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10

제나 (Zena)

by 남킹

그거 너무 비관적인 거 아냐?

사실이 그런데 뭐. 불변의 진리잖아. 우리는 곧 죽는다는 거.

그건, 그렇지.

게다가 지금 우리는 돈의 세상에 살고 있잖아. 그러니 내 몸을 적당히 활용해 손쉽게 돈 벌고 신나게 쓰다가 죽는 거지 뭐 별수 있어?

너 그러다 너의 직장 상사한테 발각되면 잘리는 거 아냐?

이미 발각되었어.

그런데도 괜찮은 거야?

어느 날 회사 갔더니 직속 상사가 포르노 사이트 띄워 놓고 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쉽게 해결했지.

어떻게?

입막음용 섹스.

그것참 편리하긴 편리하구나.

게다가 그 녀석도 찔리는 게 있었거든. 그 포르노 사이트 유료 회원이었으니까.

*************

제나는 술 기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로제 와인을 한 병 비우더니 라운지, 바, 클럽을 돌며 버번, 보드카, 로얄 진, 다크 럼, 데낄라, 골드 규빈, 몰티즈까지 홀짝였다. 그녀는 늘 우아한 자세로 술잔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유연하게 잔을 돌려 그 안의 액체와 일체가 되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술잔을 들 때마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본능적 움직임은 고상한 선율과 어우러져 그녀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바에서 사람들과 웃음을 공유하며 활발하게 소통했다. 라운지에서는 레게 음악과 함께 귀로 전해지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가볍게 춤을 즐겼다. 코발트블루의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감싸며, 그녀는 밤의 여왕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클럽에서 제나는 몸을 육중한 베이스에 맞춰 격렬하게 흔들며 밤의 환상적인 에너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술에 취한 유혹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어느새 새벽 4시. 룸으로 돌아온 그녀는 희미한 웃음 자국을 떠올리다 유쾌한 광채를 품은 눈동자를 내게 보내며 옷을 모두 벗어 아무 데나 집어 던졌다. 그리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나 여기 이 호텔에 오면서부터 줄곧 생각한 게 있어.

그게 뭔데?

물탱크.

여기 이 호텔 물탱크?

응. 패러디하는 거지. 죽은 그 여자처럼. 호텔 물탱크에서 수영하며 정사를 벌이는 거야. 아마 멋진 동영상이 될 거야.

누구와?

당연히 너지. 바보야.

그러면 누가 촬영을 하지?

우리 룸서비스 그 녀석 꾀어볼까?

제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와 두 손을 꼭 잡았다.

글쎄? 호텔 옥상이 잠겨 있지 않을까?

당연히 잠겨 있겠지. 하지만 화재 같은 긴급 상황을 고려하여 여기 직원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을 거야 틀림없이.

그 녀석이 협조할까? 들키면 직장에서 잘릴 텐데.

모든 것은 돈이야.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 말이야. 아무튼 룸서비스 요청해봐.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떨떠름하였지만, 룸서비스로 햄버거를 신청했다. 어차피 출출하기도 하였다.

*************

문을 열자 그 젊은 호텔직원이 같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여전히 그의 머리에는 흑단과 은사로 된 타이가 묶여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표를 살폈다.

벤야민.

나는 그를 침실로 안내했다. 제나는 속이 훤히 비치는 실크 레이스 속옷을 입고 요염하게 그를 맞았다. 그는 음식이 든 트레이를 정중하게 침대 옆에 두었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요?

제나가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쳐다봤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사진을 좀 찍어 주세요. 제 몸 전체가 다 나오도록.

