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정현의 집안은 사실 몰락한 귀족 가문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대나라 외신의 총감부 수장으로 각국 사절단을 접견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그는 이웃 나라들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구사하였으며, 저 멀리 서역의 말과 글도 상당수 이해하는 수재였다. 그때 당시 대나라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였고 정치, 문화,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주변 국가를 선도하였다. 그러므로 외국 사절단의 왕래가 무척 잦았다. 그는 대나라 외교의 중심으로, 각종 행사를 주관하고 주요 회의에 참여하여 원활한 소통을 이끌었으며, 사교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보여 대나라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덕분에 정현은 그의 나이 열여섯이 될 때까지 궁궐이 내다보이는 넓은 저택에서 풍족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증조부의 직책은 대물림되어 그의 아버지, 이숙도 외교부의 중요 직책을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정현에게도, 일찍부터 그가 받게 될 직책에 합당한 공부를 하였는데, 바로 다른 나라 언어와 관습,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이미 5,000년 전에 멸종한 고대 종족의 언어도 익혔다. 왜냐하면 현대 언어 대부분이 고대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여전히 고대어와 유사한 말을 하는 지역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였다. 또한, 고고학적으로도 꽤 유용하였는데, 이 땅의 많은 곳에서 고대 유물이 끝없이 발굴되었기 때문이었다. 정현의 집안은 외교적 통역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유물의 번역에도 상당히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사실, 정현 가문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이 고대 유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어느 날, 정현의 아버지 이숙은 고고학 발굴 관장으로부터 상자 한 통을 받았다. 그동안 이숙은 발굴한 문서와 서책의 번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받은 거였다. 그런데 그 상자 속에 담긴 것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알약이었다. 이번 발굴 장소에서 대량으로 나온 것인데, 효과 좋은 진통제 정도로 생각하고 이숙은 받은 거였다. 그런데 발굴팀 소속의 말단 직원이 이 약을 몰래 빼돌려 어느 귀족에게 팔았고, 그 귀족은 이것을 어느 후궁에게 몰래 진상하였다. 그런데 그 후궁이 다음날 즉사를 하고 말았다.
대나라에서 마약은 법으로 엄격히 금하는 물건이었다. 진상팀이 꾸려지고 발굴에 참여했던 관료 대부분이 관직을 박탈당하고 곤장을 맞고 오지로 귀양살이를 떠났다. 이숙에게도 조사가 들어갔는데, 사실 이숙은 상자를 받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사실 그에게는 외교 관련하여 워낙 많은 선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대부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귀한 것은 창고에 보관했다가 나라에 바치곤 하였다. 그러므로 이숙은 마약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런데 창고에서 약상자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숙은 항변하였지만, 물증이 나온 이상 죄를 면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자기 잘못으로 집안 대대로 쌓아온 청렴한 선비 집안이 불경한 위선자로 몰린 것에 크게 상심하여 자결하고 말았다. 정현의 어머니 또한,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실성한 채, 거리를 배회하다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러버렸다. 집안의 식솔들은 화를 면하기 위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노모와 정현만 남아 멀고 먼 외지로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정현은 심지가 굳고 태생이 착한 청년이었다. 그는 조용히 노모를 살뜰히 보살폈으며, 비록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잡일을 해야 하였지만,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기쁨조> 모집원이 그에게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만 보살피게 해 달라고 사정사정하였지만,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청년의 씨가 말라가는 상황이라, 모집원으로서도 정현을 잡아가지 않으면 당장 자기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관청이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보살피겠다는 약조를 받고, 그는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모집원과 함께 수도로 떠났다.
벌륜으로 끌려간 정현은 엄격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최우수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혜월당에 감금되었다. 그는 가장 좋은 방으로 배정이 되었는데, 근래에 최우수 판정을 받은 이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마치 사형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 신세가 되었다. 황제의 부름이 곧 그의 사형집행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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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은 궁궐에 머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빈의 부름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쓸만한 총각들 씨가 말라, 그녀의 눈에 하나같이 성에 차지 않는 남자들 뿐이었으니, 정현의 등장은 삽시간에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총감 내시의 안내에 따라, 먼저 욕탕으로 갔다. 그곳에서 온탕과 냉탕을 7회 반복한 다음, 얼굴 홈이 파인 나무 침대에 엎드려 때를 밀었다. 그렇게 30여 분 정도 몸의 모든 때를 구석구석 밀고 나서 온갖 향으로 가득한 밀실에 들어가 향 기름을 발랐다. 몸이 마를 때쯤, 그는 비단으로 짠 잠옷을 걸치고 대기실로 갔다. 그때 정현은 자신이 지니고 다니는 조그마한 주머니에서 파란 알약 하나를 꺼내 삼켰다.
이윽고 밤이 되어, 모든 공사 업무를 마무리하는 타종이 다섯 번 울리고 나자 자그마한 동자 내시가 나타나 정현을 황제의 침실로 이끌었다. 그들은 모두 99개의 작은 문을 거쳐야 했는데, 문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정현의 가슴은 걱정으로 졸아들었다. 마침내 황제의 침소에 이르렀다. 정현은 큰 절을 세빈에게 올리고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후, 침소 내시가 다가와 정현에게 속삭였다.
“얼굴을 들어 황제에게 보여라.”
정현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반투명의 명주실 천이 천장에서 길게 내려와 세빈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세빈의 좌우 옆에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경비관들이 긴 칼을 차고 서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술병과 안주가 담긴 상이 차려져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오너라” 세빈이 다정하면서도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현은 무릎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때, 그가 먹은 파란 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중요 부위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좀 더 가까이….” 세빈은 답답한 듯,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현은 발기한 모습을 감춘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최대한 힘을 가해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황제에게 가까워지면서 정현은 흘낏흘낏 세빈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못생긴 얼굴로 후궁이 될 수 있었을까?’
세빈 앞에 엎드리고 있는 가장 가까운 시중과 비슷한 지점까지 왔을 때, 갑자기 칼이 정현의 목 가까이 쓱 들어오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거기까지다. 멈추거라!” 정현은 서슬 퍼런 칼이 눈앞에서 번뜩이자 매우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그만 그의 변화된 신체 부위가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이 광경을 본 세빈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놈을 데려왔구나. 이 자를 데려온 모집원에게 큰 상을 내리거라.” 그러면서 황제는 고개를 두 번 끄덕거렸다. 그러자 동자 내시가 정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봉축하옵니다. 합격이옵니다. 우선, 황제님께 해가 될 수 있는 어떤 물건도 지닐 수 없으므로 모든 옷을 벗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세심히 살펴볼 것입니다.”
“여 여기서요?” 정현은 낭패감이 삽시간에 들었다. 이렇게 많은 눈이 자신을 쳐다보는데, 이런 곳에서 발가벗겨진다는 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허튼짓했다간 그 자리에서 당장 경비관의 칼에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옷을 모두 벗자 내시 2명이 달려들어 정현의 구석구석을 만지고 찔러보고 벌려서 살펴보았다. 이윽고 모든 검사가 다 끝나자 모든 시중은 물러났다. 하지만 경비관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난 뒤 그 자리에 다시 버티고 서 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응….” 세빈은 기분이 좋은 듯, 간만에 콧소리를 내면서, 마치 연인에게 대하듯 다정스레 말했다. 정현이 다가가자 세빈은 그의 가슴에 안기며 속삭였다.
“너 물건이 예사롭지 않구나….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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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3번 울렸다. 황제는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정현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어찌 잠을 청할 수가 있겠는가? 날이 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운명인데…. 정현은 한없이 슬픈 모습으로 종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