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예언서 #3

남킹 현대 코미디 액션 장편소설

by 남킹

3. 미션 임파서블

“하지만 제가 그날 그 다리에 가서 뛰어들 것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나요?” 박칠규는 호기심이 다분히 묻은 얼굴로 물었다.

“사실, 몰랐습니다.” 요셉 신부는 이제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네? 아니 그런데 어떻게?” 박칠규는 다시 한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따질 듯이 요셉 신부에게 물었다.

“줄곧 지켜봤습니다. 마포대교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수년 동안…. 비만 오면….”

“와! 그럼 저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자살을 목격하셨군요?” 박칠규는 신이 난 듯 물었다.

“네, 박칠규님 덕분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저희 요원들이….” 요셉 신부는 자부심을 느끼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종아리 흉터도 확인하셨고요?” 박칠규는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네, 당연히.” 요셉 신부도 코믹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럼, 혹시 그동안 저처럼 종아리 흉터가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나요?”

“딱 한 사람 만났습니다. 하지만….” 요셉 신부는 누군가가 생각이 난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자식이 여러 명이었습니다.”

“그럼 안되나요?” 박칠규는 약간 생소한 모습으로 신부를 쳐다봤다.

“네, 예언서에 적힌,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독생자이십니다. 즉, 외아들입니다.”

“네? 그럼 저는 오직 아들 한 명만 둘 운명인가요?” 박칠규는 서운한 듯한 표정으로 신부를 바라봤다. 죽었으면 무자식으로 끝날 운명이었는데, 살려 놓으니 외아들이 성에 차지 않는 듯 욕심을 내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아들은 오직 한 명입니다. 그래서 사실, 저희 사제단에서 이런 의견도 있었지만….”

“어떤 의견인가요?”

“박칠규님이 불쾌해하지 않으신다고 약조하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저야 뭐, 죽다가 살아났는데 무슨 얘기를 듣든 말든 그게 뭔 상관이 있겠습니까. 말씀해보시죠.”

“그러니까, 저희 사제단에서 박칠규님의 정자를 채취하여 인공수정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네? 인공수정요?”

“네, 아무래도 그편이 서로에게 빠르고 간편하고 편한 방법이라….”

“그런데요?”

“문제는, 인공수정 시 쌍둥이 확률이 30%가 넘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그 방법은….”

“그러면?”

“네, 자연적인 방법이죠. 박칠규님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방법 말입니다.”

“이보세요! 신부님! 장가 못 가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장가를 가라고요?”

“그럼, 사랑이라도….”

“이보세요! 신부님! 하 미치겠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이 안되니까 여자가 없는 거고 여자가 없으니까 장가를 못 가는 거 아닙니까! 이건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박칠규는 드디어 그를 휘어잡고 있던, 실연의 고통을 한꺼번에 느끼며 폭발하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죄송합니다. 박칠규님….” 요셉 신부는 안절부절못하고 박칠규를 달래려고 노력하였다. 그럴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박칠규는, 꺼 억 꺽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박칠규님이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저희 사제단이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의 사명은 바티칸의 초미 관심사입니다. 저희는 절대로 박칠규님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거두시고 자식 생산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칠규는 큰 한숨을 쉬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여자와의 사랑이었는데 이제 그것을 의무로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죽고 싶은 마음만 들기 시작했다.

“수일 내로 한국 최고의 커플 매니저님이 방문하시어 박칠규님의 연애 사업을 한층 북돋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훌륭한 몸매가 당연하므로, 한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헬스 트레이너님도 조만간 방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차례의 실연으로 망가진 박칠규님의 자존감을 되살리기 위해,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동기부여의 달인이신 이기자 박사님도 곧 연락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박칠규님의 원활한 데이트를 위해 최고급 <청담동 박초이 헤어드레서 평생 이용권>, <이태원 에메랄드 관광호텔 사우나 VIP 회원권>, <싱그러운 항공 일등석 항공권>, <백제 호텔 VVIP 룸 숙박권>, <매리 호텔 미쉐린 쉐프 컬렉션 뷔페 항상 이용권>, <아프리카 익스프레스 블랙 신용카드> 등등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아무 염려 마시고, 소중한 자식 생산에만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칠규님” 요셉 신부는 준비한 목록을 쭉 읽고는 간곡한 표정으로 박칠규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 그리고 집도 마련하였습니다. 한강의 좋은 전망과 럭셔리한 가구를 배치하였으므로, 박칠규님의 사랑을 쟁취하시는 데 부디 일조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

