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젠타 입술
돈이 아닌, 애정으로 매달렸던 모든 직업에서, 어떤 순간이, 즉 다가오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이끌려가는 듯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대부분을 길에서 보낸다.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 온갖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500m도 안 되는 지극히 짧은 거리. 그들이 던져 놓고 간 동전은 일종의 감사 헌금이다. 하루를 더 산 대가치곤 꽤 쏠쏠하기도 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결국, 아무것도 아님.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나는 기타가 내는 음색의 향연에 부풀어, 감정의 골짜기에서 그저 헤매듯 취해있으면, 오줌 냄새에 찌든 홀에서, 술 취한 관객 몇이 빈정거리거나, 모퉁이 광장에서 코흘리개 어린이 몇몇 앉혀놓고 코믹한 연주를 하던, 그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모든 예술은 사라진다. 모든 인간은 사라진다.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 당신이 하는 이 모든 행위는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진다. 그게 진리다.
가끔 멍청한 녀석들이 만 원짜리 지폐를 던져주곤 한다. 정돈되지 않고 추하고 안정되지 않은, 소음에 가까운 나의 연주에 무슨 심오한 예술작품 대하듯 한다. 물론 그들은 던져 준 금액만큼의 보상을 받는다.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인가에 기부한다는 선량한 마음 말이다. 그가 온갖 범죄를 저지른 악한일지라도, 돈을 툭 던져주는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선한 기분이 들고, 그러한 마음은 항상 즐겁기 마련이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좁고 울퉁불퉁한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놀이터 경계를 가르던 마로니에 나무는 작년에 베어지고 밑동만 남았다. 마로니에 열매를 밤인 줄 알고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가 해마다 발생하자, 어느 날 구청 직원이 나와 잘라버렸다. 이제 봄을 채우던 탐스러운 분홍빛 꽃은 순전히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나의 한 손에는 미자의 오른손이, 다른 손에는 라면과 달걀, 파와 햄이 든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통장의 잔액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나는 비로소 어정쩡한 아이템 구매와 불필요한 소비에 냉담해질 수 있었다. 꾀죄죄하고 낡은 건물들이 삐쭉하게 들어선 낮은 언덕을 오르며, 나는 텅 빈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척 가늘어진 햇빛을 모두 받고 있다. 지독한 황사가 물러가자 더위가 찾아왔다. 헐떡거리는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온다. 얇고 헐렁한, 목이 파인 겨자색 반소매 셔츠에서 쉰내가 올라왔다.
“제발 집 좀 옮기자!” 여자가 헐떡거렸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에 파다하게 송골송골 맺혔다.
방안의 모습은 어제와 다름없다. 당연하게도. 펄럭거리는 하얀 커튼 사이로 마지막 빛이 춤춘다. 춤추는 건 미자의 담배 연기도 있다. 그녀는 가느다란 담배 끝을 위태롭게 잡고 연기를 창으로 훅 뿜었다. 몽글한 구름이 삐죽 열린 창을 들이박는다. 늙은 오후가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걸터앉았다. 내가 이불을 개어 한쪽 끝에 두자 그녀는 창을 닫았다. 담배를 비벼 끄고 출렁이는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본다.
“도대체 언제까지 라면으로 때울 거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노란색 하트가 새겨진 헐렁한 셔츠 사이로 젖꼭지가 봉긋하다. 여자는 책상 구석에 놓인 영양제를 발견한다. 그리고 짙은 갈색 병을 들어 양을 조사한다.
“그동안 오메가3 하나도 안 먹었네. 어휴! 챙겨줘도 소용없다니까!” 그녀의 선물이다. 여자는 뚜껑을 열고 두툼한 캡슐 2개를 손가락으로 꺼내 꼴깍 삼키고 생수를 한 모금 마신다.
“나라도 먹어야지.” 여자는 약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보이면 닥치는 대로 삼키고 본다. 그녀는 백에서 스프레이를 꺼내 입속에 칙칙 뿌리고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나는 눈만 뜬 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디선가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녀의 체취에 취한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반듯한 원룸으로 옮길 때까지.”
“뭐?”
“아, 라면.”
“살이 좀 빠졌네.” 찬찬히 살펴본 그녀가 내린 결론이다. 미자는 미천한 나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 달 후에 만나던, 계절이 바뀐 뒤에 만나던, 그녀는 내 얼굴에 스쳐 간 시간이 보여주는 피곤함과 핏발, 부스럼, 엉클어진 머릿결, 눈에 붙은 눈곱, 코털, 여드름 자국, 까맣게 탄 이마, 비딱한 앞니들에 시선을 모으곤 한다.
