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풍이 몰려왔다. 수송기 부대 항공기 정비 특기인 나는, 내심 이런 날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궂은 날에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항공기를 격납고에 들여놓았고, 외부에 있는 비행기, 헬기, 관련 장비들은 모두 결박하였다. 찌는 듯한 더위가 사라졌다. 바람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상쾌했다.
그런데, 갑자기 서늘함이 오싹하게 왔다. 집합이 떨어졌다. 7 내무반 상병 이하 모두. 장소는 행거(Hangar)안 C-123. 바로 우리가 매일 정비하는 수송기 안이다. 최악의 집합 장소다. 좌, 우측 도어와 후방 로딩 도어까지 모두 닫히고 나면, 그 속에서 어떤 참사가 벌어져도 바깥에 찍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비행기는 폐차 직전의 화물차보다 더 낡아 ‘과연 이런 게 뜨긴 뜨는 거야?’ 할 정도지만 방음장치 하나 만은 완벽하였다.
사이코 윤 병장의 지시였다. 행거로 향하는 발걸음이 공포로 후들거렸다. 같이 걷고 있는 동기, 오 상병, 김 상병 얼굴에도 두려움이 무겁게 걸려있다. 삑 하고 행거의 조그만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뚱뚱한 수송기 한 대가 놓여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 살포기로 악명을 떨쳤던 그 비행기다. 그리고 이젠 우리에게 또 다른 오명이 되었다.
윤 병장의 집합 장소는 그의 기분에 따라, 주로 세 군데로 나뉘었다. 내무반, 화장실, 비행기. 내무반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구타가 이루어졌다. 뺨을 때리던가, 흔히 ‘쪼인트 깐다’로 알려진 정강이 걷어차기, 젖꼭지 비틀기 등등. 그다지 큰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가벼운 형벌들이었다. 군에서의 구타 행위가 기본적으로 금지된 상황인지라, 가끔 깐깐한 당직사관에게 들키게 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사이코라지만, 윤 병장도 내무반에서는 눈치를 보며 때렸다.
다음은 화장실. 정확하게는 외부 화장실 뒤편이다. 여기서는 주로 주먹과 군홧발, 몽둥이가 이용되었다. 강도는 강하지만 시간은 비교적 짧게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곳에도 아주 가끔이지만, 부지런한 당직 사령관이 순찰을 돌 때가 있기 때문이었다. 들키면 빼도 박도 못하고 헌병대 영창에 보내질 수도 있었다. 상병 때 이미 영창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이 사이코는, 헌병대에 끌려가는 것을 엄청 두려워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 집합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후다닥 해치우는 게 특징이었다.
그리고 비행기 안. 나는 자대배치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맞닥뜨린, 비행기 집합의 공포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노란 전구. 수송기의 모든 문이 닫히면 흐릿한 노란 세상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감춰지고 침묵 속에는 무한한 공포가 흘렀다. 그리고 시작된 상급자의 무차별 폭행. 군홧발이 여러 차례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맞는 순간, 쓰러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장소라면, 쓰러지는 게 충격 완화에 한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소위 ‘짬밥이 어느 정도 된’ 상병쯤 되면, 축구에서 말하는 ‘헐리웃 액션’의 대가가 된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멋있게 나뒹구는 거였다. 하지만 수송기 안은 좁고 딱딱하다. 내부는 온통 강철로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카펫과 안락한 의자가 마련된 민간 여객기가 아니다. 쓰러져 어느 부위에 어떻게 부딪히더라도 그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맞더라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그게 발이든 손이든 쇠파이프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둠 속에 두툼하고 기형적인 몸집의 윤병장이, 거친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들어왔다. 홱 쏠리는 서슬에 심장이 날카롭게 뛰기 시작했다.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공포가 온몸을 찌르르 관통하며 내려갔다. 그는 천천히 그의 군화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서 있기조차 싶지 않았다. 나는 흐르지도 않는 땀이 눈에 든 듯, 계속해서 눈을 껌뻑거렸다. 윤병장의 찢어진 눈길이 내게 닿았다. 나는 서둘러 눈을 깔았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비열한 눈길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아랫배 깊숙이 익숙한 공포가 찔러왔다.
구타가 시작되었다. 겁에 질린 목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두드렸다.
침상에 피곤한 몸뚱이를 뉘자 가슴의 통증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누르기 시작했다. 군홧발로 적어도 열대는 맞은 것 같았다. 그나마 때리다 지친 녀석이 쇠파이프 들기를 포기한 게 다행이었다. 가슴 전체가 아주 골고루 쑤시고 결렸다. 하지만 육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실감조차 무뎌진 것 같은 비참함이었다. 게다가 저 정신병자 녀석과 앞으로 1년은 더 붙어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놈과 같은 침낭에서 살을 맞대고 해를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바늘을 내 손으로 확 잡아당기고 싶었다. 앞으로 당길 수 없다면 차라리 거꾸로라도 돌리고 싶었다. 이 인간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경우의 순간으로 말이다.
지난 일 년은 정신없이 그럭저럭 버텨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점점 불안해졌다. 나 자신의 정신 상태를 신뢰하기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차츰 저 녀석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지불식간에 내가 꿈꿔왔던 내 삶을 송두리째, 한순간에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정말 두려웠다.
윤 병장과는 입대일이 불과 5개월 차이다. 더욱이 그는 나보다 4살이나 어렸다.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대했다. 만약 내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 학기 휴학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의 졸병 혹은 최소한 입대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입대는 나의 계획에 들어 있지 않았다. 나는 정치학 교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한국의 근, 현대사, 특히 이승만 정권 이후, 친일파들이 어떻게 이 나라를 망쳐놓았는가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을 줄곧 느껴왔다. 나는 대학 입학 이후, 대학을 떠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적어도 아버지가 거액의 부도를 내고 잠적하기 전까지는 말이다.