박칠규는 새집에 들어서자마자 입을 딱 벌렸다. 평생 이런 곳에서 두 팔 뻗고 자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번쩍이는 대리석 복도, 완벽하게 갖추어진 홈시어터와 주방, 사람을 압도하는 초대형 벽걸이 TV, 사람도 들어갈 만큼 넓은 냉장고, 고풍스럽고 뷰티나는 소파, 공설 운동장만 한 더블 엑스트라 킹사이즈 침대, 그리고 전면 유리에 펼쳐진,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한강.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한강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꼬르륵 죽어가던 그였건만, 이제는 세상 부러운 것 없는, 사치의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자 새삼,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틀린 말이 아님을 그는 느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초라하고 못난 인생이 갑자기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 갑자기 눈물이 복받치듯 흘러내렸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만…. 으흐흐” 그는 푹신하고 엘레강스한 소파에 엎드려 감격의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뜅 똥, 뜅 똥, 뜅 똥” 벨 소리에 놀란 박칠규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다음,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우아한 모습의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칠규님. 저는 가사 도우미 김은혜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녀는 고상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 숙여 박칠규에게 인사를 했다.

“아, 네. 그런데 어떻게?” 박칠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쳐다봤다.

“당연히 집안일을 하러 왔습니다. 저는 매주 3회, 월, 수, 금 오전 10시에 방문하여, 집을 청소하고 빨래 및 각종 밑반찬 및 요리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박칠규님 얼굴 뵙고 몇 가지 여쭈어보려고 왔습니다. 지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 네. 그럼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월급은 어떻게 드리면 되나요?” 박칠규는, 그녀가 소파에 앉자마자, 가장 궁금한 것부터 먼저 물었다.

“급여는 요셉 신부님께서 알아서 주십니다. 박칠규님은 전혀 신경 안 쓰셔도 되십니다. 호호호”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좋아하는 반찬이나 요리, 음식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박칠규님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헤헤헤…. 저야 뭐 다 잘 먹습니다. 사실, 그동안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헤헤헤….”

“그래도 좀 더 좋아하는 요리라면?”

“네, 저…. 그러니까…. 달걀 후라이?” 박칠규는 더듬더듬하며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을 말했다.

“네? 달걀 후라이요?”

“네, 달걀후라이.” 그러자 김은혜 여사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손으로 입을 콱 틀어막고는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박칠규도 민망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음…. 저를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특급호텔에서 20년 경력의 요리사였습니다. 그러므로 한식, 일실, 중식, 양식뿐만 아니라 각종 제과 및 제빵에도 전문가가 되겠습니다. 지금 아니더라도 잡숫고 싶으신 요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카톡에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요리가 가능합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박칠규는 감탄의 눈으로 그녀를 우러러봤다.

“네, 감사합니다. 박칠규님. 그럼 오늘은 이마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뵙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네, 감사합니다.” 김은혜 여사가 돌아가고 나서 박칠규는, 이 세상 모든 요리를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깡충깡충 깨춤을 추었다. 그러면서 새삼, 미래에 태어날 그의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고맙다! 잘난 아들아! 네 덕분에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겠다! 아들아! 사랑한다!” 그는 또 한 번 감동의 눈물을 쏟으며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늘 그의 가슴, 한쪽 구석을 채우고 있는 그의 첫사랑, 송미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내 영원한 사랑….”

**************

벨 소리에 눈을 떴다. 박칠규는 그러고도 한참 멍하니 누워 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이 사치스러운 공간이 낯설기만 했다. 잠시 후 다시 벨이 울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짧은 머리의 건장한 남성이 서 있었다.