“영양가 있는 거 한 번씩 사 먹고 그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나의 눈곱을 떼면서 중얼거린다. 그녀의 입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 나는 라면과 달걀, 파와 햄에 길든 코를 들고 다닌다. 그 외의 모든, 입이 보내는 신호에 뇌는 음식이라는 정의를 시큰둥하게 내리곤 한다.
나의 본능은 마젠타 입술을 찾는다. 커피, 고등어, 침, 루주 냄새가 섞인 향이 그녀의 새큰거리는 콧바람을 수식한다. 미자는 나를 생각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이빨이 딱하고 부딪힌다. 감정의 격앙이 밀려온다. 미자는 다르다. 그녀는 나의 절망적 상황과 나 자신은 거의 개의치 않는 빈곤에 마음을 쓴다. 내 안의 고통은 세상 사람들처럼 그다지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무심함은 널리 퍼져있다. 그들이 받는 찰나와도 같은 내면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이제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자고 갈 거지?” 나의 질문에 그녀는 침대에서 펄쩍 뛰더니 가방을 뒤진다.
“짜잔!” 그녀는 양손에 뜯지 않은 콘돔 상자를 들고 있다. 형광 불빛에 반짝인다.
“마침내?”
“마침내!”
이제 상황은 진득한 육체적 본능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에 빠지는 것이다. 모든 인간처럼. 절정을 향한 격렬한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잘 알려진, 죄스러움과 성스러움의 교차지점이라는 것이고, 오늘날 아주 특이하게 전파된 육체적 사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조차 그 본질은, 숭고함의 확장에 삶의 진정한 목적을 연계하는 단순 논리일 뿐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더럽고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을 숨겨야만 하는가? 모든 섹스는 아름답다. 당연하게도.
“너무 외설적이지만 감정이 풍부한 거 같아.” 그녀는 딱 한 번 나의 노래를 평가한 적이 있다. 서 있기도 힘든 만큼 술을 마신 날. 그녀의 눈은 어느새 축축한 자국이 말랐고, 일그러진 얼굴이 지어내는 슬픔에 찬 고통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나는 기타 줄을 뜯을 듯이 할퀴며, 엉덩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연주를 했다. 내 음악은 나만큼이나 어중간하다. 심오하지도 가볍지도 않고 대중적이거나 극소수 마니아를 위한 것도 아니다. 사운드는 알 수 없는 순간 치솟다가 어느새 꺼지며 음정은 탁하고 목소리는 답답하다. 나는 항상 내가 녹음한 음성을 들으며 타인을 떠올린다. 녹음된 나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소심하다.
나는 그냥 내 삶을 받아들인다. 내 음악은 창작이라는 괴로움과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용도에 적합하다.
“외설적이라는 표현이 멋있는데!” 그녀는 내 등에 찰싹 올라타며 깔깔거렸다. 빈약한 가슴이지만 따스함이 물컹거렸다.
“홀에서 발가벗고 연주할까?”
“그건 외설이 아니라 공해지!” 미자는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 젖힌다. 여자의 뽀송뽀송하고 꼬불꼬불한 털이 간지럽다. 털 없는 피부. 말랑말랑한 젖. 소리가 방을 채운다. 여자의 입. 나의 콧구멍에서 터지는 거친 호흡. 미끈한 액체가 사타구니를 타고 흐른다. 젖은 수건이 바닥에 떨어진다. 굵은 땀방울.
하지만 모든 쾌락은 끔찍하게 짧다. 긴 불행은, 단 한 순간만 살아있음의 기쁨을 허락한다. 헐떡거리는 미자의 배에서 지린내가 올라온다.
“라면 먹자 우리!” 바라던 말. 여자는 먹는 것에 지나치게 초연하다. 아무튼, 라면이라도 먹여야 한다. 나는 늘어진 육체를 질질 끌고 냄비에 물을 붓는다. 성기와 이마를 수건으로 닦는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켠다. 딱딱딱딱. 검은 봉지에 삐져나온 파. 다정하게 소곤거리는 달걀들. 햄을 따고 냉장고를 열어 유일한 음식, 김치를 꺼낸다. 텅 빈 흰색 공간. 차가운 쉰내.
여자는 라면을 겨우 두 젓가락 뜨고는 김칫국물만 홀짝거렸다. 나는 라면 국물까지 쭉 다 마셨다. 바닥에 붙은 파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성욕과 식욕. 이제 수면욕이 다음이다. 줄담배를 피우고 토렌트에서 내려받은 영화를 여자가 고른다.
“어휴, 전부 깐느구만.” 미자는 이상하거나 지겹거나 비딱한 영화는 전부 <깐느>로 규정한다. 결국 <화양연화>를 고른다. 세 번도 더 본 영화. 여자는 주제곡과 여주인공의 의상에 매료되었다.
