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시포스

바다가 있는 사진

프롤로그

by 남킹

하늘을 닮아 푸르게 상처 난 바다.

여인은 바다에 사진을 새기고 나는 사진에 바다를 간직한다.




프롤로그




택시는 오전 8시 정각에 도착했다. 나는 2층, 내 방 창가에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휴대전화의 벨 소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운전사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멍하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짐가방을 들고 계단을 통하여 1층으로 내려갔다.


운전사가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여 뭔가를 하였다. 그러자 트렁크가 자동으로 서서히 올라갔다. 그는 아주 귀찮은 듯,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와, 나의 짐 일부를 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그는 적어도 육십은 넘어 보였다. 머리카락은 대부분 빠져 있고 턱수염은 은색으로 덥수룩했다. 퀭한 눈과 무표정한 모습 속에 전형적인 독일인의 무뚝뚝함이 묻어났다. 나는 직감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이런 사람은 공항으로 가는 내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을 타입이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지금 누구하고 말할 기분이 아니다. 더구나 낯선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흐린 하늘이었다. 택시가 5번 아우토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빗방울이 창에 톡톡 부딪히며 빠르게 옆으로 흘러내렸다. 도로는 한산했고, 양옆으로 펼쳐진 완만한 언덕에는 노란 유채꽃이 눈이 부시도록 펼쳐졌다. 매년 보는 익숙한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올라왔다.


독일에 온 그해 겨울, 어렵게 구한 월세방에서, 나는 지겹도록 많은 눈을 맞았다. 자고 나면 온통 하얀 세상. 밤이 이슥해져도 환하게 밝은 풍경. 마치 동화 속 산타 마을 같은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가올 봄에 펼쳐질 금빛 세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내 집 베란다 바로 앞에서 말이다.


적당히 외진 곳에 있는 나의 보금자리는, 처음에는 밀밭 한가운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옥수수밭이 되었다가, 별안간 유채밭으로 둔갑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서른 번도 넘는 봄이 빠르게 스쳐 갔다.


그러는 사이, 애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짝을 만나 독립하였으며, 나는 재작년에 은퇴하였다. 내가 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병세가 절망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년 봄, 유채 향기가 절정을 이루던 즈음에, 결국 내 곁을 떠났다.


아내는 마지막에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같이 살았지만, 그녀는 낯선 이를 대하듯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나는 그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면, 솔직히 그 고통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어린애가 되어, 잠을 자듯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뒀다.


신의 땅 물의 꽃.jpg
남킹 _ 2.jpg

https://linktr.ee/namki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람개비 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