제나는 벤야민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그리고 내게 눈짓했다. 나는 조용히 침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도시의 빛이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바람을 안은 커튼의 옅은 그림자들이 벽을 따라 춤을 추었다. 나는 그녀가 자기 옷을 풀어 벤야민을 유혹하는 상상에 잠겼다. 어쩌면 그의 손이 매혹적인 곡선 위에 머물 것이다. 그녀의 몸은 자유로움이다. 낮은 조도 속에서 그녀의 피부는 빛을 발하며, 벤야민의 눈을 사로잡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흥분한 자신을 보듬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그녀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휴대폰 플래시가 번쩍하며, 순간이 멈춘다. 각각의 사진은 장면의 은밀함과 함께, 그들의 욕망을 투영한다. 그들은 둘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 순간은 유혹과 감탄이 얽힌 마법 같은 시간. 벤야민은 눈으로 제나의 아름다움을 새기고, 제나는 자기 모습을 이미지에 펼쳐놓는다. 내 마음은 어떤 감정을 담아야 할지 망설였다. 꿈꾸듯 상상하는 나는 그 장면 속에서 제나와 벤야민의 끈적이는 탐욕을 본다. 몸의 윤곽과 피부의 감촉이 서서히 픽셀로 바뀐다. 조용히 교감하는 그들의 순간은 희미한 빛으로 수 놓여, 서로의 모습을 감싸고 있다. 불확실한 어둠 속에서 제나의 몸은 어찌할 수 없이 이상야릇하게 날아가는 나비처럼 우아하게 펼쳐져 있다. 벤야민은 사진 속에서 제나의 미소를 응시하며,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서로의 영혼을 탐색하듯, 어둠에 품겨진 열정과 사랑을 함께 녹여내고 있다. 이 미친 이상한 순간은 시간과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오직 그들만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번져 나오는 새벽의 적막, 서로의 유혹에 빠져든 몸의 감촉, 그리고 그들의 눈빛이 어울려 펼쳐진 미지의 세계는 이미지로 변해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마침내 침실의 문이 열렸다. 홍조 빛 얼굴을 한 벤야민은 서둘러 인사를 하고 나갔다.

어떻게 되었어?

응. 잘되었어. 한 시간 뒤 퇴근하고 우리에게 올 거야. 옥상 키를 가지고.

그녀는 휴대폰에 담긴 자신의 나체 사진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돈을 준 거야?

돈보다 더 좋은 거. 한창때잖아.

*************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물탱크가 여러 개 있었다. 그것들은 규칙적인 형태로 호텔 건물의 아키텍처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작았다. 가까이 다가서니 귀엽기까지 하였다. 물탱크는 주변에는 안전을 위한 난간이 갖추어져 있었다.

와! 정말 멋진 광경이야!

제나는 어둠 속에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시원한 도시의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고층 건물의 형형색색인 외관과 도로를 쏜살같이 달리는 차들을 지켜봤다. 별빛 아래에서 탱크는 우리와 도시의 아름다움을 하나로 품고 있었다. 사복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벤야민이 뒤에서 엉거주춤하게 선 채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뚜껑을 열겠습니다.

물탱크 뚜껑을 벤야민이 힘들게 열었다. 그는 고개를 그 속으로 집어넣어 두리번거리더니 이윽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내가 그곳으로 갈 테니.

나는 물탱크 벽면에 난 철계단을 타고 벤야민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휴대폰 플래시로 탱크 내부를 비추었다. 시원하고 투명한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장면을 기대했건만 탱크 속 물은 꽤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었다. 탱크의 수면은 마치 죽은 듯 정적이었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안녕!

순간이지만 탱크가 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물 표면으로 가벼운 파동이 이리저리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물의 색깔은 여전히 짙은 어둠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젠장, 여기서 수영하기는 글렀는데. 우리 그냥 내려가자.

안돼. 물이 얼마나 깊은지 체크는 해봐야지.

어느새 제나가 내 곁에 와서 어두운 공간으로 비친 한 줄기 휴대폰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내게 말했다.

저기까지 내려갔다가 어떻게 올라오려고?

바보야! 벽면을 봐!