“조금 보다 잘 거야.” 여자는 가방에서 커피 캡슐을 꺼내 머신에 집어넣고 작은 컵 모양의 버튼을 누른다. 기계가 떠는소리를 토하더니 거품 섞인 액을 쏟아 낸다. 나를 위한 에스프레소. 여자는 다른 캡슐을 꺼내 큰 컵 모양의 버튼을 누른다. 역시 아메리카노.
재떨이에 꽁초 3개가 추가되었다. 12시 7분. 여자가 잠들었다. <Yumeji’s Theme>가 흘렀다. 국수 통을 든 치파오 차림의 장만옥이 느린 동작으로 걷는 장면에서, 나는 여자가 잠든 걸 깨달았다.
파도 소리에 잠을 깬다. 5시 10분. 50분 남았다. 그녀의 수면 시간. 늘 그렇듯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아침은 더럽게 짧다. 인생은 찰나다. 구름이 끼고 칠흑같이 새까만 하늘. 여자를 깨우기가 정말 싫다. 그냥 까무룩 잠들고 싶다. 이마를 덮은, 수국처럼 빨갛게 핀 여드름. 아픔의 기슭 사이를 허우적거리는 영혼들. 벌컥벌컥 불쌍함이 새어 나온다. 여자는 가벼운 경범죄 몇 번에 미국에서 강제 출국을 당했다.
잠바를 걸치고 조심스레 문을 연다. 전구 불빛에 어둑한 마당 사이로 게 한 마리가 서성거린다. 인기척에 놀란 듯, 나일론 덮개 속으로 숨는다. 하늘 귀퉁이, 붉은색 하늘이 번진다.
여섯 시를 넘기고 1분이 지난 즈음, 나는 마음을 거세게 잡고 여자를 깨운다. 세 번의 흔들거림에 그녀가 돌아왔다. 단정하게 앞으로 향한 무표정한 얼굴이 창백하다. 여자는 앞으로 6일 동안, 화장 없이 지낼 것이다. 하얀 유니폼과 연푸른 앞치마, 연녹색 두건을 쓰고 주방과 손님, 화장실 사이를 미소와 함께 오고 갈 것이다.
오후 5시가 되면 나는 그녀가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파도 소리와 바람, 구부정한 소나무 사이로 굽이굽이 좁은 길을 돌면 나타나는 하얗게 치장한 아담한 곳. 가장 한가한 시간. 나는 식탁에서 그녀를 눈으로 찾고 살금살금 훔쳐볼 것이다. 마젠타 입술이 사라진 그녀는 양순하고 야리야리하고 고분고분하다. 미소가 떠나지 않고 친절하다. 나에게 그녀는 차가우면서도 따스하고, 까끌까끌하면서도 부드럽다.
미자와 모텔에서 사흘을 내리 보내 적이 있다. 은행 잔고가 0으로 떨어진 날. 우리는 방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끼니때마다 줄곧 중화 반점에 전화했다. 하지만 짜장면이나 짬뽕은 시키지 않았다. 전부 요리만 여자가 시켰다. 마파두부, 깐풍기, 라조기, 난젠완쯔, 고추잡채, 유산슬, 팔보채, 깐쇼새우, 전가복, 유린기, 양장피를 먹었다. 물론 음식 대부분은 내가 해치웠다. 그리고 고량주를 매번 주문했다. 즉, 매 끼니 우리는 고량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흘 동안 술에 취해 해롱해롱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설프게 섹스하고 변기에 토하기도 하고 주저앉아 샤워도 했다. 샤워기를 붙잡고 같이 노래를 불렀고 TV 채널을 두고 다투기도 하였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침대에서 휘청거리며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갔다. 그녀와 보낸 마지막 사치였다. 일종의 신혼여행이라고 해야겠다. 이후 여자는 식당에 주방 보조로 들어갔고, 나는 다시 길거리 연주를 시작했다.
아직 쌀쌀한 아침. 여자가 옷을 입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고역이다. 손바닥만 한 거울로 위아래로 구석구석 살펴본다. 여자는 짧은 입맞춤을 하고 방문을 연다. 밝아진 하늘. 흐린 그림자가 뒷걸음을 친다.
“그냥 우리 여기서 살까?” 여자가 휙 돌아서며 방긋이 웃는다. 잠시 고개를 끄덕거린 듯하더니 이내 대문을 나선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살짝 주름진 입가의 미소로 잠시 쳐다본다. 햇살이 그녀의 다갈색 뺨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다.
“다음 주에는 좀 일찍 와! 나 유럽 가면 안 돌아올 거야. 알았지!”
붉은 아침 햇살이 자꾸 눈을 성가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