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나는 전망대에서 제법 많은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2잔의 커피를 이미 비웠고 <Explosions in the Sky>의 세 번째 앨범인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친숙한 비행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하늘색 바탕에 짙은 파랑의 <Korean Air> 글자가 선명한 비행기는, 천천히 몸을 낮추더니, 이윽고 육중한 몸을 가뿐하게 활주로에 내려놓았다.
손님이 이제 막 도착한 것이다. 최소 30, 40분 정도의 수속을 마치면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한 뒤, 일회용 컵을 든 채, 2층 입국장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아직 여유가 있으므로, 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바깥 택시 승강장으로 나갔다. 벽감처럼 움푹 들어간 흡연구역에는 땅딸막한 중년의 남자들이, 자신들이 조잡하게 만든 것 같은 담배를 피우며,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이 따뜻하고 햇빛으로 가득한 4월의 독일 날씨를 찬양하더니, 곧바로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던 지난겨울에 대하여 과한 표정으로 킬킬거리며 넌더리를 쳤다. 한쪽 벽면에는 어지럽게 세워놓은 그들의 짐들이 보였다. 그 위로 선명한 햇살이 사금파리 모양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짐을 피하여 창가 쪽으로 바싹 다가서서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줄곧 열려있는 귀에,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그들의 소음을 상쇄하기 위하여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켰다. <Mad Soul Child>의 <Breath>가 흘러나왔다. 안나의 USB에 있던 곡이다. 그녀는 음악 취향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그냥 무작위로 음악방송 같은 걸 들어요. 다 좋으니까요. 가볍게 듣는 거죠. 뭐." 그녀는 겨울의 끄트머리에 선 어느 맑은 날, 사무실 옆, <피닉스>라고 이름 지어진 공원의 나무 벤치에서 나에게 이어폰 한쪽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마음에 드는 노래가 쏙 들어올 때가 있어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요. 그러면 그 노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려받아요. 그리곤 관련 정보도 알아내죠. 뭐 이를테면, 싱어가 누군지, 가사는 어떻게 되는지, 어느 앨범에 들어있는 것인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리고는 리스트를 만들죠. 나만의 음악 리스트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 이 노래는?"
"네, 안나의 베스트 음악이죠." 그녀의 감은 눈꺼풀에 푸른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상쾌한 바람이 호두나무 가지를 흔든다.
그녀가 꽂아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들은 대체로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재즈풍의 여성 솔로 곡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대중적인 팝이나 가요들도 있었고, 실험적인 인디 음악이나 심지어 사이키델릭 풍의 연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다양했다. 그녀는 곡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채집한 노래의 정보를 들려줬다.
"<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U>라는 곡이죠." 그리고 그녀의 느낌을 말해주었다.
"막연한 열망이나 슬픔 같은 게 느껴져요……. 음……. 뭐랄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안타까움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노래 가사를 방심한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눈을 감은 채. 투명한 봄볕에 반짝거리는 그녀의 조그맣고 빨간 입술이 오물오물하는 모습을, 나는 따스하게 지켜보았다. 그해 봄은 특이하게, 더울 만큼 맑은 하늘이 많았다. 누군가는, 지난겨울의 지독한 눈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많아진 날들만큼 자주 음악 산책을 즐겼다.
그녀는 재즈 싱어인 <Diana Krall>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 가수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는데, 재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처음 얼마 동안은 그저 심드렁하게 듣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억나는 거라고는, 그 가수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뿐이었다. 또 한 가지를 들자면, 이건 순전히 나의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데, 나는 그 여성 재즈 가수가 흑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안나가 이메일로 보내준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는 그녀가 금발의 백인이라는 사실에 적이 놀라고 말았다.
'<Diana Krall>의 <The Look of Love>라는 곡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죠. 당연히. 하지만 음악에만 빠지세요……. 그녀의 미모에는 절대로 빠지지 마시고요……. 크크크 송안나 드림'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왜 이 가수를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입술을 뾰족하게 하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즉답을 피하고는, 내게 반농담식으로 숙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음날 내게 USB를 하나 주었다. 그녀와 예전에 같이 들었던 노래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젠 귀에 익숙하게 된 음악들이었다. 나는 내 노트북에 <안나의 음악>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그곳에 음악 파일들을 저장하고 휴대폰에도 복사해 두었다.
그리고 이제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떠났지만, 그 폴더는 아직 내게 남아 있다. 신기하게도 폴더가 살아남았다.
