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4, #5

by 남킹

4.




나는 화상 채팅 사이트에 2년 정도 근무하고 사표를 냈다. 나 스스로 사표를 던졌지만 내심 원하지 않던 거였다. 좀 더 정확히,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냈다.


사내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그만둘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쉬움은 컸다. 빵빵한 월급에 차와 아파트가 제공되었고 보너스도 자주 나왔다.


한마디로 내 능력 이상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엄연히 음란 사이트였고, 음란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여전히 완고했다. 뭐 미국이나 유럽 같았으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드러내 놓고 하였겠지만 말이다.


사표 쓰기 3개월 전,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남쪽 지방의 모 사이버 수사대가 우리 사무실을 급습한 것이다. 우리 사무실은 서울에 있었지만, 사이버 수사대는 관할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회사의 메인 서버와 주요 간부들의 노트북 그리고 서류들이 모두 압수당했다. 물론 나의 노트북 2대도 포함되었다.


사장은 즉석에서 체포되었고 직원 대부분은 며칠 내로 참고인 조서를 받으라는 출석 요구서가 주어졌다.


생애 첫 경찰서 출두 명령서.


나의 대학 시절, 신군부 시절 한가운데에 있던 그때, 남들은 앞장서서 데모할 때, 나는 하는 척 꽁지 따라 다니다, 적당한 때 슬그머니 사라지며, 요리조리 전경들 눈을 잘도 따돌렸었다. 하지만 나의 미꾸라지 인생에도 이런 날이 결국 찾아오고 말았다.


모두 세 번의 조서를 받았다. 뭐 조서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경찰은 우리 사이트의 모든 부분을 다 캡쳐해서 인쇄한 두툼한 종이 뭉치들을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며 질문하였고,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네’라고만 답하였다.


숨길 것도 없었고 거짓도 없었다. 돈 만 있으면 아무나 들어와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숨겨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두 번의 조서는 일주일 간격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조서는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두 달 뒤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 조서 끝에, 담당 경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러준,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참고인 조서 자주 받다 보면 언젠가는 본인도 걸려 들어갈 수 있어요. 이쯤에서 손 떼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뭐 이 정도 스펙이면 요즈음 어디 가나 대우 잘 받잖아요?


인터넷 세상인데. 안 그래요?”




5.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나는 푹신하기 그지없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거의 세 시간을 버그잡이에 열중했다. 눈이 뻐근해 오고 졸음이 몰려왔다.


휴지통과 빈 캔에는 담배꽁초가 넘쳐난다. 도시의 경적은 줄어들었지만 한 번씩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훨씬 선명하게 들려온다.


나는 지금 우리 팀이 짜놓은 코딩을 진득하게 쳐다보고 있다. 남들이 짠 프로그램 코딩을 해석하기란 적지 않은 인내를 요구한다.


문득 이해 안 될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각자의 개성이 한없이 묻어나 있다. 프로그래머 집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독특하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뭐 어딘들 안 그렇겠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간부터 타협 불허 인간, 4차원 인간들까지 그야말로 인간군상들이다.


프로젝트 시작 전, 우리는 최대한 많은 부분을 표준화시켜 혼란을 최소화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론을 시도해 보지만, 기획 단계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적 풍토에서는 그저 사치스러운 일뿐이다.


우선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우선 만들어놓고 그다음 무수하게 쏟아지는 버그들을 잡아 드린다.


<땜빵>


나는 이 용어만큼 우리를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한다.


빵구난 곳을 땜질한다.


우리는 프로그램의 질이나 생산성 혹은 확장성 같은 사치스러운 용어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그저 구멍 난 곳을 메꾸는 중인 것이다.


그렇게 비몽사몽 간을 헤매며 버그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중에, 디자인 팀장이 씩씩거리며 찾아 왔다. 새벽 3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사장에게서 어느 정도 언질을 받았다. 고객이 디자인 교체를 요구해 온 것이다. 그것도 메인 디자인을 말이다.


내일모레면 오픈인데, 고객사 회장이 직접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80대 할아버지이신 그분의 표현을 빌자면 ‘너무 야하다는 것’ 이다.


송 팀장은 오자마자 나의 무릎에 털썩 쓰러지듯이 눕더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종합세트로 내뱉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인 디자인 수정 요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정도야, 약간 까다로운 고객을 만나면 겪는 일들이므로 수긍할 텐데, 이번 건은 이미 다섯 번째 요청이다.