제나는 자신의 휴대폰 플래시를 켜더니 탱크 내부의 벽면을 비추었다. 그곳에는 철계단과 손잡이, 안전망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때? 저 정도면 안심할 수 있겠지?

그래도 이거 너무 내려가는데….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하는 순간, 제나는 갑자기 속이 안 좋은지 헛구역질을 하며 내 어깨를 한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그때 제나의 휴대폰이 그녀의 구토물과 함께 탱크 속으로 장려하게 떨어졌다. 제나의 입에서 역겨운 쉰내와 더러운 욕지거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이런 좆같은 상황이 생기다니!

벤야민과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내려가서 휴대폰 찾아야지! 최신 아이폰이야! 산 지 한 달도 안 되었어! 할부금도 한 번밖에 안 낸 거라고!

제나는 입을 한번 손으로 쓱 닦고는 내부 철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벤야민과 나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내려가서 오염된 물에 몸을 담근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제나 혼자 내려보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벤야민. 너는 여기서 플래시를 우리 쪽으로 계속 비춰야 해! 알았지!

나는 벤야민에게 나의 휴대폰 암호를 푼 다음 그에게 넘겼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어둠 속으로 조심스레 내려갔다. 한 발짝씩 발을 아래로 내디딜 때마다 몸 전체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제나! 몸은 괜찮은 거야?

걱정하지 마! 수영에는 자신 있으니까!

제나가 물에 닿았는지 첨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찬물에 천천히 몸을 담갔다. 오싹함이 전신에 번져갔다. 나는 물에 몸을 맡기고 크게 호흡한 뒤 천천히 숨을 죽이고 잠수를 했다. 다행히 바닥은 얼마 내려가지 않아 닿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둠이었다.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심연으로 내몰렸다. 나는 손끝으로 휴대폰의 존재를 쫓아갔다. 시간은 느려지고 주변은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변했다. 손은 수줍게 물결을 긁어냈다. 오그라든 피부는 나를 자꾸 위로 잡아당겼다. 몸을 감싼 물이 끈적이고, 귀에는 압박이 들어왔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도 소중한 장치를 찾기 위해 내 손길은 결연해졌다. 나는 물속에서 마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가는 모험가처럼 허우적거렸다.

마침내 가슴에 심한 압박이 느껴졌다. 나는 급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수면 밖으로 나오자마자 격렬하게 숨을 쉬었다. 뒤이어 제나도 물에서 솟구치듯 올라왔다.

찾았다!

그녀는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주머니 있지?

응.

그녀는 내게 휴대폰을 맡겼다. 나는 그녀의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위로 쳐다보며 외쳤다.

휴대폰 찾았어! 우리 이제 올라간다!

나는 제나의 손을 꽉 붙잡고 그녀를 내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천장을 쳐다보며 발을 계단에 걸쳤다. 하지만 그 순간 폭풍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물 폭탄이 사정없이 제나와 나를 끊어 놓았다. 큰 파도와 함께 물은 우리 주변을 휘감고, 평화로웠던 수면은 거친 파동들로 삽시간에 변했다. 물은 우리 몸 주위에서 치솟아 올라오고, 그 힘은 끊임없이 우리를 밀고 끌어당기며 저항할 수 없는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 제나의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나의 몸도 이미 계단을 벗어나 있었다. 엄청난 물줄기 속에 몸이 휘청거리며 곤두박질쳤다. 나는 필사적으로 헤엄쳐 위로 오르려고 노력했다.


힘차게 수면을 헤쳐 나가며 거친 파도와 싸우는 동안, 물의 저항과 함께 몸은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졌다. 머리 위로 물이 쏟아져 나를 눌렀다. 어둠 속에서는 우리의 호흡소리와 물결 소리가 귀를 찌르며 울렸다. 간간이 허용된 공간에서 숨을 쉬기 위해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수영 동작을 반복해야만 했다. 물살은 나를 끊임없이 밑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마지막 힘까지 짜내 헤엄쳤고, 그 순간의 긴장과 절망은 영원 속에 갇힌 시시포스처럼 느꼈다.

