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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가 처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독일에 머문 지 3년째였다.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회사의 영업과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날이었다. 그 당시 회사는 독일어와 불어,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통역할 수 있는 외국인을 오랫동안 구하고 있었다.
나는 금발에 파란 눈, 육중한 몸매의 통역사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전형적인 아시아인이었다. 자그마하고 비쩍 마른 외형에, 막 휴가에서 돌아온 듯, 까맣게 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 급히 그녀의 이력서를 다시 훑어봤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뿐만 아니라 나머지 내용에서 한국인 혹은 아시아계라는 단서가 될 만한 어떤 내용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성장하였으며, 독일에서 대학을 나와, 최근까지 영국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당연히 예상한 듯 유창한 독일어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이번에는 영국식 영어로 재차 설명하였다. 자신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되었으며, 자란 곳이 독일과 국경을 접한 <알자스-로렌> 지역인데, 이곳은 한때 독일 점령지였기에, 자연스레 독일어에 능통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최근 약 3년 동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 전역에 여행하듯 두루 살았다고 하였다.
“많이 돌아다녀야 할 텐데 괜찮을까요?” 나의 첫 질문이었다.
“그래서 지원했어요.”
우리는 그녀의 기대에 호응하듯 유럽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절단 혹은 연마 제품을 유럽의 기업체에 팔러 다닌 것이다. 한 달에 이십일 정도는 길에서 보냈다. 가까운 곳은 차로, 먼 곳은 비행기로 다녔다. 먼 곳에 갈 때가 더 많았다. 어느새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집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곳이 되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호텔 방을 따로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나타난 한적한 외곽의 시골길에 우리는 차를 멈췄다. 울창한 숲에 비교해 아주 작은 팻말이 이곳이 공원 입구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우리는 막 계약을 끝낸 상태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하늘을 덮을 듯, 높은 자작나무 사이로 좁은 길이 끝도 없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처녀림의 호수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마주 보고 미소를 보냈다. 행복감이 몰려왔다.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내 곁의 여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호수길을 따라 온갖 모양의 버섯, 작고 달콤한 산딸기,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베리들이 행인을 유혹하였다. 그녀는 익숙한 듯, 산딸기와 베리를 따서 한 움큼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가 까매지는 것을 지켜봤다.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더는 욕망의 랩소디를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향한 나의 주체 할 수 없는 끌림을 묘파하고 말았다. 아내의 손을 처음 잡았다. 그리고 간절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날 이후, 우리는 호텔 방을 하나만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