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빈
대(大)나라의 요식이 황제에 오를 때 그의 나이는 불과 네 살이었다. 그러므로 섭정이 불가피하였다. 대신들은 황제의 섭정으로 요식의 친어머니인 어순 부인을 옹립하였으나, 그녀는 황제 즉위 2년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리하여 요식의 숙부인 걸창군이 섭정을 맡았으니, 그 해는 대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맞이하는 999년째 되는 용불연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음란죄로 쫓겨났던, 전 황제의 후궁인 세빈이 일곱 동생의 도움을 받아 쿠테타에 성공하였으니, 결국 대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세(世)나라가 개국을 하였다.
세나라의 황제로 등극한 세빈은 우선, 궁에 남아있던 모든 대신과 시중을 참수하고, 각 고을에 명하여, 세나라에 반감을 보이는 모든 선비와 관료를 변방의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하였다. 그리고 세나라의 땅을 일곱 등분 하여 그녀의 동생들이 다스리게 하였으니, 바야흐로 칠국일황의 시대가 열렸다.
세빈의 이름은 자안으로 미천한 출신의 사생아였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동네 장터를 떠돌며 동냥을 하거나 궂은 심부름을 하며 목숨을 유지하다가, 그때 당시 또래 여아들이 주로 팔려 가는 서커스 악단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노래와 춤을 배웠다. 그녀는 특히 노래를 잘 불렀는데, 이 소문이 금방 퍼져 지나는 마을마다 그녀를 보러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 권세가로 이름을 떨치던 화방의 집에 초청받아, 달 밝은 밤, 대청마루에서 풍악의 장단에 맞추어 그녀가 노래를 부르니, 화방의 장남인, 구뷘이 감동하여 그녀를 수양딸로 입적을 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 16살이었고 구뷘의 일곱 아들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구뷘은 비록 권세가의 집안 출신이었으나, 북쪽 지방의 토벌 대장으로 주로 외지만 떠도는 것에 불만이 있었고 야망이 큰 인물로, 그는 자기 딸을 황제의 첩으로 바쳤다. 세빈의 나이 스물이었다. 세빈의 노래 실력은 이미 장안의 화제였으므로 황제는 그녀를 기쁜 마음으로 품었으며, 한동안 매일 그녀의 노래 속에서 잠들었다. 하지만 다른 후궁에 비해 미색이 떨어지는 데다, 이듬해부터 줄줄이 낳은 세 명의 자식이 모두 딸이었고, 차츰 노래에도 싫증이 난 황제는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다.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세빈은 궁궐의 말단, 소박한 처소에서 잊힌 후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녀의 기행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밤이 어스름해지기 시작하면 시종을 불러 장안의 남정네 중 골격이 튼튼하고 힘깨나 쓸만한 평민을 잡아다가 동침을 하고는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뒤, 돌려보냈다. 만약 이에 수긍하지 않을 것 같거나 입이 가볍다고 판단이 되면 은밀하게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또 다른 10년이 흘러갔다. 아무리 뒷방의 잊힌 후궁이라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진 이 괴상한 짓거리가 소문이 안날 수가 없는 법, 이 사실을 확인한 황제는 크게 분노하여 그녀와 그녀의 양아버지인 구뷘, 일곱 아들까지 모두 변방으로 귀양을 보내 버렸다. 황제는 사실 그녀를 죽이라고 명하였으나, 화방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으므로, 결국 대신들의 의견을 들어 그녀의 목숨만은 살려두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때 만약, 그녀를 죽였다면 대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으며 후에 <천일의 여황제>로 알려지게 되는 세빈의 역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변방으로 쫓겨났다고는 하나, 구뷘은 용맹한 장수로 그를 따르는 군사들이 많았으며, 세빈은 일곱 동생의 정신적 지주로, 그들을 이용하여 영악한 계책을 세웠으니, 대나라 황제 섭정인 어순 부인을 시종을 시켜 독살하고, 황제의 숙부인 걸창군이 어순 부인을 죽였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다. 이에 전국 토호 세력이 진상규명을 외치며 들고 일어나자, 구뷘은 그들을 결집하여 한양으로 진격하였으며, 이에 맞추어 수도에 은밀히 들어와 있던 세빈이 일곱 동생의 군대와 함께, 수도군 방위사령관을 협박 및 회유를 하여, 결국 걸창군을 체포하여 죽이고 쿠데타를 완성하였다. 이듬해 국명을 세나라로 명하고 황제에 세빈이 등극하니 이 땅의 역사에 가장 어둡고 기이한 나라가 탄생하였다. 이를 두고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어둠이 광명을 집어삼키고 정의가 불의에 무릎 꿇은 <쇠락의 시대>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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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라의 황제는 개국하자마자, 수도를 대륙의 정중앙, 벌륜으로 정하고, 백만 평에 달하는 토지에 속한 모든 언덕과 토지를 갈아엎고 20만 평 규모의 궁궐을 지었다. 