마침내 나는 탱크 벽면에 있는 계단에 다다랐다. 나는 탱크 벽면을 붙잡고 올라갔다. 그사이 물은 계속해서 차올랐다. 나는 제나에게 외쳤다.

제나! 괜찮은 거야?

하지만 나의 소리는 으르렁거리는 물 폭탄에 묻혔다. 숨쉬기를 위해 머리를 들었을 때,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거품과 거친 파도만 보였다. 탱크의 벽면은 강렬한 물의 충돌과 함께 진동하며 우리 주변에 울림을 일으켰다. 눈앞의 목표는 생존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삶이 무가치하다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젠장, 너 지금 꼬락서니를 봐! 그저 살려고 생똥을 싸고 있구먼.

그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다.

마침내 벤야민이 나의 손을 잡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나를 끌어 올렸다. 내가 탱크 밖으로 몸을 빼자마자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제나! 제나는? 제나는 찾았어?

아뇨! 아직 못 찾았어요!

벤야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플래시를 탱크 속으로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물탱크의 물이 거의 다 차올랐을 때 갑자기 뚝 하고 물이 끓어졌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나는 다시 물로 들어갔다.

벤야민! 내 주위로 플래시를 계속 비춰줘!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나는 탱크 입구에서 가장 먼 쪽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흔적을 발견했다. 물탱크 끝 모서리에 그녀는 잠겨 있었다. 나는 살살 헤엄쳐 그녀를 끌고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하늘로 뜬 채 숨이 멈추어 있었다.

벤야민과 나는 힘을 합쳐 그녀를 탱크 밖으로 끌어냈다. 나는 제나를 반듯하게 눕히고 흉부 압박과 인공호흡을 번갈아 가며 실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벤야민이 같은 방법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우리는 한동안 돌아가며 그 짓을 반복했다. 하지만 끝내 제나를 살리지는 못했다. 다음이 문제였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찰에 신고하면 볼 것도 없이 감옥에서 몇 년은 썩어야 할 거야.

그럼?

벤야민. 잘 들어! 너는 어차피 퇴근한 상태잖아. 그리고 너가 호텔 옥상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지?

물론입니다. 다들 제가 집에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됐어. 너는 그냥 조용히 뒷문으로 호텔을 빠져나가는 거야. 누구에게도 들키지만 않으면 돼. 알겠지!

그럼 제나는? 제나는 어떻게 할 건가요?

그냥 물탱크에 집어넣을 거야.

그럼 당신은 어떡할 건가요?

벤야민이 의심을 잔뜩 묻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호텔에 내가 묵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나는 호텔에 숙박할 때 항상 가명으로 해. 그러니 나를 추적하지는 못할 거야.

우리는 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제나의 증거를 모두 지웠다. 나는 제나의 가방을 들고 우리는 뒷문으로 해서 호텔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뒤로 돌아보지도 않고 서로는 헤어졌다.

나는 빠르게 두 블록 정도를 걸은 다음 택시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가까운 전철역으로 가주세요.

아, 첫차 타시려고요?

네, 맞습니다.

나는 택시 안에서 차창에 비친 호텔을 천천히 쳐다봤다. 특급 호텔의 네온사인이 동터오는 흐릿한 햇살 속에 번졌다. 나는 제나의 가방을 열어 속에 든 돈을 확인했다. 두둑하였다. 안개비가 쓸쓸하게 차창에 달라붙어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나는 호텔 물탱크에 제나가 쏟은 오물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무척 많은 돈을 벌거나 대단한 권력을 간직하거나 얼굴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져 자긍심이 대단한 사람들에게는 좀 위해가 되는 뭔가를 해도 돼. 난 그렇게 생각해. 그들에게는 좀 가혹해도 된다고 느껴. 무슨 말인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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