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 동안 실업급여자 생활을 하였다. 일종의 방만한 자유를 누린 셈이다. 그러다 축구동호회 지인의 소개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놀면 뭐 해, 푼돈이나 벌지….” 축구장 옆, 오래된 소나무 아래 마련된 간이 식탁에, 각자의 맥주병을 들고 둘러앉은 회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그가 내게 말했다. 그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아들로 십 대 때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의 아내와 함께 통역과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개최되는 한인 축구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는 못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놈들이 꼭 주말만 되면 몰려와. 그 많고 많은 평일은 놔두고 말이여.” 그래서 그런지 모처럼 일없는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맥주 한 상자를 들고 축구장을 찾았다.

“영어는 좀 하지?”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며 “아, 네 조금은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속으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참 많은 시간 동안 영어를 해 왔지만, 아직도 나는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데 아주 답답하다.

학생 때는 물론 이려니와 첫 직업이었던 인스턴트커피 연구원 시절에, 나는 틈만 나면 영어 논문을 탐독했다. 프로그래머로 직업을 바꾸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웹 개발 신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각종 영어 아티클을 섭렵했다.

독일에서의 회사 생활은 또 어떠했는가? 사내 소통의 공통 언어는 영어였다. 스무 명 안팎의 조그마한 게임 회사였지만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주변 국가인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뿐만 아니라 그리스, 불가리아, 저 멀리 남미의 칠레 출신도 있었다. 독일의 막강한 경제력이, 국내 사정이 어려운 그들을 마치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미팅뿐만 아니라 인트라넷, 업무용 문서, 이메일, SNS 등 모든 것을 영어로 주고받았다. 줄곧 그렇게 해 왔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더듬거리며 영어를 할까? 도대체 나의 두뇌는 어디서부터 고장 난 걸까?

처음에는 용돈이나 벌어 보자는 속셈으로 가볍게 시작하였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며, 복잡한 프로그래밍 코드와 풀리지 않는 버그를 해결하기 위하여 머리를 쥐어짜던 예전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건 신선놀음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몸을 움직인다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인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하늘과 구름, 나무와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또한 대단한 기쁨이었다.

나는 유럽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발끝마다 마주치는 낯선 공간에 설렘과 신비로움을 체험했다. 겨울의 회색 하늘이 정겨웠고 여름의 짙은 녹음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비로소 자유를 만끽했다.

An Analog Guy In A Digital World

새벽 1시. 도로는 젖는다. 오래된 도시의 밤은 무관심하다. 어둠이 들면, 사람들은 서둘러 문을 닫고, 거리를 내 버려둔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바람. 적막함. 친근한 젖음.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경적. 노란 가로등 불빛 속으로 눈물 같은 비가 쏟아진다.

어둡고도 깊은 재즈바의 입구에서 일행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즐거움에 비실거린다. 그들이 발산하는 깊은 연대감이 부럽다. 껴안거나 치거나 건드리거나 웃고 달아난다. 비에 젖은 도로가 아주 기이하게 축 처져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멈칫거린다. 격자무늬 입을 한 차량이 끈적거리며 지나간다. 일행 중 한 명이 주저앉으려 한다. 그를 부축하는 나머지가 뒤엉킨다. 웃음과 묘한 함성이 터진다. 누군가는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비가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다. 허둥지둥 그가 다시 나온다. 파안대소. 제비꽃이 그려진, 붉은 벽돌집 테라스로 그들이 몰려간다. 인적이 사라진 거리. 비에 젖은 전단이 너덜너덜하게 구석에 처박혀있다. 그들은 담배를 주고받는다. 드디어 누비 잠옷 같은 잠바를 걸친 사람이 내게 비실거리며 다가온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한군데 더 갈 수 있을까요? 추가 요금은 드리겠습니다만….” 재즈 패거리의 리더인 그는 묘한 웃음을 띤다. ‘냉정하게 잘라야 해. 특히 마지막 날. 본전 뽑으려고 득달같이 달려든단 말이야.’ 선임 가이드의 예측대로 그들은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꼴딱 새울 생각이다. 나는 망설인다. 이 순간, 내 표정이 어떨까?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숱한 작은 것들로 이어진다. 순간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하다. 시간을 곱씹어야 한다. 서두르거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버리면, 하찮은 일들에 익숙해져, 어느새 잊힌다. 기억이 지워진다. 내가 사랑했던 그들의 모습이. 다만 조각만 달라붙어 빗물에 반사될 뿐.