나는 늙어 가는 만큼의 강도로 점점 더한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혼자 사는 10평 크기의 원룸에는 단 하나의 가구, 옷장만 있다. 그리고 각각 한 개씩의 냉장고, TV, 세탁기, 매트리스, 이불, 베게, 밥상 겸 책상, 노트북, 다리미가 있다. 하얀 모든 벽면에는 액자 하나 없이 깨끗하다. 냉장고 문에 가족사진 한 장만 붙어 있다. 대부분 소모품이나 생활용품들도 한 개씩만 가지고 있다. 치약, 칫솔, 샴푸, 수저, 밥공기, 국그릇, 냄비, 프라이팬, 걸레, 휴지, 보온병, 커피잔, 운동화, 구두 등등. 그나마 중복으로 가진 것은 속옷과 양말뿐이다. 매일 하루에 한 개씩 일주일 치 해서 각각 7개가 있다. 이를테면 일요일 오전에, 세탁기에 매일 한 개씩 벗어둔 속옷과 양말들을 한꺼번에 세탁하고, 월요일부터 다시 한 장씩 소모하는 것이다. 잠바, 양복, 셔츠, 넥타이, 티셔츠, 잠옷 모두 한 개씩만 두었다. 잠바는 6개월에 한 번씩 바꾸었다. 즉, 가을이 되면 가장 저렴하고 두툼한 잠바를 산 뒤, 겨우내 입고 버린 뒤, 봄이 되면 가장 싸면서 얇은 잠바를 사서 가을까지 입고 버렸다. 냉장고도 텅 비었다. 기껏해야 이틀 치 정도의 양식거리만 딱 들어있다. 반찬도 없다. 내가 집에서 해 먹는 메뉴는 단 하나, 비빔밥뿐이다. 모든 재료를 섞어서 물과 함께 먹었다.
나의 스마트 폰에는 기본 앱 외에 단 3개의 앱만 추가되어 있다. 메신저와 음악 그리고 도서. 나의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남태평양의 어느 아름다운 섬 사진과 아래쪽 작업표시줄에 있는 4개의 빠른 실행 버튼만 있다. 탐색기, 브라우저, 도서 그리고 워드. 그리고 나의 윈도 탐색기 디렉터리는 아주 단순하다. 기본적으로 생성된 중요 폴더들은 모두 숨김으로써 감추어 버렸고, 단 2개의 폴더만 추가하였다. <도서>와 <음악>. 그리고 그 음악 폴더에는 <안나의 음악> 단 하나의 폴더만 존재한다. 예전에는 몇 개의 음악 폴더가 존재했었다. 예를 들면, <포스트 록 모음>, <프로그레시브 록 모음>, <인디 베스트 모음> 등등. 하지만 다 지웠다. 요즈음에는 음악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주로 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최 뭘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더 큰 작용을 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는 자의든 타의든 버리거나 떠나보내게 됨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타고난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안나의 음악>은 몇 번의 망설인 끝에 그냥 남겨뒀다.
그리고 그녀가 뉴욕으로 돌아간 그 날 이후, 오랫동안 나는 그녀를 애써 잊고 살았다. 적어도, 지난봄,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자그마한 재즈바를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곳에서 매년 봄마다 개최되는 국제 악기 박람회에 참관하는 고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들은 7명으로 구성된 재즈 뮤지션으로, 3박 4일간의 마지막 일정을 끝낸 일요일 저녁, 그들이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유명한 - 어쩌면 한국인들에게만 잘 알려진 - 작센하우젠에 있는 독일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이번 방문의 마지막 만찬에 기꺼이 나를 초대했고, 우리는 아펠바인이라는 사과로 담근 술과 독일의 전통 음식이라고 알려진, 돼지 족발 튀김 요리인 슈바인스학세를 주문하였다.
홀은 적지 않은 손님들로 떠들썩했고, 웨이터는 유창한 한국어 인사말로 우리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주 친한 듯, 짓궂은 말장난들이 난무하였는데, 대부분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났다. 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한 대식가였다. 접시에 수북이 담긴 감자와 두툼한 족발을 쉴 새도 없이 먹어 치웠다. 또한, 그들은 술도 엄청나게 마셨다. 사과술은 우리네 백자와 같은 흰 항아리에 담겨 나왔는데, 홀서빙 담당자가 쉴 틈도 없이 빈 항아리를 채워 날랐다. 그들은 입으로 떠들고 마시고 채워 넣었다.
나는 운전을 핑계로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사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였다. 물려받은 체질이었다.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소주 몇 잔만 마셔도 속이 울렁거리고 편치 않았으며, 다음날 꼭 설사하였다. 아버지와 닮은 몇 안 되는 특징 중의 하나였다. 반면 아내는 술을 잘 마셨다. 당연히 술을 좋아하기도 하였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소주와 맥주가 비치되어 있었고, 베란다 끝에는 늘 빈 술병들이 상자째로 포개져 있었다. 그녀는 종종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한 뒤, 홀로 식탁에 앉아, 간단한 안주와 함께 긴 시간 동안 두세 병의 술을 마시곤 하였다. 그러고도 아침이면 거뜬하게 일어나 뒷동산으로 달리곤 하였다. 나는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가 멀어지는 광경을 가끔 지켜보곤 하였다. 그럴 때면 묘한 서글픔 같은 것을 느끼곤 하였다. 마치 기차 철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달려도 우리는 좁아지지 않았다.
식당의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이 요란한 재즈 패거리들은,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잠으로 때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몇몇은 각자 휴대폰을 꺼내더니 다음 목적지를 부산하게 찾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끼리 쑥덕거리더니, 공론화된 그들의 뜻을 내게 전했다. 재즈바의 주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