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냥 소박하게 현재에 살고 싶은 거야.” 나는 그녀의 서글픈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냥 미래를 보지 말고, 뜬구름 같은 목표도 생각지 말고.” 그녀는 애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루하루가 평형한 상태로 사는 거 말이야.” 약혼자는 내가 정치판에 뛰어든 이듬해, 내 곁을 떠났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정계로 뛰어든 건 당연한 거였다. 원래부터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즉, 남들보다 잘 먹고 잘사는 게 목표였다. 남들처럼.
기초는 잘 다져두었다. 훌륭한 학벌, 착한 외모, 수려한 말솜씨, 온화한 미소. 나는 일찌감치 파악했다.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요하고 겉치레가 실속을 능가하는 세상을. 나는 유권자를 잘 알고 있었다. 더는 정강 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는 정직함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출신 지역, 학교, 생김새와 미소, 음성, 옷맵시, 언론 노출, 당당한 자세, 재치 있는 언변 따위로 후보자를 선택한다는 것을.
어느 날 나는 정치인들을 조사했다. 거름이 될 든든한 후원자가 필요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의 허수아비. 나의 유학을 책임진 전 약혼자처럼. 나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버려진 단감을 주우어와 조심스레 깎아 먹으며, 자기소개서를 화려하게 꾸몄다. 미국 유학 시절, 모 주지사의 선거 캠프에서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자신을 치켜세웠다. 물론, 실제로 참가한 적은 없었다. 대신, 참가했던 동기들로부터 귀동냥은 열심히 듣고 다녔다.
끈기 있고 치열하게 세상을 마주한다고 적었다. 능숙하고 늘 믿음이 가는 얼굴로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쉴 새 없는 감정 기복과 불만, 고통 같은, 나를 수식하고 규정짓는 단어들은 모두 없앴다. 우수한 학교 성적도 빠트리지 않고 적어 넣었다. 대단한 자기소개서. 전도 양양한, 새 나라의 젊은 일꾼. 멋진 공갈이 끈적거리며 나를 감쌌다.
거만한 국회의원은 나를 한 번 흘낏 보고는, 시선을 자기소개서에 두었다. 그는 영악한 나보다 더 영악해 보였다. 나의 부풀림을 감동 있게 읽었다고 하였다. 그는 나의 기만을 통해 나를 신뢰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통해, 그가 나의 버팀목으로 손색이 없음을 어림하여 헤아렸다.
“정치라는 게, 어려운 거 하나도 없어.” 그는 두툼한 볼살을 흔들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럴싸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게 세상의 이치야. 그럴싸하면 뭐든지 통하는 세상이니까. 그렇지?” 나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 내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반박을 하겠는가? 불변의 진리인데.
그의 말대로 그를 보좌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정보와 관련된 일을 하였다. 불리한 정보는 감추고, 유리한 정보는 드러내는 일이었다. 정보의 통제. 정의는 간단하였다. 하지만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웠다. 웹의 세상에 한 번 드러난 정보는 숨기기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정보를 차단하지 않고 유사 정보를 창조하여 범람시키곤 하였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무의미한 정보들 속에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요즈음은 졸작들의 과잉시대이다. 무엇이든 쉽게 만들고, 그리고, 작곡하고, 창조하고, 글을 쓰고, 꾸며서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 유사하게 만들기는 더욱 쉽다. 수많은 베낌 속에 독창은 사라지고 비평은 무엇을 봐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는 짜깁기의 대가였다. 필요한 지식은 검색하면 쉽사리 나왔다. 이곳저곳의 기사를 가져와, 비근한 예를 들고, 적당히 버무리고 살짝 비틀어서, 사건의 맥락을 잇대고, 그럴싸하게 보이게만 하면 그만이었다. 대중을 현혹하는 혼탁한 거미줄 세상. 나는 명민한 통찰력을 지닌 창조자였다.
나는 기사를 올릴 때마다 신나게 외쳤다. “아브라카다브라 <말한 대로 될지어다>” 난 속임이 주는 가짜 세상에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만족한 나의 허수아비는 점점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의 뜨락에 꼭꼭 숨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껏 누렸다. 고개를 들어, 처마 밑, 어둡고 구석진 곳을 유심히 봐야만 보이는 나는, 칸살이 붙은 내 침대에 편안히 누워 지냈다. 급전직하한 정치 세계에 변함없이 총만 받는 어두운 그림자였다.
적어도 그 망할 놈의 기자 새끼가 절뚝거리며 집요하게 달라붙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 오랜만이다!” 녀석을 보는 순간, 잊었던 공포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