“어디로?”

“...” 이번엔 남자가 망설인다. 그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배어있다. 빗소리가 강해진다.

“혹시 FKK라고 들어 보셨나요?” 잘 알고 있다. 택시 광고판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곳. 시내 대형 세움 간판에도 버젓이 추켜 올라가 있다. 젊은 음악가를 내내 사로잡은 욕망. 성욕. 젊은이여. 부끄러워 마라. 이방인이 맞이하는 마지막 날은 원초적인 욕망에 휘둘리게 되어 있는 법. 그래. 우린 서글프게도 인간이잖아. 당연하게도.

“네, 어느 FKK로?” Freikörperkultur (FKK). Free Body Culture. 나체주의. 독일 나체주의 운동의 한 가닥은 사우나식 매춘으로 변질하였다. 아니 바뀌었다.

“어느 곳이든…. 추천해주세요.”

로마풍의 아치가 입구를 장식했다. 간결하지만 정갈한 모습. 간헐적으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맞은편 거리는 은은한 불빛과 잘 깎여진 수목들이 정연하다. 꼭대기 합각머리에 검투사가 장식되어있다.

“같이 들어가시죠. 어차피 꽤 기다려야 할 텐데…. 입장료는 내드리겠습니다.” 리더는 어색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일행의 뒤를 따른다. 구부정하게 이어진 자갈길. 사각거리는 발소리. 담벼락 마디 끝에 장식한 불길이 일렁거린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젊은이들의 감탄이 이어진다. 천국이 따로 없다. 여인들은 모두 벗었다. 가까이 머물던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혹스럽다. 몇 안 되는 남자들은 수건만 걸친 채 앉아 있거나 돌아다닌다. 심장이 빨라진다. 시선은 끊임없이 사방을 맴돈다. 호사스럽게 장식된 하얀 천장. 각각 다른 각도로 조명하는 갈색 조명.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 모든 게 지금까지보다 더 강하게 파고드는 욕망. 과거 어느 시점에 딱 멈춰버렸던 것이 꿈틀거린다. 여인들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이쁘다. 주체할 수 없는 욕구가 내 발밑에서 딸각거리며 돌아다닌다. 늘 처져 있던 몸뚱이들이 달아오른다.

사우나에 들어선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심히 몸을 씻어 재끼더니 서둘러 빠져나간다. 혼자 남겨졌다. 흐린 거울에 닳고 더러워지고 주름이 잡힌 얼굴이 보인다. 세월처럼 늘어진 턱선. 포장 속 내용을 알아 버리자 갑자기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수건을 배에 두른 채 사우나를 빠져나온다. 나는 서둘러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는다. 감미로운 음악이 홀은 적신다. <Martin Roth>의 <An Analog Guy In A Digital World>.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앉거나 서 있다. 걷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는다. 돈과 욕망. 그리고 흥정이 이어진다.

모퉁이에 머뭇거리던 여인이 나체로 다가온다. 짙은 마스카라와 마젠타색 입술을 하였다.

“할로!” 그녀는 막 공허에서 깨어난 듯 몽환다운 미소로 말을 건다. 몸에 걸친 거라곤 팔찌와 달각거리는 슬리퍼뿐. 흥분이 컥 하며 숨을 막아선다.

