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Richter - Mercy

음악, 상념

by 남킹

https://youtu.be/uWrc6ihmaE0

한참을 달렸다. 그동안 바람 소리와 낡은 타이어가 내는 신음만 들려왔다. 나는 내 머리에 남은 낡은 추억들을 들추려고 애를 썼다. 기억은 사람들이 고독이라고 말하는 고통을 이겨내는 야릇한 피난처와 같았다. 나의 행복은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어느 날 밤까지만 이어진다.


그날 밤, 아버지는 모든 문을 잠그고, 창문을 두꺼운 판자로 가렸다. 그로부터 세상이 회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렸고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나는 심한 탈수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그저 누워만 있었다.


지독한 졸음이 몰려왔다. 거의 비몽사몽간을 헤매며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길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6시간을 달렸지만, 아직 차 한 대 보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주위에 무엇인가 움직인다는 것은 곧 긴장을 나타냈다.


마침내 도시로 접어들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여전히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높은 빌딩들이 옆을 스친다. 한때 세상의 중심이었던 곳. 기고만장한 인간들의 요란한 놀이터. 하지만 이제 지푸라기보다 약한 존재가 되었다. 낡고 앙상한 빌딩 사이로 붉은 회색빛이 암울한 도시를 덮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차를 외진 곳에 세웠다. 그리고 서둘러 칙칙하고 어두운 곳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시야를 확보하고 나를 숨길 수 있는 곳.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사이를 비집고 솟은 녹색 생명을 생뚱스럽게 쳐다봤다. 인간이 만든 재앙을 극복하는 그들을.


곧 어둠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밝아 올 때 나는 서둘러 출발했다. 짙은 구름은 여전하고 바람도 거세었다. 나는 최대한 나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먹다 남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모두 땅에 묻었다. 그리고 돌과 건초를 주워다 주위에 듬성듬성 뿌렸다. 모든 게 자연스러워야 했다. 인위적인 흔적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나를 지워야 내가 산다.


침울하게 뻗은 도로. 먼지가 더디게 몰려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뼈다귀만 남은 건물 사이로 지평선을 바라봤다. 벙커 같은 언덕은 회색빛 햇살로 덮였다. 모든 것이 정지된 낡은 그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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