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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울컥거리며 눈물을 쏟았지만, 예상대로 운전사는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 흔한 인사말 <당케>라는 말 한마디 없이 헤어졌다. 덕분에 나는 팁을 아꼈다. 그리고 차 바닥에 흘린 콧물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여행용 가방을 끌었다. 이마와 얼굴, 어깨에 쏟아지는 빗물이 차가웠지만 따스하다고 느꼈다. 고개를 들어 빗물에 흐린 눈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시멘트 빛 하늘 사이로, 항공기들이 짙은 연무를 달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어쩌면 이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연이 끝나가고 있었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갈기고 달아났다. 나는 폐부 깊숙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치 담아두기라도 하듯.
익숙한 곳이지만 오랜만에 공항에 왔다. 하지만 달라진 곳이 별반 없으므로 여전히 안락하고 느긋했다. 30년간 몸에 착 달라붙은 습관대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 맥도날드에서 값싼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한 층 내려와 서점 앞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고, 다시 내려와 출국 절차를 밟았다.
수속을 마친 나는, 독일에서의 마지막 문자를 딸들에게 보내고, 홍콩 경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나이 스물에 홀로 섬을 떠난 나는, 서른에 한국을 떠났고, 육십이 넘어 다시 혼자 고향 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며칠 만에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행 버스에 올라탄 게 마치 엊그제처럼 선명하다. 무수하게 많은 초록색 나뭇잎들이 차창을 스쳤고 시리도록 하얀빛이 도로에 가득하였다.
돌아보면, 사랑, 청춘, 미래, 기대, 희망 같은, 딱히 정의하지 않아도 설레는 단어들 속에 싸여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죽음, 불안함, 늙음, 그리움, 후회, 빈뇨증과 강박신경증을 안고 돌아왔다. 내 앞에 드리워진 어슴푸레한 땅거미를 보는 것이다.
비행기는 천천히 움직이며 활주로 출발선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설핏 밝은 햇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짙은 안개가 몰려왔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독일 날씨는 떠나는 날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삽시간에 세상이 회색으로 덧칠해졌다. 바람과 거친 빗방울이 거세게 창을 두드린 공항 대기실에서의 불안한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 몽환답기까지 하였다.
점멸등이 길쭉하게 세로로 반짝이며 흐린 시야에 잠시 들어왔다 이내 사라졌다. 공항 터미널 빌딩은 어른거리는 흔적으로만 남아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지독한 굉음이 시작되었다. 기체는 빨라지고 동시에 흔들렸다. 그리고 나의 어깨도 등받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몸은 기울어지고 긴장감이 솟구쳤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언제나 비행은 두려움으로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구름 위에 올라섰다. 그곳은 평온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조금 전의 혼란스러움을 생각하면 계면쩍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