“할로.”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문장(紋章) 속의 수선화가 그려진 우윳빛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에 일렁이는 야외 수영장 물결. 다리가 짧은 갈색 닥스 개가 벗은 주인 옆에 누워있다. 독특한 발걸음과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독일어가 전해진다.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그녀가 어색하게 몸을 뒤틀며 옆자리에 앉는다. 몸짓이 표현하는 끈적거림.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는 듯하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나는 비로소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투명한 푸른색 눈이 반짝인다. 빗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추억을 위해 나이를 먹어야 한다. 그녀의 눈이 마치 무지개처럼 느껴진다.

여름날 오후의 강렬한 빛이 세브르 찻잔에 담겨 있다. 안나는 우수에 빠졌다. 나는 삶의 잉여분을 탕진한 듯 나자빠져 있었다. 가늘게 흔들리는 연회색 커튼. 책장을 비추던 햇살이 흩날렸다. 안개처럼 가려진 곳에 그녀는 성난 듯 서성거렸다. 평온했던 시절을 다 써버렸다. 지나친 걱정, 무기력, 암울함이 다시 자랐다. 침대 위에 던져진 나들이옷.

“그냥 내내 그리웠어요. 지저분하고 번잡한 거리지만….” 여자가 뉴욕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녀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그곳으로 말이다. 빌딩으로 덮인 원경이 그려진다. 나는 그즈음 그녀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실재하는 갈등이 낳은 정적.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행복했던 시절은 지나치게 짧고 거북살스럽게 의미가 깊다.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딱 한 번. 한번은 보고 싶었다. 안나와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여름의 끝 무렵. 우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에서 차를 빌려 이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사흘째. 서쪽으로 가는 베르겐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다시 차를 빌렸다.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서.

오전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홀로 운전대를 잡았다. 안나는 호텔에 남았다. 룽게가르즈반 호수가 창을 뒤덮은 방이었다. 나는 검은 구름을 마주하며 질퍽한 국도를 달렸다. 속도를 한껏 높이고 스테레오 볼륨을 올렸다. <Black Sabbath>의 찢어지는 헤비메탈 사운드가 귓전을 때렸다. 창을 조금 열자 훅하고 비바람이 가차 없이 이마를 강타하였다. 빗물은 얼굴을 적시고 목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시렸다.

비구름이 거의 사라진 정오쯤에, 나는 푀르데로 접어드는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언덕길에 마침내 정차했다. 나는 여우비로 젖은 풀밭을 신발이 젖지 않게 사뿐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며 따라왔다. 이윽고 폭이 좁은 강의 굽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관목숲이 우거진 경사길 아래로 너울거리는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나는 마치 달걀처럼 독특하게 생긴 은색 빌딩을 기억하며, 이곳이 어머니가 보내온 사진에서 보았던 그 장소임을 되새김질했다.

나는 빽빽한 나무 사이로 난, 좁은 돌길을 한참을 지나 밝은 광장으로 나왔다. 중앙 광장에는 평범한 분수대가 있었다. 물소리가 났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이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에 실리는 낙엽, 테라스의 식기, 포크와 나이프, 사람들의 대화, 발걸음, 눈에 띄지 않는 자그마한 새들, 멀리서 울리는 경적. 애들의 웃음. 이들은 모두 속삭이듯, 소음들 사이로 섞이지만, 조금만 애를 쓰면,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아이의 웃음소리는 가장 명료하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 모든 소리를 종합 해 보면, 이곳은 유럽에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외진 시골이라는 것을 누구나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GPS가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는 그런 외진 곳 말이다.

나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후의 햇살이 사방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바람은 조용하고 나무는 풍성하고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었다. 덜컥이는 손수레가 지나갔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 남은, 낡은 미닫이문 소리와 흡사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맑은 어린이가 뛰어다니던 광장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손수레와 어린이, 카페 손님이 사라지자, 홀로 남겨진 나는, 마치 시간이 쭉 늘어진 듯, 모든 게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느림이 만드는 느긋한 기운이 커피를 준비하는 종업원의 익숙한 손동작이 가로지르는 곳에서 멈추었고, 바람은 점점 느리게 흐르다가, 잠시 죽은 듯 고이고는 다시 미정 된 곳으로 흐름을 이어갔다.

