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1

by 남킹

“성공의 배후에는 오로지 하나의 의지, 즉 가장 높은 다이빙대에서 장려하게 추락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 상상력 사전>



1.



“너 같은 녀석도 꼭 필요한 존재지. 사회악. 왜 그런 줄 알아?” 어느 날 교도소장이 나를 불렀다. 487일을 복역한 날이었다. 그리고 내일 출소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회도 면역이 필요하거든. 항체 말이야. 너 같은 녀석들을 다루다 보면 그런 게 생겨나거든.”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긴 그 자리에서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겠는가? 하루만 지나면 평생 안 봐도 되는 인물한테.

“그러니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자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야. 세상을 위한 거름. 뭐, 그런 운명을 타고난 거지. 말하자면.” 그는 두꺼운 안경 너머로 미소를 띄웠다.

“나잇살이나 훔친 이 미욱한 늙은이가 자조하듯 쓴 글이네. 한 번쯤은 곱씹을 만할 거야. 받아두게.” 그리고 내게 책을 건넸다.


출소 후, 나의 첫 행동은 쓰레기통을 찾는 거였다. 그리고 그 책을 버렸다. 물론 한 줄도 읽지 않았다. 책 표지만 어쩔 수 없이 봤다. 온화한 모습의 소장이 그려져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명상> <김학수 저> 나는 끈적거리는 거미줄을 털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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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할 때가 있다. 고향에 내려왔다. 지겨운 햇빛과 바람이 넘쳤다. 바빠지고 싶은데 한가하게 놀았다. 소싯적에 놀던, 바닷물이 질척거리는 곳에 꾀바른 게를 찾아, 돌 틈을 뒤지고 다녔다. 팔랑스테르 같은 공동체에 살고 싶었지만 혼자 쓸쓸히 집을 지켰다. 뜨듯한 골방에, 안온한 요에 누워 종일 뒹굴고 싶은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백록담을 내려다봤다. 그렇게,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이력서를 조작했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설익거나 뭉크러진 노지 감귤을 조심스레 까먹으며, 자기소개서를 그럴싸하게 꾸몄다. 신중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늘 견지한다고 적었다. 친숙하고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의 굄을 받는다고도 덧붙였다. 끊임없는 욕구 불만과 좌절과 같은, 익숙하게 내 곁을 감싸는 용어는 모두 감췄다. 성실함도 잊지 않고 기록했다. 완벽한 자기소개서. 훌륭한 거짓말이 끈적거리며 사방에 퍼졌다.


나이든 면접관은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작은 나보다 더 작았다. 나의 소설을 흐뭇하게 읽고 믿음을 주었다. 그는 나의 거짓말을 통해 나를 안다고 믿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통해, 그가 나를 믿고 있다고 믿었다.

“컨시어지란 게, 어려운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얄팍한 안경 너머로 미소를 띄웠다.

“친절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세상의 이치처럼 말이죠. 친절하면 뭐든지 통하는 세상 아닙니까?” 나는 진지하게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긴 뭐, 내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답하겠는가? 모두 옳은 말인데.


그의 말대로 골프장 컨시어지는 간단한 일이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골프 백을 꺼내거나 싣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달콤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간단한 일이 있다니! 나는 콧바람을 불며 즐거이 일했다. 차가 오면 달려나가고, 안 오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붙은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일회용 커피를 마셨다. 손님들은 몰려서 왔다. 바쁠 땐 아주 바쁘고 한가할 땐 아주 한가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부는 날에는 손님이 뚝 끊어졌다. 그럴 때면 종일 책상에 앉아 하늘과 바람, 구름을 지켜봤다. 혹은 달팽이가 남긴 끈끈액 흔적을 눈으로 따라가거나, 노란 꽃의 개자리 정원을 무심히 쳐다보기도 했다. 무엇을 하던, 하루의 정해진 9시간은 무던히 흘러갔고, 나는 연명할 수 있는 적당한 양의 돈을 벌었다.


나의 직장 동료는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다. 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무척 편안한 사람이었다. 즐거운 일을 함께한 이보다 고통을 함께 나눈 이들에게 더 큰 친근함을 느낀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웃기는 소리. 사람 나름이다. 친근함은 좋은 사람에게만 비롯된다. 그리고 나는 나쁜 사람이다. 나에게서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놈>이다. 나는 세상 어디에든 거미줄을 친다. 내게 걸려든 인간은 대체로 순박하고 착하다. 그리고 나는 영악하다.


우리는 매일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만 마셨다. 하루에 한 병, 두 병 혹은 세 병씩 마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무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십에 제주도로 돌아왔다. 일본인 아내와 함께. 자식은 없으며 애완견 다섯 마리를 키웠다. 그리고 좁고 낡은 빌라에 살았다. 아내는 박물관에 근무하였다. 그의 말을 빌자면, 도내에서 가장 훌륭한 섹스 박물관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를 다정한 동생으로 여겼다. 나는 그를 좋은 먹잇감으로 생각했다. 그는 검소하였다. 그는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에 살고자 했다. 아내의 소원이었다. 그는 아주 조금씩 오랫동안 돈을 모으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의 꿈이 담긴 돈 가방을 지닌 채. 기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나는, 끈적거리는 손을 열심히 씻었다. 잘 씻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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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내리는 빗물 - 2023-12-21T164345.26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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