“누구신지?” 박칠규는 소심하게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아주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헬스 트레이너 김종국입니다.” 그는 모니터에 하얀 이빨을 보이며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박칠규는 마지 못해 오픈도어 버튼을 눌렀다. 사실 그는 오늘 하루 정도는, 대궐 같은 집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조용히 즐기고 싶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김종국은 박칠규보다 훨씬 크고 우람했다. 그는 연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인생이 너무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주도했다.

“저는 매주 화, 목, 토 오전 10시에 방문하여 박칠규님의 다이어트 및 조각처럼 매력적인 몸매를 만들어드릴 예정입니다. 100% 기대할 만하십니다. 고객님.”

“하지만 저는 아직 헬스 기구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만….” 박칠규는 무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하하…. 농담이 심하십니다. 고객님. 하하하….” 김종국은 크게 웃으며 성큼성큼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익숙하게 지하 문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들어가더니 박칠규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박칠규는 놀란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아니,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 집 지하실 문 비밀번호를?’ 그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컴컴한 지하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자 김종국은 손뼉을 두 번 크게 쳤다. 순간 태양 빛보다 더 찬란한 형광등이 줄줄이 불을 밝혔다. 그러더니 지하실 양면의 전면 유리 블라인드가 서서히 올라갔다. 박칠규는 다시 한번 입을 쫙 벌렸다. 그곳에는 수십 종의 번쩍이는 첨단 헬스 트레이닝 기구가 배치되어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온통 거울이었다. 그곳에 혈기 왕성한 헬스 트레이너와 왜소한 박칠규가 서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집에 헬스장이 있다는 거와 지하실 암호를 아셨나요?” 박칠규는 마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한 소년처럼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어봤다.

“하하하…. 그건 간단합니다. 고객님. 요셉 신부님과 함께 이미 이곳 헬스 시설을 사전 답사했습니다. 하하하…. 고객님의 헬스 장비를 파악해야 운동 스케줄을 짤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리고 신부님께서 간곡하게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하하하”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신부님께서.”

“최대한 빨리 몸을 만들어달라고….” 그러면서 김종국은 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A4 용지 한 장을 꺼내 박칠규에게 주었다. 거기에는 주간 스케줄이 적혀 있었다.

월요일 : 상체. 벤치프레스 / 데들리프트 / 덤벨 암컬

화요일 : 코어 및 유산소. 러닝 30분 / 싯업

수요일 : 하체. 스쿼트 / 런지 / 레그프레스

목요일 : 상체. 벤치프레스 / 데드리프트 / 레터럴레이즈

금요일 : 코어 및 유산소. 러닝 30분 / 싯업

토요일 : 하체. 스쿼트 / 런지 / 레그 컬

일요일 : 휴식

● 모든 운동은 12개 x 3세트 기준

“하지만 강사님은 화, 목, 토요일에만 오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박칠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하하하…. 사실 기구 사용 방법과 자세만 정확히 익히면 제가 없어도 아주 가능합니다. 하하하….” 김종국은 헬스장 입구 옆 선반에 놓인, 하얗게 생긴 리모터 컨트롤을 집더니 파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선반 옆에 걸려있는 길게 생긴 거울이 환하게 밝아왔다.

“헬스미러입니다. 제가 여기 없어도, 이 쌍방향 거울을 통해 충분히 트레이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고객님.” 박칠규는 생전 처음 보는 화면을 호기심을 가득 담고 쳐다봤다. 그 속에는 어깨가 축 처진 채 구부정하게 서 있는 자신이 보였다. 트레이너가 리모터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자 이번에는 아리따운 몸매의 여인이 나타나 섹시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강민영 헬스 트레이너입니다. 저의 보조 강사로 박칠규님을 적극적으로 도와 드릴 겁니다.” 박칠규는 얼떨결에 한 걸음 물러난 다음,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화면에서 자신감 넘치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마치 유혹하는 듯이 보였다. 박칠규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백설 공주에 나오는 그 거울이 바로 저거일 거라고….