마침내,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서성거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심각한 그리움으로 인해 이상하게 기억에서 지워진 얼굴. 그녀의 나이 든 미소에서 나는 이모를 보았다.

“솔직히 당신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자의 손이 나의 허벅지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럼 다음에라도.” 여자는 수수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물러난다. 그녀의 뒷모습에 슬픔이 묻어난다. 금방 후회가 찾아왔다. 에둘러 말했어야 했다. 착한 거짓말 말이다. “조금 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거든.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라고 하든가 아니면 진실을 말하든가. “사실 나는 여행가이드야. 고객을 모시고 온 거였어. 준비한 돈도 없고 말이야. 미안해.”

그저 들뜬 기분에 이성이 마비된 듯하다. 감정이 순간적으로 곤두박질친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에게 모질게 한 일들이 가슴에 남았다. 그들은 변덕스럽게도, 우울할 때면 아프게 다가온다.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마치 이웃인 것처럼. 그리고 형식적인 포옹과 함께 헤어졌다. 무채색의 짧은 답변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매정하게 돌아섰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숨고 싶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과 벗은 채 있지만, 자신을 향한 경멸이 불현듯 느껴졌다. 나는 연약하게 매달려 있는 수건을 허리에 다시 한번 조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궁전의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숨기라도 할 듯.

어느 순간, 작고 마른, 그리고 왠지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내 곁에 머물렀다. 젊은 패거리들은 자신들이 정한 파트너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홀이 잘 보이는 어두운 곳에 머물렀다. 보고 싶음과 눈에 띄지 않음이 공존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다시 돌아서며 천장을 보거나 다시 쳐다보곤 하였다. 짙은 까만 눈동자. 그저 무언가에 관심이 있거나 끌고 싶은 빛의 실루엣. 미소 뒤에 보이는 외로움이 퍼지듯 펼쳐져 지나온 듯한, 애틋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윽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카타리나예요.” 여인은 자기 몸에 묻은 애액을 휴지로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특이했다. 키도 작고 가슴도 작았다. 까만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지녔으며 마르고 연약해 보였다. 그러니 인기가 없었다. 나와 조그마한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녀는 적어도 10명 정도의 남자에게 거절당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아시아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 궁전에 있는 유일한 아시안 여인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국적이 무척 궁금했다. 아니, 정확히 출생이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리 개방된 나라 일지라도, 매춘에 대한 의미는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인 것인 것만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무척이나 어렵사리 손님을 맡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내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하였으며 정사를 할 때도 무척이나 친절하였다.

나는 지갑에서 50유로 1장을 쥐었다가 다시 한 장을 더 쥐여 주었다. 그녀 얼굴 전체에 행복감이 걸렸다. 그 행복이 따스하다. 모처럼 만에. 왠지 그냥 헤어지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돌아섰다. 나는 무거운 발을 옮긴다.

수증기로 덮인, 사우나의 모퉁이를 돌 때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내게 명함을 쥐여 주고 간다.

“언제 한번 꼭 들러주세요. 꼭 요.” 명함에 적힌 곳은 마사지하는 곳이었다.

나는 여름이 오기 전, 그곳을 들렀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갔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긴 여행의 끝자락에는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이제 내가 사는 도시의, 몇 안 되는, 아는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그녀에게 딸이 하나 있다는 것뿐이었다. 마사지 중에 걸려 온 전화로 알게 된 게 고작이었다. 우리는 그저 눈을 마주치고 웃고 만지고 섹스만 할 뿐이었다.

