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황금의 저주와 제국의 민낯: 베네수엘라 사태를 통해 본 힘의 논리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라는 뉴스는, 현대 문명이 표방해 온 ‘국제법’과 ‘주권 존중’이라는 얇은 베일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표면적으로는 독재 타도나 민주주의 수호, 혹은 지역 안보라는 명분이 내걸렸을지 모르나, 그 이면에 흐르는 본질은 명백히 물질에 대한 탐욕, 즉 석유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의 침탈이다. 이는 21세기의 지정학적 비극이자, 인류 역사를 관통해 온 ‘힘의 논리’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는 서글픈 사례다.
첫째, 이번 사태는 ‘자원의 물신화(Fetishism)’가 인간의 존엄과 국가의 주권을 압도한 결과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의 혈관을 흐르는 피이며, 패권을 유지하게 하는 권력의 원천(Arcanum)이다.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량은 그들에게 축복이 아닌 ‘자원의 저주’가 되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자본은 이윤이 보장된다면 어떠한 범죄도 서슴지 않으며, 심지어 전쟁마저 불사한다. 제국에게 있어 베네수엘라는 하나의 주권 국가가 아니라, 확보해야 할 거대한 ‘주유소’로 격하되었다. 이는 인간과 공동체를 자원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도구적 이성의 폭력이다.
둘째, 이번 침공은 ‘정의의 독점’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강대국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보편적 정의로 포장하는 데 능하다. 고대 아테네의 투키디데스가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겪어야만 하는 것을 겪는다”고 갈파했듯, 국제 정치의 현실은 여전히 멜로스 회담의 잔혹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이 내세우는 ‘개입의 정당성’은 사실상 ‘힘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를 유지하기 위한 기만술에 불과하다. 진정한 정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압도적 무력으로 강요된 질서는 평화가 아닌 굴종이다. 이는 칸트가 꿈꾸었던 ‘영구 평화’의 이상이 자국 이기주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셋째,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국경을 넘어 어떻게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보여준다. 경제 제재로 피폐해진 국민의 삶을 구원하겠다는 명분으로 군화발이 들어서는 이 아이러니는, 병을 주고 약을 파는 제국의 모순을 극명히 드러낸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외부의 물리적 폭력 앞에서 휴지 조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침공은 석유라는 물질적 토대가 어떻게 정치적 상부구조를 집어삼키는지 보여주는 비극적 실례다. 우리는 이를 단순한 뉴스 속 전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자원과 패권을 위해서라면 타자의 생존권마저 유린할 수 있는, 야만의 얼굴을 한 현대 문명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침탈 앞에 무력한 베네수엘라의 현실은, 정의보다 이익이, 사람보다 자원이 우선시되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잠재적 난민임을 경고하고 있다.
2026년 1월 3일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남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