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 (Zena)
너에게 언젠가 말했을 거야. 아마. 난 유복한 집 외동딸로 태어났어.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애완동물을 많이 길렀지. 개, 고양이, 말,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토끼, 새, 햄스터, 거북이, 금붕어, 고슴도치까지….
와!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이네.
그런 셈이지. 그러다 어느 날 볼 파이선(Ball Python)을 기르기 시작했어.
볼 파이선?
응, 그냥 작고 온순한 뱀이야.
무섭지 않았어?
아니. 이미 도마뱀과 악어도 길러 봤는데 뭘. 문제는 다음이야. 나는 작은 뱀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척 큰 황금 비단뱀을 기르기 시작했어.
너는 동물 다큐멘터리 찍어도 되겠다. 그런데 그게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나는 그 녀석을 무척 좋아했어. 늘 같이 생활했어. 잘 때도 같이 자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음식을 안 먹는 거야. 아무리 좋은 먹이를 줘도 모두 거부하는 거야.
겨울잠 자려고 그러는 거 아냐?
바보야! 비단뱀은 인도네시아 같은 더운 지방에 살아. 겨울잠을 잘 리가 없지. 아무튼 그래서 수의사한테 데려갔지.
그래? 의사가 뭐라던데?
더 큰 먹이를 먹기 위해 몸을 비우는 과정이래.
더 큰 먹이?
응. 바로 나.
이런, 배은망덕한 파충류 같으니라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
일단 사흘 동안 울었어. 그리고 우리 집 창고에 중국산 큰 도자기가 있는데 그곳에 가뒀지. 단단하게 밀봉하고 구멍을 2개 뚫었어.
숨구멍이구나?
아니. 술 구멍. 그곳으로 술을 잔뜩 부었어.
오, 뱀술. 그거 한국에서는 유명한데.
아니, 나는 그냥 방부처리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오랫동안 잊고 살았지.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걸 발견한 거야. 그래서 경매에 내놓았는데 아주 비싼 값에 팔렸어. 어느 부유한 중국인이 사 갔다더군.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네. 그런데 그게 사랑이란 무슨 관계야?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행위가 사라졌어. 그게 애완동물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 온 거야?
그렇지. 그때의 배신감이 너무도 컸던 것 같아. 하지만 모든 게 나쁜 것은 아니야. 긍정적인 면도 있어. 정신적 사랑을 닫으니 육체적 사랑이 분출한 거지. 말하자면 육체적 쾌락에 몰입하게 된 원동력이야. 그리고 지금 너는 그 혜택을 보는 거고….
결국, 그 뱀이 우리를 맺어 준 거네. 말하자면.
그렇지. 말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죽은 뱀을 위로하는 육체적 향락을 한 번 더 누려볼까?
아! 그런데 그 중국인한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어.
너의 뱀술, 아니 그 뱀을 사 간 사람 말이지?
응. 밀봉을 풀고 그 뱀을 끄집어냈는데 여전히 꿈틀거렸다는 거야.
맙소사. 그거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데.
마저. 실제로 그 얘기 듣고 한동안 악몽을 꾸었지. 그 뱀에게 칭칭 감겨 서서히 잡아 먹히는….
배고프지 않아?
나는 휴대폰 시계를 쳐다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샤워부터 할 거야.
그래, 그럼.
제나는 우아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반투명 거울에 비친 그녀를 지켜봤다. 그런데 욕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제나가 내게 오라고 손짓했다.
왜?
샤워하는 거 촬영 좀 해줘.
그녀는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옷을 벗어 아름다운 몸짓을 내게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나는 휴대폰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바꾸고 그녀를 담기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린 피자 모양의 반짝이는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물방울은 그녀의 피부에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몸을 감싸는 맑고 투명한 장막을 이루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물결처럼 흐르며 어깨를 덮었고, 몸 구석구석을 탐닉한 물살은 미련이 남는 듯 배수구에 모여들어 거품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한 번씩 얼굴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훔쳐내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코믹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녀를 촬영했다.
욕조에서는 안 할 거야?
응. 샤워만 할 거야.
이윽고 물이 멈추었다. 잠시 고요해졌다. 제나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손짓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녀를 포근하게 안았다. 그리고 섹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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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대충 눈치챘겠지만 나는 틈틈이 동영상을 만들어 부수입을 올리고 있어.
내가 찍은 동영상을 살피던 그녀가 말했다.
어디에 파는데?
유료 포르노 사이트에.
그럼?
그래, 마르셀이 촬영 기사지. 실력이 좋아. 편집도 잘하고.
수입이 괜찮은 거야?
들쭉날쭉. 하지만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 게다가 온리팬스가 생기면서 요즈음 한몫 단단히 챙기고 있지.
온리팬스?
응. 그런 곳이 있어. 멍청한 녀석들이 내 몸 보겠다고 돈을 싸 들고 오는 곳이야.
와! 그럼 나는 행운아네.
그렇지. 너는 귀하신 내 몸을 공짜로 보고 만지고 쑤시기까지 하고 있으니. 당연하지.
아무튼 고마워.
그다지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곧 썩어 문드러질 육신인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