Yumeji's theme

마침내 그들의 저녁이, 긴 시간 끝에 끝났다. 나는 이제 승객을 태우고 숙소로 향한다.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반달 모양의 호텔. 거리는 한산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투박한 야경이 길옆으로 펼쳐진다. 흐릿한 가로등. 젖은 도로. 인적은 사라졌다. 검은 가로수가 펄럭인다. 외로운 차들이 붉은빛을 밝히며 빠른 속도로 스치듯 사라진다.

승객들은 낯선 풍경에 무관심하다. 낮고 긴 톤의 대화가 이어진다. 익숙한 그들의 언어가 생소하게 들린다. 마치 서울의 사무실 하나를 옮겨 놓은 듯하다. 아무도 오랜 시간의 여행 끝에 도착한, 유럽의 도시에, 비 내리는 야경에 대한 호기심을 허락받지 않은 듯하다. 늦은 밤. 그들은 모두 진지하고 심각하다. 조용하던 대화는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점점 커지고 거칠어진다. 질책과 비난, 모호한 반론이 섞인다.

이윽고, 모퉁이를 돌아 호텔 정문이 보이는, 둥근 주차 공간에 차를 멈추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릴 준비를 하지 않는다.

“저 죄송하지만, 가이드 아저씨. 추가 요금은 드릴 텐데, 여기서 회의를 좀 더 하겠습니다.” 그들은 감히 안락한 방으로 가기를 주저한다. 서글픈 인간들. 석고처럼 단단한 얼굴. 그들의 이면을 집어삼키는 살아간다는 행위. 목적을 알 수 없는 구속. 죄송하게도 세상은 당신처럼 천천히 조금씩, 아무도 모르게 찢어지고 있다. 상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량한 안개 비가 내린다.

나는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린다. 빗방울이 얼굴에 내려앉는다. 백미러에 비친 그들은 온전히 일에 미친 사람이다. 워크홀릭을 삶의 최상위로 떠받드는 나라. 시간도 잊은 듯, 시차도 잊은 채, 오랫동안 그들은 좁은 차 안에서 격정적인 토론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어쩌면 몰아의 행복 같은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문하고 무거운 눈으로 미팅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서글프지만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림은 생각의 방향을 속으로 바꾸어 버린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흘려 놓은, 긴 그림자 속에서, 나의 유년 시절은 미지의 날들을 손꼽았다. 재회의 설렘. 하지만 시간은 그마저 흩어버렸다. 만남은 이별처럼 고통이었다. 그것은 우연하여도, 예정되어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켜켜이 고통을 쌓아둔다.

8일간의 이탈리아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두툼한 편지 봉투에는 낯선 주소의 생소한 이름이 찍혀있었다. 마치 기독교 선교 단체 같은 데서 보낸 책자처럼 느껴져 봉투를 뜯지 않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피곤함을 느낀 나는 책상 위에 편지를 휙 던지고는 샤워실로 향하였다.

그렇게 며칠 동안 나는 그 편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낯선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안녕하세요. 변호사 슈미츠라고 합니다. 통화가 가능하신가요?”

“네 가능합니다만 누구신지?” 나는 변호사란 말에 순간적으로 자동차를 떠올렸다. 작년에 뺑소니차에 연루되어 한동안 변호사 신세를 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 네, 저는 카타리나 씨의 유언 집행 변호사입니다. 카타리나 씨를 혹시 기억하는지요?”

나는 순간적으로 <유언>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혼란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독일어가 좀 서툽니다. 이해해주시고요. 하지만 유언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혹시 유언이라면….”

“아 네 먼저 그 말씀부터 안 드렸군요. 불행하게도 카타리나 씨가 4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죽었다고요?”

“네 고인이 되셨습니다. 혹시나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병으로 몇 년간 고통받으셨습니다. 일종의 신장 쇼크사로….”