궁궐을 둘러싼 방벽은 모두 일곱 겹으로, 방벽 사이에는 깊은 수로를 파고 물을 채웠으며 수백 마리의 악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100km에 달하는 8개의 도로와 수로를 각각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일곱 형제가 다스리는 일곱 개의 속국인 정, 을, 이, 병, 마, 횡, 준나라가 수도를 둘러싼 형태를 갖추었다. 이는 외부 세력의 어떤 침공에도 가장 안전하게 국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만 이 모든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십만의 백성이 강제로 끌려와서 매일 수백의 생명이 사라졌으니,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한편, 구뷘은 이때쯤, 감정이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며, 심술이 났다가 주저앉는 듯, 그 심란한 마음이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그의 양녀가 황제가 되고 일곱 아들이 왕으로 등극하였으므로 외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상황이었으나, 자신이 애초부터 개국에 제외되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였으니 심기가 좋지만은 않았다. 틀림없이 전국의 세력가들을 설득하고 규합하여 군대를 일으킨 것은 자신이었으나, 그가 무리를 이끌고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모든 상황이 손쉽게 정리되고, 일사천리로 개국을 하면서, 그는 결국 군을 해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하늘 아래 무소불위 권력가의 수장이지만, 실상은 무늬만 그런 것이지, 국정 참여도 배제된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혈육인 일곱 자식 중 하나가 황제가 아니라 양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는 어느 날, 일곱 나라를 차례대로 방문하는 사절단을 만들어,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의 표면적 방문 목적은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고, 부자의 정을 돈독히 하자는 것이지만, 내심 아들의 심중을 파악하고 혹시 그중에 황제에 대한 불만이 있는 자라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그렇게 그는 약 일 년에 걸쳐 그의 모든 아들을 만났고, 그중에 다섯째인 마석이 야망이 매우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구뷘과 마석은 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군사를 키워나갔다.
한편, 세상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된 황제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다시 그녀의 밤을 채울 사내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늘 아래 무서울 게 하나 없는지라, 아예 대 놓고 그 짓거리를 하였다. 그녀는 우선, <기쁨조>라는 황제 직속 기관을 신설하고, 전국에 모집원을 보내 신체 건장하고 잘생긴 꽃미남 청년들을 뽑아 데려오도록 하였다. 선발된 이들은 궁궐에서 가장 화려한 혜월당에 몇 달 동안 기거하며 각종 안무와 기교, 예절을 연마하고 정력에 좋은 각종 산해진미를 강제로 섭취하였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황제의 부름을 받고 동침을 하게 되는데, 만약 황제가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그날로 처형을 당했다. 그런데 문제는, 황제의 본 모습이 변태에 사이코패스의 전형인지라, 그녀는 점점 피의 맛에 물들고 만족도는 턱없이 높아져,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거의 모든 청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기쁨조의 모집원들은 전국을 돌며 더욱 악랄하게 청년들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웬만한 청년들은 살기 위하여 서둘러 장가를 가거나 국외로 도주하였으며, 재수 없게 모집원들에게 적발이 되면 엄청난 양의 돈으로 모집원들을 매수하는 사태도 일파만파 늘어났다. 어떤 이들은 자기 얼굴을 일부러 훼손하기도 하고 중요 부위를 절단하여 스스로 불구가 되기도 하였다.
마나라의 주도 횡택에 사는 정현도 일찌감치 이러한 소식을 접한 터라 하루하루를 살얼음을 걸으며 살고 있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인 노모와 함께 외딴곳에 살고 있었는데, 워낙 찢어지게 가난한지라, 풍채 좋고 수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장가는 엄두도 못 낼 형국이었다. 그러므로 그저 모집원이 마을에 나타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불안에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