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me somewhere nice
카페의 손님은 하나둘 떠나간다. 이제 홀로 남는다. 거리를 지나가는 이들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Mogwai>의 <Take me somewhere nice>가 끝났을 때쯤, 나는 마지막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찻값과 팁을 테이블에 두고 그곳을 나온다. 외로움이 길게 달린다. 안개비가 흐른다.
나는 잠바 지퍼를 턱 밑까지 올리고 갈색 털이 달린 귀달이 모자를 푹 눌러 선 채, 아주 천천히 걷는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줄기 세찬 바람이 먼지와 함께 스쳐 지나간다. 귓불 사이로 한기가 전해진다.
세상은 이제 차분한 어둠으로 쌓였다.
창밖 검은 마을 위로, 짙은 구름 사이로, 자신을 조금씩 깎아 낸, 노랗게 번진 그믐달이 스산한 빛으로 흐른다. 그 빛은 마을의 어둠에 묻혀있고, 마을은 자국만 남은 빛에 가렸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검은 지붕마다 뿜어 올린 연기가 스멀스멀 길 따라 부드럽게 흩어진다. 가로등과 나무, 간간이 뒹구는 낙엽들, 가녀린 빗방울 그리고 듬성듬성 불 켜진 창들이 켜켜이 쌓인 묽은 어둠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지그문트 13>이라고 적혀있는 거리 표시 팻말 아래에 도착한다. 나무 펜스 너머로 하얀 3층 집들이 보인다. 테라스와 발코니, 정사각형 창들과 두툼한 굴뚝, 낮은 각도로 경사진 지붕들이,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나는 주차장 입구 옆, 하얀 우편함으로 다가가, 작은 글씨의 명패들을 훑어보며 <슐츠>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낸다. 설렘과 회한의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S. Schultz> 스반 슐츠. 변호사의 편지에 적혀있던 이름.
나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공허한 가슴 한편을 꾹 누르고 시린 발끝을 참으며, 불 켜진 창들을 돌아가며 응시한다. 한줄기 밤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연관도 없는 일들이 뒤죽박죽 기억난다.
낮은 언덕과 판잣집들. 좁은 골목과 무척 높은 계단. 그 꼭대기에서 바라본,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 그곳에 점점이 박혀있는 깨알 같은 배들.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 주름진 할머니의 영정 사진. 그리고 낯선 아버지와 형제들.
습한 여름날, 삼베 주머니에 담긴 우뭇가사리가 끓고 있는 냄비. 할머니의 손이 분주하다. 뜨거운 콩이 희뿌연 연기와 함께 비릿한 메주 냄새를 쏟아낸다. 믹서기가 부서질 듯한 굉음을 내며 흔들린다. 반짝거리는 우무묵을 철망에 대고 손으로 꾹 누른다. 철망을 빠져나온 투명한 국수가 다소곳하게, 콩국이 담겨 있는 노란 양푼이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천일염을 국자로 떠서 휙 뿌리고는, 콩국을 몇 번 젓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자에 국을 떠서 간을 본다. 수박만 한 얼음을 비닐로 싸고 고무줄로 묶더니 콩국에 조심스레 띄운다. 그녀의 모시 속옷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온다.
외할머니는 여름이 되면 항상 콩국 장사를 하셨다. 우리가 사는 시장 아파트 입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엉성한 나무 식탁과 앉은뱅이 의자 2개를 갖추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애 딸린 아주머니가 지나가면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새댁, 여 와서 시원한 콩국 한잔하고 가! 아도 더위 묵었네. 보니까" 하고는 애들 팔을 잡아당기시곤 하셨다. 그러면 잠깐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아줌마 대부분은 할머니의 호객행위를 뿌리치고 가던 길을 가지만, 가끔은 마지못해 혹은 할머니가 애처로워 콩국을 사곤 하였다. 나는 그런 모습이 부끄러워, 될 수 있는 대로 할머니 근처에는 안 가려고 했지만, 낡고 오래된 시장 아파트 입구가 딱 한 곳밖에 없는 데다 하필이면 그 입구에서 할머니가 장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하루에 한두 번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나가면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부르셨다.
"우리 강새이 왔나. 일로 안자바라." 그러고는 묻지도 않으시고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콩국을 가득 채워 주셨다. 그 구수하고 고소한 맛은 일품이었지만, 그 맛을 음미하기에는 나의 창피함이 너무도 컸다.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록 후루룩 꿀꺽 들이키고는 재빨리 아파트 3층 계단을 뛰어 올라가곤 했다.
나의 유년 시절 대부분은 그렇게 할머니와 엮어졌다.
치밀어 오르는 격정도 있었다. 이상한 소리였다. 너무도 이상해서 그 소리는 이제 나의 귓속에서 비죽이 삐져나오는 환청으로 굳어졌다. 내 귀여운 강아지에게서 짐승의 울부짖음이 뿜어져 나왔다. 그날, 상가 번영회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쥐 잡는 날. 쥐약이 든 음식이 시장 곳곳에 구석구석 뿌려졌다. 이모와 나는 <복실이>를 예의주시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이모는 시장 한복판에서 청과물 가게를 하셨다. 그리고 그 가게 옆에, 이모부가 빈 과일 상자로 듬성듬성 만들어준 복실이 집이 있었다. 진돗개를 아파트에선 키울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모 가게에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마당이 있는 이모 집으로 데려가서 재웠다. 그 개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다. 노르웨이로 시집가기 전, 그녀는 한 움큼의 눈물과 강아지를 주고 가셨다. 그리고 그날, 인적이 끊긴 밤거리를 졸린 눈으로 바라보던 이모는 가게 문을 닫기 위하여 남은 과일들을 정리하셨다. 그리고는 그녀는, 복실이를 묶은 줄을 잡고 집으로 가려다가 멈칫했다. 가게 구석진 곳, 조그마한 평상에 잠들어 있는 나를 기억한 것이다.
그녀가 나를 깨우러 간 사이 개가 사라졌다. 하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 복실이는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엉성한 자기 집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더니 괴성을 지르며 집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모부가 어느새 달려 나와 그의 거친 손으로 내 눈을 꽉 틀어막았다.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만 짧게 굵게 짧게 굵게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이모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거칠게 잡고 집으로 끌고 갔다. 이모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머니에 대한 욕이었다.
"이런 호양년 같은 것이 얼굴 뺀질뺀질하니 지 이뿌다고 카니 미스코리아 나간다고 돈만 처발라 코 수술에 눈 수술에 처 하면 뭐하노 예선전에서 미끄러진 년이…. 꼬라지 하고는 늙은 유부남한테 빌붙어 아나 처 낳더니……. 낳으면 지가 고이 키우던가…. 늙은 오메한테 처맡기더니 이젠 개새끼까지 처맡기고…. 빙신같은 늙은 양놈 새끼하고 눈이 처맞아 달나뿌면…. 오데 있는 나란지 알아야 가서 맥살이라도 잡아보제…. 우리 칠규 인생이…. 너무 불쌍하다……. 너무…."
나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모의 분노를 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예쁜 강아지를 한 마리 내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나는 받기를 거절했다. 시장에서는 끝까지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나는 어떤 동물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나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큰 대문을 지나자 푸른 잔디와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넓은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네 마리의 복실이를 보았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요동치며 크게 짖었다. 나는 눈길을 접고 돌아섰다. 울부짖는 환청이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