가슴이 휑하니 사라진다. 나는 그날 밤, 그녀와 보낸 마지막 하루를 몸으로 끄집어내곤 한다. 새큰거리는 숨소리. 시계는 멈추고, 시간은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처럼, 애정을 담은 채, 간절하게 흐른다. 시린 무릎에 감긴 여인은 나직하게 웅얼거린다. 알 수 없는 말. 그러나 그녀가 내뱉는 탄성은 지루한 나를 깨운다. ‘삶은 그냥 딱 한 번이야! 그러니 그다지 미련스럽게 주저할 필요 없잖아.’ 부드러운 그녀의 손끝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으며 아래로 내려간다. 내 몸에 새겨진 길을 따라 환희가 번진다. 그냥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 속을 채우던 격정이 아낌없이 삐져나온다. 비틀고 뒤틀리고 쏟아진다. 방안을 채우는 격렬한 소리. 여자는 무섭게 안긴다. 그녀가 부르르 떤다.

세월은 내 기억에 대한 확신을 가렸다. 무엇이든 남겨진 것은 그리움뿐. 조각조각 그저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순간. 그 찰나는 이제 이슬이 되고, 엮이고 줄이 되어 비로 흘러내린다. 가닥 가닥을 수 놓은 후회 덩어리.

내가 봉투에서 꺼내 든 것은 낡은 일기장이었다. 중간을 펼치자 다양한 크기의 단어들이 여러 방향으로 그려져 여백을 꽉 채우고 있다. 불어와 영어, 독일어가 마구 섞였다.

나는 한 장씩 읽어나간다.

‘나는 사랑하고 널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은데…. 코제트야.’

나는 서둘러 다른 장을 이곳저곳 펼친다.

‘어쨌거나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거야. 코제트.

그러니 엄마를 애써 기억하는 수고는 하지 말길.

하지만 엄마의 진짜 이름 정도는 알아 두어도 무방하겠지.

박순임 (Park Soon Im)’

비가 5번 아우토반을 적신다. 낮이지만 어두운 거리. 나는 무언가에 끌리듯, 그 어두운 공간을 뚫고 간다. 마치 온전한 그리움으로 가는 느낌이다. 비가 창에 톡톡 튀며, 내 곁을 지나 빠르게 흩어진다. 나는 그저 외로움과 그리움에 합당하게 반응한다. 그건 세상이 내게 준 의미이자 비밀스러운 약속이다. 스치는 숲. 바람. 조각구름. 끝을 알 수 없는, 구부러진 길. 완곡의 산을 지나 소담스럽게 마주치는 작은 마을. 벽돌집. 골목과 성당. 카페와 사람. 그리고 추억.

누구든 그리움은 있는 거니까. 너 또한 그리움의 대상일 거야. 그리고 이건 아주 짧게 끝날 거야.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니까.

점점이 흩어지는 아름다운 여인. 어머니, 할머니, 이모, 아내, 딸, 안나 그리고 순임. 나는 그저 이방인의 도시에 남아 거리를 달린다. 흐름에 떠내려갈 뿐. 그리고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지그문트 거리의 카페에 다시 왔다. 변호사의 편지에 적힌 그곳. 박순임의 딸, 코제트가 입양된, 그 집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나는 지금, <우메바야시 시게루(Shigeru Umebayashi)>의 <유메지의 테마(Yumeji's Theme)>를 듣고 있다.

내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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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Svefn-g-englar - Sigur Ros

Take me somewhere nice - Mogwai

This will destroy you - Quiet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 Explosions in the Sky (앨범명)

Breath - Mad Soul Child

Nothing Compares 2U - Sinead O'Connor

The Look of Love - Diana Krall

September in the Rain

Comes Love - Billie Holiday

An Analog Guy In A Digital World - Martin Roth

Yumeji's Theme (유메지의 테마) - Shigeru Umebayashi (우메바야시 시게루)


언급된 아티스트:

Rammstein

Black Sabbath

Diana Kr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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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r8xDSPjII8?si=D5vslhYCaA-x3Khb

나는 오늘 죽었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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