**********

헬스 트레이너가 돌아가고 난 뒤, 그는 내친김에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된 건축물은 대충 200평쯤 되어 보이고 대지는 400평쯤 되었다. 집안에 소형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원목 마루를 중심으로 게임실, 당구대, 오디오 룸, 홈바, 수족관, 사우나실, 주방, 욕실, 다락방, 드레스룸이 있었다. 서재에 있는 의자는 푹신하였고 미닫이문으로 침실과 연결되었다. 입구 쪽 신발장에는 고급 구두가 각 층에 3켤레씩 모두 아홉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를 꺼내 신어보니 그의 발에 딱 맞았다.

그는 바깥으로 나왔다.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정렬이 된 채 화단에 심겨 있었다. 수영장이 보이고 주차장에는 검은 세단이 두 대 있었다. 그리고 전기차 충전 시설이 있었다. 뒷마당에는 바비큐 시설이 있고 간이 창고에는 전동킥보드, 사이클, 낚시 및 캠핑 도구, 등산 장비, 스키 장비가 있었다. 박칠규는 살짝 궁금해졌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이렇게 살다가, 뭐 파산이나 그런 거에 당해서 경매에 넘긴 건지? 아무튼 그로서는 갑자기 삶의 질이 심하게 바뀌어서 그런지, 혹시나 이 모든 것이 또 삽시간에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뭐 어찌어찌해서 그가 아들을 낳았다 치면, 이후 아들은 당연히 뺏길 것이고, 그러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텐데, 그때도 이런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말하자면 현대판 씨받이인 셈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어차피 죽은 인생인데, 지금은 보너스 삶을 사는 셈. 굳이 나락으로 다시 떨어져도 아쉬운 것 없기도 하였다. 아무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벨이 울렸다. 큰 집에 사니까 꽤 귀찮을 정도로 사람이 찾아온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그가 예전 원룸에 살 때는 단 한 명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박칠규님. 호호호…. 저는 엘레노블 커플 매니저 박선영 부대표입니다.” 늘씬한 키에 까만 정장을 하고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자신을 소개했다.

“아, 네, 네, 네” 여자 앞에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박칠규는 눈을 사방으로 돌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요셉 신부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건실하고 바른 청년이시라고요…. 호호호” 박선영은 집안을 눈으로 한번 쓱 훑어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말했다.

“아이고, 신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헤헤헤….” 박칠규는 그녀의 진한 화장품 냄새에 취해 몽환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우선, 제 소개를 살짝 하자면, 국내 최대 결혼 정보 회사인 엘레노블에서 11년째 근무하면서, 주로 혼기를 놓친 유명인, 재벌,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분들의 결혼을 성사해, 이 분야 최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호호호…. 제 자랑 같지만요…. 호호호” 그녀는 아주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박칠규를 찬찬히 뜯어 보기 시작하였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서 이렇게….” 박칠규는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보잘것없다뇨…. 호호호…. 이런 엄청난 집에 사시는 분이신데…. 호호호….”

“네, 뭐 이 집이야 엄청 훌륭하다만…. 사실…. 이 집이 제 것이”라고 박칠규가 말하는 순간 커플 매니저는 손가락 하나를 입에 조용히 갖다 대고는 박칠규에게 속삭였다.

“신부님께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가 정보원 혹은 미국 CIA 같은 그런 절대 밝힐 수 없는 유엔 산하 아주 중요한 기관에 근무하시고, 표면적으로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갑부시라는….” 그녀는 동의를 구하는 듯 눈썹을 까딱까딱했다.

“아, 예…. 뭐…. 그렇죠…. 아주 중요한 일이죠…. 세상을…. 구하는….”

“네, 저도 박칠규님 처음 보는 순간 딱 느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시라는 것을요…. 호호호…. 사실 저의 촉이 틀린 적이 없거든요…. 호호호” 그녀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래서 우선 몇 분을 추려 보았습니다. 박칠규님이 좋아하실 만한 여성으로요…. 호호호….” 그녀는 A4 크기의 여성 사진을 테이블에 쭉 늘어놓았다. 박칠규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미모의 여성들이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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