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문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바람이 곁을 지킨다. 속삭이듯 연하고, 수줍은 듯 주춤거리며 다가오다 문득, 부드럽게 어루만지다, 멀어진 듯하더니 다시 돌아온다.
강을 품은 바람 냄새가 나곤 해요. 인적이 드문 골목에 서면 확연히 느낄 수 있어요. 좋은 냄새 말이에요. 당신에게 주고픈 향기 말이에요.
너무 차갑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늘 당신은 그게 걱정이죠. 알아요. 선한 마음은 그냥 아무 말 없음에도 묻어나곤 하죠. 하물며 우리가 본적도 만난 적도 없지만 이렇게 따스함을 느끼잖아요.
분홍빛, 노랑, 하얀색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이 휘다 반듯하고, 좁았다 넓어지기도 한다.
그냥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니죠. 익숙한 곳이지만 늘 새롭게 나타나죠. 미처 보지 못한 것일 수도 혹은 그냥 내 기억에 사라진 것들도 있겠죠. 어쩌면 조물주가 장난삼아 하나 정도는 살짝 순식간에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고요.
신의 존재를 믿는가요?
아뇨, 믿지 않아요. 그냥 우연히 태어났고 그렇게 사라질 거로 생각해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이것도 머릿속 어딘가의 화학작용에 기인한 결과일 뿐이죠.
그거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닌가요?
아뇨, 오히려 반대로 편안해요.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가장 거추장스러웠던 남들의 시선도 이젠 다정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규칙, 규정, 관습, 걱정, 불안, 미련 같은 용어들이 제게 남지 않아요. 그 대신 늘 사랑을 꿈꾸죠. 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고요.
그리움이 가슴을 옥죈다. 걸음 마다에 갈증이 붙어있다. 한패의 남녀가 쾌활한 웃음을 흘린다. 정감을 담은 눈길이 마주치고 미소가 뒤를 따른다. 행복을 품은 인사가 다가온다.
할로. 할로. 할로.
좁은 골목이 끝나고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물소리가 들리고 다양한 소음이 퍼진다. 요란한 분수대가 나타났다. 제냐의 모습이 영상 속에 펼쳐진다.
햇빛과 반사되는 물안개 속에 그녀는 환한 미소로 삶을 즐긴다. 따사로운 여름 햇살. 그녀는 튀어 오르는 물방울 속에서 짓궂은 표정으로,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쾌활하다.
도시에 오면 꼭 이 분수에 들러 주세요.
꽤 독특하군요.
재밌고 신나요. 혼란스럽고 산만하잖아요. 어릴 적 제 방처럼요. 어쩌면 질서정연함은 우주의 근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것은 대혼란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물론 제 머릿속은 아직도 혼돈으로 가득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놀랍도록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요. 제가 이렇게 되리라곤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요?
그녀는 가슴을 출렁거리며 한껏 요염한 뒤태를 보인다.
이 영상 저를 위해 찍은 거는 아니겠죠?
하하하. 물론 아니에요. 당신을 알기 꽤 오래전에 촬영했거든요. 제 동생의 손과 풋풋한 미소를 보세요? 지금은 아주 징그럽게 커졌어요. 냄새도 나고요. 하하하. 정말이지 징글징글하게 말도 안 듣고요.
화려하고 복잡한 로코코 양식 위에 걸터앉아 무진장하게 넓고 잘 정돈된 정원을 배경으로 소녀는 무척 밝게 웃고 있다. 그러다 어느새 시장 짚단 속에, 푸석한 먼지에 파묻혀, 낡고 오래된 것들에 둘러싸여, 흐린 미소를 보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