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포스

바다가 있는 사진

3

by 남킹

3.




나는 내 삶의 에필로그를 고향 섬에서 그려내기로 무수히 작정했다. 비릿한 바람결에 언덕을 하나만 넘어도 짙푸른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진 곳. 그 바다에 점같이 박혀있는 크고 작은 배들. 바람과 갈매기. 굳이 설렐 것 없이 늘 눈만 들면, 내 앞에 놓인 투명한 하늘. 그 하늘이 맞닿은 같은 색의 바다.


나는 수평선 위아래로 엷게 펼쳐진 구름을 본다. 그리고 바닷냄새. 그 냄새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잊히기는커녕, 더욱 두텁고 딱딱하게 내 그리움의 생채기에 더하였다.


그리고 바다가 온전히 푸름과 붉음으로만 대비되는 동터오는 여명. 그 새벽의 스산한 바람이 손바닥만 한 창을 토닥토닥 두드리면, 나는 잠결에, 어른거리는 꿈 자락을 뒤로한 채, 불어 터진 오줌보를 부여잡고, 비실거리며 꿀렁거리는 비닐 장판에 놓인 요강을 찾았다.


그때쯤이면, 아버지는 이미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무 타는 냄새로, 또 하루를 시작하였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 그르렁 가마솥 뚜껑 여닫는 소리. 모락모락 피어오른 구수한 밥 냄새. 나는 누운 채, 가려운 엉덩이를 손으로 긁적이며 입맛을 다신다.


학교가 파하면 마을 안길을 걸어 남루한 옷의 친구들과 포구에 닿아,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생선 비린내에 취하고, 일렁이는 물결에, 흔들거리는 돛단배에 어지러움을 더해도, 검은 돌 들춰내어 황급히 달아나는 엄지손톱만 한 게나 보말을 잡아 빈 도시락에 한가득 채우고선, 애당초 슬픔이란 존재 하지도 않는 듯이 까불고 장난치며 보내면, 어느새 바람은 세지고, 따갑기만 하던 햇살도 비실대면, 그제야 생각난 듯 서로의 집으로 흩어졌다.


나의 유년 시절이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으로, 긴 우회 끝에 결국, 나는 돌아가고 있다. 팽팽했던 청년은 이제 목덜미에 주름살이 깊게 팬 중년으로 변했다. 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볼록 나왔다. 눈은 흐리고 굵은 돋보기안경이 걸쳐졌다. 이마에는 따가운 햇볕이 그려 놓은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다. 청년의 얼굴은 사진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변한 건 내 고향도 마찬가지다. 나의 동네는 더는 내 기억을 확인시켜 줄 만큼 변하지 않은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느꺼운 기분에 앞서 이질감이 맴돌았다. 나는 고향 땅을 밟지 않고도 구글 맵을 통하여 내 유년 시절의 마을을 이미 샅샅이 뒤졌다.


내가 살던 집은 회색과 갈색으로 치장한 세련된 호텔로 바뀌었다. 사실 이곳이 내 집터라는 것을, 위성 사진과 주변 사진을 수십 번 확인한 끝에 겨우 알아챘다. 내 집을 둘러 병풍처럼 늘어선 솔숲은 절반은 깎여 잔디가 되었고, 나머지는 호텔을 수식하는 조명을 치렁치렁 단 모습으로 장식되었다.


호텔 입구 테라스에 목재 원형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파라솔이 일렬로 쭉 늘어선 광경이나, 단아한 색을 입힌 발코니의 사진은, 내가 수십 년간 떠돌던 이국땅의 풍경과 똑 닮아 있었다. 주변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바다와 산을 제외하고 바뀌지 않은 모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도 돌아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 낯선 얼굴의 내가, 맞닥뜨릴 기대와 우려를 뛰어넘는,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한쪽을 회한의 그리움으로 항상 무겁게 눌러주던, 처음으로 마음이 가던 여인. 바다를 배경으로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하니은 매화 (53).jpg
떠날 결심 _ 표지 앞면 2.png
남킹 _ 43.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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