과장 선에서 한번, 부장 선에서 또 한 번, 이사도 요청, 사장도 요청 이젠 회장까지 요청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간부를 충족하는 디자인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에 오픈하는 사이트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쇼핑몰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주 이상하게도, 인터넷은커녕 타자기도 귀하던 시절에 젊음을 보냈던 분들이, 홈페이지 디자인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마치 트로트 세대가 힙합을 논하는 거와 흡사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프로그래밍 부분에는 그다지 말씀이 없으시다는 거다. 왜냐? 모르니까. 하지만 디자인은 누구 하나 한두 마디는 꼭 거든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그 주장은 강하고, 강함에 비례하여 디자인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송 팀장은 우리 사장도 싸잡아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중요한 고객이라도, 사흘 후에는 오픈인데 당연히 거절하여야 할 상황이고, 또 거절할 의무가 있는 데도, 사장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수정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직원이야 죽어 나가든 말든, 집을 못가던 말던, 자기 잇속만 챙기면 된다는, 고약한 심보에 울분을 토하는 거였다.


이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뭐가 있겠는가? 나는 그저 그녀를 꼭 껴안고 그렁그렁 거리는 불만을 가만히 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의 울분이 지나갔다.


나는 손끝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살살 만지고 있었는데, 그만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동시에 숨소리가 커지는 것도 느꼈다.


그녀는 이제 말을 잊었다. 어느새 내 방엔 적막이 흘렀다. 호흡 소리만 들려왔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응시하고는 손가락 하나를 위로 들었다.


나는 송 팀장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은 맑았지만, 별은 보이지 않는다. 새벽 4시가 되었지만, 이곳, 도시의 한복판은 여전히 휘황한 네온사인 숲이다. 우리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출구 맞은편 환기구 틈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딱 1평쯤 나오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처음 이곳을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가을이었고, 둘 다 거의 토하기 직전까지 술을 마신 상태였다. 건너편 막걸릿집에서 회식하였고 둘이 동시에 토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며 각자의 흔적을 모서리에 남겼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이미 겨울이 지나 있었다. 처음과 달리 우리는 이곳을 황급히 뜨지 않았다. 오히려 쾌락에 몸을 맡긴 채 짙은 키스와 섹스를 즐겼다.


누군가 불쑥 나타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의 새벽은 온통 다양한 색으로 밝았지만, 이곳은 높은 빌딩 사이에 짙은 그림자를 품었고, 미로같이 좁은 길을 따라 난 공간을 알고 있는 이는 오직 우리 둘뿐이었다.


게다가 밖의 소음은 우리의 소리를 차단했다.


우리는 각자의 속옷을 젖히고 본능이 선사하는 선물에 몰두했다. 그렇게 각자의 성기가 얼얼해질 때쯤,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내가 발견한 버그를 다 잡은 뒤, 지상에 널려 있는 24시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지하 사우나로 향했다.


뜨거운 건식 사우나에서 땀을 쪽 빼고 나는 냉탕에 몸을 풍덩 담갔다.


출렁거리는 뱃살이 물결에 흐느적흐느적했다. 익숙한 즐거움이 찾아 왔다. 나는 일렁거리는 물결 속에 눈을 뜬 채 아내와 자식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수면실로 향했다. 문을 열면 언제나 특유의 기분 나쁜 곰팡내가 풍겼다. 자리를 잡기 위해 적당한 곳을 살피던 나는, 구석에 엎드린 채 옅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책을 읽고 있는 사장을 발견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렇게 사우나에서 마주치곤 하였다. 나는 애써 못 본 척하려고 돌아서려는데 사장이 먼저 알아채고 손을 흔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곁으로 갔다.


나체인 사장의 배는 볼 때마다 더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사장 옆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전신의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몇 분간을 뒤척이다 나는 곁눈으로 사장을 봤다.


어느새 그는 잠들어 있었다. 남산만 한 배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나는 사장이 읽다 만 책을 어둠 속에 찬찬히 살펴봤다. 얇은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들어 벽에 깨알 같이 붙은 작은 전구에 천천히 대어 봤다.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은 표지였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묘한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서 올라왔다.


사장의 자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가는 것도 같았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잠이 들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누워 있었다. 이젠 집보다 더 익숙한 사우나 수면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오늘은 꼭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끝 -


하니은 매화 (3).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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