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will destroy you
프랑크푸르트 공항 2터미널 D 홀에 도착하면서 시간을 체크했다. 오후 5시 17분. 아직 이른 시간이다.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식당가로 향했다. 식당가라고 하기에는 사실 좀 아담한 곳이다. 식당 홀이라고 해야겠다.
오른쪽 전면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차지하고 왼쪽은 카페와 빵집이 절반씩 나누고 있다. 홀의 중앙은 마치 우주선 같은 선명한 금속 색깔의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은 아치형의 거대한 유리 벽이 있는데, 다양한 크기의 비행기 이착륙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깜짝 놀랄 만큼 아주 가까이에서 말이다.
언제나 최초의 충격은 기억되기 마련인가 보다.
이곳에 처음 방문한 날, 아무 생각 없이 달콤한 커피와 <Rammstein>의 폭발적인 사운드에 빠져 멍하니 창을 바라보던 순간, 발밑에서, SF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은빛 쇳덩이가 중저음의 굉음을 내며 유리 벽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더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은근히 놀란 가슴에 황급히 이어폰을 뽑는다는 게 그만 커피를 바닥에 쏟고 말았다. 민망하고 황당한 그때의 기억은, 이젠 재미난 추억으로 나를 이곳에 매번 이끈다.
나는 공항에서 가장 저렴한 커피를 맥도날드에서 주문한 뒤, 아스파탐 2알을 넣고 뚜껑을 닫은 채 천천히 전망대로 향했다. 종이컵을 쥔 왼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함이, 4월에 맞는 모처럼의 맑은 하늘만큼이나 포근했다.
이어폰에서는 <Quiet>의 This will destroy you가 흘러나온다.
나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눈부시게 맑은 하늘을 신기한 듯 한동안 올려다봤다. 여기에 살면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다. 구름 없는 하늘이 귀하다 보니 선명한 직사광선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게 되었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해만 나면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공원이나 베란다, 혹은 햇빛을 마주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든 마다하지 않고 누워 버린다. 10년 전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일 때의 낯설고 불가해한 풍경 중 하나였지만 이젠 이해가 된다.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해바라기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선탠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 본 적도 없다. 사실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의 얼굴과 팔은 햇볕에 그을려 새까맣다. 내 업무의 대부분은, 탁 트인 도로 위, 직사광선을 온몸으로 받는 자동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관광 혹은 업무차 방문하시는 분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리는 일을 주로 한다. 덧붙여 약간의 통역 서비스도 포함되는데, 예를 들자면, 호텔 예약, 식사 주문, 대중교통 발권 등등의 일상적인 대화 수준 정도를 지원한다.
시작한 지는 1년이 채 안 된다. 초보자인 셈이다.
그전에는, 이미 언급했듯이, IT 쪽 일을 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내 경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산 계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웹 프로그래밍부터 시작하여 웹 기획 및 관리, 시스템 관리, DB 관리, 프로젝트 매니징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내 젊음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다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하는 한국계 독일 회사에 2년 계약으로 취업이 되어 유럽으로 오게 되었다. 이듬해 가족들도 왔다. 하지만 회사는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국 업체에 팔려버렸다. 다행인 건, 임원진을 제외한 직원 대부분이 고용 승계를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
그사이 자식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어 베를린과 런던으로 각각 흩어졌다. 그리고 작년엔 아내도 영국으로 가버렸다. 그녀가 다니던 구매대행 회사가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내면서 지점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다. 사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져 버린 나와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이미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이전부터 우리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한 지붕 아래에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순전히 <자식 부양>이라는 고귀한 의무에 기인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정반대의 꼭짓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랑에 얽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이 우연히 만나, 나에게 부족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이, 풍족한 상대에게 끌리게 되는 묘한 감정 같은 거 말이다. 나의 경우가 그러했다.
나는 정적이고 그녀는 동적이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그녀는 외향적이었다. 나는 사람을 싫어했고 그녀는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겨 했다. 나는 직장을 싫어했고 그녀는 살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오후의 따스한 날, 길거리 카페에서, 커피와 담배를 즐겨 했고, 그녀는 놀이공원의 바이킹과 롤러코스터를 사랑했다. 나는 포스트 록에 심취해 있었고 그녀는 테크노에 열광했다. 그녀는 춤췄고 나는 감상했다. 그녀는 나의 느긋함을 찬양했고, 나는 그녀의 부지런함에 반했다.
아내는 처녀 시절, 틈만 나면 전국의 크고 작은 산을 누비고 다녔다. 나를 처음 만난 곳도, 겨울 태백의 눈 덮인 등산로였다. 나는 그때 모 식품회사의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중이었는데, 보름의 연수 기간 중 마지막 단계인, 극기 체험을 하던 중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겨울 산행에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산허리로 감겨드는 가파른 길모퉁이,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가늘어지는 햇살을 조급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일행과는 한참 뒤처져 있었다. 이때,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지나가면서 한 번씩 힐끔 쳐다보더니 낮은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일행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두툼한 구글을 벗어든 채, 측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아 네, 발목이 좀 삔 것 같습니다." 나의 답변에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해가 곧 질 거에요. 산속이라 금방 어두워질 겁니다. 기온도 많이 떨어질 거고요…. 서둘러야 할 거예요……."라고 하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는 줄곧 손을 잡은 채 밤 산행을 하였다. 그녀는 이끌고 나는 따라갔다. 그녀는 전국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 이야기를 가는 내내 하였고, 나는 헉헉거리며 귀담아들었다.
중간 기착지인 산장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떨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회사 일행들과 재회했다. 나는 한숨을 돌린 뒤 다시 그녀를 찾았다. 나무로 된 2층 침대가 일렬로 마주 선 복도에는 배낭과 각종 식기 도구들로 번잡했다. 그곳을 어렵사리 헤치고, 나는 구석진 곳에서 침낭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구릿빛 얼굴에 눈가의 잔주름이 잔뜩 솟아났다. 그녀는 손으로 침대 바닥을 톡톡 건드리며, 잘 곳이 마땅치 않으면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침낭을 들고 와 그녀 옆에 깔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등되었다. 깜깜해졌다. 이어 침묵이 찾아왔고 사각거리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한 번씩 들려왔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본능을 좇아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